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질랜드 광림교회 주일설교 (44) 회복

기독교


 

뉴질랜드 광림교회 주일설교 (44) 회복 <출애굽기33:12~19>

일요시사 0 839


  우리는 이 땅에서 수많은 만남을 갖게 됩니다. 그리고 누구를 만나느냐에 따라 한 사람의 인생이 잘 풀릴 수도 있고, 그렇지 못 할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많은 분들이 기도합니다. “만남의 축복을 주옵소서.” 이 수많은 만남 가운데 가장 귀한 하나의 만남이 있습니다. 여기에 계신 여러분들은 그 가장 귀한 만남을 이루신 분들입니다. 어떤 만남인가요? 바로 우리 주님과의 만남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그 귀한 만남을 경험했음에도 자꾸만 다른 것에 시선을 빼앗기고, 다른 길로 향하고자 하는 마음이 생기는 겁니다. 그러다가 참된 인생의 방향을 잃고 헛된 길을 헤매이기도 합니다. 그럴 때 문제가 생기고, 갈등이 생기고, 어려움이 생기게 됩니다. 오늘 말씀의 제목이 “회복”인데, 어떤 회복인가? 하나님과의 관계회복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의 부르짖음을 들으시고, 출애굽의 역사를 이루셨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기적의 역사에 환호하면서 자유의 몸으로 시내산 광야까지 나왔습니다. 그리고 이제 하나님께서 십계명을 비롯한 말씀을 주시며 “이제 너희들은 내 백성이다.” 확증하시는 그 시점에 이르렀습니다. 그런데 그 때, 이스라엘백성의 불신으로 인한 금송아지 사건을 통해 하나님은 “내가 너희와 함께 가지 않을 것이다.”라는 절망적인 선포를 하셨습니다. 하나님과의 단절입니다.  

  

때로는 우리의 삶에 이와 같은 때가 있습니다. “하나님은 항상 나와 함께 계셔.” 그렇게 고백하면서도 상황이나 환경이나 어떤 문제들로 인해 흔들리고, 낙심하고, 다른 것들을 찾아 헤맬 때가 있습니다. “내 눈 앞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 말고, 뭔가 보여지는 것을 원합니다.” 마치 광야 이스라엘백성들처럼 금송아지를 구할 때가 있습니다. 그러다가 하나님과의 단절의 상황을 겪고 마는 겁니다.

  

“내가 너희들 앞서서 모든 것을 다 준비해주고, 다 이루어줄거야. 그런데 나는 이제 너희들과 함께 가지는 못하겠다. 너희들은 목이 곧은 백성이라 내가 너희들을 다 진멸할까 두렵구나.” 하나님께서 우리를 싫어하여 함께 가지 않으시겠다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연약함, 죄악됨이 하나님의 함께 하심을 이어갈 수 없게 만드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러한 모습 속에서 관계회복을 통해 하나님과 함께 동행하기 위해 필요한 것이 무엇일까요? 진정한 하나님과 나 사이의 회복, 이를 통한 친밀함을 누리기 위해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요? 함께 말씀을 통해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하나님과의 관계회복 

“첫 번째로, 장신구를 떼어내는 결단입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향해 함께 가시지 않음을 선포하시자, 모든 백성들은 한 사람도 몸을 단장하지 않으며 슬픔 가운데 있습니다. 그 때 하나님께서 말씀하시죠. 5절 후반부입니다. “장신구를 떼어내라 그리하면 내가 너희에게 어떻게 할 것인지를 정하겠노라.” 이 말씀 가운데는 참 귀한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하나님의 용서하시는 사랑, 회복시키시는 사랑입니다. 이는 이미 하나님께서 용서의 마음을 품으셨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사람들 간에 관계에서도 어떤 실수를 할 때 잘못한 사람이 관계 회복을 위해 노력합니다. 그때 상대방이 이렇게 말할 때가 있습니다. “일단 이거 하고 기다려봐. 그럼 내가 어떻게 할지 말해줄게.” 이 말이 나오면 이미 반은 풀려진 것입니다. 용서의 기회를 주겠다는 의미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을 알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가장 싫어하시는 우상을 만드는 죄를 범한 이스라엘 백성들을 향해서 다시금 기회를 주십니다. 다만 한 가지, 장신구를 떼어내라고 말씀하십니다. 오늘 의미하는 장신구는 목걸이, 반지, 귀고리, 시계, 이런 게 아닙니다. 물론 금 고리, 반지 다 빼내어서 금송아지 만들었기 때문에 아예 그런 일 못하게 하려는 의도도 있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정말 중요한 것은 신앙적인 의미입니다. 요즘 한국에서 스펙이라는 말 많이 씁니다. 스펙이 뭔가요? 내가 지금껏 이뤄놓은 나의 외적인 평가요소들입니다. “학력, 외모, 토익점수, 학교성적, 집안내력, 직장, 자격증..” 뭐 이런 것처럼 나를 평가하는 기준입니다. 하나의 장신구죠. 나를 꾸며주는 모든 것들입니다. 이런 것들 떼어내라는 것입니다.

  

내가 가지고 있는 장신구가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축복을 받아서 내가 누리고 있는 귀한 감사의 조건들을, 어느 순간 나를 드러내는 하나의 장신구로 삼고 있지는 않습니까? 그 장신구로 나를 꾸미고, 우리 가족을 꾸미면서, 우리 집안에, 내 마음 속에 금송아지를 만들고 있지는 않습니까? 장신구를 떼어내시고 하나님께서 정하실 것에 귀를 기울이시기 바랍니다. 그래야 하나님과 관계가 회복되어집니다. 장신구를 떼어내는 결단을 통해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하는 성도님들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하나님과의 관계회복 

“두 번째로, 하나님을 바라보는 사모함입니다.” 

 

하나님께서 함께 가시지 않음을 선포하신 후에 모세는 이스라엘 진영 바깥에 따로 장막을 세웁니다. 진영 가운데 있는 회막이 바깥으로 나가게 됩니다. 거기서 모세가 하나님께 예배합니다.

  

7절에 보면 하나님께 예배하기를 사모하는 백성들은 진 바깥 회막으로 나아가고, 8절에는 모세가 회막으로 나아가서 하나님과 대면할 때에는 백성들이 각자의 장막 앞에 나와서 회막을 바라보며 예배했다고 기록합니다. 하나님의 임재를 향한 사모함, 하나님과의 관계회복을 위한 사모함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참 안타까운 것은 왜 기회가 있을 때에 진작 그러지 못했냐는 겁니다. 하나님께 예배할 기회, 감사할 기회, 하나님을 찬양할 수많은 기회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 백성들은 틈만 나면 오히려 하나님을 향해 원망합니다. 하나님께서 언약의 말씀을 주시던 그 때에도 원망하다가 결국 금송아지를 만드는 죄를 범하고 하나님의 징계를 받게 됩니다. 사람은 주어진 현실에 따라서 적응을 잘 하는 것처럼, 또 그만큼 잘못된 것에 마음을 빼앗기기도 쉽습니다. 금송아지를 만드는 그 때도 보면 분명 상황에 휘둘린 수많은 사람들이 있었을 것입니다. 잘못된 것인 줄 알면서도 그냥 아무 생각 없이 휩쓸려 가는 겁니다. 전형적인 군중들입니다. 

 

 내가 부족해보일 때, 내가 그리스도인으로 산다고 하면서도 너무나 연약하여 하나님 앞에 서기 너무나 초라한 모습인 그 때, “과연 내가 하나님과 동행할 수 있는 인물인가?”하는 탄식과 함께 슬픔에 잠길 때, 그 때 더 주님을 사모하고, 주님 앞에 나오고, 주님께 예배해야 할 줄 믿습니다. 주변의 환경에, 또는 내 자신의 모습에 흔들리지 말고, 항상 주님을 향한 사모함으로 예배함을 통해 하나님과의 관계가 더욱 친밀해지는 은혜를 누리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하나님과의 관계회복 

“마지막 세 번째로, 하나님의 임재의 약속입니다.” 

 

백성들은 장신구를 떼어냈습니다. 하나님을 사모하며 예배하였습니다. 그리고 모세는 13절에 이렇게 하나님께 기도합니다. “내가 참으로 주의 목전에 은총을 입었사오면 원하건대 주의 길을 내게 보이사 내게 주를 알리시고 나로 주의 목전에 은총을 입게 하시며 이 족속을 주의 백성으로 여기소서.” 그리고 14절에 하나님께서 응답하십니다.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내가 친히 가리라 내가 너를 쉬게 하리라.” 하나님의 임재의 약속을 듣게 됩니다.  

  

그러자 모세는 다시 한 번 기도합니다. 15절과 16절입니다. “모세가 여호와께 아뢰되 주께서 친히 가지 아니하시려거든 우리를 이곳에서 올려 보내지 마옵소서 나와 주의 백성이 주의 목전에 은총 입은 줄을 무엇으로 알리이까 주께서 우리와 함께 행하심으로 나와 주의 백성을 천하 만민 중에 구별하심이 아니니이까.” 이어서 하나님께서 응답하십니다. 17절입니다.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네가 말하는 이 일도 내가 하리니 너는 내 목전에 은총을 입었고 내가 이름으로도 너를 앎이니라.”

  

여기가 끝이 아닙니다. 또 기도합니다. 18절입니다. “모세가 이르되 원하건대 주의 영광을 내게 보이소서.” 하나님은 또다시 응답하십니다.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내가 내 모든 선한 것을 네 앞으로 지나가게 하고 여호와의 이름을 네 앞에 선포하리라 나는 은혜 베풀 자에게 은혜를 베풀고 긍휼히 여길 자에게 긍휼을 베푸느니라.” 모세는 계속 기도하고, 하나님께서는 계속 응답하십니다. 

  

모세의 기도에만 응답하십니까? 성경에 나온 많은 신앙의 위대한 인물들의 기도에만 응답하십니까? 5만번 기도응답 받았다는 죠지뮬러의 기도에만 응답하십니까? 이 자리에 함께 한 우리 성도님들의 기도에 응답하시는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이스라엘 백성들은 죄를 범하였음에도, 하나님과의 관계가 단절되었음에도 장신구를 떼어내는 결단으로 주님께 나아갑니다. 사모하는 마음으로 주님 앞으로 나아갑니다. 간절함으로 기도할 때에 결국 하나님의 임재의 약속을 받게 됩니다. 이 안에 무엇이 그려지시나요?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늘, 언제나, 일상적으로, 틈만 나면, 죄악의 길을 향하는 우리들을 긍휼히 여겨주시고, 다시금 회복의 기회를 주시는 하나님의 한없는 사랑입니다. 주님과 동행하고 싶어도 나의 죄악됨으로 인해 주님을 모시고 살지 못했을 때가 얼마나 많았습니까? 우리가 이제 어느 길을 가야할까요? 당당하게 주님과 동행하는 삶을 사시기 바랍니다. 장신구를 떼어내고, 하나님을 사모함으로, 하나님의 임재의 약속을 듣고, 주님과 날마다 동행하는 삶을 사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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