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원병의 아침 묵상 191; 창조주 하나님, 그 분의 소유가 된 자들,,,

기독교


 

채원병의 아침 묵상 191; 창조주 하나님, 그 분의 소유가 된 자들,,,

일요시사 0 1060

지난 주일은 창조절 첫 번째 주일이었다. 교단에 따라 창조절을 지키기도 하고, 그렇지 않기도 하지만, 목회를 하는 동안 교단과 상관없이 창조절을 지켜왔다. 창조주 하나님을 생각만해도 기분이 절로 좋아진다. 나의 하나님이 얼마나 위대하신 분이신지,, 그분의 사랑과 돌보심 안에서 살아간다는 사실만으로도 큰 위로가 되고, 힘이 되고, 산 소망을 갖게 된다.

 

목사로서 너무 부족한 것이 아닐까 하는 자괴감이 들 때, 또는 마음이 상하거나 약해질 때면 창조주 하나님을 많이 생각했다. 창조주 하나님을 생각하면서 위로도 많이 받고, 하나님을 전적으로 의지하고 신뢰하는 믿음도 함께 자라나갔다. 

 

창조주 하나님,,, 이 무한한 우주와 만물을 창조하시고, 다스리시는 우리 하나님이시다. 그분께서 못나고 약하고 추한 자를 세상에서 불러내셔서 자녀로 삼아주셨다. 만군의 여호와 창조주 하나님께서 친히 나의 아버지가 되시고, 지켜주시고, 함께 하시면서 나의 인생걸음을 인도해 오셨다. 십자가의 사랑으로 돌보시고 인도하시며, 늘 곁에 함께 하셨다. 이 사실이 내게는 너무 기쁘고, 큰 위로와 힘이 된다. 

 

성경에 나오는 위대한 인물들 중에 완전해서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은 사람은 한 사람도 없다. 모두가 부족하고 연약한 자들이었지만, 하나님께서 부르셨으며, 그들을 통해서 하나님의 일을 하셨다.

 

모세,,,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고서 하는 말,,, “오, 주여 나는 본래 말을 잘 하지 못하는 자니이다… 나는 입이 뻣뻣하고 혀가 둔한 자니이다”(출 4:10) 

 

이사야 선지자,,,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을 때,,, “화로다. 나여, 망하게 되었도다. 나는 입술이 부정한 사람이요, 나는 입술이 부정한 백성 중에 거주하면서, 만군의 여호와이신 왕을 뵈었음이로다”(사 6:5) 

 

예레미야 선지자,,, 역시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고 하는 말,, “슬프도소이다. 주 여호와여, 보소서. 나는 아이라 말을 할 줄을 알지 못하나이다”(렘 1:6) 

 

모두가 완전해서가 아니라, 부족하고 연약한 가운데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다. 달변가가 아니라 말을 잘 하지 못하는 자들을 부르셔서, 하나님의 대언자로 세우셨다. 중요한 사실은 부르신 분이 하나님이시며, 부르신 분께서 이루신다는 사실이다. 

 

“너희 안에서 착한 일을 시작하신 이가 그리스도 예수의 날까지 이루실 줄을 우리는 확신하노라”(빌 1:6) 하나님께서 시작하신 일, 하나님께서 이루신다. 사실, 우리는 모두 부족하고 연약하고, 하나님 앞에 내세울 만한 것이 없는 자들이다. 그러나 잊지 말자. 우리를 부르신 분은 하나님이시다. 만군의 여호와, 창조주 하나님이시다. 

 

시편 8편 1, 3-4절에서는 창조주 하나님의 영광을 이렇게 노래하고 있다.

 

여호와 우리 주여,

주의 이름이 온 땅에 어찌 그리 아름다운지요

주의 영광이 하늘을 덮었나이다

 

주의 손가락으로 만드신 주의 하늘과 

주께서 베풀어 두신 달과 별들을 내가 보오니

 

사람이 무엇이기에 주께서 그를 생각하시며

인자가 무엇이기에 주께서 그를 돌보시나이까

 

시편 기자는 하늘과 달과 별들과 모든 창조의 세계가 하나님께서 손가락으로 만드셨다고 노래하고 있다. 하나님의 손가락,,, 이 끝이 있는지 없는지도 모를 무한 광대한 창조세계가 하나님의 손가락에서 나왔다. 팔이나 손도 아니고, 손가락에서,,, 무한한 우주를 창조하시는 데, 하나님께서는 손가락 하나면 충분하셨던 것이다. 그러니 우리 창조주 하나님께서는 얼마나 무한하시고, 위대하신 분이신가,,,

 

그런데 이런 위대하신 만군의 여호와 창조주 하나님께서 당신의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내어주시는 그 사랑으로 우리를 사랑하신다. 이 사실이 얼마나 놀라운가,,, 성도들은 위대하신 창조주, 우리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고, 우리의 아버지가 되신 그분의 사랑 안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이다. 

 

성경은 창조주 하나님을 선포하면서 시작된다.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창 1;1) 

 

태초에,, 시간도 없고, 공간도 없고, 우주도 없고, 천상천하에 아무 것도 없을 때, 하나님께서는 천지를 창조하셨다. 천지창조란 단순히 우주를 창조하셨다는 뜻이 아니다. 히브리어로는 ‘하늘들과 땅’을 창조하셨다는 뜻이다. 하늘들,,, 눈에 보이는 하늘과 천상의 하늘나라를 모두 아우르는 말이다. 여기에서 중요한 한 가지 사실을 알게 된다. 천지의 창조주, 우리 하나님께서는 태초에 이미 우주와 함께 하늘나라를 창조하셨다는 사실이다. 이 사실이 놀랍다.

 

성경은 창조주 하나님을 선포하는 것으로 시작해서, ‘새 하늘과 새 땅’을 선언하는 것으로 끝이 난다. ‘새 하늘과 새 땅’은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와는 전혀 다른 세계다. 우리가 보통 천국이라고 하는 곳이다. 하나님께서 천지를 창조하신 궁극적인 목적이 어디에 있는 지가 분명하게 나타나 있는 것이다. 만군의 여호와, 창조주, 우리 하나님께서는 성경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천지를 창조하신 궁극적인 목적이 무엇인지를 분명하게 선언하고 계신 것이다,,,

 

더욱 놀라운 것은 우주와 만물의 창조주이신 하나님께서는 이 모든 것을 단지 손가락만으로 창조하셨지만, 우리를 위해서는 당신의 모든 것을 내주셨다는 사실이다. 하나님의 독생자,,, 하나님의 모든 것이다. 또한 하나님의 아들이신 성자 하나님, 그분께서는 자신의 온 몸을 십자가에서 내어 주셨다. 손가락으로 천지를 창조하신 분께서 자신의 모든 것을 내주셨다. 이것이 위대하신 창조주 하나님의 사랑이며,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성도들을 향하신 사랑이다. 그런데,, 하나님과 주님의 이런 사랑에는 궁극적인 목적이 있다.

 

주님께서는 말씀하셨다. “내 아버지 집에 거할 곳이 많도다… 내가 너희를 위하여 거처를 예비하러 가노니, 가서 너희를 위하여 거처를 예비하면, 내가 다시 와서 너희를 내게로 영접하여, 나 있는 곳에 너희도 있게 하리라”(요 14:2-3)

 

요한복음의 이 말씀은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찾아오신 목적을 분명하게 선언하고 있다. 주님께서 우리를 찾아오시고, 우리를 사랑하시고, 우리를 위하여 자신의 온 몸을 십자가에 던지신 최종목적도 바로 여기에 있다. 아버지의 집에서 영원히 함께 사는 것이다. 

 

창조주 하나님을 생각하며, 창조의 끝을 바라보고 살자. 눈에 보이는 현실세계에만 너무 집착하지 말자. 하늘을 보면서 창조주 하나님의 영광을 보고, 하늘 너머에 있는 아버지의 집, 우리의 영원한 집을 바라보자. 크게 보고, 크게 믿자,,,

 

주의 이름이 온 땅이 어찌 그리 아름다운지요,, 주의 영광이 하늘 덮었나이다,,, 시편 기자의 고백이 절로 나오게 된다. 사람이 무엇이기에, 주께서 그를 생각하시며, 돌보십니까,,, 하나님 앞에 고개를 들고 설 수도 없는 죄인이며, 허물투성이요, 연약하기 짝이 없는 자들이다. 그런데 우주와 만물의 창조주이시며, 천상천하 모든 것의 주인이신 우리 하나님께서 십자가의 사랑으로 우리를 생각하시고, 돌보시나이까,,, 

 

성도들은 창조주 하나님의 돌보심을 받으며, 주님과 함께 영원한 영광의 나라를 향해 걸어가는 복 받은 사람들이다. 이것이 만복 중에 최고의 복이다. 창조주 하나님의 소유가 되는 것,,, 이보다 더 큰 복은 없다. 

 

채원병목사<오클랜드정원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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