좁은 문으로 들어가기를 힘쓰라

기독교


 

좁은 문으로 들어가기를 힘쓰라

NZ광림 0 1821

예수님은 어떻게 하면 구원을 얻는다는 구체적인 말을 하지 않으시고, 세상에서 살아갈 때에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를 말씀을 하셨습니다. 살아가는 방법 중에 첫 번째가 바로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그리스도인의 삶이고 그리스도인의 삶의 특성입니다.

사람의 본심은 언제나 쉽고 편안한 문을 들어가 넓은 길을 가고 싶어합니다. "좁은 문으로 들어가기를 힘쓰라"는 말씀 속에는 극복해야할 힘겨운 어려움과 장애물이 있다는 것을 암시하고 있습니다. ‘힘쓰라(strive)’는 단어는 열렬하게 수고한다, 싸우다, 죽을힘을 다한다는 뜻도 있습니다. 이 말씀은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기가 얼마나 어려운가,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려면 어떤 태도를 가져야 하는가를 말해 줍니다.

좁은 문은 그리스도께서 열어 놓으신 문으로 하나님께로 나아갈 수 있는 유일한 문입니다. 예수님은 이 문이 되어주시기 위해 하늘 보좌도 버리셨고, 이 문을 열기 위하여 온갖 고통을 다 받으셨습니다. 그러기에 예수님 외에는 또 다른 구원의 문은 없습니다.

“다른 이로써는 구원을 받을 수 없나니, 천하 모든 사람 중에 구원을 받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라!”(행 4:12)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는 말씀은 명령입니다. 그리고 그 명령에 대해서 비교법으로 설명해 주십니다. 멸망으로 인도하는 문과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 크고 좁고, 넓고 협착하고, 많이 가고 적게 가고 이렇게 비교해서 말씀하십니다. 구원으로 들어가는 문은 언제나 열려있고 누구나 들어갈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 문은 넓은 문이 아니라 좁은 문이기에 들어가기가 쉽지 않습니다. 불편합니다. 믿음 안에서 꾸준히 인내하며 주 예수님께 대해 순종하는 것이며 마음과 삶이 끊임없이 그리스도의 거룩한 가르침에 의해 통제 받는 것을 의미합니다. 

유대인들은 율법의 행위로 무슨 선한 일을 해야 구원을 얻는다고 생각했지만 예수님께서는 오직 믿음으로만 구원을 얻는다고 가르치셨습니다. 그래서 유대인들에게 있어서 믿음으로 구원받는다는 복음진리를 받아들이는 것이 너무나 어려웠습니다. 오직 믿음으로만 구원받는다는 복음을 받아들이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

“오직 믿음으로”라는 슬로건으로 종교개혁을 일으킨 마틴루터는 말하길 믿음으로 구원을 얻는 것이 율법으로 구원을 얻는 것보다도 어렵다고 했습니다. 자기 의와 교만을 버리고 오직 주님의 은혜로만 구원을 받을 수 있기 때문에 좁은 문입니다.

어떤 물건을 하나 사는데도 내 마음에 들어야 삽니다. 옷을 하나 사더라도 내 취향에 맞아야 하고, 배우자를 선택하는 것은 더더욱 자기 이상에 맞아야 합니다. 학문 세계에서도 자기의 소질과 재능에 따라 선택합니다. 어떤 분은 의학을, 어떤 분은 자연과학을, 어떤 분은 언어학을 깊이 연구하고 전공분야로 삼습니다. 사실 인간의 삶이란 선택과 결단에 의해서 발전됩니다. 선택과 결단이 분명한 사람은 여러 가지 환경과 조건을 극복해 나갈 수가 있습니다. 그런데 선택하고 결단 내려야할 그런 상황에 머뭇거리는 사람은 기회를 놓치는 사람이요, 소심한 사람입니다.

그런데 결단과 선택은 어떤 다른 한쪽은 포기해야 한다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신앙생활에도 세상적인 것을 포기하고 옛 습관을 벗어버리고 하나님을 좁은 문을 선택해야 합니다. 뒤를 돌아보아서는 안됩니다. 그러기에 예수님은 심지어 “손에 쟁기를 잡고 뒤를 돌아보는 자는 하나님의 나라에 합당치 아니하니라”고 까지 말씀하셨습니다.

 아브라함과 롯 두 사람은 함께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 좁은 문으로 들어선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리고 100세가 되어 약속의 말씀대로 원하는 아들이삭을 선물로 받았는데 하나님은 이삭을 번제로 바치라는 말씀 하셨습니다. 아브라함은 마음에 일어나는 신앙의 회의와 불신을 물리치고 온 마음을 다해 말씀에 순종했고 결국 좁은 문을 통과하였습니다. 하나님은 이런 아브라함을 “내가 이제야 네가 하나님을 경외하는 줄을 아노라”(창22:12) 하시며 그의 믿음을 크게 인정해 주시고, 그의 인생을 자손 만대까지 축복해 주셨습니다.

반면 롯은 처음에는 아브라함과 함께 좁은 문으로 들어가는 듯 했지만 중간에 욕심이 생겨 소돔성이라는 넓은 문으로 들어갔습니다. 하나님께서 소돔성을 멸망시키고자 하실 때, 그에게 높은 산으로 피하라고 하시면서 좁은 문으로 들어갈 수 있는 마지막 기회를 주셨지만 롯은 소돔성과 가장 가까운 성으로 피하였습니다. 결국 롯은 좁은 문으로 들어가기를 힘쓰지 않았고, 자신이 선택한 소알 성에서 두 딸과 근친상간을 하여 부끄러운 죄의 열매만 맺었습니다.

앙드레 지이드는『좁은 문』이라는 저서에서 천국으로 들어가는 문은 사랑하는 사람과도 함께 갈수 없을 만큼 좁고 그 길이 협착하다고 말합니다. 구원의 문으로 들어가려면 이처럼 인간적인 사랑을 포기해야 할 경우도 있습니다. 많은 돈을 벌 수 있는 기회를 포기해야 할 경우도 있습니다. 찾는 이가 적어서 외롭고 쓸쓸할 때도 많습니다. 세상적인 풍습이나 옛습관을 그대로 짊어진 채로는 좁은 문을 통과해 좁은 길을 걸어갈 수 없습니다.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은 단지 성도로서만 사는 것을 말하지 않습니다. 예수님은 믿는다는 것은 좁은 문으로 들어가고자 힘쓰는 삶입니다. 예수님을 더 믿기 위해서, 예수님을 더 알기 위해서, 예수님의 말씀에 순종하기 위해서, 자기를 부인하는 아픔이 있습니다. 예수님을 본받아 살고자 할 때 자기가 깨지는 아픔이 있습니다. 또 안일함과 싸우고, 자신을 희생하는 아픔이 있습니다. 여유 있는 생활을 하지 못하고 사명의 십자가 때문에 바쁜 생활을 해야 하는 아픔이 있습니다. 그러나 좁은 문으로 들어가기에 힘쓰는 삶에 은혜가 있고 기쁨이 있습니다. 생명이 있고 구원이 있습니다.

뉴질랜드 광림감리교회 고성환 목사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멸망으로 인도하는 문은 그 길이 넓어 그리로 들어가는 자가 많고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은 좁고 길이 협착하여 찾는 이가 적음이니라.” (마태복음7:13-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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