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

뉴질랜드 광림교회 주일설교 (27); “하나님의 빛” <이사야 60:1~3, 19~22>

일요시사 0 53

우리가 사는 이 세상에는 두 종류의 사람이 있습니다. 간단히 말하면 믿는 자와 믿지 않는 자입니다.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죄 아래 있는 사람과 그리스도를 통해 새로운 피조물 된 인간입니다. 세상에는 이 두 종류의 사람뿐입니다. 중심에는 예수님이 계십니다. 예수님을 중심으로 오른편과 왼편으로 나뉘어집니다. 믿는 자와 믿지 않는 자로 나뉩니다. 그리스도를 영접한 자와 영접하지 않은 자로 나뉩니다. 구원 받은 자와 구원 받지 못한 자로 나뉩니다. 하나님을 의지하는 자와 세상을 의지하는 자로 나뉩니다. 이 외에도 여러 가지로 말씀드릴 수 있지만, 오늘 말씀의 제목에 비추어 하나님 빛 가운데 거하는 자와 어둠 속에 거하는 자로 나뉠 수 있습니다.  

 

이 시간 주님 전에 나와 예배하는 우리 모든 성도님들은 하나님의 빛 가운데 거하고 있는 줄 믿습니다. 빛의 자녀, 즉 하나님의 자녀라는 뜻입니다. 또한 많은 성경 구절에서 하나님을 빛으로, 혹은 예수 그리스도를 빛으로 표현합니다. 우리가 오늘 함께 은혜의 말씀을 나누기에 앞서 먼저 하나님의 빛 안에 거하는 빛의 자녀로서 합당한 삶을 사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첫 번째로, 하나님의 빛을 품어야 합니다. 

 

제가 말씀을 시작하면서 기독교는 다분히 이분법적으로 나뉘어진다고 말씀드렸는데, 오늘의 주제인 빛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빛에도 두 가지 종류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빛과 세상의 빛입니다. 하나님의 빛 안에 거하는 자는 흔들림 없이 영생의 길을 걷게 됩니다. 그럼 하나님의 빛이 무엇인가? 오늘 1절에 말씀합니다. “일어나라 빛을 발하라 이는 네 빛이 이르렀고 여호와의 영광이 네 위에 임하였음이라.” 하나님의 빛은 영광의 빛입니다. 그 빛이 우리에게 임하였다고 오늘 이사야 선지자는 선포하고 있습니다. 2절에도 계속 말씀하죠. “어둠이 땅을 덮고 캄캄함이 세상을 가리울지라도 하나님께서는 우리 위에 임하시고 그의 영광이 우리 위에 나타날 것이다.” 그렇기에 3절에 “모든 나라들이 그 빛으로 나아오고, 모든 왕들도 그 광명으로 나아 올 것이다.”

  

그런데 한편 세상에는 우리를 유혹하고자 하는 세상의 빛이 있습니다. “보암직도 하고 먹음직도 하고 지혜롭게 할만큼 탐스럽기까지 한 모든 것”입니다.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이 모든 세상 사람들이 구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세상의 유혹과 욕심과 정욕적인 모든 것이 세상의 빛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렇기에 세상의 빛은 실상 빛이 아니라, 빛을 가장한 “색”입니다. 유혹인거죠. 지금 당장 보여지기에는 빛처럼 아름답게 보이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 담겨진 모든 세상적인 욕망입니다. 이는 멀리서 보면 아름다운 빛으로 보이다가도 막상 다가가면, 추악하고, 따라가면 결국 어둠의 길로 우리를 이끌게 됩니다. 

  

여러분! 혹시 색의 삼원색 기억나시나요? 빨강, 파랑, 노랑이죠. 그 색의 삼원색을 다 석으면 어떤 색이 나올까요? 검정입니다. 세상의 욕망이 바로 그런 겁니다. 붙잡고 붙잡고, 더하고 더하고, 그러면 그럴수록 점점 더 시커멓게 변하는 것입니다. 세상의 욕심이라는 게 그렇지 않습니까? 끝도 없이 더해가도 더해가도, 만족하지 못하고 또 더해가다가 다 망쳐버리는 겁니다. 하지만 빛은 어떻습니까? 빛의 삼원색은 빨강, 초록, 파랑입니다. 빛의 삼원색을 다 섞으면 무슨 색이 나오는가? 하얀색입니다. 빛이라는 것은 더하면 더할수록 환해집니다. 그럼 하나님의 빛과 세상의 빛을 구분할 수 있는 길이 무엇일까요? 아주 간단한 것이 있습니다. 방향성. 하나님의 빛은 하나님 편에서 우리를 조명합니다. 그런데 세상의 빛은 인간의 편에서 그 빛을 향해 몰려갑니다. 하나님의 빛은 우리를 향해 비추어 광명의 길로 나아가게 하고, 세상의 빛은 저 멀리서 우리를 끌어당기려는 유혹의 빛입니다. 하나님의 빛! 세상의 빛! 어느 쪽을 선택하시겠습니까? 

  

달은 해를 품어서 빛을 내듯이, 우리 인간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 스스로는 빛을 발할 수 없는 존재입니다. 무엇을 바라보고, 무엇을 마음에 품느냐에 따라서 나의 빛이 달라지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 성도님들은 과연 어떤 빛을 품기를 원하십니까? 지금 당장 눈에 보기에 좋아 보이는 세상의 빛입니까? 영원한 생명을 주시는 하나님의 빛입니까? 바라기는 이 자리에 함께 한 우리 모든 성도님들은 하나님의 빛을 품어 안고, 그 빛을 세상 가운데 비출 수 있는 삶을 사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두 번째로, 하나님의 빛을 통한 변화가 있어야 합니다. 

 

오늘 본문 1절에서 3절에 보면 환희에 찬 찬양의 말씀이 선포되는 것을 보게 됩니다. “일어나라 빛을 발하라 이는 네 빛이 이르렀고 여호와의 영광이 네 위에 임하였음이니라. 보라 어두움이 땅을 덮을 것이요 캄캄함이 만민을 가리우려니와 오직 여호와께서 네 위에 임하실 것이며 그 영광이 네 위에 나타나리니 열방은 네 빛으로 열왕은 비취는 네 광명으로 나아오리라.”

  

얼마나 큰 축복과 은혜의 말씀입니까? 막 일어나야 할 것 같지 않습니까? 막 나가서 세상에 하나님의 빛을 비추어야 할 것 같지 않습니까? 어제까지, 아까 예배당에 들어오기 전까지, 아니 지금 방금 전까지 내 마음에 불안과 고통과 두려움과 짜증과 번민이 있었을지라도 모든 것들이 다 사라져버릴 것 같지 않습니까? 하나님의 말씀을 정말 나에게 주시는 주의 말씀으로 받고 “아멘”하는 순간 그 말씀이 내 삶 가운데 그대로 역사하는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지금의 말씀을 보십시오. 이전에는 계속 어둠의 세력이 지배를 했고, 두려움의 세력, 심판의 역사가 있었지만, 이제는 여호와의 빛이 우리 위에 임하였으니 힘 있게 일어나라고 말씀합니다. 하나님의 빛이 비추어진 자의 삶의 변화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 19절에 이렇게 말씀합니다. “다시는 낮에 해가 네 빛이 되지 아니하며 달도 네게 빛을 비취지 않을 것이요.” 우리를 비추는 햇빛이 더 이상 우리를 향해 비추지 않습니다. 달도 더 이상 우리에게 빛을 주지 않습니다. 얼마나 절망적입니까? 그런데 이어서 계속 이렇게 말씀합니다. “오직 여호와가 네게 영영한 빛이 되며 네 하나님이 네 영광이 되리니.” 이전까지는 세상의 빛을 바라보고, 그 빛이 사라지면, 그 빛이 희미해지면 절망하고 낙심했지만, 이제는 여호와께서 우리에게 영원한 빛이 되어주신다. 내 영광이 되어주신다. 이어서 20절에는 또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다시는 네 해가 지지 아니하며 네 달이 물러가지 아니할 것은 여호와가 네 영영한 빛이 되고 네 슬픔의 날이 마칠 것임이라.” 

 19절에서는 해와 달이 더 이상 우리에게 빛을 비추지 않을 것이라고 말씀하셨는데, 이제는 해와 달이 더 이상 물러가지 않을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무슨 말입니까? 이제 하나님의 빛이 세상의 빛을 대신하기 때문입니다. 이전에는 세상의 빛을 바라보고 의지하고 살아가던 존재에서, 그리스도를 만나는 순간 영원한 하나님의 빛 안에 거하게 된 것입니다. 완전한 변화. 누가 그런 변화를 경험했습니까? 바로 저와 여러분들인 줄 믿습니다. 하나님의 빛을 통한 거룩한 영적 변화의 역사를 우리가 마음껏 누릴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끝으로, 하나님의 빛을 비춰야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빛을 내 안에 품고, 그 빛을 통한 변화를 경험했다면, 이제 남은 것은 하나 뿐입니다. 그 빛을 세상에 비추는 것. 1절에 말씀하죠. “일어나라 빛을 발하라 이는 네 빛이 이르렀고 여호와의 영광이 네 위에 임하였음이니라.” 세상에서 제일 불쌍한 사람이 어떤 사람입니까? 여러 종류의 사람을 말할 수 있지만, 그 중 하나는 예금 통장에 돈이 엄청나게 많은데 쓰지 못하고 죽는 사람입니다. 열심히 일해서 돈을 벌어서 돈을 은행에 맡깁니다. 그런데 계속 맡기기만 하고 쓰질 않습니다. 결국 죽을 때까지 쓰지 못하고 예금통장을 남기고 세상을 떠납니다. 얼마나 불쌍합니까? 

  

그런데 우리도 이런 미련한 사람, 불쌍한 사람이 될 수도 있습니다. 지금 우리에게 맡겨진 하나님의 말씀을 계속 내 안에 쌓기만 하는 사람입니다. 말씀에 대한 지식은 점점 많아집니다. 그런데 말씀에 따른 삶이 없습니다. 쌓이기만 하고 인출이 없는 거예요. 그러면 결국 말씀을 계속 내 안에 맡아 놓기만 하다가 주님 만나는 겁니다. 그때 주님 말씀하시겠죠. 너 내가 너에게 맡긴 그 숱한 말씀들을 왜 도대체 하나도 사용 못했냐? 한 달란트 받아 땅에 감춘 사람이 되는 겁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능력이 되는 것은 내가 그 말씀에 동의 할 때가 아닙니다. 말씀으로 은혜 받는 것, 거기까지가 아닙니다. “아멘”하고 나아가서 그 말씀대로 살아갈 때 능력이 되는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오늘 60장 전체의 말씀을 보면 “네”라는 말과 “너”라는 말이 53번이나 나옵니다. 주인공이 이 말씀을 듣는 사람입니다. “네가 해야 한다.” 이 말씀입니다. “너에게 하나님의 빛이 임했고, 너에게 그 빛을 전할 사명이 있다.” “지금 네가 가서 그 빛을 세상에 비추라.”고 말씀하는 것입니다. 여기서의 너가 누구입니까? 바로 지금 이 순간 말씀 앞에 서 있는 저와 여러분인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오늘 선포되어진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우리 안에 빛이 임하였습니다. 하나님의 영광의 빛이 임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의 빛이 임하였습니다. 하나님의 빛을 내 안에 먼저 품어 안고, 내가 빛의 자녀로 변화될 뿐만 아니라, 세상 속에 그 빛을 전하는 우리의 삶이 되시기 바랍니다. “일어나라 빛을 발하라 이는 네 빛이 이르렀고 여호와의 영광이 네 위에 임하였음이니라.” 하나님의 빛 가운데 거하시는 빛의 자녀로 살아가시는 저와 여러분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이 게시물은 일요시사님에 의해 2019-08-08 21:25:41 교민뉴스에서 복사 됨]
0 Comments
제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