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원병의 아침 묵상 179; 말세에 부어주신 성령, 말세의 영,,,
일요시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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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6.14 09:57
6월 4일은 성령께서 이 세상에 찾아오신 날을 기념하는 성령강림절이었다. 성령강림절,,, 성령께서 오신 날이다. 그런데 언뜻 이해가 안 간다. 성령께서 오시기 전에는 이 세상에 성령께서 없으셨다는 말인가? 물론 그렇지 않다.
창세기 1장 1-2절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며, 흑암이 깊음 위에 있고, 하나님의 영은 수면 위에 운행하시니라”
태초에 하나님께서 천지를 창조하실 때, 우주는 아직 모양을 갖추지 않고 텅 비어있었다. 그리고 깊은 어둠 속에 있었다. 이 때 하나님의 영이신 성령께서 움직이시며 창조가 시작되었다. 하나님께서는 성령을 통해서 천지를 창조하시고, 창조세계의 질서를 유지하신다. 그래서 성경에서는 성령을 하나님의 손이라고도 한다. 시편 8편 3절은 하나님의 손가락으로 하늘과 달과 별들을 만드셨다고 말한다. 성부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손이신 성령 하나님을 통해서 세상을 창조하시고, 창조하신 세상을 다스리신다. 과학자들이 말하는 여러 가지 자연의 법칙들 뒤에는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손, 즉 성령이 계신 것이다.
성령은 하나님의 보이지 않는 손으로서 천지를 창조하실 때부터 하나님의 일을 하시는 하나님의 영이시다. 그런데도 성령께서 이 세상에 찾아오신 날을 성령강림절이라고 해서, 교회의 중요한 절기로 지키는 데는 특별한 의미가 있는 것이다. 어떤 의미가 있을까,,,
성령께서는 오순절에 강림하셨다. 오순절은 유월절로부터 49일이 지나 오십 일째 되는 날이다. 보다 정확하게 말하면, 유월절 안식일 다음날부터 세어서 일곱 안식일 이튿날이다(레 23:15-16). 그래서 칠칠이 사십구, 칠칠절이라고도 하고, 오 곱하기 십, 오순절이라고도 한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성령을 오순절에 보내신 데는 특별한 목적이 있다. 예수께서는 유월절에 십자가에 못박히셨고, 유월절 안식일 다음날에 부활하셨다. 오순절은 예수께서 부활하신 날부터 세어서 오십 일째 되는 날인 것이다.
유월절과 오순절,,, 유대인들의 추수는 유월절 보리 추수로 시작을 해서, 오순절 밀 추수로 마감을 한다. 그래서 유월절에는 추수한 보리의 첫 곡식 단을 하나님의 제단에 바치고, 오순절에는 마지막으로 추수한 밀을 바친다. 즉 유월절에 시작한 보리추수가 오순절의 밀 추수로 마감된다.
여기에 오순절 성령강림의 비밀이 있다. 예수의 유월절 십자가 사건은 오순절 성령강림으로 비로소 마무리가 되는 것이다. 무슨 말인가,,, 성령께서는 예수의 십자가 사건을 마무리 짓고, 마감하시기 위해서 이 세상에 오신 것이다.
오순절 날이 이미 이르매,,, 사도행전 2장 1절은 성령강림에 대해 이렇게 시작한다. 그런데 여기서 ‘이미 이르매’라는 헬라어는 원래 ‘완전히 차다’ 라는 뜻이다. 오순절 날이 완전히 찼다,,, 무슨 뜻인가? 오순절은 마지막 추수다.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건으로 시작된 마지막 추수를 마무리할 때가 완전히 찼다는 뜻이다. 하나님께서 이 세상을 마감하실 때가 완전히 찼다는 뜻이다.
마감하실 때가,., “말세에 내가 내 영을 모든 육체에 부어주리니”(행 2:17) 말세에,,, 성령강림은 말세가 이미 시작되었음을 알리는 사건이다. 이제 예수 십자가의 구원을 마무리하시고 마감하시기 위해서 성령을 보내신 것이다. 말세에,, 세상 끝 날에,, 하나님께서는 모든 것들을 마감하시기 위해서 성령을 보내주셨다,,,
성경은 하나님의 천지창조를 선언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창 1:1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그리고 성경의 마지막 책인 요한계시록에서 ‘새 하늘과 새 땅’으로 하나님의 천지창조는 완성된다. 계 21:1 “또 내가 새 하늘과 새 땅을 보니 처음 하늘과 처음 땅이 없어졌고, 바다도 다시 있지 않더라”
하나님께서 말세에 성령을 보내신 것은 하나님께서 천지창조를 마무리하실 때가 꽉 찼다는 뜻이다. 오늘을 사는 성도들은 하나님의 천지창조의 마지막 때, 말세에,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은 자들이다. 우연히 이 마지막 때에 부르심을 받은 것이 아니다. 하나님께서는 천지창조 이전에 이미 당신의 자녀들을 택하셨다(엡 1:4). 성도들은 이미 천지창조 이전에 하나님의 계획 안에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지금 이 마지막 때에 하나님께서 불러내신 것이다,,,
신약 최초의 교회는 오순절 성령강림과 함께 시작되었다. 성령강림과 교회,,,. 주님께서 부활하신 날도 일요일이고, 성령께서 강림하신 날도 일요일이며, 최초의 신약교회가 탄생한 날도 일요일이다. 교회가 주일로 지키는 일요일은 주님의 부활과 성령강림, 그리고 교회탄생이라는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가지고 있다. 말세에,, 하나님께서 천지창조를 마감하시기 위해서 주님을 보내셨고, 성령을 보내셨으며, 교회를 세우셨다. 그리고 말세에,,, 성도들을 교회로 부르셨다.
성령께서는 예수의 십자가 사역을 마무리하시기 위해서 일하시는 말세의 영이시다. 주님의 몸인 교회는 말세에 성령강림과 함께 세워진 종말론적 신앙공동체이다. 그렇다. 말세에 세워진 교회는 종말론적 교회다. 그런데 교회가 과연 종말론적인가? 과연 말세에,, 모든 것을 마무리 짓기 위해서 세워진 종말론적 교회인가?
종말론적 교회,,, 종말론적 교회는 현세보다 내세를 지향한다. 현세의 축복보다 내세의 복을 지향한다. “너희가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살리심을 받았으면 위의 것을 찾으라. 위의 것을 생각하고 땅의 것을 생각하지 말라. 우리 생명이신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그때에 너희도 그와 함께 영광 중에 나타나리라”(골 3:1,2,4)
종말론적 신앙은 현실에 얽매이지 않는다. 현세의 축복에 빠지지 않는다. 하나님께서 말세에 성령을 부어주시고 부르신 성도들의 궁극적 소망은 하늘에 있다. 하나님께서는 이 소망을 이루어주시기 위해서 예수를 보내셨고, 십자가에 내어주셨으며, 성령을 보내셨고, 말세에 교회를 세우셨다. 모든 민족 가운데 흩어져있는 하나님의 자녀들을 하나님의 영원한 나라로 불러모으시기 위해서다.
말세에,,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은 성도들은 하늘을 바라며 산다. 그들은 오늘을 살되, 영생의 관점에서 오늘을 보고, 이 세상에 살되 하늘나라의 관점에서 현실을 직시한다. 현세에 얽매이는 것이 아니라, 의연하게 현실세계를 대한다. 하늘이 땅을 덮는다. 땅이 하늘을 덮을 수 없다. 그런데,,, 하늘이 땅에 묻혀있다. 하늘나라가 현실이라는 세계에 묻혀있다. 성도들도 하늘의 복보다 현세의 복을 더 원한다.
믿음의 선배들은 그렇게 살지 않았다. 심지어 예수도 모르고, 성령도 받지 못한 구약의 믿음의 선조들도 종말론적인 삶을 살았다. 그들은 하늘에 있는 본향을 사모하며, 땅에서는 외국인과 나그네로 살았다(히 11: 13-16). 땅에서 영 죽치고 눌러앉을 것처럼 살지 않고, 하늘에 속한 자로서의 자기 정체성을 확실하게 부여잡고 살았다.
나그네,,, 지나가는 사람들이다. 세상을 적당히 살았다는 뜻이 아니다. 현실에 대해서 의연하게 살았다는 뜻이다. 자신들이 살 영원한 하늘이 그들의 본향, 진짜 고향임을 믿었기 때문이다. 그들은 심한 고문을 받으면서도 구차하게 풀려나기를 원하지 않았다(히 11:35). 세상의 조롱과 죽음과 환난과 학대도 그들을 굴복시킬 수가 없었다. 성경은 이런 사람은 세상이 감당하지 못한다고 선언한다(히 11:38).
종말론적 성도는 세상이 감당하지 못한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죽으심과 부활을 믿고 아는 성도들,, 말세에 성령의 부으심을 받은 종말론적 성도들은 더더욱 세상이 감당할 수 없어야 한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대부분의 성도들은 종말론이 실종된 종말을 살고 있다. 우리는 모두 세상이 감당할 수 없는 성도가 아니라, 세상을 감당하지 못하는 성도가 아닌가,,,
종말론이 실종된 종말의 삶,,, 종말론적 교회와 종말론적 성도는 어디에 있는가,,, 말세다,,, 말세에 내가 내 영을 모든 육체에 부어주리라,,, 성령은 말세의 영이시다.
채원병목사<오클랜드정원교회>
채원병목사<오클랜드정원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