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 예배자의 삶 (전도서5:1-3)

기독교


 

참 예배자의 삶 (전도서5:1-3)

 

 

예배에는 세 가지의 중요한 의미가 있습니다. 먼저 예배는 하나님을 하나님 되게 하는 자리입니다. 우리를 사랑하심으로 아들을 십자가에서 죽게 하시고 구원하신 하나님을 온 마음으로 높여 드리는 자리가 예배입니다. 둘째로 예배는 성도가 성도 되게 하는 자리입니다. 예배할 때 성도는 내가 이 땅에 속한 자가 아니라 하늘 백성임을 확인하고 새 힘을 얻게 됩니다. 셋째로 예배는 예배하는 그곳을 하나님의 나라가 되게 합니다. 이것이 예배의 능력입니다.

 

어렸을 때부터 신앙생활을 한 사람들에게는 잊을 수 없는 아름다운 추억이 있습니다. 바로 주일 아침에 엄마와 아빠, 또는 할머니와 할아버지의 손을 잡고 즐거운 마음으로 교회 예배당으로 들어갔던 기억입니다. 온 가족이 즐겁게 예배당으로 향하는 모습은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장면일 것입니다. 본문에도 예배에 참여하는 장면이 등장합니다. “하나님의 집에 들어갈 때에(5:1)” 하나님의 집, 즉 성전 예배에 참여하는 것은 자기가 하나님의 언약 백성임을 인정하는 특별한 행위였습니. 오늘 우리도 마찬가집니다. 우리가 성전에 나와 예배하는 것의 가장 큰 의미는 나는 이 땅에 속한 자가 아니라 하늘의 백성이란 것을 확인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참 예배자는 어떤 삶을 살아야하는지 함께 세 가지로 은혜를 나누겠습니다.

 

1. 참 예배자의 삶은 발을 삼가는 삶입니다. 

너는 하나님의 집에 들어갈 때에 네 발을 삼갈지어다(5:1)” 말씀은 하나님의 전에 들어가서 망령되게 행하지 말고 신중하고 거룩하게 행동하라는 말씀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전에 들어갈 때 조심해야하는 것은 그곳이 하나님이 계신 곳이기 때문입니다. 그렇기에 우리가 이 성전에 들어올 때는 경거망동해서는 안 됩니다. 그것은 하나님이 없는 사람의 행동입니다.

또한 하나님의 집에 들어갈 때 네 발을 삼가라는 말은 예배와 삶이 분리되지 말고 하나가 되라는 말입니다. ‘발을 삼가라는 것은 아무 데나 가지 말고 아무렇게나 살지 말라는 것입니다. ‘에는 영적인 의미가 있습니다. 내 발이 가는 곳, 그게 곧 내 삶인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내 발이 일생동안 어디를 많이 갔느냐?’에 따라 내 삶이 결정됩니다. 하나님의 전에 들어가는 참 예배자라면 세상에서 아무렇게나 살아서는 안 되고 바른 길을 걸어가라는 것입니다. 한 마디로 말하면 예배자는 삶을 예배처럼 살아야 합니다.

 

요셉은 삶을 예배처럼 살았습니다. 그는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이었습니다. 요셉은 자신의 신앙을 말이 아닌 삶으로 보여 주었습니다. 그래서 요셉 주변의 사람들은 요셉을 보면서 하나님이 그와 함께 하심을 보았습니다. 이것이 참 예배자의 삶입니다. 참 예배자는 그를 통해 하나님이 보입니다. 우리를 통해서도 하나님께서 보여 지시기를 바랍니다. 삶을 예배처럼 살아가기를 바랍니다.

 

2. 참 예배자의 삶은 말씀을 듣는 삶입니다

신앙생활에서 가장 중요한 자세는 말씀을 들을 줄 아는 것입니다. “너는 하나님의 집에 들어갈 때에 네 발을 삼갈지어다 가까이 하여 말씀을 듣는 것이 우매한 자들이 제물 드리는 것보다 나으니 그들은 악을 행하면서도 깨닫지 못함이니라(5:1)” 성도는 세상을 살아갈 때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수 있는 곳에 있어야 합니다. 너무 멀리 가서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수 없게 되면 사단의 먹잇감이 될 수 있습니다.

 

복음서에 보면 씨 뿌리는 자의 비유가 있습니다. 4가지 씨에 대한 말씀인데, 이 씨는 떨어지는 곳에 따라 천지차이의 결과가 나옵니다. 먼저는 길 가에 떨어진 씨로, 뿌려지는 즉시 새의 먹이가 됩니다. 둘째는 흙이 얇은 돌밭에 떨어진 씨로, 씨가 뿌리를 내리다 깊게 내리지 못해 죽습니다. 셋째는 가시떨기 밭에 떨어진 씨로, 자라기는 하지만 가시에 기운이 막혀 죽습니다. 마지막은 좋은 밭에 떨어진 씨로, 30, 60, 100배의 열매를 맺습니다. 이 비유의 제목은 씨 뿌리는 비유지만 열매를 맺는데 가장 중요한 것은 밭, 즉 마음입니다. 깨닫는 마음을 지닐 때 열매가 있습니다. “좋은 땅에 뿌려졌다는 것은 말씀을 듣고 깨닫는 자니(13:23)” 말씀을 듣고 깨닫는 것이 복중의 복입니다. 그래서 전도서는 말씀을 듣는 것이 우매한 자의 제사보다 훨씬 낫다고(5:1) 말씀합니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기록되었으되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으로부터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라 하였느니라(4:4)” 사람은 떡으로 살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입으로부터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삽니다. 말씀이 생명입니다. 말씀이 들릴 때 우리 영혼과 육신은 살게 됩니다. 전에는 주일 설교가 귀로만 들렸는데, 그것이 어느 순간 마음으로 들릴 때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내 영혼을 터치하고 감동이 될 때가 있습니다. 이것이 참된 예배자의 경험입니다. 말씀을 들을 때 이러한 경험을 누리게 되기를 바랍니다.

 

3. 참 예배자의 삶은 말을 아끼는 삶입니다

타우라스라는 산은 독수리 서식지로 유명한 곳입니다. 이 산의 독수리들이 가장 좋아하는 먹이는 두루미입니다. 두루미 떼가 타우라스 산을 넘는 날이 있는데, 이 날은 독수리들이 두루미로 포식을 하는 날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이 관찰한 결과, 독수리의 먹잇감이 되는 두루미는 아주 시끄러운 소리를 내는 두루미였습니다. 원래 두루미들은 요란스럽게 떠들기를 좋아하는데, 이 소리가 독수리들에게 먹잇감을 알려주는 것입니다. 반면에 사람들은 나이가 많은 두루미들은 먹잇감이 되지 않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왜냐하면 이 두루미들은 입에 돌을 물고 산을 넘기 때문이었습니다. 돌을 문 두루미는 소리를 내지 않기에 독수리를 피할 수 있었습니다. 이 이야기는 신앙인들에게 중요한 교훈을 줍니다. 우리 신앙은 두루미가 산을 넘어 날아가는 것처럼 수많은 영적인 유혹과 위험을 넘는 것인데, 이 때 악한 영들의 좋은 공격대상은 말을 다스리지 못하는 사람입니다. 실제로 우리 신앙생활에서 말을 다스리지 못해, 신앙의 열매들을 맺지 못하는 경우들이 많습니다.

 

열왕기하 6-7장에 이스라엘은 아람 군대에 포위를 당해 식량이 끊긴 나머지, 아이들까지 잡아먹는 비극을 맞이합니다. 그때 엘리사는 성 사람들에게 내일 이맘때에 성문에서 고운 밀가루 한 스아를 한 세겔에 사 먹을 것이다.’라고 말했습니다. 엘리사의 말에 성의 군대 장관은 여호와께서 하늘에 창을 내신들 어찌 그런 일이 있겠소?”라고 툭 말을 내뱉었습니다. 엘리사는 그 말을 듣고 내일 네가 네 눈으로 보리라 그러나 너는 그것을 먹지는 못하리라라고 말했습니다. 그 다음날 놀라운 일이 일어났습니다. 아람 군대는 진영을 다 버리고 도망갔고, 그 전리품을 통해 엘리사 말대로 고운 밀가루 한 스아에 한 세겔이 된 것입니다. 하지만 엘리사에게 부정적인 말을 내뱉은 장관은 백성들이 우르르 몰려 나가는 통에 그들에게 밟혀 죽고 말았습니다. 엘리사의 말이 그대로 이루어진 것입니다. 군대장관은 그냥 조용히 말만 아꼈어도 살았을 것입니다. 하지만 말을 참지 못해 이런 비극을 당했던 것입니다. “걱정이 많으면 꿈이 생기고 말이 많으면 우매한 자의 소리가 나타나느니라(5:3)” 말을 참지 못하는 것은 신앙의 큰 장애물입니다. 말이 많으면 자연 실수가 많게 되고 낭패를 당하게 됩니다. 그러나 참 예배자의 삶은 말을 아끼는 삶입니다. 말을 아낌으로 신앙의 열매들을 맺게 되는 우리가 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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