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이 광야를 주시는 이유 (신 8:1-4 계 12:5-6)

기독교


 

하나님이 광야를 주시는 이유 (신 8:1-4 계 12:5-6)


인생은 종종 광야로 비유됩니다. 사람들이 인생을 광야로 비유하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그것은 광야의 특징들이 우리 인생의 특징들이기 때문입니다. 1) 광야에는 안락함이 없습니다. 광야는 우리 인생처럼 마음 편할 날이 없는 장소입니다. 2) 광야는 퍽퍽합니다. 퍽퍽하다는 것은 물기나 끈기가 적어 메마른 것을 뜻합니다. 우리 삶은 이처럼 메마르기만 합니다. 3) 광야는 내일을 보장할 수 없습니다. 광야는 낮과 밤의 큰 일교차로 생명의 위협을 받는 장소입니다. 내일을 알 수 없습니다. 내일이 보장되어 있지 않는 삶을 사는 우리와 같습니다. 4) 광야는 고독합니다. 현대인들은 고독 속에서 살아갑니다. 이처럼 우리 인생은 광야와 같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광야에 머물기를 싫어하며 빨리 벗어나고 싶어 합니다.

 

본문은 광야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 사십 년 동안에 네게 광야 길을 걷게 하신 것을 기억하라(8:2)”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 길을 걷게 하신 것처럼, 우리 인생 가운데서도 광야를 주셔서 그 길을 걷게 하십니다. 그 이유를 함께 3가지로 나누겠습니다.

 

1. 우리를 낮추시기 위해서입니다.

사람이 가장 경계해야할 죄의 본성은 교만함입니다. “교만은 패망의 선봉이요 거만한 마음은 넘어짐의 앞잡이니라(16:18)” 교만은 의도하지 않아도 어느 새 내 안에 자라나 나를 무너뜨리는 무서운 질병과도 같습니다. 하나님은 이 교만을 싫어하십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교만한 자를 광야를 통해 겸손하게 낮추십니다.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 사십 년 동안에 네게 광야 길을 걷게 하신 것을 기억하라 이는 너를 낮추시며(8:2)” 이것이 하나님이 광야를 주시는 이유입니다. 광야를 통해 겸손한 자로 만드셔서 하나님의 귀한 도구로 삼기 위함입니다.

성경의 가장 유명한 이야기 중 하나는 다윗과 골리앗 이야기입니다. 소년 다윗은 하나님을 전적으로 신뢰함으로 블레셋 거인 골리앗을 물리쳤습니다. 다윗은 믿음으로 보나 용맹으로 보나 마땅히 출세가도를 달릴만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그를 이끄신 곳은 혹독한 광야였습니다. 사울 왕의 시기로 인해 들로, 산으로 10년을 도망 다녀야만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다윗에게 상이 아닌 광야를 허락하신 것은 그를 낮추시기 위해서였습니다. 그를 더 크게 쓰시기 위해 10년간 낮추신 것입니다. 광야의 시간은 나를 낮추시고 나를 겸손케 하시는 시간입니다.

 

2. 나를 시험하사 내 마음이 어떠한지 알기 위해서입니다.

사랑하는 사람끼리 서로 알고 싶은 게 있는데, 그것은 이 사람이 나를 얼마나 사랑하는가?’ 입니다. 하나님도 마찬가지입니다. 성경은 하나님과 우리의 관계를 아버지와 자녀의 관계로, 사랑하는 부부의 관계로 표현합니다. 그렇기에 하나님도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는지를 알고 싶어 하십니다. 그 방법이 광야입니다. “네게 광야 길을 걷게 하신 것은 ... 너를 시험하사 네 마음이 어떠한지 ...(8:2)”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광야를 주셔서 그가 하나님을 진정으로 사랑하는지 아닌지를 알기 원하십니다. 그러므로 인생의 광야는 하나님께 믿음을 보여드릴 절호의 기회입니다. 하나님을 얼마나 사랑하는지를 보여드릴 시간입니다.

 

3. 광야는 하나님이 우리를 위해 준비하신 피난처입니다.

12장에 보면 한 여인에 대한 환상이 나옵니다. 이 여자의 모습은 해를 옷 입고 달을 밟고 있는 모습(12:1)입니다. 그녀는 아이를 배어서 해산(12:2)을 합니다. 여자가 아이를 낳았다는 것은 하나님의 언약 공동체 가운데 오신 예수님을 말합니다. 이어 사단을 뜻하는 붉은 용(12:3)이 등장합니다. 붉은 용은 아이, 즉 예수 그리스도를 죽이려고 하지만 실패로 돌아갑니다. 예수님이 부활 승천하셨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이 승천하시고 여자만 남게되자 여자는 광야로 피신합니다. “그 여자가 광야로 도망하매 거기서 천이백육십 일 동안 그를 양육하기 위하여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곳이 있더라(12:6)”

이 말씀에서 두 가지 사실이 중요합니다. 첫째는 여자가 광야로 도망을 갔다는 것입니다. 여자는 하나님의 백성, 즉 성도를 말합니다. 그런데 연약한 여자가 도망한 곳이 고통스럽고 생명의 위협을 받는 광야였습니다. 둘째는 하나님께서 광야를 예비하신 것입니다. “광야로 도망하매 ... 그를 양육하기 위하여 하나님이 예비하신 곳이 있더라(12:6)”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자녀들을 양육하고 보호하시기 위해서 광야를 준비하셨습니다. 일반적으로 도피처나 양육처를 생각하면 편안한 곳을 생각합니다. 그러나 광야의 도피처는 안정적이고 풍족한 곳이 아닌 긴장으로 깨어있어 기도하게 만드는 곳입니다. 결국 광야는 사실 우리의 신앙을 보호하시기 위해서 주신 하나님의 피난처인 것입니다.

 

얀 마텔은 파이 이야기”(Life of Pi)라는 소설을 썼습니다. 소설의 내용은 파이라는 인도의 소년이 구명보트 위에서 어떻게 생존했는지를 담고 있습니다. 그의 아버지는 동물원을 운영하였는데 동물들을 처분하고 캐나다 이민을 선택합니다. 불행히도 폭풍을 만나 배는 침몰하고 오직 파이 혼자 구명보트에 오르게 됩니다. 그런데 그 보트 위에는 얼룩말, 오랑우탄, 하이에나 그리고 벵골 호랑이도 있었습니다. 호랑이는 동물들을 하나하나 잡아먹고 결국 보트에는 파이와 호랑이만 남게 됩니다. 불과 8m의 구명보트 안에 열여섯 살 소년과 호랑이 단 둘이 남아 227일을 동거합니다. 파이는 호랑이에게 잡아먹히지 않기 위해 물고기를 잡아주고 물을 가져다줍니다. 처음에는 자신이 잡아먹히지 않기 위해서 호랑이를 돌봤는데, 나중에는 호랑이 때문에 파이 자신이 살았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외로움과 절망 때문에 죽지 않을 수 있었던 것은 바로 호랑이와 씨름하면서 살았기 때문이었습니다. 해안에 도착하자 파이는 호랑이를 보내며 의미심장한 작별인사를 건넵니다. ‘다 끝났다. 우린 살아남았어. 믿을 수 있니? 나는 네게 도저히 말로 표현 못할 신세를 졌구나. 네가 없었다면 난 버텨내지 못했을 거야. 고맙다 리처드 파커 내 목숨을 구해주어서.’

우리 인생에도 이와 같은 벵골 호랑이 같은 존재가 있습니다. 그것은 나를 위협하고 힘들게 하는 삶의 문제들입니다. 우리는 이 문제가 없어지면 내가 살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이 호랑이는 성경에서 말하는 광야와 같습니다. 이 광야 때문에 내가 살 수 있는 것입니다. 내가 오늘 겪고 있는 광야는 하나님이 나에게 주신 가장 최적의 피난처입니다. 사단이 끊임없이 우리를 공격하고 삼키려고 할 때 하나님이 우리를 보호하시기 위해 예비하신 곳이 광야임을 기억하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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