심은 대로 거두리라 (갈 6:6-10, 요 12:24)
세상에 신비한 일이 많이 있지만, 신비 중의 신비는 성도의 믿음입니다. 2천년전 일어난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을 통해 구원에 이른다는 믿음을 가진다는 것은 신비입니다. 상식적으로는 믿기 어려운 일이지만, 우리는 이를 벌써 믿고 있습니다. 이 믿음은 하나님의 선물이요 신비입니다. 그런데 더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성도는 믿음의 신비에만 머물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신비한 믿음을 잘 지켜가야 할 뿐만 아니라 믿음의 성장을 통해 열매를 맺어야 합니다. 그것이 바로 하나님이 성도에게 원하시는 목적입니다.
그러나 이 믿음을 지키는 것은 쉽지가 않습니다. 왜냐하면 세상이 믿음을 지키도록 그냥 놔두지 않기 때문입니다. 또한 때때로 만나는 삶의 문제와 어려움은 신앙의 회의를 가져오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믿음 지키기가 어려울 때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믿음을 보호할 수 있는 말씀을 갖는 것입니다. 그것은 본문 말씀이자 설교 제목인“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리라.”입니다. 이 말씀을 신앙에 대입해보면 마음에 용기가 생기고 소망이 생깁니다. 왜냐하면 내가 하는 모든 것은 그냥 하는 게 아니라 심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지금의 신앙의 분투가 보잘 것 없어 보여도 언젠가는 열매로 돌아올 것이기 때문입니다. 본문 말씀을 통해 함께 3가지로 은혜 나누기를 원합니다.
1. 심으면 반드시 거둡니다.
믿음 생활할 때 절대 놓치지 말고 꼭 반드시 붙들어야 하는 진리가 있습니다. 바로 ‘심으면 거둔다’는 진리입니다. 심으면 거두게 되어 있습니다. 예수님에 대한 믿음을 갖는 것은 다름 아닌 심는 것입니다. 교회에서 예배드리는 것, 교회를 위해 봉사하는 것 역시나 심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이 모든 것을 행할 때 명심해야할 것이 있습니다. 언젠가는 이 심은 것을 다 거둔다는 사실입니다.
예수님도 심으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에서 죽으시는 것을 심는 것으로 생각하셨습니다. 요한복음 12장 24절의 말씀입니다.“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 이 말씀에는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에 대한 확신이 담겨있습니다. 그것은 그냥 죽음이 아니라 심는 것이었습니다. 한 알의 밀알이 되어 땅에 심겨 많은 열매를 맺기 위함이었습니다. 이처럼 신앙은 심는 것입니다. 심으면 반드시 거둡니다. 그러기에 아끼지 말고 기회가 있을 때 부지런히 심는 우리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2.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둡니다.
성경은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둔다고 합니다. 갈라디아서 6장 7절은 말합니다. ‘스스로 속이지 말라 하나님은 업신여김을 받지 아니하시나니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리라’여기서 가장 중요한 말은 바로‘무엇으로’입니다. 이‘무엇으로’라는 말에는, 좋은 것도 포함되지만 나쁜 것도 포함됩니다. 결국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둔다는 것은 좋은 것만 심은 대로 거두는 게 아니라, 나쁜 것도 심은 대로 거둔다는 뜻입니다. 갈라디아서 6장 8절은 그것을 더 구체적으로 말합니다.‘자기의 육체를 위하여 심는 자는 육체로부터 썩어질 것을 거두고 성령을 위하여 심는 자는 성령으로부터 영생을 거두리라’여기서 육체를 위하여 심는다는 것은 육체의 본성을 따라 사는 것을 뜻합니다. 육체의 본성은 두 가지인데, 첫째로 이기심입니다. 나를 지극히 사랑하는 것입니다. 둘째는 교만입니다. 내가 내 삶의 주인이 되는 것입니다. 이게 육체의 본성이요 죄입니다. 그래서 죄를 의미하는 영어 단어 Sin의 가운데 철자가 바로 I인 것입니다. 죄는 다른 게 아닙니다. 내가 모든 삶의 중심이 되고, 내가 삶의 주인이 되는 것이 죄입니다. 그렇기에 육체를 따라 사는 삶은 철저하게 나 중심입니다. 하나님도 없고 이웃도 없습니다. 오직 나만 있습니다. 그 결과를 성경은 육체를 위하여 심는 자는 육체로부터 썩어질 것을 거둔다고 증거 합니다.
창세기 가인과 아벨 이야기중 가인은 철저하게 육체를 위해 심은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면서도, 그 마음에 하나님이 없었습니다. 만약 그의 마음에 하나님이 있었으면, 하나님께서 제사를 받지 않으셨을 때 분명 하나님 앞에 회개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가인은 회개가 아니라 불만을 가졌습니다. 그리고 그 불만을 애꿎은 동생 아벨을 향했습니다. 그는 동생을 돌로 쳐 죽였습니다. 하나님이 주신 마음이 아니라 육체의 본성대로 행한 것입니다. 그 결과 그는 유리방황하는 인생이 되었습니다.
사람은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둡니다. 육체를 위하여 심으면 육체로부터 썩어질 것을 거둡니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하나님께 좋은 것을 심으면 좋은 것을 거두게 하십니다. 재물을 심으면 재물을 거두게 하시고, 건강을 심으면 건강을 거두게 하십니다. 갈라디아서 6장 8절 후반부는 말합니다.‘성령을 위하여 심는 자는 성령으로부터 영생을 거두리라’성령을 심어 영생을 거둘 수 있는 우리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3. 낙심하지 말고 심어야 합니다.
무언가를 심을 때 낙심되는 경우는 대부분 좋은 것을 심을 때입니다. 나쁜 것을 심을 때는 낙심이란 게 없는데, 좋은 것을 심을 때는 어김없이 낙심이란 게 찾아옵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갈라디아서 6장 9절에서 권면합니다.‘우리가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말지니 포기하지 아니하면 때가 이르매 거두리라’선을 행하는 것은 그냥 행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심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낙심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바울은 10절에 구체적인 권면을 하나 더 합니다.‘그러므로 우리는 기회 있는 대로 모든 이에게 착한 일을 하되 더욱 믿음의 가정들에게 할지니라’여기서 믿음의 가정들은 교회 밖의 사람들이 아닌 같은 교회에 속한 성도와 교우를 말합니다. 즉 착한 일을 할 거면 다른 누구보다 그들에게 하라는 이야기입니다. 하나님이 교회 안에서 한 성도로 묶어주신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교회 안에서 한 가족이 되어 서로에게 착한 일을 많이 함으로 하나가 되라는 것입니다.
오래 전 교회학교 선생님을 상담한 적이 있습니다. 부서 부장 선생님 때문에 마음이 상해서 그 부장님의 조치를 원한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할 수 없어 먼저 기도하자고 권면했습니다. 며칠 지나 그 분이 다시 찾아왔는데, 부장님을 조치하는 건 아닌거 같다며 마음을 돌이켰습니다. 그 후 수년이 지났습니다. 이 선생님이 부서 아이들을 데리고 성탄 행사를 하다가 갑자기 무대 위에서 쓰러졌습니다. 고혈압 때문에 중요한 혈관이 터진 것입니다. 수술을 해야 했는데, 이 수술은 성공할 확률이 매우 낮은 위험한 수술이었습니다. 설상가상으로 이 선생님의 남편은 실직상태로 경제적으로도 어려운 상황이었습니다. 그날로 교회학교 교사들에게 다 중보 기도할 것을 요청했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그날 밤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수술이 성공적으로 마친 것입니다. 부장님에게 상처를 받았지만 묵묵히 10여 년 자신의 자리를 지켜 하나님께 헌신한 것에 대한 하나님의 응답이었습니다. 그 일로 믿지 않던 남편도 전도가 되었습니다. 또한 그 교사를 위해 교회학교 모든 교사가 후원금을 모았는데, 놀랍게도 넉넉히 수술비를 충당하고도 남았습니다.
이처럼 우리 역시도 신앙으로 살려고 선을 행하다보면 낙심할 만한 일이 찾아올 때가 있습니다. 그럴 때 선을 행하다 낙심하지 않기를 소망합니다. 포기하지 않고 계속 선을 심다 보면, 나중에 내가 상상할 수 없는 열매를 거두게 될 줄로 믿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