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질랜드 광림교회 주일설교 (8) 변화는 삶으로 완성됩니다

기독교


 

뉴질랜드 광림교회 주일설교 (8) 변화는 삶으로 완성됩니다 <골로새서 3:12~17>

일요시사 0 762

우리가 예수 믿는 것을 영적인 변화라고 말합니다. 그래서 예수 믿는 것에 대해서 이렇게 말합니다. “그리스도인이 된다는 것은 내 삶에 무언가 변화가 일어났다는 것이다.” 예수님을 통한 변화입니다.  보십시오. 예수님을 내 안에 구원의 주로 모셔 들이는 순간,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가 됩니다. 영적인 변화를 경험합니다. 그리고 내 마음에도, 내 생각에도 변화가 일어납니다. 그리고 그에 합당한 삶의 변화를 이루어가는데, 그것이 바로 성화의 삶입니다. 

 

오늘 제목이 바로 이와 관련됩니다. “변화는 삶으로 완성됩니다.” 그냥 변화된 것처럼 보여지는 것에서 그치는 게 아니라, 실제로 변화된 마음과 생각과 삶의 태도.  교회에서의 모습, 겉으로 드러나는 모습 뿐만 아니라, 모든 것이 새로워지는 역사.  전인적인 변화를 뜻하는 것입니다. 창세기에 드러난 노아의 모습도 보십시오. 당대 의인이라고 인정받는 노아였는데, 하루는 포도주를 마시고 취해서 벌거벗은 채 잠이 들었습니다. 이 부분을 주석하면서 닫츠라는 성서학자는 이렇게 말합니다. “사람들이 지켜 볼 때는 고결하게 걷다가도 제 방에 들어가서 벌거숭이가 되는 것은 노아 뿐이 아니다.” 정말 가슴 한켠을 후벼 파는 듯한 이야기입니다. 이 말에 대해서 “나는 아니야.”라고 말하며 자유로울 수 있는 사람이 과연 얼마나 있을까요? 

 

오늘 우리가 이 변화에 대한 말씀을 함께 나누고자 합니다. 오늘 본문은 모든 믿는 자를 향해 변화된 삶의 모습이 어떠해야 하는지를 가르치고 있습니다. 바로 저와 여러분들을 향해, 세상의 모든 믿는 자를 향해 변화된 내 영과 마음을 어떻게 삶으로 완성해야하는지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함께 말씀을 나눌 때에, 우리가 믿는 자로서, 이미 영적 변화를 경험한 자로서, 이제 어떻게 실제적인 삶의 변화를 이루어 변화의 완성을 이루어야 할 것인가? 함께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첫 번째로, 사랑을 더해야 합니다. 

 

기독교를 흔히 사랑의 종교라고 말합니다. 사랑으로 시작해서 사랑으로 끝나는 것이 기독교의 모습입니다. 요한일서에 말씀하죠. “하나님은 사랑이심이라.” 하나님의 사랑으로 이 땅에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시고, 예수님의 십자가 희생의 사랑으로 우리가 구원 받은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사랑 받은 자로서 우리 역시 사랑을 전하는 삶을 살아야 할 것을 말씀합니다. 아주 간단명료한 기독교의 진리입니다. 이 앞에 있는 십자가도 사랑이죠. “위로부터 아래로 내려오신 예수님의 사랑, 두 팔 벌려 좌우로 향하는 이웃을 향한 사랑” 

 

오늘 12절에도 같은 말씀을 주십니다. “그러므로 너희는 하나님이 택하사 거룩하고 사랑 받는 자처럼”  하나님이 택하시고 사랑받는 자로서의 합당한 모습을 권면하고 있습니다. 이 자리에 함께 한 우리 모든 성도님들은 하나님의 택하심을 입은 자인 줄 믿습니다. 하나님의 사랑 받는 자인 줄 믿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아니고는 우리가 이 자리에 설 수가 없습니다.  예수님의 사랑이 아니고는 우리가 구원의 자리에 설 수가 없습니다.  성령님의 사랑이 아니고는 우리가 이렇게 믿음의 길을 걸어갈 수가 없습니다. 

 

 오늘 본문을 보세요. 12절과 13절에 이런 내용이 나옵니다. “너희들이 하나님의 사랑을 받았으면 긍휼과 자비와 겸손과 온유와 오래 참음을 옷 입고, 불만이 있어도 서로 용납하고, 피차 용서하라.” 하나님의 사랑 받는 자로서 합당한 모습을 말씀합니다.  긍휼-다른 사람을 불쌍히 여기고 돌보아주라는 겁니다.  자비-너그러운 마음을 가지라는 거죠.  겸손-낮은 마음을 가지라는 겁니다.  온유-따스한 마음으로 감싸 주라는 거예요.  오래 참음-참아 주라는 거죠.  더 나아가 불만이나 다툼의 상황에서 서로 용납하고,  서로 용서하는 삶을 살라고 말씀합니다.  참 귀한 삶의 모습이죠. 

 

그런데 정말 중요한 게 그 다음에 나옵니다. 14절입니다. “이 모든 것 위에 사랑을 더하라 이는 온전하게 매는 띠니라.” 이게 정말 중요한 말씀입니다. 너희들에게 긍휼의 모습이 있는 것, 자비의 마음이 있는 것, 겸손, 온유, 오래 참음, 용납, 용서의 모습을 가진 것. 그거 다 좋은데, 그 일들을 해 나갈 때에, 사/랑/을/ 더/하/라!  그냥 긍휼이 아니라 사랑이 더해진 긍휼,  그냥 자비가 아니라 사랑이 더해진 자비, 그냥 겸손이 아니라 사랑이 더해진 겸손을 가지라는 겁니다. “이 모든 것 위에 사랑을 더하라 이는 온전하게 매는 띠니라.” 이 모든 것들 위에 사랑의 띠를 딱 묶어야 비로소 온전해지는 것입니다. “사랑을 더하라 이는 온전하게 매는 띠니라.”

 

 

사랑을 더하는 것에는 두 가지 의미가 있죠. 하나는 여기에다가 사랑을 더해주라는 것이고, 또 하나는 지금 주고 있는 사랑이 있어도 더 많이 하라는 겁니다. 하나님으로부터 사랑 받은 자인 저와 여러분들, 받은 사랑을 하나님을 향해, 그리고 내 주변의 모든 사람을 향해 “더!하시고, 더더더더~~하시는” 그래서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의 삶에도 “더!해지고, 더더더더~~해지는” 은혜를 누리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두 번째로, 평강을 이루어야 합니다. 

  

오늘 15절 말씀을 보십시오. “그리스도의 평강이 너희 마음을 주장하게 하라 너희는 평강을 위하여 한 몸으로 부르심을 받았나니 너희는 또한 감사하는 자가 되라.” 평강의 삶에 대해서 말씀하는데, 여기 아주 중요한 진리가 담겨 있습니다. 처음에 보십시오. “그리스도의 평강이 너희 마음을 주장하게 하라.” 평강의 삶이 어디서부터 시작되는가? 내 마음에서 시작되는 겁니다. 내 마음을 먼저 평강하게 만들어야 주변을 평화하게 만들 수 있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평강이 너희 마음을 주장하게 하라.” 예수님의 평강입니다. 예수님께서 부활하시고, 제자들에게 찾아오셔서 처음 하신 말씀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부활하신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제자들의 마음이 얼마나 부끄러웠을까요? 제자들이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났을 때에 얼마나 스스로를 초라하게 여겼겠습니까? 목숨까지 바치겠다던 베드로는 어떻겠습니까? 오히려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는 게 기쁨이 아니었을지도 모릅니다. 너무 창피해서 말이죠.

 

그런 제자들을 향해 예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너희들 마음에 있는 부끄러움, 연약함, 부족함, 그거 내가 다 안다. 그런데 그거 이제 버리고, 너희에게 평강이 있었으면 좋겠구나.” 오늘 본문에 담긴 뜻이 이겁니다. “그리스도의 평강이 너희 마음을 주장하게 하라.”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주신 그 평강을 너희 안에 먼저 누리고, 긴장과 갈등이 가득한 세상에 전하라는 거죠. 바라기는 우리 모든 성도님들의 걸음이 닿는 곳마다 평강의 자리로 변하는 은혜가 있기를 축원합니다. 

 

15절 중반부도 보십시오. “너희는 평강을 위하여 한 몸으로 부르심을 받았나니.” 우리가 교회의 지체로, 한 몸으로 부르심을 받은 것은 “평강을 위하여”라고 말씀합니다. 예수 믿는 자로서 평강을 흘려 보내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잘 아는 옛날 복음성가도 있잖아요. “내게 강 같은 평화 내게 강 같은 평화 내게 강 같은 평화 넘치네 할렐루야!” 무슨 평화요? 강 같은 평화입니다. 강 같은 평화. 평화는 강처럼 흘러가는 겁니다. 우리 믿는 자들을 통해서 우리 가정으로, 우리 회사로, 우리 학교로, 우리의 걸음이 닿는 모든 곳으로, 강 같이 넘쳐흐르는 겁니다. 우리가 이러한 평강의 강물이 되어야 할 줄 믿습니다.  

 

 

끝으로, 예수님의 이름으로 해야 합니다. 

 

예수 믿는 사람들은 모든 일을 예수의 이름으로 하는 겁니다. 하나님께 기도할 때에만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는 게 아닙니다. 오늘 마지막 17절을 보십시오. “또 무엇을 하든지 말에나 일에나 다 주 예수의 이름으로 하고 그를 힘입어 하나님 아버지께 감사하라.” 말을 하던지 일을 하던지 다 주 예수의 이름으로 하라. 

 

신앙인으로 살아간다는 것,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간다는 것은 내 의지대로, 내 뜻대로, 내 생각대로 살아가는 것이 아닙니다. 말 한마디를 해도 예수님이라면 어떻게 하실까?  작은 일 하나를 하더라도 예수님이라면 어떻게 하실까?  이러한 것을 늘 염두에 두어야 합니다. 내 말 한마디, 내 행동 하나로 인해 예수님의 이름이 영광을 받으시기도 하고, 예수님의 이름이 치욕을 당하기도 합니다. 

 

예수의 이름으로 하라는 것은 예수님처럼 말하고, 예수님처럼 행동하라는 것입니다. 

예수 믿는 자로서의 변화의 완성은 결국 예수님처럼 되는 것입니다. 감리교 교리를 따르면, 예수 믿고 구원 받은 자로서, 성화의 삶을 거쳐서 “그리스도의 완전”에 이르는 것입니다. 예수님처럼 생각하고, 예수님처럼 말하고, 예수님처럼 행동하는 겁니다. “무엇을 하든지 말에나 일에나 다 주 예수의 이름으로 하고” 하나님은 우리가 예수님처럼 되기를 원하십니다. 

 

여러분! 하나님의 우리를 향하신 목적은 우리들을 그리스도의 형상으로 빚어가는 것입니다. 태초에 자신의 형상을 따라 인간을 빚어 만드셨듯이 말이죠.   

 

  사랑하는 우리 성도님들! 지금 현재 얼마나 빚어지셨나요? 머리는 잘 빚어졌는데, 아직 요 손이 제대로 안 빚어지셨나요? 손발은 잘 빚어졌는데, 요 입이 아직 잘 안 빚어지셨나요? 입은 잘 빚어졌는데, 이 눈이 아직 덜 빚어지셨나요? 몸은 다 잘 빚어졌는데, 이 마음이 아직 잘 안 빚어졌나요? 

 

그리스도의 형상으로 내가 잘 빚어져 가는 것이 변화입니다. 그 모습이 삶 속에 실제로 드러나는 것이 변화의 완성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지금 그 변화의 길을 걷는 중에 있습니다. 오늘 함께 나눈 말씀처럼 사랑과 평강과 예수님의 이름을 드러내는 것이 바로 변화된 자의 삶의 모습입니다. 이제 우리 안에 영적인 변화, 신앙적인 변화를 이루어가실 뿐만 아니라, 그 변화의 증거를 내 실제적인 삶의 자리에서 완성해나가는 우리 모든 성도님들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진정한 변화는 내 삶의 자리에서 완성됩니다.   


[이 게시물은 일요시사님에 의해 2019-11-06 14:51:11 교민뉴스에서 이동 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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