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질랜드 광림교회 주일설교 (57) 기도가 은혜입니다

기독교


 

뉴질랜드 광림교회 주일설교 (57) 기도가 은혜입니다 <시편 73:23~28>

일요시사 0 12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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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3.1운동 101주년이 되는 해입니다. 근래에 일본과의 관계가 좋지 않습니다. 언제까지고 아웅다웅하면서 살 수는 없지만, 그렇다고 부드럽게 대하기는 또 참 어렵습니다. 저들과도 함께 대화를 하고, 품어안을 수 있는 모습도 필요하겠지만, 더욱 중요한 것은 과거에 있었던 우리의 아픔, 또한 그 아픔의 시대 속에서 목숨을 걸고 나라의 독립과 자유를 위해 애쓴 믿음의 선조들의 노력과 희생만큼은 꼭 마음에 새겨가야 할 줄 믿습니다. 오늘 함께 예배할 때에, 나라 사랑의 마음이 우리 안에 한 번 더 깊이 새겨지는 시간 되시기 바랍니다. 특별히 지금 한국에 코로나 19바이러스로 인해서 많은 이들이 질병 속에 고통 받고 있고, 더 많은 이들이 전염의 두려움 속에 있습니다. 이로 인해 한국의 교회들마다 예배를 제대로 드리지 못하고, 믿지 않는 사람들의 조롱과 비난을 받고 있으며, 타협적인 신앙의 모습이 자리 잡지는 않을까 하는 어려움 속에 처해 있습니다. 

  

이러한 때에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일까요? 이런 저런 상황과 모습을 보면서 비난하고 정죄하기에 앞서서 더욱 더 기도해야 할 때인 줄 믿습니다. 오늘 시편 73편 28절에 이렇게 말씀합니다. “하나님께 가까이 함이 내게 복이라.” 하나님께 가까이 하는 게 뭔가요? 기도하는 거죠. 언제나 어디서나 하나님과 가장 가까이 할 수 있는 것이 바로 기도입니다. 그렇기에 오늘 말씀의 제목처럼 기도가 은혜인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함께 말씀을 통해 기도의 은혜를 나누고, 또한 더 힘 있게 기도하고자 결단하는 시간 되시기 바랍니다.  

 

  

첫 번째로,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음이 은혜입니다. 

 

기도는 내가 하나님 앞에 나아가는 것입니다. 내 마음이 하나님을 향하고, 내 걸음이 하나님을 향하고, 내 모든 것이 주님을 향해 나아가는 것이 기도입니다. 어떻게 주님께 나아갈 수 있게 되었습니까? 히브리서 10장 19절과 20절에 이렇게 말씀합니다. “그러므로 형제들아 우리가 예수의 피를 힘입어 성소에 들어갈 담력을 얻었나니 그 길은 우리를 위하여 휘장 가운데로 열어 놓으신 새로운 살 길이요 휘장은 곧 그의 육체니라.”

  

모세의 광야 장막에서 예배할 때도, 후에 솔로몬이 성전을 세웠을 때에도, 일반 백성은 누구도 하나님 앞에 직접 나아갈 수 없었습니다. 모세가 백성들을 대신해서 나갑니다. 대제사장이 백성들을 대신해서 나갑니다. 휘장이 막혀 있었고, 율법이 막혀 있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의 십자가로 휘장이 갈라졌고, 하나님께 나아갈 길이 열려졌습니다. 예수님의 이름을 의지하여 기도함으로 하나님 앞에 나아가게 되었습니다. 이게 은혜인거죠. 언제나 아무 때나 편하게 할 수 있다고 여기는 그 기도가 엄청난 은혜입니다.

  

먼저는 우리가 지금 이 자리에, 예배하는 이 자리에, 하나님 앞에 나와 있는 것 자체가 은혜임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지금 예배하고 싶어도, 모여서 기도하고 싶어도 할 수 없는 현실 가운데 있는 한국의 교회가 있습니다. 이 때에 우리가 더 기도해야 할 줄 믿습니다. 

  

3.1 만세 운동은 100여년 전에 끝난 것이 아니라, 지금 이 순간 우리의 기도를 통해서 재현되어져야 합니다. 지금 우리가 나라와 민족을 위해서, 대한민국의 교회를 위해서, 저 한반도 땅을 위해 기도하는 것이 1919년 3.1운동의 민족 사랑의 역사를 지금의 현실에서 새롭게 세워가는 것인 줄 믿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보혈의 공로로 마음껏 주님 앞에 나와 기도할 수 있음이 은혜임을 기억하시고, 날마다 깨어서 주의 몸 된 제단에서, 우리 가정에서, 내 삶의 터전에서, 우리의 걸음에 닿는 그 어느 곳, 언제라도 기도함으로 주님 앞에 나아가시는 우리 모든 성도님들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두 번째로, 하나님과의 친밀함이 은혜입니다. 

 

심리적인 거리라는 게 있습니다. 멀다고 꼭 먼 것도 아니고, 가깝다고 꼭 가까운 것도 아닙니다. 내 마음에 하나님을 향한 사랑, 주의 몸 된 전을 향한 사랑, 내가 은혜 받은 제단을 향한 사랑이 있으면 아무리 멀어도 멀지가 않습니다. 반대로 그 사랑이 없으면 아무리 가까워도 멀게만 느껴지는 겁니다. 

  

오늘 23절도 보십시오. “내가 항상 주와 함께 하니 주께서 내 오른손을 붙드셨나이다.” 앞선 고백들을 보면 하나님과의 친밀함을 깨닫지 못했습니다. 여러 가지 주변 환경들을 보면서, 내 이성으로 이해되지 못하는 현실을 바라보면서, 정작 하나님의 손길을 깨닫지 못했습니다. 내 곁에서 나를 붙잡아 주고 계신 하나님의 손길을 깨닫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주님 전에 들어가서 주의 뜻을 깨닫고 나니, 내 옆에 계신 하나님을 발견하게 됩니다. 하나님과 너무나도 가까이 있는 나 자신을 발견하게 됩니다. 하나님과의 친밀함입니다.

  

그래서 오늘 아삽은 하나님과의 친밀함을 깨닫고 27절에 이렇게 고백합니다. “무릇 주를 멀리하는 자는 망하리니.” 하나님과의 친밀함이 깨어지면, 망하는 겁니다. 영적으로 죽는 거예요. 마치 나무에서 잘려진 가지와 같은 존재가 되고 맙니다. 우리 안에 영적인 친밀함이 있기를 바랍니다. 나와 함께 하시는, 내 곁에 계신 주님을 느끼고 체험하시기 바랍니다. 기도의 자리, 예배의 자리, 찬양의 자리, 헌신의 자리, 주를 위한 섬김과 봉사의 자리를 사모하시기 바랍니다. 언제나 주님을 내 마음에 모시고 살아가면 그게 영적인 친밀함입니다. 주님 기뻐하시는 삶이 무엇인지 늘 주의 뜻을 구하며 살아가면 그게 하나님과의 친밀함입니다. 교회에 있어도 하나님과 멀리 있을 수도 있고, 교회를 떠나 있어도 하나님과 가까이 있을 수도 있습니다. 

  

나라의 독립을 위해 애쓰고 수고한 믿음의 선조들은 한국 땅에서도, 저 일본 땅에서도, 저 만주 벌판에서도 늘 나라의 자유와 평화를 마음에 그리고 있었습니다. 나라 사랑의 마음으로 언제나 대한민국의 독립된 미래를 가슴에 품고 그 꿈을 실현하기 위해 나아갔습니다. 우리 역시 하나님 사랑의 마음을 품으시고, 또한 나라 사랑의 마음을 품으시고, 이 곳 뉴질랜드에 멀리 떨어져 있을지라도 우리 대한민국을 위해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그럼 저 대한민국이 내 마음에 있는 겁니다. 하나님의 뜻을 품으면 내가 하나님과 친밀함 가운데 있는 겁니다. 하나님과의 친밀함. 영적으로도, 마음적으로, 몸적으로 주님과 가까이 하시고, 주의 뜻을 붙잡고, 주의 뜻을 이루어가시는 우리 모든 성도님들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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