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마음을 아십니까? (눅 15:1-7)
우리 속담에“열길 물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속은 모른다.”는 말이 있습니다. 이 말은 그만큼 사람의 마음을 알기가 어렵다는 말입니다. 사람 마음이 얼마나 알기 어려운지 심지어‘나도 내 마음을 모르겠다.’는 말이 있을 정도입니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두 가지 방식으로‘마음 알기’를 원합니다. 첫 번째는 다른 사람의 마음을 알기 원하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타인이 나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나에 대해서 호감을 갖는지를 알고 싶어 합니다. 두 번째는 다른 사람이 내 마음을 알아주기를 원하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우리는 하나님께서 내 마음을 알아주시길 원합니다. 그래서 복음 성가 가운데 내 마음을 알아달라는 찬양이 많습니다. 그 중‘내 이름 아시죠.’라는 찬양에는 이런 가사가 있습니다. “내 마음 아시죠. 내 모든 생각도. 내 흐르는 눈물 주가 닦아 주셨죠.”이처럼 하나님은 우리의 마음을 아십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마음을 아시는 반면, 대다수의 사람들은 하나님의 마음을 아는데 관심이 없습니다. 다른 사람의 마음을 알고 싶어서는 전화나 카톡을 하고 선물도 하는데 하나님의 마음 알기에는 관심이 없습니다. 본문 말씀을 통해 “하나님의 마음을 아십니까?”라는 제목으로 3가지로 은혜 나누기를 원합니다.
1. 성도는 무엇보다 하나님의 마음을 알아야 합니다.
누구를 대할 때 그 사람의 참 마음을 아는 게 중요합니다. 상대방의 마음을 모르면 오해나 곡해로 이어질 수가 있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이 가장 오해하고 잘 모르는 마음이 있는데, 바로 하나님의 마음입니다. 예수님 당시 유대인들도 하나님의 마음을 잘 몰랐습니다. 왜냐하면 종교지도자들, 바리새인들이 백성들에게 하나님에 대해 잘못 가르쳤기 때문입니다. 백성들은 하나님을 너무 높고 엄위하신 분으로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세리나 창기와 같은 사람들은 하나님 근처에도 갈 수 없다고 믿었습니다. 그러나 이런 유대인들에게 예수님은 끊임없이 하나님은 그런 분이 아니심을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세리와 창기 같은 죄인들이 멸망당하기를 원하시는 분이 아니라 그들을 구원하시기를 원하시는 분이라 가르쳤습니다.
마태복음 7장 7절에서 예수님은“구하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리하면 찾아낼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라고 말씀하십니다. 이 말씀을 통해 예수님이 하시려는 말씀은 간단합니다. 하나님은 구하면 주시고, 찾으면 만나주시고, 두드리면 열리게 하실 정도로 가까운 분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이 말씀 뒤에“너희가 악한 자라도 좋은 것으로 자식에게 줄 줄 알거든 하물며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좋은 것으로 주시지 않겠느냐(마7:11)”라며 안타까운 마음을 전하십니다. 하나님의 마음을 제대로 알라는 것입니다.
한 어린 아이가 모야모야병이라는 난치병에 걸렸습니다. 이 병은 뇌혈관이 좁아지는 병인데, 흥분을 하거나 운동을 하면 혈관이 터집니다. 그 아픈 아이의 모습을 보는 엄마의 눈에서 눈물이 마르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하루는 아파서 울던 아이가 엄마에게“엄마 이제 울지마, 나 이제 안 아플 게 울지마세요.”라고 말했습니다. 아마 어린 아이는‘내가 아프다고 울면 우리 엄마는 나보다 몇 배로 더 아프구나.’라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이처럼 우리도 하나님의 마음을 알아야합니다. 내가 아프다고 울면 나보다 더 아파하시는 하나님의 마음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2. 하나님의 마음은 하나님을 잃어버린 인생에게 가 있습니다.
본문 누가복음 15장에는 하나님의 마음을 표현하기 위한 세 가지 비유가 등장합니다. 잃은 양 한 마리의 비유, 한 드라크마(동전)의 비유, 잃은 한 아들의 비유입니다. 이 비유들은 이야기만 다를 뿐 메시지는 하나입니다. 바로 하나님의 마음입니다. 하나님의 마음이 어디에 가 있는 가 입니다.
양 백 마리를 가진 목자가 있었습니다. 그는 풀과 물이 많은 곳으로 양들을 데리고 다녔습니다. 그러다가 해가 뉘엿뉘엿 져서 양들을 우리 안으로 들이는데, 한 마리가 빈 것을 알았습니다. 양 한 마리를 잃어버린 것입니다. 삯군 목자면‘한 마리 정도야’하면서 그냥 눈가림으로 넘어가겠지만 이 목자는 선한 목자였습니다. 양들을 자식처럼 생각하는 사람이었습니다. 한 마리가 사라졌다는 것을 안 순간부터 목자의 마음은 우리 안에 있는 아흔 아홉 마리 양이 아니라, 어딘가 캄캄한 밤에 떨고 있을 그 한 마리 양에게 향했습니다. 오늘 지나왔던 길을 걷고 또 걸어 양을 찾았습니다. 그러다가 어디선가 희미하게 양의 소리가 들려왔습니다. 달려가 보니 양이 가파른 비탈에서 구르다가 그만 가시덤불에 걸린 것입니다. 목자는 자기 역시 비탈에서 구를 수도 있는 위험을 무릅쓰고 가까스로 팔을 뻗어 양을 건져냈습니다. 목자가 그 다친 양을 어깨에 두르고 우리로 돌아오는데 그렇게 기쁠 수가 없었습니다. 잃은 줄로만 알았던 양을 찾게 되니 너무 기뻤던 것입니다.
여기서 주목해야할 것이 있습니다. 바로 목자의 마음입니다. 본문 4절의 말씀입니다. “너희 중에 어떤 사람이 양 백 마리가 있는데 그 중의 하나를 잃으면 아흔아홉 마리를 들에 두고 그 잃은 것을 찾아내기까지 찾아다니지 아니하겠느냐”목자는 온통 잃은 한 마리 양에 마음을 쏟았습니다. 그리고 그 한 마리를 찾기 위해 모든 것을 쏟아 부었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마음입니다. 하나님의 마음은 하나님을 떠나 잃어버린 영혼들에게 향해 있습니다. 이처럼 우리 모두가 잃은 한 영혼을 찾으시는 하나님의 마음을 가지기를 소망합니다.
3. ‘하나님의 가장 큰 기쁨이 무엇이냐?’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가장 큰 기쁨은 잃은 영혼이 돌아오는 것입니다. 그 기쁨이 얼마나 큰지 누가복음 15장의 잃어버린 양을 찾은 목자는 벗과 이웃을 불러 모아 잔치를 벌입니다. 하지만 더 신기한건 잃어버린 양 비유의 뒤에 나오는 잃어버린 동전을 찾은 여인의 이야기입니다. 그녀는 잃어버린 동전 하나를 찾고서 벗과 이웃을 불러 잔치를 벌입니다. 좀 과하다 싶을 정도입니다. 인간적으로 보면 이 정도로 기뻐할 일이 아닌 거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여기서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잃어버린 한 영혼이 돌아올 때 하나님께서 이처럼 기뻐하신다는 것입니다. 비유 속의 목자나 여인의 기쁨은 바로 하나님 아버지의 기쁨을 나타냅니다.
어느 80대 고령의 집사님이 자신의 주머니에서 종이 한 장을 꺼내 목사님께 보여주었습니다. 목사님께서 무어냐고 물으니까, 자신이 전도하려고 기도하고 있는 사람들 명단이라고 했습니다. 모두 99명이었습니다. 집사님은 그 한 사람 한 사람의 이름을 적어놓고 기도하고 계셨던 것입니다. 우리 역시도 이 집사님처럼 하나님의 마음을 품고 잃어버린 영혼들을 찾기를 소망합니다. 하나님이 가장 기뻐하시는 일을 행하는 우리가 되기를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