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질랜드 광림교회 주일설교 (33) 첫 번째 계단

기독교


 

뉴질랜드 광림교회 주일설교 (33) 첫 번째 계단 <창세기 1:1>

일요시사 0 1155

우리 성도님들은 하루에 보통 얼마나 많은 계단을 오르내리시는지요? 이 곳 뉴질랜드는 씨티를 제외하고는 높은 빌딩이 많지 않아서 계단 오를 일이 별로 없습니다. 그런데 또 한편 2층집이 많아서 집 안에서도 계단을 오르내리는 일이 많습니다. 그럼 여기서 질문입니다. 오늘 교회에 오실 때에, 계단 몇 개를 올라서 이 자리까지 오셨나요? 제가 시작하면서 계속해서 계단 이야기를 드리는데, 왜 그런지는 이미 아실 겁니다. 오늘 말씀의 제목이 “첫 번째 계단”이기 때문입니다. 수많은 계단이 있는데, 가장 중요한 게 어느 계단일까요? 첫 번째 계단입니다. 첫 계단을 잘 밟고 올라가야 123층 높이의 맨 끝에 있는 이천 구백 열일곱 번 째 계단을 밟을 수 있고, 첫 번째 계단을 잘 밟고 올라가야 정상까지 이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 삶에는 이렇게 눈에 보이는 첫 번째 계단뿐만 아니라, 보이지 않는 수많은 첫 번째 계단이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신앙의 삶에 있어서, 믿음 생활에 있어서도 첫 번째 계단과 같은 것이 있습니다. 뭐 여러 가지를 들 수 있겠지만, 우리가 보는 성경 말씀에 근거해서 볼 때의 첫 번째 계단은 오늘 함께 읽은 창세기 1장 1절의 말씀입니다. 한 번 암송 해 볼까요?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아멘. 이 말씀이 성경의 문을 여는 첫 번째 계단과도 같은 말씀입니다. 이 말씀에 아멘이 되지 않으면, 다음 절로, 다음 장으로, 다음 성경으로 절대 넘어갈 수가 없습니다. 신앙의 걸음 자체가 불가능합니다. 

  

오늘 이 첫 번째 계단인 창세기 1장 1절의 말씀을 통해 함께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먼저 말씀을 보기에 앞서 제가 오늘 말씀을 육하원칙에 따라 구분해 봤습니다. 오늘 말씀을 풀어 가는데 키가 되는 내용이니까 잘 들어보시고, 잘 대답해 주시기 바랍니다. 육하원칙에는 뭐가 있죠? 순서대로 볼까요? “누가, 언제, 어디서, 무엇을, 어떻게, 왜”입니다. 오늘 본문인 창세기 1장 1절에서 육하원칙에 해당하는 단어를 하나씩 찾아서 정리하면 “누가, 언제, 무엇을, 어떻게” 이 네 가지는 오늘 말씀에 나와 있고, “어디서”와 “왜”는 오늘 말씀에 없습니다. 이제 말씀을 통해 은혜를 나누도록 합니다. 

 

  

첫 번째로, 하나님께 맡겨야 할 부분이 있습니다. 

 

우리가 신앙의 첫 번째 계단을 잘 오르기 위해서 반드시 알아야 할 것이 하나님께 맡겨야 할 부분이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맡겨야 할 부분이 무엇인가? 앞서 말씀드린 육하원칙에 있어서 오늘 본문 말씀에 기록된 네 가지입니다. “누가, 언제, 무엇을, 어떻게” 이 네 가지를 하나씩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이 부분은 하나님의 영역인데, 계단으로 치면 가만히 서서 바라보는 것입니다. 오르기 전에 찬찬히 바라보는 단계라고 할 수 있습니다. 

  

먼저 “누가?”입니다.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천지 창조, “누가 하셨습니까?” 하나님이 하셨습니다. 어떤 일이 생기면 사람들은 저마다 이야기합니다. “누가 했데?” 그러면서 그게 좀 괜찮은 일이면 자신이 했다고 합니다. 반대로 그게 좀 안 좋은 일이면 저 사람이 했다고 합니다. 신앙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믿음이 있다고 하면서도, 하나님을 의지한다고 하면서도 뭔가 일이 잘 되면 “내가 했다.”고 자랑하는 경우가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성경에 말씀합니다. “성령님이 아니고는 하나님을 아버지라 시인할 수 없다.” 믿음 생활 자체가 하나님이 아니시면 불가능 한 것입니다. 누가 하셨습니까? 하나님이 하셨음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이어서 “언제?”입니다. 언제는 때입니다. “태초에” 즉 시간조차도 없는 그 때에, 시간의 창조자로서 세상을 만드셨고, “때” 자체가 하나님의 창조물입니다. 전도서 3장에 보면 이 “때”에 대한 말씀이 나옵니다. 일의 시종은 사람이 측량 할 수 없다. 시간의 주관자, 때를 정하시는 분이 하나님이심을 분명히 밝히십니다. 때는 하나님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 이 때까지 해주셔야 되요.” 그건 내가 정하는 거죠. 하나님의 손에 맡길 때에, 하나님께서 가장 좋은 때에 합당한 열매를 허락해 주실 줄 믿습니다. 

  

이어서 “무엇을”과 “어떻게”입니다. 이 두 가지는 하나로 연결됩니다. 하나님께서 세상 모든 만물을 하나님께서 창조하셨다는 말씀입니다. 우리가 무엇을, 또 어떻게 할 수 있습니까? 아무 것도 없습니다. 정말 획기적인 인간의 창조적인 작품들을 바라보면 감탄사가 나오지만, 밤하늘에 쏟아지는 듯한 별들을 바라보면, 그 수많은 감탄사조차도 의미가 없어집니다. 저 바다의 파도와 광활함을 바라보면 그냥 압도되어 주의 손길을 찬양할 뿐입니다. 하나님께서 세상 모든 만물을 창조하신 그 손길이 그 위에 그려지기 때문입니다. 

  

누가? 언제? 무엇을? 어떻게? 나의 몫이 아닙니다. 만물의 주권자 되시는 하나님께 맡기시기 바랍니다. 누가? 하나님께서 하십니다. 언제? 하나님께서 정하신 가장 합당한 때가 있습니다. 무엇을? 천지 만물과 나의 모든 삶을. 어떻게? 창조의 능력으로 가장 아름답게 만드실 것입니다. 누가? 언제? 무엇을? 어떻게? 만물의 창조주 되시는 하나님의 손에 맡겨드림으로, 신앙의 첫 번째 계단을 잘 바라보시고, 오르시는 우리 모든 성도님들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두 번째로, 내가 감당해야 할 자리가 있습니다. 

 

첫 번째에서 말씀드린 네 가지의 육하원칙에 이어서 오늘 본문 말씀에 나와 있지 않은 것이 두 가지 있습니다. 그 중에 하나가 “어디서”입니다. 하나님께서 태초에 천지를 창조하셨는데, 어디서 창조하셨을까요? 저도 설교 준비하면서 처음 생각해 봤습니다. 그리고 바로 정리했습니다. 모르겠다. 그게 중요한 게 아니라, 하나님의 창조의 역사를 경험하고 그 안에 살아가고 있는 우리들이, 주어진 자리에서 사명 감당하는 것입니다. “어디에서?-나의 삶의 자리에서” “어디에서?” 학업의 자리에서 - 선생님으로, 학생으로 “어디에서?” 회사의 자리에서 사장으로, 회사원으로, 임원으로, 평사원으로 “어디에서?” 하나님의 사명 감당하는 현장에서 주일학교 교사로, 성가대원으로, 주차 및 안내로, 애찬관 봉사로, 각종 헌신의 모양으로... 내게 주어진 자리, 내가 감당해야 할 그 자리에서 하나님 보시기에 좋은 삶을 살아가는 것, 그것이 바로 그리스도인이라는 이름에 합당한 삶이고, 그것이 바로 예배의 삶이고, 그것이 바로 하나님의 창조의 역사를 완성해나가는 삶인 줄 믿습니다. 

첫 번째 하나님께 맡기는 것이 오를 계단을 잘 바라보는 것이라면, 두 번째 내가 감당해야 할 “어디서”라는 부분은 내가 오를 그 계단에 한 걸음 발을 올리는 것과 같습니다. 우리 각자에게 주어진 신앙의 자리, 천국 백성으로서의 자리, 세상 가운데, 가정 가운데, 삶의 모든 부분 가운데 주어진 그 자리... “어디서~~?” 내게 주어진, 맡겨진 그 자리에서 잘 감당함으로 한 걸음 힘 있게 올라서는 우리의 삶이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끝으로, 삶의 목표가 분명해야 합니다. 

 

육하원칙 중 이제 마지막 하나가 남았습니다. 무엇이 남았습니까? 그렇죠. “왜?”가 남았습니다. “왜?”라는 말은 내 행동의 당위성을 설명해 줍니다. 다시 말해, 내 삶의 목표가 “왜?”라는 말에 담겨있는 것이죠. 그 목표가 분명해야 합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내가 살아가는 삶의 목표 “왜” 내가 이 일을 감당해야 하는가? “왜” 내가 지금 살아 숨 쉬고 있는가? “왜” 내가 지금 이 곳에 있고, 이 길을 걸어가고, 저 곳을 향해 나아가고 있는가?를 생각하며 살아갑니다. 여기 계신 우리 성도님들 역시 지금도 그러한 길을 걸어가는 중에 서 있는 줄 믿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세상적인 삶의 목표들과 더불어서 우리가 신앙인으로서, 그리스도인으로서 살아가면서 마음에 품고 나아가야 할 삶의 목표가 있습니다. 그것이 무엇인가? 단 하나입니다. 한 번 따라하시겠습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우리가 예수 믿는 가장 근본적인 이유가 무엇입니까? 예수 십자가의 보혈로 구원 받아 천국 가기 위함입니다. 그럼 이 자리에 계신 우리 모든 성도님들은 구원 받으셨습니까? 구원의 확신이 있으십니까? 오늘 죽어도 천국 갈 준비가 되어 있으십니까? 그런데 왜 하나님은 우리를 빨리 천국으로 부르지 않으시고, 이렇게 세상 가운데서 살아가게 하십니까? “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오늘 우리가 읽은 본문에 이어서 하나님의 창조기사가 구체적으로 나오고 있는데, 마지막 날까지 창조의 역사를 이루신 후에 한결같이 하나님은 말씀하십니다. “보시기에 좋았더라.” 무슨 뜻인가요? 하나님의 창조의 역사는 창세기 1장에서 끝이 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삶의 자리 가운데서 우리 믿는 자들이 하나님 보시기에 좋은 삶, 즉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삶을 통해서 완성해 나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우리 모든 성도 여러분! 첫 번째 계단을 잘 밟고 올라서야 다음 단계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마지막 계단까지 힘있게 밟고 올라서야 비로소 첫 번째 계단을 밟기 시작했을 때의 결단이 내 삶의 아름다운 열매로 새겨집니다.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우리의 믿음의 첫 번째 계단을 힘있게 밟고 올라서서 또 한 계단 또 한 계단 믿음으로 나아가, 내 삶의 마지막 계단, 주님 앞에 서는 그 날까지 흔들림 없이, 변함없이, 견고하게, 좌로나 우로나 치우지지 말고, 굳건하게 믿음의 흔적을 새겨가시는 저와 여러분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이 게시물은 일요시사님에 의해 2019-11-06 14:36:49 교민뉴스에서 이동 됨]
[이 게시물은 일요시사님에 의해 2019-11-06 14:53:28 기독교에서 복사 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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