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박함은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왕하 20장 1-11절, 시 42편 1-3절)

기독교

절박함은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왕하 20장 1-11절, 시 42편 1-3절)


 

사람은 누구나 인생에서 절박한 순간을 맞이하고 경험합니다. 학생들의 경우 어려운 시험을 치를 때 절박함을 느낍니다. 많은 교민들의 경우 워크비자나 영주권을 받아야하는 때에 절박함을 맞이합니다. 그런데 대개 사람들은 이런 절박한 순간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지금 무언가가 다급하고 절실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절망하게 됩니다. 그러나 절박함에 대해서 알아야할 또 한 가지 중요한 사실이 있습니다. 그것은 절박함이야말로 지금 맞이하고 있는 절박한 문제들을 이길 수 있는 힘이란 사실입니다. 더 나아가 절박함은 한계를 뛰어넘을 수 있는 능력입니다. 이처럼 절박함을 통해 하나님께서 어떤 은혜를 주시는지절박함이 하나님의 은혜라는 제목으로 함께 3가지로 은혜나누기를 원합니다.

 

1. 오늘 나의 절박한 현실이 곧 하나님을 만나는 기회가 됩니다.

본문의 내용은 남 유다의 3대 선왕 중 한 사람이었던 히스기야 왕의 유명한 사건입니다. 그는 병들어 죽게 되었다가 생명을 연장 받았습니다. 열왕기하 201절을 보면 그의 절박한 상태가 잘 드러납니다. “그 때에 히스기야가 병들어 죽게 되매 아모스의 아들 선지자 이사야가 그에게 나아와서 그에게 이르되 여호와의 말씀이 너는 집을 정리하라 네가 죽고 살지 못하리라 하셨나이다.” 히스기야왕은 병들어 죽게 되어 살 가망이 없었습니다. 게다가 하나님께서는 선지자 이사야를 통해 히스기야에게 집을 정리하여 죽을 준비를 하라고 말합니다. 병들어 시름시름 앓고 있는데 하나님마저도 죽을 준비를 하라고 하시는 겁니다. 하지만 이 절박한 현실 앞에서 그는 망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하나님을 새롭게 만나고 경험했습니다. 생명이 연장되는 새로운 가능성의 문을 열었습니다.

성경의 위대한 신앙인들은 히스기야와 같은 사람들이었습니다. 편안한 현실에서 하나님을 만난 것이 아니라 절박한 현실에서 하나님을 만난 사람들이었습니다. 삭개오는 여리고의 이름난 부자였지만, 재물로 채워지지 않는 공허함을 가진 사람이었습니다. 친구 없이 언제나 외톨이였습니다. 그렇기에 그는 절박한 마음으로 예수님을 보려고 뽕나무 위로 올라갔습니다. 그리고 그 절박함으로 인해 그는 예수님을 만났습니다. 수로보니게 여인도 그랬습니다. 그녀는 귀신들린 딸이라는 절박한 문제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것을 예수님 앞에 가져갔는데, 예수님은자녀들의 떡을 취해서 개들에게 던짐이 마땅하지 아니하니라.”라고 여인을 개로 비유하면서 냉정하게 거부했습니다. 그러나 여인은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개들도 아이들이 먹던 부스러기를 먹는다며 예수님께 귀신들린 딸을 고쳐달라고 간청했습니다. 그녀의 절박함을 보고 예수님은 딸을 고쳐주셨습니다. 이처럼 절박한 현실과 순간은 하나님을 만나는 기회가 됩니다. 삭개오나 수로보니게 여인과 같은 절박한 마음으로 예수님께 나아가면 분명히 만나주실 줄로 믿습니다.

2. 절박함은 기도의 강력한 에너지가 됩니다.

히스기야는 본문 2절에서 비범한 기도를 드립니다. “히스기야가 낯을 벽으로 향하고 여호와께 기도하여 이르되그는 기도할 때 얼굴을 벽으로 향하고 기도했습니다. 여기서 벽은 인간의 힘으로는 도저히 뚫고 나아갈 수 없는 한계상황을 뜻합니다. 히스기야는 중병과 예고된 죽음이라는 큰 벽에 부딪혔습니다. 아마도 히스기야는 벽을 바라보면서 하나님이여... 하나님이 저를 버리시면... 저는 갈 데가 없습니다.”라고 기도했을 것입니다. 이 절박함으로 드린 기도가 벽을 향한 기도였습니다. 또한 그는 3절의 통곡으로 비범한 기도를 드립니다. “여호와여 구하오니 내가 진실과 전심으로 주 앞에 행하며 주께서 보시기에 선하게 행한 것을 기억하옵소서 하고 히스기야가 심히 통곡하더라.” 히스기야는 간절히 기도를 하다가 기도를 잇지 못하고 엉엉 통곡을 했습니다. 괴로움과 원통함과 슬픔이 북받쳐 목 놓아 운 것입니다. 그때 놀라운 일이 일어났습니다. 5절입니다. “너는 돌아가서 내 백성의 주권자 히스기야에게 이르기를 왕의 조상 다윗의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이 내가 네 기도를 들었고 네 눈물을 보았노라 내가 너를 낫게 하리니 네가 삼 일 만에 여호와의 성전에 올라가겠고히스기야의 기도가 하나님의 마음을 움직인 것입니다. 그의 절박함이 비범한 기도가 되었고, 하나님의 응답이 되었습니다.

우리의 신앙과 기도도 마찬가집니다. 평상시에는 평범하게 기도하지만, 절박한 문제를 만날 때 우리도 통곡의 기도를 드릴 수 있습니다. 이렇게 절박함으로 기도할 때 기도의 강력한 에너지를 경험하게 될 줄로 믿습니다. 히스기야처럼 절박한 심정에 주시는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를 경험하게 되길 소망합니다.

 

3. 성도의 절박함은 하나님에 대한 절박함이 되어야 합니다.

히스기야가 벽을 향하여 하나님께 기도했다는 것은 하나님만을 바라보고 그분만을 원했다는 것을 말합니다. 우리 역시도 어떤 문제로 인해 절박함으로 기도하다가, 하나님에 대해서 절박해질 때가 있습니다. 그때가 바로 기도 응답의 징조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 나의 절박함이 개인의 문제에 대한 절박함으로 머물기를 원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비록 절박한 문제 때문에 하나님께 기도했다하더라도, 하나님은 그분을 좀 더 바라보지 못하고 사랑하지 못한 게 문제란 것을 깨닫기를 원하십니다.

본문 시편은 저자의 절박함을 보여줍니다. 그는 자기의 절박함을 설명하기 위해서 사슴을 예로 듭니다. 시편 421-2절입니다.“하나님이여 사슴이 시냇물을 찾기에 갈급함 같이 내 영혼이 주를 찾기에 갈급하니이다 내 영혼이 하나님 곧 살아 계시는 하나님을 갈망하나니 내가 어느 때에 나아가서 하나님의 얼굴을 뵈올까사슴은 열이 많은 짐승입니다. 그렇기에 고온 건조한 팔레스틴 지역의 사슴은 갈증으로 인해 고통 받습니다. 결국 사슴이 시냇물을 찾기에 갈급하다는 것은 물을 먹고 싶은 정도가 아니라 당장이라도 먹지 않으면 죽을 것 같은 절박함을 말하는 것입니다. 시편 42편의 기자는 이와 같은 절박함이 있었습니다. 주님을 만나지 못하면 죽을 것 같은 심정으로 주님을 찾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에게도 이러한 절박함이 필요합니다. 다른 어떤 것이 아닌 오직 주님을 향한 절박함입니다.

 

한국의 한 교회의 청년들이 무전여행인 '거지순례'를 마치고 돌아왔습니다. 그들의 얼굴과 행색은 반 거지와 같았지만, 그들의 눈빛은 달랐습니다. 마치 시내산에서 내려온 모세 같았습니다. 그들은 거지순례 중 돈이 떨어지는 순간부터 기도가 절로 나오게 됨을 경험했습니다. 하나님만을 절실하게 앙망하는 기도를 체험하게 되었습니다. 전에는 형식으로 예배드리던 청년들이 예배하면서 울고 찬양하고 찬양하면서 울며 능력으로 기도하게 되었습니다. 절박함을 통해서 기도의 능력과 하나님을 깊이 체험한 결과였습니다. 우리에게도 이와 같은 하나님에 대한 절박함이 있기를 소망합니다. 하나님만을 바라고 그분만을 원하는 은혜를 체험하게 되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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