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른 비와 늦은 비를 주시는 하나님 (신 11:13-17)

기독교

이른 비와 늦은 비를 주시는 하나님 (신 11:13-17)

 

뉴질랜드는 비가 수시로 옵니다. 때론 예기치 못한 비 때문에 당황하기도 하지만, 물이 부족한 다른 나라들을 생각해보면 귀한 축복입니다. 비는 우리의 일상을 영위하는데 꼭 필요한 요소입니다. 비중에 가장 반가운 비는 오랜 가뭄 끝에 메마른 대지를 촉촉이 적셔 주는 비일 것입니다. 성경에도 이런 비가 등장합니다. 엘리야가 기도할 때 내린 비입니다. 당시 이스라엘은 오랜 가뭄에 시달렸는데, 엘리야가 갈멜산에서 간절히 기도하자 3년 반 만에 비가 내렸습니다. 이렇게 오랜 더위와 가뭄 뒤에 오는 비는 마치 하나님의 은혜와 같습니다. 그래서 성경의 많은 저자들은 가뭄을 해갈하는 비를 하나님의 은혜에 비유했습니다. 함께 3가지로 은혜를 나누겠습니다.


1. 하나님은 때에 맞게 적절한 은혜를 주시는 분입니다.

 

성경의 배경이 되는 팔레스타인 지역은 비가 귀합니다. 이 지역의 날씨는 크게 여름인 건기와 겨울인 우기로 나뉘는데, 건기는 5월부터 시작되고 우기는 10월부터 시작됩니다. 이 겨울에 내리는 비는 다시 세 종류로 나뉩니다. 겨울이 시작되는 10월경에 내리는 이른 비와 겨울이 끝나는 4월경에 내리는 늦은 비가 있고, 두 기간 사이에 내리는 겨울비가 있습니다. 이른 비가 내리는 시기는 농부들이 씨를 뿌리는 시기입니다. 이 때 이른 비가 굳어져있던 땅을 적셔주고 부드럽게 해줍니다. 겨울비는 12월 하순부터 2월까지 내려 땅을 충분히 적셔주고 식물의 성장을 돕습니다. 마지막으로 늦은 비는 농작물이 결실할 때 내리는 비입니다. 요컨대 곡식이 심겨질 때, 자랄 때, 결실할 때, 그때그때마다 가장 적절한 비가 내리는 것입니다.

바로 본문에서 그런 이른 비와 늦은 비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내가 오늘 너희에게 명하는 내 명령을 너희가 만일 청종하고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여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섬기면 여호와께서 너희의 땅에 이른 비, 늦은 비를 적당한 때에 내리시리니 너희가 곡식과 포도주와 기름을 얻을 것이요(11:13-14)’ 여기서 말하는 이른 비와 늦은 비는 다름 아닌 때에 맞게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의미합니다.

때에 가장 적절한 은혜를 입은 대표적인 인물은 야곱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야곱을 약속의 조상이 되게 하기 위해서, 때에 꼭 맞는 은혜를 그때그때마다 주셨습니다. 먼저 야곱이 영적인 축복에 대한 남다른 마음을 주셔서 장자의 권리를 갖게 하셨습니다. 집을 떠나 하란으로 갈 때에는 사닥다리의 환상을 통해 약속을 주셨습니다. 20년후 야곱이 큰 성공을 거두고 고향으로 돌아올 때는 그에게 큰 위기를 허락하셨습니다. 그때 야곱은 얍복강에 홀로 남아 밤새도록 씨름하며 기도했고, 기도의 결과 야곱이 변하여 이스라엘이 되는 축복을 받았습니다. 그 후 형 에서와도 화해하는 놀라운 일이 일어났습니다. 보세요. 하나님은 야곱이 변하여 축복의 조상 이스라엘이 되기까지 은혜를 한꺼번에 주시지 않았습니다. 20년이 넘는 시간 속에서 때에 맞게, 가장 적당한 때(11:14)’에 은혜를 주셨습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은혜를 주시는 방식도 이와 같습니다. 우리를 온전한 사람으로 빚어 가시기 위해 하나님께서는 때로는 이른 비로, 때로는 늦은 비로, 꼭 맞는 은혜를 주십니다.

 

2. 하나님은 우리에게 일을 행하시기 전에 이른 비의 은혜를 주십니다.

이른 비는 곡식을 심기 전에 내리는 비입니다. 하나님의 은혜 중에도 이른 비의 은혜가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무엇을 심고 자라게 하시기 전에 미리 주시는 은혜입니다. 복음이 우리 마음에 심기기전 우리는 굳고 무디어진 심령을 가진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이른 비의 은총을 주셨기 때문에 마음이 부드러워져 복음이 심겨질 수 있었습니다. 이러한 이른 비의 은혜를 사도 바울은 경험했습니다. 그가 사울이었을 때 그는 복음이 들어갈 틈이 없는 사람이었지만, 하나님께서는 이른 비의 은혜를 주셔서 그 심령을 부드럽게 하셨습니다. 그가 다메섹으로 가는 도중에 큰 빛을 통해 그의 눈을 멀게 하셔서 심령을 겸손하게 만드셨습니다. 그때 예수님의 말씀이 그에게 들어갔고 그는 더 이상 사울(큰 자)가 아닌 바울(작은 자)가 되었습니다.

 

나 같은 죄인 살리신의 찬송가를 지은 사람은 존 뉴튼입니다. 그는 원래 하나님을 믿지 않는 이교도로 아주 거칠고 포악한 뱃사람이었습니다. 흑인들을 잡아다가 노예로 파는 노예상인이었습니다. 그의 마음에는 도무지 복음이 들어갈 것처럼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그는 무서운 폭풍우를 만나게 됩니다. 자기가 죽게 될 것이라고 생각한 뉴튼은 하나님을 향해 자비를 베풀어달라고 기도했습니다. 이교도인 그의 입에서 하나님을 향한 간구의 기도가 나온 것입니다. 폭풍우가 지나자 그는 살아있는 자신을 발견했습니다. 그 결과 뉴튼은 자기와 같은 죄인을 살리신 하나님의 은혜를 찬양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존 뉴튼에게 주신 이른 비의 은혜는 심한 폭풍우였습니다. 그 폭풍우로 인해 뉴튼은 하나님께 마음이 열릴 수 있었습니다. 고난이라는 이른 비를 통해 하나님을 믿게 된 것입니다.

3. 하나님은 이른 비의 은혜가 마를 즈음에 늦은 비의 은혜를 주십니다.

 

팔레스타인 땅의 늦은 비가 내리는 시점은 땅의 수분이 말라 다시 물이 절실하게 필요할 즈음입니다. 우리 신앙도 이른 비의 은혜를 받고 나면 어느 샌가 그 은혜가 마를 시점이 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그때 다시 새 은혜, 늦은 비를 주십니다.

 

아프리카에서 선교를 하는 선교사가 있었습니다. 한 번은 원주민들과 강을 건너게 되었습니다. 원주민은 선교사에게 큰 돌을 안겨주고 자기들도 큰 돌을 머리에 이거나 가슴에 안고 강을 건넜습니다. 선교사는 처음에 이해가 안됐습니다. 몸 하나 건너가기도 힘든 강을 돌을 안고 건너라는 것을 납득할 수 없었습니다. 원주민들이 날라야할 돌을 자기에게 시키는 것 아닌가 하는 의심도 들었습니다. 의심스런 마음으로 강을 건너는데, 강 중간쯤에 와서야 큰 돌을 준 이유를 알았습니다. 강 중간은 급류라서 휩쓸려갈 위험이 너무도 많았던 것입니다. 만약 무거운 돌이 없었다면 선교사는 급류에 휩쓸려 떠내려갔을 것입니다.

인생이라는 강물을 건널 때 급류에 휘말릴 때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때 우리가 급류에 휘말려가지 않도록 늦은 비의 은혜를 준비하십니다. 중요한 것은, 때로는 그 늦은 비의 은혜가 무거운 돌처럼 여겨질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우리를 죽이기 위함이 아니고 우리를 살리기 위함임을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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