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양식은 (요 4:31-38)

기독교


 

나의 양식은 (요 4:31-38)

NZ광림교회 0 1454

 

예수님 당시 유대인은 사마리아인을 상종하지 않았습니다. 사마리아 땅을 피해갈 정도로 사마리아 인들을 싫어했습니다. 하지만 요한복음4장에서 예수님은 사마리아 땅을 찾아가셨습니다. 그 땅 수가성 우물가에 이르자, 예수님은 우물가에서 쉬기를 청하시고 제자들은 먹을 것을 사러 동네에 들어갔습니다. 그때 물을 길러 나온 한 여인을 만났는데, 그녀는 상처가 많고 영적으로 매우 갈급한 여인이었습니다. 여인은 예수님과의 대화를 통해 이분이 메시아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러고는 너무 기쁜 나머지 물동이를 버려두고 동네에 들어가 자기가 만난 메시아를 전했습니다. 바로 그 때 먹을 것을 사러 갔던 제자들이 돌아왔고, 그들에게 예수님은 알 수 없는 말씀을 하셨습니다.“이르시되 내게는 너희가 알지 못하는 먹을 양식이 있느니라(32)” 이 양식은 육신이 먹는 양식이 아닌 영혼의 양식, 즉 영적인 양식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지금의 시대는 영적인 기갈의 시대입니다. 아모스 811절입니다.“내가 기근을 땅에 보내리니 양식이 없어 주림이 아니며 물이 없어 갈함이 아니요 여호와의 말씀을 듣지 못한 기갈이라육신의 양식이 아닌 영혼의 양식을 구해야할 때입니다. 영적인 길갈의 시대에 성도들은 영혼의 양식을 구해야하는 줄로 믿습니다. 함께 3가지로 은혜 나누기를 원합니다.

 

1.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는 것이 성도의 양식입니다.

영혼의 양식을 생각할 때 사람들은 설교, 성경공부, 큐티 등을 생각합니다. 그런데 본문 말씀에서 예수님은 영혼의 양식에 대해 새로운 말씀을 하십니다.“예수께서 이르시되 나의 양식은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을 행하며 그의 일을 온전히 이루는 이것이니라(34)” 얼핏 들으면 이해가 안 되는 말입니다. 양식이란 그것 때문에 살고, 그것 때문에 힘을 얻는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순종이야 말로 양식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우리가 보통 순종하면 부담이나 어려움으로 느껴집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순종은 부담이 아니라 양식이라고 말씀하시는 겁니다. 양식은 부담이 아닙니다. 양식을 먹는 것은 즐거움이고, 채움이며, 충전입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시는 순종은 바로 그런 양식입니다.

 

본문에서 예수님은 유대인이 가지 않는 사마리아로 가셨습니다. 그곳에 가신 이유가 무엇입니까? 바로 하나님의 뜻이기 때문입니다. 유대인이 배척하는 사마리아인을 구원하고자 하는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시기 위함이었습니다. 상처 많은 사마리아 여인이 대화가 어려운 사람이었음에도 끝까지 그녀의 상처를 어루만져준 것은 하나님의 뜻에 순종해서였습니다.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뜻에 순종한 결과 여인은 구원을 경험하였고, 너무 기쁜 나머지 동네로 가서 메시아를 만났다고 사람들에게 전했습니다. 순종의 결과, 예수님은 육신의 배고픔을 잊을 정도로 마음의 충만함을 경험했습니다. 그 충만함으로 제자들에게얘들아 내게는 너희들이 모르는 양식이 있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처럼 우리의 진정한 양식은 귀로만 말씀을 듣는 것이 아닌, 예수님처럼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는 것인 줄로 믿습니다.

 

2. 예수님의 비전을 갖는 것이 성도의 양식입니다.

비전이란 육신의 눈으로는 도저히 볼 수 없는 것을 말합니다. 시편 62편에 다윗의 형편은 넘어지는 담과 흔들리는 울타리 같았습니다. 그럼에도 그는나의 영혼아 잠잠히 하나님만 바라라 무릇 나의 소망이 그로부터 나오는도다라고 고백했습니다. 이것이 비전입니다. 예수님도 이런 비전을 가지셨습니다. 본문 35절입니다.“너희는 넉 달이 지나야 추수할 때가 이르겠다 하지 아니하느냐 그러나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눈을 들어 밭을 보라 희어져 추수하게 되었도다여기서 넉 달이 지나야 추수할 때가 이르겠다고 하는 말은 농부들이 추수 때를 간절히 고대할 때 쓰는 속담입니다. 지금 당장 육안으로 보면 들판은 텅 비어있지만, 농부들은 텅 빈 들판을 보면서 넉 달이 지나면 채워지리라는 비전을 가졌던 것입니다. 예수님이 바라본 사마리아 땅이 그랬습니다. 그 땅은 유대인이 경멸하는 땅으로 하나님의 구원과 거리가 먼 땅이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그 땅을 향해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눈을 들어 밭을 보라 희어져 추수하게 되었도다라고 말씀하십니다. 사마리아 땅에서 구원의 열매, 추수의 열매를 보시는 것입니다. 그 시작이 바로 사마리아 여인에게 있었습니다. 그녀에게 복음의 씨가 뿌려진 것입니다. 단지 한 사람에게만 복음이 전해졌을 뿐인데, 예수님께서는 수많은 열매를 맺고 희어져 추수하게 될 것을 바라보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예수님의 비전입니다. 이런 비전을 품고 살아가는 우리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3. 하늘의 기쁨을 소유하는 것이 성도의 양식입니다.

모든 일에는 두 가지 과정이 있습니다. 뿌리는 것과 거두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뿌리는 것보다는 거두는 것을 더 좋아합니다. 왜냐하면 뿌리는 일은 고생이고 괴로움이라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다르게 말씀하십니다. 36절입니다.“거두는 자가 이미 삯도 받고 영생에 이르는 열매를 모으나니 이는 뿌리는 자와 거두는 자가 함께 즐거워하게 하려 함이라거두는 자만 기쁜 게 아니라 뿌리는 자도 함께 기쁘다는 것입니다. 이 기쁨은 세상의 기쁨이 아닌 하늘의 기쁨을 뜻합니다. 다시 말해, 하늘의 기쁨은 거두는 자만 기쁜 게 아니라 뿌리는 자 역시 기쁘다는 것입니다.

 

한 성도의 간증입니다. 이분은 신앙생활을 오래하지 않았고 전도를 해 본적이 없는 분입니다. 그런데 주일 목사님의 설교를 들으면서, 내가 받은 구원을 다른 사람에게도 전해야겠다는 마음의 감동이 생겼습니다. 하지만 막상 가까운 친구를 전도하려는데 말이 떨어지지 않았습니다. 기도로 준비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기도로 준비하며 전도할 수 있는 기회를 노렸습니다. 어느 날 기회가 오자 떨리는 마음으로 말을 건네는데, 놀랍게도 친구가 그래, 교회에 한 번 가볼까?”하며 반응했습니다. 그것은 기도로 준비한 자에게 주어진 하나님의 구원의 역사였습니다. 이 성도님은 이것이 너무도 기쁘고 신기하여 이제는 친구가 예수님을 영접할 수 있게 해달라고 기도하였습니다. 태어나서 이토록 간절히 기도해본 적이 없을 만큼 기도했습니다. 초청주일에 친구는 교회에 나와 예배에 참여하였습니다. 설교 후 예수님을 영접하기를 원하는 사람은 일어나 결신하는 시간이 있었는데, 친구는 자리에서 일어섰습니다. 예수님을 영접한 것입니다. 그 순간 그 성도는 심장이 멎는 것과 같은 기쁨, 즉 하나님의 기쁨을 누렸습니다. 이것이 심는 기쁨입니다. 우리도 이처럼 한 영혼을 마음에 품고 복음의 씨앗을 뿌릴 때 하늘의 기쁨을 누리게 될 줄로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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