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채원병의 아침 묵상 161 ] 하나님의 택하심과 내버려두심

기독교


 

[ 채원병의 아침 묵상 161 ] 하나님의 택하심과 내버려두심

일요시사 0 912

 

 

나님의 택하심,,, 하나님께서는 에베소서 1 4, 5절의 말씀처럼,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사랑으로 택하시고, 예정하셔서 하나님의 거룩하고 흠이 없는 자녀로 삼으셨다. 천지를 창조하시기 전에 이미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사랑으로 자녀들을 품으신 것이다.

 

천지창조,,,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성경 66권은 하나님의 창조주 되심을 선언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기독교인이라면 하나님의 창조주 되심을 믿지 않는 사람이 없다. 그러나,,, 하나님의 창조주 되심을 삶을 고백하며 사는 사람은 많지 않다.

 

하나님의 창조주 되심,,, 하늘들과 땅과 만물이 하나님께로부터 나왔고, 하나님의 것이며,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존재한다. 이것이 하나님의 창조주 되심의 의미다. 나의 생명도, 삶도, 물질도, 모든 것이 나의 것이 아니다. 모든 것이 하나님의 것이고, 하나님만이 주인이시다.

 

인간의 죄,,, 하나님께서 모든 것의 주인 되심을 받아들이지 않는 것이 죄의 본질이다. ‘가 주인이 되고, ‘를 중심으로 삶이 돌아간다면, ‘는 이미 하나님에게서 벗어나 있는 것이다. 그런데 실제로는 삶은 물론이고, 하나님조차도 를 중심으로 존재할 때가 얼마나 많은가,,, 곰곰이 생각해보시라. 인간은 그런 존재다. 하나님의 천지창조를 믿지만, 자신과 자신의 모든 것이 하나님의 것임을 삶으로 받아들이지 못하며, 여전히 주인행세를 하는 그런 존재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천지를 창조도 하시기 전에 자녀들을 그리스도 안에서 사랑으로 택하시고 예정하신 것이다. 하나님의 자녀 사랑은 천지창조 이전에 이미 자신의 독생자를 십자가에 내어주기로 작정하신 그런 사랑이다. 주님께서는 십자가의 사명을 완수하시고, 부활승천 하신 후에 하나님 우편에 앉으셨다. 하나님은 영이신데, 그 오른 편이 어디 있겠는가,,, 하나님의 전권을 위임 받은 만 왕의 왕’, ‘우주의 왕으로 즉위하신 것이다.

 

그런데,,, 이 사실이 참으로 이상하다. 주님께서는 창조 전에 이미 하나님과 함께 계셨고, 하나님의 아들이신 하나님이셨다. 골로새서 1 16절은 하늘과 땅의 만물이 그에게서 나왔고, 그를 위해 창조되었다고 말한다. 주님께서는 이미 모든 것 위에 계시는 이셨다. 그런데 왜,,, 하나님께서는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승천 하신 후에야 예수 그리스도를 진정한 으로서 하나님 우편에 앉히셨을까?

 

자녀들의 구원이 하나님에게는 그만큼 중요한 일이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는 택하신 자녀들을 구원하시고 나서야 비로소 자신의 독생자이시며, 천지창조의 주역이셨던 예수 그리스도를 으로 인정하신 것이다. 소름이 돋도록 무서운 하나님의 자녀 사랑이시다. 성도들은 이 믿음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이다. 창세 전부터 영생에 이르도록 영원하신 하나님의 사랑 안에서,,, 영원토록 변함이 없으시고, 신실하신 하나님의 사랑 안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이다.

 

그런데,,, 살면서 이러한 하나님의 사랑이 잘 느껴지지 않는다. 성도들의 삶이 세상사람들보다 나은 것도 없어 보인다. 하나님의 그 크신 사랑은 어디에 있는가,,, 성도라고 해서 더 성공하는 것도 아니고, 더 잘 사는 것도 아니다. 게으른 사람보다 부지런한 사람이 잘 되고, 머리 좋은 사람이 더 출세하고, 운 좋은 사람이 더 잘 나간다. 이게 세상에서의 일반적인 원리다. 해가 성도에게만 비추지 않고, 봄비가 성도에게만 내리지 않는다. 마찬가지로 하나님께서는 신자나 불신자나 똑 같이 은혜를 주시고 기회를 주신다. 이것이 신자에게나 불신자에게나 동일하게 임하는 하나님의 은혜다. 이런 하나님의 은혜를 일반은총이라고 한다. 이런 하나님의 일반은총 아래에서는 신자나 불신자나 조건은 동일하다.

 

그러면,,, 하나님의 신실하신 사랑은 어디로 간 것일까? 결정적인 차이가 하나 있다. 하나님께서 택하신 자녀들에게만 임하는 특별한 은총이다. 믿지 않는 세상사람들이야, 지가 잘 나서 잘 먹고 잘 살든지, 게을러서 힘겹게 살든지, 하나님께서는 관여하시지 않는다. 그들에게는 이 세상이 전부일 뿐이다. 어떻게 살든, 하나님의 일반은총 아래에서 잘 살기도 하고, 힘들게 살기도 하는 것이다. 우상을 숭배하거나 동성애에 빠지거나, 자기욕심대로 제 잘난 맛에 살아도,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내버려두신다.

 

하나님의 내버려두심,,, 하나님의 가장 무서운 형벌이 내버려두심이다. 로마서 1 24, 26, 28절에 보면, 하나님께서 그들을 내버려 두신다고 하였다. 그들을 마음의 정욕대로 더러움에 내버려 두시고, 부끄러운 욕심에 내버려 두시고, 상실한 마음대로 내버려 두신다. 자기들의 욕심과 정욕에 내버려두신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내버려주시되, 영원토록 내버려두신다.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가 전혀 임하지 않는 감옥, 어둠과 고통의 영원한 감옥에 버려지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사랑하는 자녀들을 그냥 내버려 두시지 않는다. 그들의 삶 가운데 찾아오시고, 개입하시면서, 그들을 지켜주시고, 인도해가신다. 조주 하나님만이 그들의 진정한 주인이심을 깨닫도록 인도해가신다. 위로도 주시고, 힘과 능력이 되어 주시기 하지만, 때로는 견디기 힘든 고난도 주시며,,, 인도해가신다. 이것이 하나님의 자녀들에 대한 특별한 사랑이고, 은혜다.

 

창세기에 나오는 요셉의 형들은 어린 동생을 죽이려다 노예로 팔아 넘기는 악행을 저질렀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악행을 통해서도 섭리하고 계셨다. 요셉을 애굽의 총리가 되게 하셨고, 요셉을 통해서 야곱과 형제들을 애굽으로 부르시고, 이들을 통해서 이스라엘을 탄생시키셨다. 그리고 이들을 이스라엘 열두 지파의 조상으로 세우셨다. 택하신 자들에게 있어서는 심지어는 악도 선으로 갚으시는 하나님이시다. 하나님께서는 죄악조차도 택하신 자들에게는 은혜가 되게 하신다.

 

하나님의 사랑은 때로는 아프고 견디기 힘든 고난으로 나타난다. 제 멋대로 살라고 그냥 내버려두시지 않으시는 하나님의 사랑의 매다. 하나님의 자녀들에게 임하는 고난은 내가 하나님의 택하심을 입은 자녀라는 확실한 증거가 되는 것이다. “하나님이 아들과 같이 너희를 대우하시나니 어찌 아버지가 징계하지 않는 아들이 있으리요. 징계는 다 받는 것이거늘, 너희에게 없으면 사생자요 친아들이 아니니라”( 12:7,8)

 

욥은 극심한 고난을 통해서 창조주 하나님을 제대로 만날 수 있었다. “내가 주께 대하여 귀로 듣기만 하였사오나, 이제는 눈으로 주를 뵈옵나이다”( 42:5)  바울은 살 소망까지 끊어지는 극심한 고난을 당하고 난 후에 이렇게 고백한다. “우리는 우리 자신이 사형 선고를 받은 줄 알았으니 이는 우리로 자기를 의지하지 말고 오직 죽은 자를 다시 살리시는 하나님만 의지하게 하심이라”(고후 1:9)

 

모든 것의 주인이시며, 절대적인 주권으로 다스리시는 창조주 하나님만을 바라보고, 의지하며 살도록 하나님께서는 자녀들의 삶에 깊숙이 개입하신다. 창조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사랑으로 택하신 자녀들을 세상 가운데 내버려두지 않으시고, 창조주 하나님께로 인도해 가신다. 그 끝은 하나님의 영원한 영광의 나라다. 그래서 로마서 8 17절은 말한다. “자녀이면 또한 상속자, 곧 하나님의 상속자요, 그리스도와 함께 한 상속자니, 우리가 그와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하여 고난도 함께 받아야 할 것이니라

 

주님의 삶이 얼마나 고달프고 힘드셨으면, “여우도 굴이 있고 공중의 새도 거처가 있으되 인자는 머리 둘 곳이 없다고 하시고( 8:20), “마른 땅에서 나온 뿌리 같아서 고운 모양도 없고, 풍채도 없은즉, 우리가 보기에 흠모할 만한 아름다운 것이 없다고 하였을까?( 53:2) 주님께서 고난의 삶을 사시고, 십자가에서 모든 것을 내어주신 것은 하나님께서 창세 전에 택하신 자녀들을 하나님의 영원한 영광의 나라로 인도하시기 위한 한 가지 목적뿐이다. 하나님의 자녀들은 주님과 함께 때로는 고난도 겪고, 하나님만을 의지하며, 하늘의 영광을 향해서 오늘도 힘차게 걸어가는 사람들이다

 

채원병목사<오클랜드정원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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