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마스의 참된 축복 (눅 2:22-33)

기독교


 

크리스마스의 참된 축복 (눅 2:22-33)

 

신앙인들의 가장 큰 소망과 목표는 예수님을 만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2천년 전에 이 땅에 오셔서 십자가에서 죽으셨으나 부활하시고 승천하셨습니다. 하늘로 올라가신 예수님은 더 이상 육신으로 이 땅에 계시지 않습니다. 그렇지만 우리는 보혜사 성령님을 통해 예수님을 만날 수 있습니다. 성령님은 우리를 진리이신 예수님께로 인도하시고 그분을 인격적으로 만나게 하십니다.

본문에는 예수님을 직접 만난 한 사람이 등장합니다. 바로, 갓난 아기였던 예수님을 안고 감사의 찬송을 부른 시므온입니다. 그는 메시아를 보기 전에는 죽지 않으리라는 성령의 음성을 들은 사람이었습니다(2:26). 시므온은 메시아를 간절한 마음으로 기다렸습니다. 그러다가 어느 날 성전에 올라가 거기서 자신이 그토록 원했던 메시아를 만났습니다. 시므온이 아기 예수님을 만나 큰 축복을 누렸던 것처럼, 우리가 받을 크리스마스의 참된 축복 3가지를 나누겠습니다.

 

1. 크리스마스의 가장 큰 축복과 은혜는 위로입니다.

사람들은 크리스마스 때가 되면 파티나 여행, 근사한 선물을 기대합니다. 그렇다면 믿음의 사람들은 무엇을 기대해야 할까요? 시므온이 우리에게 그 대답을 줍니다. ‘예루살렘에서 시므온이라 하는 사람이 있으니 이 사람은 의롭고 경건하여 이스라엘의 위로를 기다리는 자라 성령이 그 위에 계시더라(2:25)’ 첫 번째 크리스마스때 시므온은 메시아가 오심으로 이스라엘이 받을 위로를 기다리고 바랐습니다. 그 위로는 지금도 동일합니다. 2천년 전에 이 땅에 오신 아기 예수님은 온 인류에게 큰 위로가 되었고 지금도 그렇습니다.

갓난 아기는 세상에서 가장 힘없고 약한 존재입니다. 그런데 이 연약한 아기를 통해 사람들은 큰 기쁨과 위로를 얻습니다. 요셉도 첫 아들을 얻었을 때 큰 위로를 받았습니다. 그는 한때 사랑을 독차지한 아들에서 노예로 팔려 갖은 고생을 다 했습니다. 종살이도 모자라 억울한 누명을 뒤집어쓰고 감옥살이를 하였습니다. 그렇게 상처와 고통이 많은 요셉이었지만, 하나님은 그를 내버려 두시지 않았습니다. 바로의 꿈을 해몽하게 하시고 애굽의 총리로 높여주셨습니다. 총리에 오른 요셉은 아스낫이라는 여인과 결혼을 하는데, 그때 낳은 아이의 이름이 므낫세입니다. 므낫세는 그 뜻이 하나님이 나로 잊게 하셨다입니다. , 하나님이 내 모든 고난과 고통과 상처를 잊게 하셨다는 의미입니다. 요셉은 아기를 보면서 하나님께로부터 무한한 위로를 받은 것입니다. 이 크리스마스에 나신 아기 예수님을 볼 때, 우리에게도 하나님의 크신 위로가 넘치기를 바랍니다.

아기 예수님이 주시는 위로는 므낫세의 위로와 비교할 바가 못 됩니다. 온 인류는 아담 이래로 죄의 종으로 팔려갔습니다. 이 죄의 굴레를 인해 상처와 고통, 곤고함과 절망으로 살았습니다. 그런 인류의 딱한 처지를 아시고 하나님께서는 스스로 인간이 되어서 아기 예수님의 모습으로 우리에게 오셨습니다. 구원의 길을 열어주셨습니다. 그렇기에 아기의 몸으로 오신 예수님은 온 인류에게 위로가 되십니다.

 

2. 성령의 인도를 받는 크리스마스가 되어야 합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만나기를 원한다면 반드시 성령의 인도와 도움이 필요합니다. 성령의 인도와 도움을 받지 않고서는 예수님을 만날 수 없습니다. 첫 번째 크리스마스를 맞이한 시므온은 성령의 인도함을 받았습니다. ‘예루살렘에 시므온이라 하는 사람이 있으니 이 사람은 의롭고 경건하여 이스라엘의 위로를 기다리는 자라 성령이 그 위에 계시더라 그가 주의 그리스도를 보기 전에는 죽지 아니하리라 하는 성령의 지시를 받았더니 성령의 감동으로 성전에 들어가매 마침 부모가 율법의 관례대로 행하고자 하여 그 아기 예수를 데리고 오는지라(2:25-27)’ 시므온은 성령의 감동으로 행했던 사람입니다. 그로 인해 그는 메시아를 보게 되었고 예수님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동방박사들도 시므온처럼 예수님을 직접 보았던 사람들입니다. 시므온 위에 성령이 계셨던 것처럼, 그들은 별의 인도를 받아 아기 예수님을 찾아왔습니다. 이 별의 인도는 시므온에게 임한 성령의 인도와 똑같습니다. 동박박사들은 별을 잘 따라가다가 문든 이 별이 왕의 별이니 왕궁으로 가야겠다고 생각합니다. 이러한 인간적인 생각을 따라 도착한 왕궁에 예수님은 없었습니다. 오히려 그들의 잘못된 판단은 헤롯왕의 유아 대학살을 초래합니다. 성령의 인도가 아닌, 자기 생각과 자기 감정을 따라간 결과였습니다. 오늘날 우리도 성령의 인도를 무시하고 내 마음대로 살아가면 예수님을 만날 수 없습니다. 예수님을 만나려면 성령님의 인도만을 받아야합니다. 말 한마디, 생각 하나에도 성령님의 인도하심을 받는 크리스마스가 되기를 바랍니다.

3. 예수님을 가슴에 안는 크리스마스가 되어야 합니다.

어떤 심리학 교수가 40여명의 학생들에게 <크리스마스>란 단어를 주고 생각나는 것을 하나씩 적어보게 했습니다. 그 질문에 학생들은 트리, 캐롤, 산타를로스, 선물, 휴일 등 다양하고 기발한 것들을 적었습니다. 이처럼 사람들은 성탄하면 아기 예수님 아닌 다른 것을 생각합니다. 하지만 첫 번째 크리스마스를 맞이했던 시므온은 달랐습니다. 그는 다른 것을 바라지 않고 두 팔로 아기 예수님만을 꼭 안았습니다. “시므온이 아이를 안고 하나님을 찬송하여 이르되(2:28)” 시므온의 모습은 모든 인류가 어떻게 성탄을 맞이해야하는지를 잘 보여줍니다. 그를 통해 2가지 교훈을 배울 수 있습니다.

 

1) 크리스마스가 가슴으로 예수님을 맞이하는 크리스마스가 되라는 것입니다.

지금 우리는 대강절을 보내고 있는데, 대강절은 4가지 의미가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기쁜 마음으로 모시는 것입니다. 오시는 주님을 맞이하기 위해 몸과 마음을 정결케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아들이 육신을 입고 이 땅에 오신 것을 밝히 전하는 것입니다. 다시 오실 주님을 기다리며 준비하는 것입니다. 결국 우리는 크리스마스를 가슴으로 예수님을 맞이함으로 보내야합니다.

 

2) 이 크리스마스가 예수님을 나누고 전하는 크리스마스가 되라는 것입니다.

시므온은 아기 예수님을 두 팔로 안고 찬양했습니다. “내 눈이 주의 구원을 보았사오니 이는 만민 앞에 예비하신 것이요 이방을 비추는 빛이요 주의 백성 이스라엘의 영광이니이다(2:30)” 아기 예수가 구원의 빛, 즉 메시아라고 찬양했습니다. 예수님은 다른 걸 위해서 오신 분이 아닙니다. 빛이 되기 위해 오셨습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빛 되신 예수님을 전해야합니다. 올해 성탄이 성탄의 참된 축복을 누리며 빛 되신 예수님만을 전하는 시간되기를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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