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원병의 아침 묵상 177; 폐차장으로 끌려가는 녀석의 마지막 모습을 보며,,,

기독교


 

채원병의 아침 묵상 177; 폐차장으로 끌려가는 녀석의 마지막 모습을 보며,,,

일요시사 0 1467
BFM127,,, 내 애마의 차량번호다. 2010년 5월에 한국에서 신학공부를 마치고 목사가 되어 돌아왔을 때, 아내가 목회하려면 필요할 것이라고 해서 마련해준 차다. 이후 지난 7년 동안 못난 주인 태우고 발이 되어 힘차게 달려주던 녀석이었다. 

메도우뱅크 커뮤니티 홀에서 예배를 드리던 시절에도, 데본포트 예배당에서 예배를 드리던 시절에도, 그리고 현재의 리무에라 예배당에서 예배를 드리는 동안에도, 나의 발이 되어 불평 한 마디 없이 달려주던 녀석이었다. 기쁠 때나 외로울 때나, 즐거울 때나 울적할 때나, 녀석은 내게 언제나 ‘친구’였고, 녀석에게 나는 항상 ‘주인’이었다. 그래,,, 녀석은 한결같이 나를 ‘주인’으로 모시고 묵묵히 달려주던 나의 애마였다.

3500불짜리 중고차 BFM127, 내게는 많은 애환이 깃든 차였다. 지금도 어떻게 그런 일이 일어날 수 있었는지 잘 이해가 가지 않는다. 20여일 전에 라운드어바웃에서 바로 앞에서 지나가고 있던 차를 보지 못하고 들이박았던 것이다. 사람은 다치지 않았지만, 차는 앞부분이 흉하게 찌그러졌다. 차량 가격보다 수리비가 더 나가게 되자, 보험회사에서 폐차하기로 했다고 연락이 왔다. 그리고 지난 19일 낮에 견인차가 와서 집 앞마당에 세워놓았던 녀석을 끌고 갔다. 

찌그러지고 못난 모습으로 끌려가는 녀석이 왜 그렇게 안 되어 보이던지,,, 마음이 찡 했다. 차가 무슨 생명이 있는 것도 아닌데, 생명이 없는 차도 정이 들면 헤어지는 아픔이 있다. 때로는 차 같이 생명 없고 말 못하는 물건이 살아있는 인간보다 더 정이 들기도 하는 법이다,,, 녀석은 지난 칠 년 동안 불평 한 마디 없었다,,, 나는 언제나 녀석의 ‘주인’이었다. 이 세상에서 나를 ‘주인’으로 인정해주는 유일한 녀석이었다. 

헤어지는 아픔,,, 단순히 헤어지는 아픔만은 아니었다. 나는 녀석에게서 나를 보고 있었다.

폐차장으로 끌려가는 BFM127,,, 내가 그런 모습으로 살고 있는 것은 아닐까,,, 그렇게 살다 그렇게 흉측스러운 몰골로 생을 마감하게 되는 것은 아닐까,,, 그 주인에 그 차,,, 나의 삶은 어떤 모습으로 마감하게 될까,,, 아니, 나는 현재 어떤 모습으로 살고 있는 것일까,,, 

폐차장으로 끌려가는 녀석의 모습이 지난 칠 년 동안의 숱한 애환과 함께 마음에 짙은 여운으로 계속 남는다. 그러나 녀석의 마지막 모습은 단지 지난 칠 년이 아니었다. 지나온 내 삶의 모습이었다. 이렇게 부딪히고, 저렇게 찌그러지며, 세파에 치이고, 여러 모양의 온갖 죄악으로 흉하게 상한 내 삶의 모습이었다. 나는 언제나 나의 ‘주인’이었고, 내 삶의 ‘주인’이었다.  

같은 날 밤에 꿈을 꾸었다,,, 꿈 속에서 나는 의대생이면서 신대원생이었다,,, 낮에는 의대생, 밤에는 신대원생이었다. 두 가지를 함께 공부하기가 너무 버거워 결국 의대에서의 몇 과목은 포기하고, 졸업을 일년 연기하기로 하였다. 원래 의대는 학년제이기 때문에 한 과목만 점수가 안 나와도 유급해서 전 과목을 다시 이수해야 하지만, 꿈에서는 낙제한 과목만 이수하면 되었다. 의대생이 아니면 이게 얼마나 신나는 일인지 모른다. 때로 꿈의 세계는 현실의 세계보다 훨씬 자비롭다. 그래도 불안감은 여전히 남아 있었다. 의사도 되지 못하고, 목사도 되지 못하는 것은 아닐까,,, 불안해 하다 아침에 눈을 떴다. 꿈 속에서 나는 의사도 아니고, 목사도 아니었다.

눈은 떴지만, 아직도 꿈에서 깨어나지를 못한다. 결국 의사가 되지 못하는 것은 아닐까,,, 목사는 될 수 있을까,,, 눈을 뜨고도,,, 나는 여전히 걱정을 하고 있었다. 그러다 문득 안도의 한 숨을 내쉰다. 꿈이었구나! 나는 의사가 되었고, 지금은 목사가 되어 있다. 꿈 속에서 몸부림치며 걱정하고 애쓰던 두 가지 목표를 다 이룬 셈이다. 그런데 나는 두 가지 목표를 정말 다 이룬 것일까,,, 때로는 꿈이 현실보다 더 사실을 말한다.

왜 이런 꿈을 꾸었을까,,, 의사로서 잘 나가던 시절에 대한 동경이 마음 한 구석에 남아있는 것은 아닐까,,, 의사를 너무 이른 나이에 그만 둔 데 대한 아쉬움이 남아 있는 것은 아닐까,,, 아직도 세상에 대한 미련이 남아 있었던 것일까,,, 나는 정말 목사인가,,, 자괴감,,, 오, 노우! 이리 보아도 부족하고, 저리 달아 보아도 함량미달이다. 나의 삶은 어떻게 마무리하게 될까,,, 어느 한 쪽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인생을 마감하는 것은 아닐까,,, 어제 폐차장으로 끌려가던 나의 애마, BFM127의 모습이 떠오른다,,, 

때로는 현실이 버겁게 느껴지기도 하고, 은연중에 불안감이 스며들기도 한다. 인간의 연약함이다. 문득 나의 믿음을 생각해본다. 나는 하나님을 얼마만큼이나 믿고 있을까,,, 하늘만큼? 땅만큼? 아니면, 하나님께서 주신 만큼? 

히브리서 11장 6절은 말한다.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

하나님께서 계신 것을 믿으라,,, 반드시 믿으라,,, 하나님께서 계신 것을 믿지 않는 신자도 있나? 하나님께서 계신 것을 믿기가 얼마나 어려우면 하나님께서 계신 것을 반드시 믿으라고 하였을까,,, 

하나님의 계심,,, 어디에 계신가? 하늘에? 땅에? 하늘과 땅에, 그리고 우리의 삶 가운데 계신 하나님이시다. 그냥 계신 것이 아니라, 우리의 삶 가운데에서 항상 살아계신 하나님이시다. 밤이나 낮이나, 언제나 살아서 역사하시는 하나님이시다. 

그런데,,, 그 하나님께서 내 삶 가운데 항상 살아계시지 못하다. 하나님의 계심을 믿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내 삶 가운데에서 항상 나의 ‘하나님’, 나의 ‘주’로 살아계시지 못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계심을 믿으면서도, 여전히 나는 나의 ‘주인’이고, 나는 내 삶의 ‘주인’인 것이다. 나는 여전히,, 나를 ‘주인’으로 모시고, ‘나’를 위해 열심히 나의 인생길을 달리고 있는 것이다. 당신의 하나님은 어디에 계신가,,, 당신의 삶은 어디로 달려가고 있는가,,,

반드시,, 믿으라,,, 하나님께서 항상 내 삶 가운데 살아계심을 믿으라. 믿음은 하나님께서 나의 ‘주’로서, 나의 삶을 이끌어가고 계심을 믿는 것이다. 때로는 어두운 골짜기를 지나게도 하시고, 때로는 푸른 평야를 달리게도 하신다. 고난의 시간도, 기쁨의 시간도, 모두 나의 ‘주’, 나의 ‘하나님’ 안에서 주어진 나의 시간이며, 동시에 하나님의 시간이다.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그러나 하나님 안에서 돌아가는 삶의 시간들이다. 

그리고,,, 반드시,, 믿으라,,, 상 주시는 이심을 반드시 믿으라. 상,,, 천국에서 받을 상,,, 어떤 상일까,,, 천국에서도 일등과 꼴등이 있고, 높은 자와 낮은 자가 있는 것일까,,, 바로 앞의 히브리서 11장 5절에서 “믿음으로 에녹은 죽음을 보지 않고 옮겨졌다”고 하였다. 믿음으로 죽음을 보지 않고 영생에 들어간 것이다. 이 사실을 반드시 믿으라,,, 믿는 자에게는 영원한 영광의 나라가 있다는 사실을 반드시 믿으라. 믿는 자들에게 하나님께서 주시는 상은 영생의 상이다. 영생보다 더 큰 상이 어디 있는가,,,

예수님께서는 이를 위해서 오셨고, 죽으셨으며, 부활하셨다. 이것이 폐차장으로 끌려갈 상하고 찌그러진 죄인들을 향하신 하나님의 사랑이고 은혜다. 아무리 망가진 인생도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사랑으로 보여주신 하나님의 은혜 안에서는 언제나 하나님의 사랑하시는 자녀들이다. 그들의 종착지는 폐차장이 아니라, 무한한 영광의 영원한 나라다. 

채원병목사<오클랜드정원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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