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이 감당치 못하는 감사 (단 6:1-10)

기독교


 

세상이 감당치 못하는 감사 (단 6:1-10)


감사에는 세 가지 감사가 있습니다. 첫째는 If, 만약에의 감사입니다. 나에게 이런 것이 주어진다면 감사하겠다는 조건적 감사입니다. 둘째는 Because, 그렇기 때문에의 감사입니다. 어떤 것을 주셨기 때문에 감사하는 감사입니다. 셋째는 Nevertheless, 그럼에도 불구하고의 감사입니다. 도저히 감사할 수 없는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감사하는 것입니다. 다니엘은 이 세 번째 감사를 하나님께 드렸던 사람입니다.

다니엘하면 우리는 보통 믿음을 떠올립니다. 믿음으로 왕의 진미를 거부하고 채소만 먹고도 얼굴이 윤택하였던 사람입니다. 또한 믿음을 지키다가 사자굴에 들어갔지만 거기서도 살아 돌아온 사람입니다. 하지만 다니엘의 신앙에 있어서 놓치지 말아야하는 한 가지가 더 있는데, 바로 감사입니다. 다니엘은 감사의 사람이었습니다. 그의 감사는 일반적인 감사가 아니라 세상이 감당치 못하는 감사였습니다. 함께 3가지로 은혜를 나누겠습니다.

 

1.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는 감사였습니다.

다니엘은 유다에서 포로로 끌려온 사람이었습니다. 포로로 끌려온 그를 메대의 다리오 왕은 총리 중에 가장 으뜸 되는 총리로 세웠습니다. “다니엘은 마음이 민첩하여 총리들과 고관들 위에 뛰어나므로 왕이 그를 세워 전국을 다스리게 하고자 한지라(6:3)” 이런 다니엘을 다른 총리들과 고관들은 시기하고 미워했습니다. 다니엘을 고소할 거리만 찾았지만 그에게서 아무런 허물도 찾을 수가 없었습니다. “이에 총리들과 고관들이 국사에 대하여 다니엘을 고발할 근거를 찾고자 하였으나 아무 근거, 아무 허물도 찾지 못하였으니 이는 그가 충성되어 아무 그릇됨도 없고 아무 허물도 없음이었더라(6:4)”

이처럼 순결하고 정직한 삶을 살았던 다니엘이었지만 그에게 다가온 것은 형통한 삶이 아닌 무서운 올무였습니다. 사자굴에 던져지게 되는 위기를 맞이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 상황에서 다니엘은 그의 하나님께 감사하였습니다(6:10). 그가 감사할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했기 때문입니다. 다니엘은 하나님께서 모든 일의 주관자 되심을 믿었습니다. 마찬가지로 때론 나의 삶에 펼쳐지는 일들이 이해할 수 없고 부당하게 느껴질 때가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모든 삶의 주권은 하나님께 있음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삶을 붙드시고 주관하십니다.

 

2. 도저히 감사할 수 없는 위기 앞에서 드린 감사였습니다.

다니엘의 대적들은 그의 허물을 열심히 찾았지만 찾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하나님의 율법에서 근거를 찾아 다니엘을 고소하기로 하였습니다(6:5). 왜냐하면 다니엘은 어떤 경우에도 하나님의 율법을 지키는 사람이었기에, 그것을 죄로 만들어 버리면 걸려들 것이 분명했기 때문입니다. 다니엘의 대적들은 왕 외에 다른 신이나 사람에게 절하는 사람은 사자굴에 넣으라는 금령을 왕에게 건의합니다(6:7). 왕권을 강화하고 싶은 왕은 도장을 찍었습니다(6:9). 물론 다니엘도 왕의 도장이 조서에 찍힌 것을 알았습니다(6:10). 보통사람 같으면 이와 같은 죽음과 무서운 위기 앞에서 분노하고 절망할 것입니다. 하지만 다니엘은 분노하지도 신앙을 타협하지도 않았습니다. “다니엘이 이 조서에 왕의 도장이 찍힌 것을 알고도 자기 집에 돌아가서는 윗방에 올라가 예루살렘으로 향한 창문을 열고 전에 하던 대로 하루 세 번씩 무릎을 꿇고 기도하며 그의 하나님께 감사하였더라(6:10)” 오히려 죽음의 위협 앞에서 감사하였습니다. 감사할 수 없는 상황에서 감사로 기도했습니다.

 

청교도들이 메이플라워호를 타고 미국에 도착하여 얼마 지나지 않아 그들 중 반 이상은 굶고 병들어 죽었습니다. 설상가상으로 남아있는 사람들은 흉년으로 고통을 당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전국적으로 금식 기도를 선포하고 하나님께 매달렸습니다. 그렇게 여러 번 금식을 선포하고 기도하는 가운데 한 농부가 제의했습니다. ‘지금까지 우리는 금식하면서 하나님께서 도와달라고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달라지기를 원합니다. 비록 흉년과 질병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지만, 이 속에서도 감사할 것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우리에겐 신앙의 자유가 있습니다. 광대한 대지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금식 대신에 감사 기간을 정하고 하나님께 감사하는 것이 어떻습니까?’ 사람들은 농부의 말에 감화를 받아 금식기도주간 대신 감사 주간을 선포하고 하나님 앞에서 감사하기 시작했습니다. 이것이 도저히 감사할 수 없는 위기 앞에서 하나님께 감사를 올려드린 추수감사절의 유래입니다. 우리 역시도 도저히 감사할 수 없을 때 하나님께 감사할 수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

 

3. 다니엘의 감사는 평소에 훈련된 감사였습니다.

다니엘의 감사는 하루아침에 만들어진 감사가 아닙니다. 그는 조서에 왕의 도장이 찍힌 것을 알고도 전에 하던 대로 하루 세 번씩 하나님께 감사했습니다(6:10). 극한 위기 속에서 그가 드렸던 감사는 늘 하던 대로의 감사였습니다. , 그의 감사는 어느 한 순간에 갑자기 만들어진 감사가 아니라 평소에 훈련된 결과였다는 것입니다.

습관이 왜 무서운지 아십니까? 평소에 무언가를 계속 반복한 결과 나도 모르게 무의식적으로 그냥 되기 때문에 무서운 것입니다. 이처럼 감사 역시도 습관입니다. 감사하는 사람은 감사할 일이 많은 사람이 아니라 평소에 감사를 훈련한 사람입니다. 반대로 불평하는 사람은 불평할 일이 많아서가 아니라 평소에 불평을 훈련한 사람입니다.

 

일본의 신학자 우찌무라 간조는 하나님에게 저주란 게 있다면 세 가지일 것이라고 했습니다. 첫째는 아무리 믿으려 해도 하나님이 믿어지지 않는 것이고, 둘째는 아무리 성경을 읽어도 하나님의 말씀이 들리지 않는 것이고, 셋째는 아무리 감사하려고 해도 감사가 안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저주는 다른 것이 저주가 아닙니다. 내 삶에 감사할 조건이 충만한데도 감사가 나오지 않는 게 바로 저주입니다. 그러므로 감사는 훈련이 필요합니다. 훈련된 감사가 있을 때라야 도저히 감사가 나올 수 없는 상황에서도 감사할 수 있습니다.

다니엘은 사자굴에 들어가는 상황에서도 원망의 입을 열지 않고 감사의 입을 열었습니다. “나의 하나님이 이미 그의 천사를 보내어 사자들의 입을 봉하셨으므로 사자들이 나를 상해하지 못하였사오니 이는 나의 무죄함이 그 앞에 명백함이오며 또 왕이여 나는 왕에게도 해를 끼치지 아니하였나이다 하니라(6:22)” 그 결과 하나님께서는 사자들의 입을 봉하셨습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불평과 원망의 입을 닫을 때 사단 마귀의 모든 악한 것들이 봉해집니다. 훈련된 감사가 있을 때 다니엘과 같은 최후의 승리를 얻게 될 줄로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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