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선언문 < 파라카이예수사랑교회 김영수목사 >

기독교


 

독립선언문 < 파라카이예수사랑교회 김영수목사 >

일요시사 0 1214

일제의 무단통치는 한국에 대한 민족운동 탄압, 토벌, 첩보수집, 세관감시, 징세독려, 즉결처분 등으로 식민지 수탈체제를 확립해 나갔다. 전국적인 수탈과 압박을 체험한 국민들은 독립의 의지를 결연히 다지지 않을 수 없었고, 당시 일련의 국제정세는 항일운동을 전국적인 운동으로 확대시키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였다. 그리고 그 힘을 결집시켜준 것은 오랫동안 기독교 교육과 교회를 통해 축적되어온 기독교 민족주의 정신이었다.  

  

1919년 2월 상순 중앙학교장 송진우가 현상윤, 최남선과 회합을 갖고 독립선언서, 의견서 및 청원서를 작성키로 하고 구한말 지도자들과 그리고 기독교에 대한 교섭을 하는 한편 불교 측과 힘을 결집하였다. 3월 1일에 민족대표(기독교측 16인, 천도교측 15인, 불교측 2인 총 33인)들은 서울 인사동의 태화관에 모여 독립선언서를 낭독하고 학생과 시민 2만명은 파고다 공원에 모여 독립의 의사를 대내외에 천명하였다. 파고다 공원은 비밀리에 만든 태극기가 휘날리고 만세를 외치는 군중의 함성이 전역으로 메아리쳤다. 전국 여러 곳에서 독립선언서가 낭독되고 군중들의 만세 소리 함성이 전국을 뒤덮었다. 

 

독립선언문은 실상 자유의 선언문이었다.  성경에서 자유를 배운 기독교인이 기미년 만세 운동에서 적극적으로 가담하여 활동한 것은 자연스런 일이었다. 독립선언문 서명자 33인 중에 16명이 기독교인이다. 그 당시 기독교인은 인구의 1.5%로 30만명 밖에 안 되었기에 더욱 놀라운 일이다. 

 

이만열 교수에 의하면 그 당시 만세 운동이 약 1,400군데에서 일어났는데 이 운동은 주도 세력이 분명했고, 사건 내용이 사료에 기록된 지역만 해도 323지역이라고 한다. 그런데 그 중 78지역이 기독교인과 그들이 신앙생활을 했던 지방 교회를 중심한 곳이었다. 천도교 중심이 66곳, 기독교와 천도교가 같이 일한 만세 거점이 42곳이었다. 따라서 조직적으로 움직인 323곳 중 120곳에서 기독교인들이 주도한 것이다. 이 당시의 2,100교회와 30만 기독교인 전부가 나서지 않고는 이런 전국적인 거사를 해낼 수가 없었다. 

 

그래서 기독교인은 일제의 미움을 더 많이 사서 기미년의 피해도 가장 많이 입었다. 80개의 교회당이 완전 파괴 혹은 전소되고 기독교 계통 학교 8개교가 파괴되었다. 3.1운동 때 감옥에 갇힌 자도 신도 3,373명, 목사 54명, 전도사 127명, 장로 63명으로 기독교인이 가장 많았는데 이것은 총독부의 기록이고 실제로는 그 두배 정도가 되었던 것으로 보고 있다. 

 

송건호 씨의 조사에 의하면, 일본 헌병대와 경찰은 특히 기독교인들을 증오하여 온 동네가 만세를 불렀는데도 교인들만 가려내어 매질을 한 사례가 많았다고 한다. 

그 당시 미국 감리교 선교 본부에 보낸 선교사의 보고서에 이런 말이 나온다. “만세 운동이 허리케인처럼 전국을 힙쓸고 있다. 예배, 성경공부 등은 마비되었다. 왜냐하면 담임목사, 전도사, 장로와 직원들 대부분이 감옥에 들어가 있기 때문이다.”(Chosen Mission Report, 1919)

 

어린 여학생들이 감옥에 갇혀 십자가에 알몸으로 매달려 인두와 칼로 고문당한 수기도 생생하게 남아 있다.  그 여학생들은 끝까지 자유와 독립을 외치며 죽어갔던 것이다. 이는 신앙의 힘이 아니고는 견딜 수 없는 고난이었다. 그들은 이 모든 수난을 장래를 바라보는 나라의 독립과 하늘나라에 대한 소망 때문에 능히 감내해낸 것이다. 

 

독립선언문에도 이런 소망이 들어있다. “아, 새 하늘과 새 땅이 눈 앞에 펼쳐지누나, 힘의 시대는 가고 도의의 시대가 오누나. 새 문명의 서광이 인류의 역사 위에 던져지기 시작하누나, 새 봄이 온누리에 찾아 들어 만물의 소생을 재촉하누나..... 하늘과 땅에 새 기운이 되돌아오는 이 마당에 우리는 아주 주저할 것도 없고 거리낄 것도 없도다.”

 

이것은 그 용어나 사상에 있어 기독교의 부활의 신앙과 똑같다. 새 날에 소망을 둔 것이다. 기미년의 크리스챤들은 사도 바울과 같다.  바울의 외침을 들어보라. “우리가 소망으로 구원을 얻었으매 보이는 소망이 소망이 아니니 보는 것을 누가 바라리요, 만일 우리가 보지 못하는 것을 바라면 참음으로 기다릴지니라”(롬 8:24~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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