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질랜드 광림교회 주일설교 (39) 저편으로 건너가자

기독교


 

뉴질랜드 광림교회 주일설교 (39) 저편으로 건너가자 <마가복음 4:35 >

일요시사 0 1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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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이 시간 함께 나눌 말씀의 제목은 “저편으로 건너가자!”입니다. 우리가 마가복음 4장 35절 한 절의 말씀을 읽었는데, 보면 예수님의 한 마디가 나옵니다. “우리가 저편으로 건너가자.” 과연 이 안에 어떤 의미가 담겨있는가? 먼저 질문입니다. 왜 예수님은 “저편으로 건너가자!”라고 하셨는가? 이 한 마디에 담겨져 있는 의미를 살펴보고자 합니다. 일단은 공간적인 의미가 있습니다. 장소의 이동입니다. 이 쪽에서 저 쪽으로 가자는 겁니다. 갈릴리바다 이편에서 배를 타고 저편으로 건너가자는 겁니다. 동시에 이 말씀에는 영적인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불신의 자리에서 믿음의 자리로 가자는 겁니다. 죄인의 자리에서 의인의 자리로 가자는 것입니다. 지옥에서 천국으로 건너가자는 것입니다. 세상에서 교회로 가자는 것입니다. 이런 영적인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려서 돌아가실 때 일어난 사건이 있습니다. 땅과 하늘이 진동하면서 성전의 휘장이 위에서 아래로 갈라진 것입니다. 성전의 휘장이 의미하는 것은 지성소입니다. 이 지성소는 대제사장이 일 년에 한 번 모든 백성의 죄를 사하기 위해 들어가는 거룩한 곳입니다. 그렇기에 지성소로 들어가는 휘장이 갈라졌다는 것은 예수님의 십자가 죽으심이 우리 모든 인간들에게 길을 열어주셨음을 의미합니다. 죄의 자리에서 죄 사함의 자리로, 멸망의 자리에서 구원의 자리로, 영영 죽을 수밖에 없는 자리에서 영생의 자리로 걸어갈 수 있는 길이 열린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아직도 그 자리에서 건너오지 못한 이들이 있습니다. 내 가족이, 내 친척이, 내 이웃이, 내 친구가 아직도 죄의 자리, 사망의 자리에 머물러 있습니다. 그 때 우리가 그들에게 무엇이라 말할 것인가? “저편으로 건너가자.” 오늘 예수님의 말씀이 우리 모두를 향한 말씀인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럼 이제 말씀 속에 담겨진 의미를 세 가지로 나눠 보면서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저편으로 건너가자! 첫 번째, 복음을 전하러 가라는 명령입니다. 

 

오늘 본문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저편으로 건너가자.”고 말씀하시는데, 이 말씀 이전에 하신 예수님의 행적들이 무엇인가? 보면 4장 전체가 천국의 비유로 채워져 있습니다. 예수님은 지금까지 계속해서 천국에 대한 말씀을 무리들을 모아놓고 가르치시고, 또한 제자들을 모아놓고 더욱 자세하게 가르치셨습니다. 마가복음 1장 15절에 보면 마가복음에서의 예수님의 첫 번째 말씀이 나옵니다. “때가 찼고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으니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 예수님의 사역의 출발은 바로 천국을 알리시고, 복음을 전파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마지막 부활 승천하실 때 하신 말씀 역시 복음전파의 명령입니다. 그리고 복음전파를 위한 중심내용이 바로 천국에 대한 가르침이고, 천국에 관한 말씀을 다 마치신 직후에 하신 예수님의 말씀이 “저편으로 건너가자.”입니다. 왜? 역시 복음을 전하기 위함입니다. 저편으로 건너가서 할 것은 지금껏 천국 복음을 전한 것처럼 당연히 계속해서 천국복음을 전하기 위함입니다. 복음을 전하는 것은 예수님의 가장 큰 사역이었습니다. 또한 동시에 예수님을 따르는 제자들을 향해서도 주어진 가장 큰 사명이었습니다. 더 나아가 지금 이 시대를 살아가는 예수님의 제자인 우리 모두에게 주어진 하나님의 명령인 줄 믿습니다.

  

예수님께서 우리들을 향해서 지금 말씀하십니다. “저편으로 건너가자.” 전도한다는 것은 정말 어려운 일입니다. 하지만 그 어려운 것을 해나갈 때 하나님 주시는 축복이 더 크고, 내 마음에 기쁨이 더 큰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혹 여러분 주변에 교회 안다니시는 분들, 다니시다가 낙심하신 분들이 있으시면, 예수님을 전하고, 복음을 전하시기 바랍니다. 그 순간, 우리는 모두 전도자가 되는 겁니다. 복음을 전하러 “저편으로 건너가자.”는 예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그리스도인, 예수님과 함께 저편으로 건너가는 제자들이 되는 겁니다. 저편으로 건너가 복음 전하는 우리 모든 성도님들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저편으로 건너가자! 두 번째, 낙심치 말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복음을 전하기 위해 제자들과 함께 배를 타고 저편으로 건너가십니다. 제자들은 순종해서 배를 몰고, 예수님은 배 아래에서 주무시고 계십니다. 다른 배들도 따라갑니다. 그런데 어떤 사건이 이어지는가? 37절에 보니까 큰 광풍이 일어납니다. 38절에 보면 제자들이 “우리가 죽게 되었다.”라고 말 할 정도의 큰 풍랑입니다. 얼마나 답답합니까? 제자들은 예수님께서 저편으로 가자고 해서 그 말씀에 순종한 것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그들이 만난 건 생명을 위협하는 풍랑입니다. 하나님의 일을 하려고 하는데, 말씀에 순종해서 나가는데 풍랑 같은 일들이 옵니다. 어려움이 생기고 고난이 생깁니다. 복음을 전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기에 열심히 복음을 전하는데, 그것 때문에 답답한 일들이 생깁니다. 지금 풍랑 앞에 선 제자들의 모습이 우리의 모습 아닙니까? 제자들을 보십시오. 38절입니다. “선생님이여 우리가 죽게 된 것을 돌보지 아니하시나이까?” 이 한 마디에 수많은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왜 가자고 했습니까?” “선생님 때문이 아닙니까?” “우리가 무슨 죄입니까?” “예수님이 책임지십시오.” 이런 겁니다. 

  

그 때 예수님은 바로 일어나셔서 바람을 꾸짖으시며 “잠잠하라 고요하라”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이내 풍랑은 멈추게 됩니다. 이어서 예수님 말씀하십니다. “너희가 어찌 믿음이 없느냐?” 누가복음에 보면 “너희 믿음이 어디 있느냐?”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당장 보여지는 것들에 휘둘리지 말라는 것입니다. 당장 보여지는 어려움 때문에 낙심치 말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바라보시기 바랍니다.

  

예수님만 바라보고, 예수님만 의지하고 나아가면 역사를 보게 됩니다. 오늘 제자들도 원망이든, 불평이든, 화를 냈든지 간에 예수님을 깨워서 예수님께 상황을 토로했더니, 바람과 바다까지도 순종하는 예수님의 역사를 바라보게 되지 않았습니까? 답답한 상황, 화가 나는 상황, 복음을 전하는데, 하나님의 일을 하는데 어려움이 있으면 예수님께 토로하십시오. “우리가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말지니 포기하지 아니하면 때가 이르매 거두리라.” 갈라디아서의 말씀입니다. 가장 큰 선함은 바로 생명을 전하는 것입니다. 이를 위해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단 하나 “너희에게 믿음이 있느냐?” 믿음으로 낙심치 마시기 바랍니다. “믿기만 하라. 하나님의 영광을 보리라.” 하나님의 놀라운 역사하심을 바라보며 영광 돌리게 될 그 날이 우리에게 오게 될 줄 믿습니다. 

 

  

저편으로 건너가자! 끝으로, 한 영혼을 구원하기 위함입니다. 

 

4장의 내용까지에서 예수님이 하신 일은 복음을 전하신 일이었습니다. 그리고 이제 예수님의 말씀대로 저편으로 건너가서 하신 일들이 5장에 기록되어 있는데, 세 가지 일이 있습니다. 하나는 거라사인의 지방에서 귀신들린 자를 구원하신 일, 또 하나는 열 두 해를 혈루병으로 고생한 여인을 치유하신 일, 그리고 죽은 야이로의 딸을 살리신 일입니다. 다시 풀어보면, 귀신들린 자에게 자유함, 즉 영적인 자유를 주셨습니다. 질병에서의 해방을 주셨습니다. 사망권세에 묶인 자를 자유케 하셨습니다. 

  

이 땅을 밟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가장 걱정하고 염려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바로 영적인 문제, 또 하나는 질병의 문제, 그리고 죽음의 문제입니다. 이 모든 문제에서 예수님은 자유를 선포하십니다. 예수님께서 이 땅 가운데 모든 묶인 것들을 자유케 하시는 능력을 지니신 분이라는 것을 알리심입니다. 또한 예수님께서 한 영혼의 아픔이 무엇인지 너무나 잘 알고 계셨음을 뜻하는 것입니다.

  

특별히 오늘 보면 바다를 건너오셔서 첫 번째로 하신 일이 거라사인의 귀신을 내어 쫓으신 일입니다. 이 귀신은 군대라고 이름 하는 귀신입니다. 예수님의 말씀 한 마디에 결국 내어쫓김을 당합니다. 5장 13절에 보니까, 거의 이천 마리나 되는 돼지 떼라고 표현합니다. 한 영혼 구원하기 위해 이천 마리나 되는 돼지와 맞바꾼 것입니다. 한 사람이 중요합니까? 이천 마리 돼지가 중요합니까? 물을 것도 없이 한 사람이 중요하죠. 세상 그 누구와도 바꿀 수 없는 내 앞에 서 있는 그 한 영혼 구원하시는 일이 예수님의 가장 큰 관심이었기 때문입니다. 이 모든 일들을 하신 후에 예수님은 6장에서 드디어 제자들을 둘씩 둘씩 짝지어 보내십니다. 가서 복음을 전하라고 파송하십니다. “지금까지 잘 봤지. 너희들도 가서 똑같이 해봐라.” 실습 기회를 주시는 겁니다. 

  

그리고 나가서 제자들이 복음을 전하니까 귀신들이 떠나가고 병자들이 치유함을 얻고, 주님께 돌아옴을 보면서 기뻐합니다. 그러자 예수님 뭐라고 하십니까? “귀신들이 너희에게 항복하는 것으로 기뻐하지 말고 너희 이름이 하늘에 기록된 것으로 기뻐하라.” 주의 복음 전하는 일이 내가 구원 받았음에 대한 확증의 표시라는 것입니다. 한 영혼을 향한 사랑으로 주의 복음 전하는 일에 수고함으로, 구원의 확증 가운데 기뻐하는 우리 모든 성도님들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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