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의 입성에 참여하는 신앙 (마 21장 1-9절)
예수님의 생애 가운데 가장 긴박하고 중요했던 시간은 예수님의 마지막 한 주간입니다. 그때 예수님은 예루살렘으로 들어가셔서 고난을 당하시고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구원 사역을 이루셨습니다. 그 마지막 주간의 시작이 종려주일입니다. 예수님께서 나귀 새끼를 타고 예루살렘 성으로 들어가실 때, 사람들은 겉옷을 길에 펴고 종려나무 가지를 흔들며 ‘호산나 다윗의 자손이여 찬송하리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여 높은 곳에서 호산나’ 라고 환호했습니다. 예루살렘에 입성하시는 예수님의 모습을 살펴보면서 어떤 신앙이 그 입성에 참여할 수 있는 신앙인지 3가지로 살펴보고자 합니다.
1. 말씀에 살고 말씀에 죽는 신앙입니다.
예수님의 예루살렘 입성에서 특이한 점은 예수님이 나귀 새끼를 타고 성에 들어가신 점입니다. 예루살렘 가까이 이르자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맞은 편 마을로 가서 나귀 새끼를 풀어 끌고 오라 하셨습니다(마21:2). 이러한 예수님의 행동은 두 가지 측면에서 이해하기 힘든 행동입니다.
1) 예수님은 공생애 3년 동안 한 번도 자기를 공개적으로 드러내신 적이 없는 분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예루살렘 입성 전까지 자기 신분을 최대한 드러내지 않으셨습니다. 가령, 병자들을 고치시는 기적 후에 예수님께서는 “아직 내 때가 아니니 아무에게도 이 일을 말하지 말라”고 당부하셨습니다. 그런데 본문의 예수님은 이전까지와는 사뭇 다른 모습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사람들이 다 보는 가운데 나귀 새끼를 타고 입성하시는 것입니다. 어른이 나귀 새끼를 타고 가는 굉장히 눈에 띄는 행동을 한 것입니다. 한 번도 자기를 공개적으로 드러내지 않으셨던 이전의 모습과는 너무도 다르게 자신을 드러내셨습니다.
2) 예수님은 자신의 행동이 결국 십자가의 죽음을 재촉할 것을 알고 계셨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나귀를 타고 입성하실 때, 사람들은 의미심장한 행동을 했습니다. 먼저 겉옷을 펴 드렸는데 이것은 왕을 추대할 때 맹세하는 표시입니다. 사람들이 흔들었던 종려나무 가지는 전쟁에서 승리하고 돌아온 개선장군에게 흔드는 승리의 상징입니다. 또한 예수님을 환호하면서 ‘호산나 다윗의 자손이여’라고 외친 말은 “제발, 이제 구원하소서.”라는 뜻입니다. 즉, “제발 다윗과 같은 왕이 나타나셔서 우리를 로마의 압제에서 해방시켜 주옵소서.”라는 의미였던 것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예수님을 향한 백성들의 기대와 열망은 얼마 못가 무너지고 맙니다. 그렇기에 그들은 나중에 돌변하여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으라고 외치게 됩니다. 이 모든 것을 아셨음에도 예수님은 예루살렘에 입성하셨습니다. 그렇게 하신 이유는 선지자를 통하여 하신 말씀을 이루려 하시기 위함이었습니다(마21:4) 5백년 전 스가랴 선지자의 예언을 이루신 것입니다. 스가랴를 통해 하나님께서 “나귀 새끼를 탔도다(마21:5)” 하신 말씀을 하나님의 명령으로 생각하시고 그대로 행하신 것입니다. 즉, 예수님은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들일 때 하나님의 명령으로 여겼습니다. 말씀에 살고 말씀에 죽는 삶을 몸소 보여주신 것입니다. 이것이 제자의 삶입니다. 주님 말씀하시면 나아가고 주님 말씀이 아니면 서는 삶입니다. 우리도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때 하나님의 명령으로 여기시길 바랍니다.
2. 예수님이 왕 되심을 인정하는 신앙입니다.
예수님이 나귀를 타고 입성하신 또 다른 목적은 예수님 자신이 어떤 분이라는 것을 만방에 알리기 위함이었습니다. 다시 말해 예수님은 자신이 ‘하나님의 아들이요 메시아요 인류를 구원하기 위해 오신 만왕의 왕’이라는 사실을 사람들이 눈으로 보고 분명히 알라고 나귀 탄 입성으로 보여주신 것입니다. 그 예수님을 향해 사람들이 “호산나 다윗의 자손이여 찬송하리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여 이스라엘 왕이여”라고 외치자 바리새인들은 예수님께 “그들을 책망 하소서” 라고 요청합니다. 이 요청에 예수님께서는 만일 이 사람들이 침묵하면 돌들이 소리 지를 것(눅19:40)이라 말씀하시면서 이들의 외침은 사람의 외침이 아니라 하나님의 선포임을 말씀하십니다. 예수야 말로 하나님의 아들이요, 메시아요, 만 왕의 왕이라는 사실입니다. 예수님의 제자인 우리도 이것을 외쳐야합니다. 만왕의 왕 되신 예수님을 모신 자답게 살아가기를 바랍니다.
3. 예수님의 겸손을 가져야 합니다.
예수님이 타고 가신 나귀는 나귀 새끼였습니다. 중동의 나귀는 종자가 작아서 성인이 타게 되면 땅에 발이 끌렸습니다. 예수님이 이런 나귀 새끼를 타신 것은 겸손하셨기 때문입니다(마21:5). 왕은 왕인데 겸손의 왕이셨던 것입니다. 세상의 왕은 군림하는 왕이요 자신도 모르게 교만해지는 왕으로 참 구원자가 되지 못합니다. 반면 예수님은 스스로 높음을 드러내지 않으시고 상대방의 처지로 내려가셨습니다. 그것이 예수님께서 나귀 새끼를 타신 이유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과 동등하신 분이지만 십자가에 죽기까지 겸손하게 되신 분입니다. 겸손하신 예수님이 모실 때 그 인생에 변화와 구원이 임하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4. 예수님에게서 희생을 배워야 합니다.
예수님이 예루살렘에 들어가셨을 때 성에 사람들이 많았던 이유는 유월절 때문이었습니다. 이 유월절을 지키기 위해 예루살렘에 모여든 사람은 200만이 넘었습니다. 200만의 사람들이 양을 잡아 제사를 드리는데, 요세푸스라는 역사학자에 따르면 양들의 숫자가 25만 6천마리나 되었습니다. 짐승들은 유월절에 예루살렘 성전으로 끌려 들어가는데, 예수님도 동일한 날 예루살렘 성에 입성하셨습니다. 그리고 짐승들은 성전에 따로 마련된 구역에서 기다리다가 한꺼번에 하나님의 제단에 올려지게 되는데, 이 날 역시도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죽으시던 날과 동일했습니다. 결국 예수님은 예루살렘에서 제물로 바쳐진 수많은 양들 가운데 가장 위대한 하나님의 어린 양이 되신 것입니다. 십자가 위에서 희생제물로 드려지기 위해 예루살렘으로 입성하신 것입니다. 우리를 죄에서 건지시고 구원하시기 위한 주님의 희생적인 사랑이었습니다. 이 예수님의 희생적 사랑을 배우는 우리가 되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