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렙에서 만나는 하나님 (출 3:1-5)

기독교

호렙에서 만나는 하나님 (출 3:1-5)

  

모세는 애굽 왕자로 40년간 엘리트 교육을 받고 자랐습니다. 왕궁에서 자란 그의 인생은 부족함이 없는 화려한 인생이었습니다. ‘내가 이만하면 뭐든 하지 않겠는가? 나아가 내 동족도 구원하지 않겠는가?’ 라는 교만한 마음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 모세의 교만함을 짐작케 하는 사건이 벌어집니다. 한번은 애굽인 하나가 자기 동족을 때리는 걸 보고 모세는 그 애굽인을 쳐 죽였습니다. 하지만 그의 범죄는 탄로가 났고, 하루아침에 도망자의 신세가 되었습니다. 최고의 권력을 가진 왕자의 신분에서 도망자로, 미디안 광야의 양을 치는 목자가 되었습니다.

  

어느 날 모세는 양떼를 광야 서쪽으로 인도해서 호렙에 이르렀습니다(3:1). 미디안 광야에서 호렙까지는 상당한 거리입니다. 아마도 모세는 애굽에 가까운 호렙쪽으로 양떼를 이끌고 가면서 떠나온 고향이 그리웠을 것입니다. 그러나 호렙은 모세에게 눈물의 장소로 끝난게 아니라 인생의 대 반전을 가져온 장소가 됩니다. 그가 이 호렙에서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만났기 때문입니다. 마찬가지로 오늘 내가 어디에 있는가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중요한 것은 내가 있는 곳에서 개인적으로 또한 인격적으로 하나님을 만나는 것입니다. 그럴 때에 내가 있는 곳이 하나님의 산 호렙이 되는 것입니다.

호렙에서 만나는 하나님은 어떤 하나님이신지 두 가지로 은혜를 나누겠습니다.

 

1. 떨기나무에 임하시는 하나님입니다.

여호와의 사자가 떨기나무 가운데로부터 나오는 불꽃 안에서 그에게 나타나시니라 그가 보니 떨기나무에 불이 붙었으나 그 떨기나무가 사라지지 아니하는지라(3:2)” 모세가 호렙산에 왔을 때 불이 붙었으나 타지 않는 떨기나무가 그의 관심을 끌었습니다. 이 떨기나무는 히브리어로 스네, 뜻은 보잘것없는 것입니다. 실제로 떨기나무는 일종의 가시덤불을 가리키는데 아주 앙상하고 볼품없는 나무입니다. 이 볼품없고 쓸모없는 떨기나무에는 세 가지 의미가 있습니다.

 

1) 떨기나무는 애굽에서 고통과 압제 가운데 살아가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의미합니다. 그들에게 애굽은 광야였습니다. 너무 척박하고 살기 힘든 곳이었습니다. 거기서 그들은 떨기나무처럼 소망 없이 살았습니다.

 

2) 떨기나무는 모세를 의미합니다. 40년 전 모세는 하늘로 뻗은 백향목처럼 삶이 화려했습니다. 그러나 40년이 지난 광야의 모세는 늙었고 기력이 쇠해졌습니다. 메마른 바위산에 덩그러니 외롭고 앙상하게 서 있는 떨기나무가 모세 자신이었습니다.

 

3) 떨기나무는 모든 시대 속에서 하나님을 떠난 인간의 모습을 상징합니다. 떨기나무는 가시덤불이어서 조금만 바람이 불어도 그 가시들은 서로를 찌릅니다. 광야 같은 세상을 살아가는 현대인의 모습입니다. 가시 돋친 말을 하면서 상처를 주고 상처를 받는 모습입니다.

 

 

그런데 이 떨기나무에 불이 임했습니다. 여기서 불은 거룩한 불이자, 하나님의 임재를 상징합니다. 그렇기에 떨기나무 불꽃 가운데 여호와의 사자가 나타난 것입니다. 떨기나무 자체는 아무 것도 아니었으나, 그곳에 하나님이 임재하시니까 떨기나무가 존귀한 존재가 된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백향목일 필요가 없습니다. 하나님이 없는 백향목 인생보다, 하나님이 임재하시는 떨기나무 인생이 더 복된 존재인 줄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2. 우리를 깨끗하게 정제하시는 하나님입니다.

하나님께서 귀하게 여기시는 사람들에게는 신앙을 깨끗하게 하시는 과정을 주십니다. 하나님의 일에 쓰시기 위함입니다. 하나님은 대략 세 가지 방식으로 하나님의 사람을 깨끗하게 정제하십니다.

 

1) 말씀을 통해 깨끗하게 하십니다. 말씀으로 내 죄를 보여주시고 깨닫게 하십니다. 말씀을 통해 깨끗하게 되는 사람은 복된 사람입니다.

 

2) 주님과의 교제, 즉 기도를 통해 깨끗하게 하십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사람을 쓰고자 하실 때, 기도 훈련을 시키십니다. 하나님이 무언가 역사하시고, 응답을 주기를 원하시기 때문입니다. 기도하게 하심으로 깨끗하게 하신 뒤 역사하는 것입니다.

 

3) 고난을 통해 정제하십니다. 이것은 매우 차원 높은 정제의 과정입니다. 요셉은 죄를 지어서 애굽에 팔려가지 않았습니다. 죄 때문에 보디발의 집에서 감옥으로 가지 않았습니다. 그럼에도 그에게 시련과 고난이 닥친 것은 하나님이 주신 불같은 연단 때문이었습니다. 그 시간들은 요셉은 놀랍도록 정제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오신 것은 그를 거룩하게 쓰시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래서 모세에게 요구하십니다. “하나님이 이르시되 이리로 가까이 오지 말라 네가 선 곳은 거룩한 땅이니 네 발에서 신을 벗으라(3:5)” 신은 바깥에서 온갖 장소를 다 밟고 다닌 물건입니다. 의도하지 않아도 먼지와 때가 묻는 게 신발입니다. 하나님 앞에 나와 신을 벗는 것은 회개를 뜻합니다. 회개는 하나님께 나와서 추해지고 더러워진 내 영혼의 죄를 벗는 것입니다. 오늘도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큰 은혜를 주시고자 할 때에 네 발에서 신을 벗으라라고 요구하십니다.

 

로렌 커닝햄 목사님은 네 신을 벗어라라는 저서에서 본인의 교통사고 이야기를 다뤘습니다. 하루는 사모님과 함께 고속도로를 달리다 그만 차가 길을 벗어나 굴렀습니다. 목사님이 정신을 차리고 보니 운전하던 아내는 내동댕이쳐졌는데, 호흡을 하지 않았습니다. 순간 내 아내가 죽었구나하는 생각이 들면서 절망이 밀려오는데, 어디선가 로렌하고 자기를 부르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하나님의 음성임을 직감하고 네 주님답을 하자, 주님은 이래도 여전히 나를 섬기겠니?”라고 물으셨습니다. 로렌 목사님은 , 주님. 그래도 주님을 섬기겠습니다. 이제 제 인생에 남은 것이곤 이 목숨 밖에는 없습니다. 이것도 주님이 원하신다면 취하시기를 원합니다.” 라고 답했습니다. 그때 하나님께서는 아내를 위해서 기도해라고 말씀하셨고, 간절히 기도하자 아내가 호흡하기 시작했습니다. 자신의 권리마저 내려놓자 하나님께서 능력을 나타내신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 앞에 우리의 신을 벗어드릴 때, 권리를 내려놓을 때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나게 되는 줄로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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