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자가 신앙 (민 21:6-9, 갈 2:20)

기독교


 

십자가 신앙 (민 21:6-9, 갈 2:20)


한국 경기도 광주에 가면 광림수도원이 있습니다. 이곳에는 기도 공원이 있는데, 공원의 산책로를 따라가면 예수님의 생애를 표현한 조형물을 볼 수 있습니다. 기도공원의 맨 꼭대기에는 예수님이 부활하신 빈 무덤과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못 박히신 골고다 언덕이 있습니다. 골고다 위에는 실제 크기의 큰 십자가에 못 박히신 예수님의 조형물이 있습니다. 비록 조형물이지만,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을 바라보면 이 세상 어떤 괴로움, 어떤 슬픔, 어떤 고민도 녹아져버리는 것을 느낄 수 있습니다. 주님 당하신 고통과 죽음이 깊이 묵상되기 때문입니다. 이번 사순절의 남은 기간은 이러한 십자가 신앙을 소유하기를 바랍니다. 함께 3가지로 은혜를 나누겠습니다.

 

1. 십자가 신앙은 십자가를 늘 깨닫는 신앙입니다.

십자가의 의미를 깨달으려면 먼저 십자가가 형벌의 도구였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십자가형은 고대에 행해진 참혹하고 잔인한 형벌이었습니다. 이 형벌의 잔혹함은 인간이 느낄 수 있는 최대한의 고통을 가장 오랜 시간 느끼며 서서히 죽어가는 데 있습니다. 고통을 마지막까지 경험하다가 숨을 거두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아무런 죄가 없으신데 이러한 고통을 당하셨습니다.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 때문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라(53:5)”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려 죽으신 것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었습니다. 나의 죄 때문에 십자가에 달려 죽으셨습니다.

구약의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일 년 중 가장 놀라운 날은 속죄일입니다. 이때 제사장은 양이나 염소를 한 마리 택합니다. 이 양이나 염소는 아사셀이라고 해서 그 머리 위에 안수하여 이스라엘의 죄가 전가됩니다. , 백성들이 지은 죄를 지우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양과 염소는 광야로 가게 됩니다. 온 백성들은 속죄양이 시야에서 사라질 때까지 바라보았습니다. 이 장면은 세례요한이 예수님을 보며 했던 말을 떠오르게 합니다.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1:29)” 세례요한은 속죄양과 염소에게 백성들의 죄가 전가되었듯이 예수님을 그 속죄양이라고 표현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온 세상의 죄, 온 인류의 죄를 어린 양이신 예수님께 지우신 것입니다. 그것이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으신 이유입니다.


1) 내 죄의 깊이를 깨달아야 합니다.

어머니에게 큰 근심을 주는 한 아들이 있었습니다. 어머니는 자식을 위해 기도하던 중에 지혜가 떠올랐습니다. 그것은 아들이 못된 행실을 할 때마다 집 기둥에 못을 박는 것이었습니다. 기둥의 못이 점점 많아지자 아들은 그것이 무엇이냐고 물었습니다. 어머니는 네가 애미 마음에 못을 박을 때마다 기둥에 못을 박았단다.” 라고 답했습니다. 기둥에 박힌 못이 어머니 가슴에 박은 못이라는 사실을 알고 아들은 눈물로 회개했습니다. 그 후 아들은 새 사람이 되어, 어머니를 기쁘게 할 때마다 못을 하나씩 뽑기로 했습니다. 세월이 많이 지나 못이 점점 줄었지만 못자국은 여전히 남아있었습니다. 아들은 그 못자국을 보면서 내가 어머니의 얼마나 아프게 했던가?’ 하고 다시 한 번 회개하게 되었습니다. 이와 같이 예수님의 십자가는 피로 찌들고 수없는 못자국이 있는 십자가입니다. 그 못이 박힌 자국에서 내 죄의 깊이를 볼 수 있는 우리가 되기를 바랍니다. 

2) 하나님의 사랑의 깊이를 보아야 합니다.

패션오브크라이스트라는 영화를 보면 예수님이 다 이루었다고 하시면서 십자가에 숨을 거두시는 장면에 하늘 위에서 굵은 눈물이 맺히면서 떨어지는 것을 보게 됩니다. 하나님 아버지의 눈물입니다. 하나님 아버지께서는 독생자 예수님이 모든 고통을 다 당하고 참는 것을 지켜보셨던 것입니다. 이처럼 우리 하나님의 사랑은 자기의 사랑하는 아들을 우리를 위해 내어주신 사랑입니다. 그 사랑이 나타난 곳이 십자가입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3:16)” 하나 밖에 없는 아들을 십자가에서 죽게 하시고 내어 주신 사랑입니다. 이 하나님의 사랑을 받은 우리임을 깨닫기를 바랍니다.


2. 십자가 신앙은 십자가를 믿음으로 바라보는 신앙입니다.

민수기 21장은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과 매우 밀접한 본문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38년을 헤매다가 드디어 가나안 가까이에 이릅니다. 에돔 땅을 지나기만 하면 가나안에 이를 수 있었지만 먼 길로 돌아가게 되자 백성들은 하나님과 모세를 원망합니다(21:5). 백성들이 불평하고 원망하자 하나님께서는 불뱀을 보내셨습니다(21:6).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그대로 내버려두지 않으시고 살 수 있는 방법을 열어주셨습니다. 바로 불뱀을 만들어 장대 위에 매달아 불뱀에 물린 자마다 그것을 볼 때 살게되는 것입니다(21:8). 이것은 사람의 상식과 논리를 완전히 벗어난 이야기입니다. 해독제를 주는 것이 아니라, 장대에 뱀형상을 만들어 그걸 보면 살게 된다는 이야기입니다. 이처럼 때때로 하나님께서 주시는 구원의 방법은 우리가 보기에 미련해 보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하나님의 미련한 것이 사람보다 지혜 있다고 말합니다(고전1:25). 중요한 것은 하나님을 신뢰하는 것입니다. 내가 보기에 하나님을 도저히 신뢰하지 못할 상황에도 하나님을 신뢰하는 것입니다. 이 때 하나님은 기뻐하시고 그 믿음이 구원을 가져오게 됩니다. 구약의 이스라엘 백성들을 살리기 위해 높이 매달린 놋뱀처럼 우리를 위해 나무에 높이 달리신 분이 바로 예수님입니다. 십자가를 바라볼 때 십자가에 높이 달리신 예수님을 믿음으로 바라보시기 바랍니다.

 

3. 십자가 신앙은 나도 십자가에서 죽는 신앙입니다.

바울은 십자가를 사랑하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십자가에 대해 잘 아는 사람이었습니다. 십자가의 도가 구원을 받는 자들에게 하나님의 능력이 됨을 알았습니다(고전 1:18). 또한 바울은 십자가를 자랑하는 사람이었습니다(6:14). 하지만 그는 더 나아가 십자가를 진심으로 사랑했습니다.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자신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2:20)”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다는 것은 죄의 몸이 죽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옛 사람이 죽는 것입니다. 옛 사람이 십자가에서 죽는 것은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이 새로운 사명을 감당하기 위해 고심하던 중 꿈을 꾸었습니다. 꿈에서 그는 각양각색의 십자가가 진열된 전시관에 갔습니다. 거기 있는 천사가 그 중의 하나를 지고 가시오라고 말하자 가장 가벼워 보이고 편해 보이는 십자가 하나를 골라 짊어졌습니다. 그런데 보기와는 다르게 너무 무겁고 힘들어 다른 것으로 바꿨습니다. 그러기를 수십 번을 반복하고 마지막 십자가를 선택하자 천사는 당신은 처음에 택한 십자가를 지게 되었소라고 말했습니다. 결국 십자가를 진다는 것은 피할 수 없는 고통을 감수해야 함을 알아야합니다.

오늘 나의 삶에 피하고 싶은 고통과 문제가 있다면 그것이 주님이 내게 주시는 십자가임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가는 자에게 하나님께서는 승리와 축복을 주실 줄로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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