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원병의 아침 묵상 181; LORD,,,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들

기독교


 

채원병의 아침 묵상 181; LORD,,,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들

일요시사 0 936
현재 예배를 위해 빌려서 사용하고 있는 키위교회를 보면서 한 가지 크게 놀란 사실이 있다. 이 교회는 오클랜드에서도 땅값이 비싸기로 유명한 곳에 있고, 교회건물도 대단히 훌륭하다. 서머빌이라는 마오리 여자추장이 교회에 헌납한 대지 위에 세워진 교회다. 귀한 땅을 헌납하자 교인들은 열심히 건축헌금을 해서, 최고의 외양과 시설을 갖춘 교회건물을 건축하였다. 교인들의 마음이 얼마나 뿌듯했을까,,, 오랜 시간에 걸쳐서 교인들의 땀이 밴 건물이다. 그들의 땀과 물질과 정성이 교회 곳곳에 배어있는 전통이 있는 교회다. 교회에 대한 자긍심과 이런 교회를 소유하고 있다는 풍족하고 든든한 마음이 있을 것이다.

그런데 알고 보니, 이 교회건물의 주인은 교회가 아니라, 소속되어 있는 교단이다. 허~~~~ 땅과 교회건물에 대한 소유권은 교단에게 있고, 교인들은 교회를 사용할 수 있는 권한이 있을 뿐이다. 물론 교회건물을 유지 및 보수하는 비용도 본인들이 모두 부담해야 한다. 자신들이 헌금한 땅과 돈으로 지은 자신들의 교회건물이다. 그러나 그들에게 소유권은 없다. 유지 및 보수할 책임과 함께 사용권만이 주어질 뿐이다. 우리 정서로는 받아들이기 힘든 일이다. 헌데 저들은 당연하다는 듯이 자연스럽게 받아들인다. 저들의 교단에 대한 소속감이 얼마나 대단한 지를 알 수가 있다.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받으리라”(롬 10:13)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받는다. 정말 그럴까? 

“성령으로 아니하고는 누구든지 예수를 주시라 할 수 없느니라”(고전 12:3) 예수를 주라고 부르는 자들은 모두 성령을 받은 사람들이고, 성령께서 예수를 주로 고백하게 하신다. 그러므로 예수를 주로 고백하고,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받는다. 맞지만, 그렇게 간단한 말은 아닌 것 같다. 주님께서는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다 천국에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고 말씀하셨다(마 7:21).

예수를 주로 고백하는 자,,, 주,,, LORD,,, 당신은 나의 주님이십니다. 당신의 나의 모든 것의 진정한 주인이십니다. 나의 모든 것의 참되고 유일한 주인은 주님이십니다. 나의 소유권은 내게 있지 않습니다. 주님께 있습니다. 나의 전존재가 주님의 것입니다. 나의 삶도, 나의 가진 것들도 모두 주님의 것입니다. 제게는 아무 소유의 권한이 없습니다. 사용할 수 있는 권리와 관리해야 할 책임이 있을 뿐입니다. 

주님은 우리를 돌보시고, 우리는 주님께 속한 자들이다. 모든 것이 주님의 것임을 입으로, 믿음으로, 삶으로 고백하는 자들이다. 물질에 대한 소유권도 마찬 가지다. 십일조가 대표적인 예다. “십일조는 모든 것이 주님의 것입니다” 하고 주님의 소유권을 인정하는 신앙행위다. 십일조신앙이 중요한 이유는 자신의 소속감과 물질에 대한 소유권을 표현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나는 주님께 속한 자요, 제가 가지고 있는 것들은 주님의 것입니다”라는 믿음의 고백이 행위로 나타나는 대표적인 예가 십일조다. 교회가 교인들의 주머니를 털기 위해서 십일조를 강조하는 것이 아니다. 십일조야말로 교인들이 참으로 예수를 나의 주로 믿고 섬기는가를 보여주는 믿음의 고백이기 때문이다. 물론 십일조를 한다고 해서 그 사람의 믿음이 참이라는 보장은 없다. 그러나 참으로 예수를 주로 고백하며, 자신의 모든 것이 주님의 소유라는 믿음이 있다면, 십일조는 신앙의 기본이 된다. 십일조신앙은 단지 헌금의 문제가 아니라, 믿음의 고백이다. 소유권이 주님께 있음을 고백하는 믿음의 행위인 것이다.

“저는 이제 주님께 속한 주님의 성도입니다. 제가 가진 것들도 주님의 것입니다.” 이것이 예수를 주님이라고 부르는 성도들의 정체성이고, 소속감이다. 그런데 주님의 소유권은 인정하지 않고, 주님에게서 바라는 것만 많게 되는 모습을 흔히 본다. 주님은 오직 나의 소원을 들어주시고, 내게 풍족함으로 채워주시는 분이 되고 마는 것이다. 주님께서 오병이어의 기적을 행하셨을 때, 무리들의 반응이 대표적인 예다. 

요한복음 8장 14-15절 “그 사람들이 예수께서 행하신 이 표적을 보고 말하되, 이는 참으로 세상에 오실 그 선지자라 하더라. 그러므로 예수께서 그들이 와서 자기를 억지로 붙들어 왕으로 섬기려는 줄 아시고, 다시 혼자 산으로 떠나 가시니라”

예수님께서 한 아이가 가지고 온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오천 명이나 되는 사람들을 배불리 먹게 하시고도 남은 조각이 열두 바구니에 찼다. 이 기적을 보고 무리들이 예수님을 참으로 세상에 오실 그 선지자라고 하였다. 여기에서 그 선지자란 메시아라는 뜻이다. 이 사람이야말로 진정한 우리의 구세주시다, 우리의 주님이시다 하면서 주님을 따랐던 것이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그들이 억지로 자신을 왕으로 삼으려는 줄 아시고, 혼자 산으로 떠나 가셨다. 무리가 예수님을 구주라 부르며, 왕으로 삼으려는 목적이 너무 뻔했기 때문이다. 이런 기적을 일으킬 정도의 분이시면 메시아가 틀림없고, 이런 분을 나의 주, 나의 왕으로 모시면 풍요로운 삶은 보장이 되는 것이다. 

주님께서는 물론 성도들에게 건강이나 물질의 복도 주시고, 여러 가지 복을 주신다. 그러나 설사 건강하지 않더라도, “예수는 나의 주님이시니 저는 행복합니다” 고백할 수 있는 것이 진정한 복이다. 설사 풍족하지 않더라도, “예수는 나의 주님이시니 행복합니다” 고백할 수 있는 것이 진정한 복이다. 설사 삶이 고난 가운데 있더라도, “예수는 나의 주님이시니 행복합니다” 고백할 수 있는 것이 진정한 복이다. 

그런데 오늘날에도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현세에서의 복을 구하기 위해 예수를 주님이라 부르며 따르고 있는가,,, 자꾸 현실적인 축복만 구하며 예수의 이름을 부르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다. 그들은 입으로는 주여, 주여 하지만, 주님께서 보시기에 그들은 주님의 의미를 모르는 사람들이다. 주님께 속해있다는 소속감, 자기 정체성이 너무 없는 것이다. 

 “예수는 나의 주님이십니다”라는 고백을 할 때, 주님이란 단순히 구원해주신 주님이라는 뜻만 있는 것이 아니다. 나 같은 죄인을 구원하시기 위해서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치르신 고통과 사랑과 은혜를 알기에, “참으로 예수님만이 나의 진정한 주님이십니다, 예수님만이 나의 모든 것입니다. 저도, 제가 가진 것도 주님의 소유입니다”라는 믿음의 고백이 나오게 되는 것이다. 쉽게 말해서, 주님은 나의 주님이 되시고, 나는 주님의 소유가 되는 것이다. 주님께서는 자신의 소유된 자들을 자기 눈동자처럼 지켜주시고, 보호해주신다. 그리고 소유된 자들은 주님을 자신의 모든 것의 주인으로, 소유권자로 받아들인다. 이것이 예수를 주님이라고 부르는 믿음이다. 

예수님을 주님이라 부르는 사람은 많아도, 자신의 주님으로 인정하면서 사는 사람은 극히 드물다. 입으로 주여, 주여 하면서 주의 이름을 부르기는 쉬워도, 예수의 주 되심을 삶으로 고백하기는 지극히 어렵다. 목사가 돼서도, 턱없이 부족함을 늘 고백하게 된다. 주님 앞에 언제나 부끄러운 마음으로 무릎을 꿇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아가서에 나오는 술람미 여인은 피부가 검었지만, 왕은 그녀를 달 같이 아름답고, 해 같이 맑다고 하였다(아 6:10). 술람미 여인의 검은 피부가 하얗게 되었기 때문이 아니다. 바로 앞에 나오는 고백이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내 사랑하는 자에게 속하였고,,,”(아 6:3)

검은 피부는 죄로 물든 우리의 모습을 상징한다. 우리에게는 주님으로부터 칭찬을 받을 아무런 근거도 없고, 이유도 없다. 오직 주님께서 우리를 위해서 치르신 십자가의 사랑과 은혜만 있을 뿐이다. 지금도 우리는 술람미 여인의 검은 피부처럼 여러 모양의 죄로 얼룩져 있다. 그러나 주님의 그 크신 사랑과 은혜를 알기에, 우리는 예수를 나의 주님이라고 고백하게 되는 것이다. 술람미 여인처럼 “저는 주님께 속하여 있나이다”하는 고백이 나오게 되는 것이다. 저는 주님의 소유된 자입니다. 주님의 것입니다,,,

어둔 밤 속에 떠 있는 달은 화려하게 빛을 내지 않는다. 달의 아름다움은 은은하게 빛나는 아름다움이다. 성도들의 아름다움이 이와 같다. 성도들은 하나님께 온전히 순종하고, 의롭게 살아서 아름다운 것이 아니다. 하나님의 뜻에 온전히 순종하며 살 수 있는 성도도 없고, 하나님 앞에 자신의 삶으로 의롭다고 인정받을 성도도 없다. 그러나 이러한 사실을 분명하게 인식하기 때문에, 자신의 화려함을 자랑하지 않는다. 오직 주님의 십자가 사랑과 은혜만을 의지하며, 주님만을 자랑한다. 그리고 자신이 주님께 속해있음을 영광으로 알고, 감사하는 마음으로 살아간다. 

달은 자신의 빛을 내지 않는다. 태양의 빛을 반사할 뿐이다. 예수가 자신의 모든 것의 주인 됨을 참으로 인정하는 자는 결코 자신의 빛을 내지 않는다. 그에게서는 주의 이름만이 빛날 뿐이다. 

주님께서는 이런 성도를 달 같이 아름답고 해 같이 맑다고 하신다. 해 같이 맑다,,, 해 같이 맑고 깨끗한 자가 어디 있으랴마는, 주님께서 해 같이 맑다 하신다. 

주님께서는 우리의 진실된 신앙고백을 기뻐하신다. “저는 비록 검을지라도 예수님만이 나의 주님이십니다. 나는 주님께 속한 자요, 주님의 소유입니다. 제가 가진 모든 것도 제 것이 아니고, 주님의 것입니다” 주님의 뜻대로 온전히 살지는 못하지만, 주의 주님 되심을 고백하는 믿음,,, 주님께서는 이런 맑은 믿음을 기뻐하신다. 


채원병목사<오클랜드정원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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