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를 선포하시는 예수님

기독교


 

자유를 선포하시는 예수님

NZ광림 0 1747

사람은 자유를 누리면서 살도록 창조되었기에 자유의 향유권을 잃는 것은 생명을 잃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한 인간이 자유의 가치를 가지고 산다는 것, 하나님이 나를 창조하셨고 내가 하나님의 피조물이라는 자유의 가치를 가지고 산다고 하는 것이 바로 성경66권이 우리에게 가르쳐 주고 있는 중요한 진리입니다.

예수그리스도를 통해 주어지는 자유는 얽매인 데서 해방되는 것을 의미하며 얽매인 것에서 풀어주고 자유를 주시는 것은 그리스도의 속성인 진리의 역할입니다. 그러므로 예수그리스도 안에서 자유를 누리는 것이 온전한 자유입니다.

미국의 부흥 사였던 무디(Dwight L.Moody 1837-1899)는 ① 그대 자신을 믿어보라! 그대는 실망할 때가 있을 것이다. ② 친구를 믿어보라! 어느 날 그들은 죽거나 그렇지 않으면 그대와 헤어질 것이다. ③ 그대의 명성을 믿어보라! 어느때 훼방하는 혀가 그것을 뒤집어 엎을 것이다. ④ 그러나 그리스도를 믿어보라! 그대는 현세와 내세에 후회함이 없을 것이다라고 했습니다. 어떤 상황을 만나든지 예수그리스도라는 대상이 바뀌어져서는 안됩니다.

그런데 가난은 사람의 대상을 바꾸어 놓습니다. 여기서 가난은 돈이 없는 사람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가난한 자’란 물질적으로 풍성하든지 부족하든지 육신적으로 건강하든지 병들었든지 세상적인 명예가 있든지 없든지의 문제가 아니라 그런 것에 상관없이 자신의 삶에서 만족을 느끼지 못하고 영적으로 혼돈하고 공허함을 느끼며 사는 사람들을 의미합니다. ‘가난한 자’ 라는 단어는 갈급하고 굶주려있는 상태를 말합니다.

마태복음 3장 3절에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임이요” 여기서 ‘가난한 자’, ‘아니(Ahni)’라고 씌어있는 히브리어의 단어는 ‘낮은 자’ 혹은 ‘겸손한 자’를 말합니다. 심령이 가난해져야(겸손해지고 낮아져야) 복음을 사모하게 되고, 복음이 그 가난한 심령 안에 임하여 참다운 인생의 희년을 맞고 자유함을 누리게 됩니다.

예수그리스도는 가난한자를 복음으로 자유케하시는 분이십니다.

또 죄의 포로 된 자를 성령의 기름부음으로 자유케 하시는 예수님입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신 포로된 자에게 자유를 주신다는 말씀은 단순히 정치적이거나 나라적인 현실만을 일컫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진정한 자유는 죄의 속박으로부터의 자유이며 속사람이 자유를 누리는 것입니다. 진정한 자유는 남과 싸워서 쟁취하는 것이 아니라, 먼저 나를 속박하고 있는 죄와 저주와 사망과 율법에서 해방을 주신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앞에서만이 양심의 자유와 영혼의 진정한 자유가 찾아오게 됩니다.

자유에 대해 가장 성경적인 정의(定義)를 내린 사람은 종교개혁가인 존 칼빈(John Calvin)입니다. 존 칼빈은 "자유는 우리가 마땅히 해야 할 것을 할 수 있고, 우리가 마땅히 하지 말아야 할 것을 하지 않을 수 있는 인간 의지(意志)의 능력이라"고 정의했습니다.

나비와 나방의 차이가 있습니다.

나비는 주로 낮에 활동하며 날개 색이 곱고 화려합니다. 나비는 자유롭게 하늘을 훨훨 날아다니며 꽃들의 씨를 다른 꽃들에게 옮겨주어 꽃들을 번식시키며 아름다운 자태를 뽐내며 밝은 시간대에 살아갑니다.

나방은 대부분 밤에 활동을 하고 날개의 색도 단조롭고 어두운 편입니다. 나방은 불만 보면 죽는 줄도 모르고 달려듭니다. 모닥불, 가로등, 전기불에도 달려듭니다. 그 이유는 나방은 달을 보고 방향을 잡는 야행성이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나방은 밤에 활동을 하다가 밝은 불빛만 보면 달빛인줄 알고 달려 들어가 강렬한 빛과 열에 노출되어 죽는 것입니다.

성도는 나방이 아니라 나비입니다. 죄의 불빛을 향해 달려가다가 죽어버리는 어리석은 존재가 아니라 밝은 시간에 태양빛을 향해 생명을 잉태하며 날아가는 나비와도 같습니다.

갈라디아서 5장 1절에는『그리스도께서 우리를 해방시켜 주셔서 우리는 자유의 몸이 되었습니다. 그러니 마음을 굳게 먹고 다시는 종의 멍에를 메지 마십시오.』라고 말씀합니다.

찬송가383장 2절에 “옥중에 매인 성도나 양심은 자유를 얻었네” 즉 겉사람은 부자유하지만 속사람은 자유하다는 말입니다.

시몬 베드로가 어느 날 밤새도록 그물을 내려 고기를 잡고 있었는데 한 마리도 잡지 못한 허탈했던 새벽을 맞이합니다. 그런데 그 허탈한 새벽에 예수님이 베드로에게 다가와 베드로에게 "깊은 곳에 가서 그물을 던지라"고 말씀합니다.

갈릴리 바다의 전문적인 어부 베드로는 한마디의 대꾸도 없이 “제가 선생님의 말씀대로 그렇게 해보지요”하면서 깊은 곳에 그물을 내렸을 때 놀랍게도 그물이 찢어지도록 고기가 많이 잡았습니다.

그 순간 시몬 베드로는 "주여, 나는 죄인입니다. 나를 떠나십시오"라고 고백을 합니다. 베드로가 왜 이런 고백을 했을까요? 베드로는 그 순간 인간 예수가 아닌 하나님 앞에 서게 된 것입니다. 그분은 단순히 바다를 잘 아는 한 인간이 아니라 저 바다의 깊은 곳을 아시는, 고기떼의 행방을 아시는, 더 나아가 베드로의 내면까지도 꿰뚫어 보시며, 그의 절망과 과거와 현재와 미래까지 아시는 전능하시고 전지하신 하나님이셨던 것입니다.

그분 앞에 서는 순간 베드로의 입에서 "저는 죄인입니다"라는 고백이 자연스럽게 터진 것입니다. 이것이 자유함입니다.

우리의 내면을 보시는 분, 우리 의식의 저변에 숨어 있는 무의식의 동기까지 보시고 아시는 그 예수님 앞에 우리는 누구입니까? 죄인일 수밖에 없습니다. 예수그리스도를 통해 죄에서 자유를 얻어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자유를 제대로 누리지 못하는 이유 중 하나는 이 자유가 누구로부터의 온 자유인지는 알지 못하고 무엇을 위한 자유인지는 잘 알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과 함께 이제 죄로부터 자유함을 얻은 우리들이 그 자유를 잘 지키며 자유 가운데, 참된 자유인으로서 이 땅 뉴질랜드에서 나라와 민족을 위해 기도하며 고국 대한민국이 ‘진정한 그리스도의 자유의 가치가 성취되는 나라’로 세워지기를 위해 소원하며, 주안에서 참된 자유와 기쁨을 누리시기를 예수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뉴질랜드 광림감리교회 고성환 목사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 (요8: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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