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질랜드 광림교회 주일설교 (58) 잠잠하라 고요하라

기독교


 

뉴질랜드 광림교회 주일설교 (58) 잠잠하라 고요하라 <마가복음 4:35~41>

일요시사 0 1285

뉴스를 통해 전해지는 한국의 소식은 매우 안타깝습니다. 코로나 바이러스로 인해 많은 이들이 혼란 속에 있고, 한국 교회를 향한 무분별한 비판의 목소리도 가득합니다. 한국 뿐인가요? 저 유럽 쪽에서도 나날이 확진자가 늘어나고, 이 곳 뉴질랜드에도 하나 둘씩 확진자가 생겨나면서, 아직은 지역 사회 감염까지는 가지 않았지만, 언제 어떻게 될지 모르는 불안감들이 있습니다. 그야말로 마치 폭풍 속에 놓여진듯한 모습입니다. 이러한 시대에 우리에게 필요한 마음, 삶의 자세가 무엇일까요? 저는 근래 이런 상황 속, 되어지는 일들을 바라보면서 오늘 본문의 말씀이 떠오릅니다. 큰 광풍이 일어나며 물결이 배에 가득한 상황, 그리고 예수님을 향해 원망하는 제자들의 목소리 “우리가 죽게 된 것을 돌아보지 아니하시나이까?” 그 때 예수님께서 바람과 바다를 향해 명하십니다. “잠잠하라 고요하라.” 오늘 우리의 삶의 현실, 저 한국 땅의 모습, 전세계적인 두려움과 혼란, 이 속에서 우리가 예수님의 음성을 듣기 원합니다. “잠잠하라. 고요하라.” 

  

우리도 지금 풍랑 속에 있는 것과 같습니다. 늘 평안과 행복과 기쁨 가운데 거하길 원하지만, 실상은 그렇지 못합니다. 나는 그냥 평안을 누리며, 이런 거 저런 거 신경 안쓰고 살고 싶은데, 주변에서 가만히 놔두지를 않습니다. 그럼에도 우리가 이 시간 주님 전에 나와 예배하는 이유가 어디 있습니까? 예수님의 음성을 듣기 위해서입니다. “잠잠하라 고요하라.” 이를 통해 내 삶에 이러한 모습을 보기 위해서입니다. “바람이 그치고 아주 잔잔하여지더라.” 함께 말씀을 통해 예수님의 음성을 듣고 평안함을 누리는 시간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첫 번째로, 예수님의 말씀에 권세가 있습니다. 

 

예수님은 당시 대단한 이야기꾼이셨습니다. 예수님께서 말씀을 전하실 때마다 사람들이 인산인해를 이룹니다. 마태복음 7장 28절과 29절에도 보면 산상수훈을 마무리하는 때의 사람들의 반응이 나옵니다. “예수께서 이 말씀을 마치시매 무리들이 그의 가르치심에 놀라니, 이는 그 가르치시는 것이 권위 있는 자와 같고 그들의 서기관들과 같지 아니함일러라.” 모든 이들이 예수님의 가르침을 듣고 놀랐습니다.  

 

 “성경의 권위”이라는 작은 소책자가 있습니다. 거기 보면 하나님의 말씀의 권세에 대해서 설명하는 글이 있습니다. 여러 가지 이야기들이 있지만, 한 마디로 하면 이런 겁니다. “성경의 권위가 어디서 오는가? 성경의 권위는 성경이라는 것 자체에서 온다.” 성경이라는 이름 자체에 권위가 있다는 것입니다. 성경의 권위를 설명 할 수 있는 말 자체가 없습니다.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이기에 권세가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세상 모든 만물을 창조 하실 때에 말씀으로 하셨습니다. “빛이 있으라” 하실 때에 빛이 생겨났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의 권세입니다. 

  

요한복음에 보니까 그 창조의 때에 말씀으로 함께 하셨던 분이 바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임을 선언합니다. “말씀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의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 창조의 때에 말씀으로 역사하신 예수님께서 인간의 몸을 입고 이 땅 가운데 오셨습니다. 그렇기에 오늘 본문 39절의 말씀처럼 “예수께서 깨어 바람을 꾸짖으시며 바다더러 이르시되 잠잠하라 고요하라 하시니 바람이 그치고 아주 잔잔하여지더라.” 바람과 바다도 순종 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그 말씀 자체에 권세가 있고 능력이 있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은 예수님의 말씀이라는 그 사실 자체로 권세를 갖게 됩니다. 예수님의 말씀의 권세로, 우리의 삶 가운데 수많은 풍랑과 같은 문제가 있을지라도 잔잔하고, 고요하게 되는 은혜를 누리시는 우리 모든 성도님들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두 번째로, 위기 속에 예수님을 찾아야 합니다. 

 

예수님은 말씀의 권세로 풍랑을 잠잠케 하시고, 제자들을 향해 이렇게 꾸짖으십니다. 본문 40절입니다. “이에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어찌하여 이렇게 무서워하느냐 너희가 어찌 믿음이 없느냐 하시니.” 예수님은 제자들의 믿음 없는 모습을 한탄하고 계십니다. 앞서서 예수님은 이미 수많은 기적을 행하셨습니다. 마가복음 1장부터 3장까지의 말씀에서 예수님께서는 쉬지 않고 엄청난 역사들을 일으키십니다. 그리고 4장에 가서 계속해서 천국에 관련된 비유의 말씀을 주시고, 오늘 배를 타고 갈릴리 건너편에 가서 복음을 전하시려고 가시는 길에 오늘 이 풍랑 사건이 일어난 것입니다. 제자들의 마음이 어땠을까요? “하루 좀 쉬고 내일 아침에 가시지, 예수님 쫓아다니다 진 빠져 죽겠네.” 이런 불평이 있었을지 모릅니다. 그런데 마침 풍랑이 몰아칩니다. 배를 도무지 가눌 수 없을 정도입니다. 제자들 중에 반 정도는 어부들인데, 저들이 힘을 다해도 안됩니다. 예수님은 속편하게 잠만 주무시고 계십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 “너희가 어찌 믿음이 없느냐?” 책망까지 하십니다.

  

하지만 이건 제자들의 입장입니다. 그동안 예수님을 따라다니면서 도대체 뭘 보았습니까? 예수님은 병든 자를 고치셨는데, 예수님에게는 귀신을 내어쫓는 권세가 있으신데, 수많은 권능을 행하시는 모습을 쉴새없이 보았는데... 그럼 예수님을 향한 믿음이 자리잡았어야했지만, 그 놀라운 기적의 역사를 똑똑히 바라보았으면서도 예수님을 향한 믿음이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풍랑을 잠잠케 하신 후에 말씀하시죠. “너희가 어찌 믿음이 없느냐.” 본문과 똑같은 내용이 기록되어 있는 누가복음에는 이렇게 표현합니다. “너희 믿음이 어디 있느냐?” 다시 말하면 이런 겁니다. “너희들 지금까지 나 따라다니면서 뭘 본 거니?”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 제자들의 모습에서 배워야 할 것이 있습니다. 38절입니다. “예수께서 고물에서 베개를 베고 주무시더니 제자들이 깨우며 이르되 선생님이여 우리가 죽게 된 것을 돌보지 아니하시나이까 하니.” 풍랑으로 인한 죽음의 공포 앞에서 제자들은 예수님을 찾아 왔습니다. 예수님께서 배를 잘 다룰 줄 아십니까? 바다를 항해하는 것에 대해서 잘 아십니까? 그런 쪽에는 전혀 문외한입니다. 예수님은 목수십니다. 오히려 제자들이 더 잘 압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중요한 것은 그 위기 상황 가운데 예수님을 찾았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삶에도 수많은 위기의 상황들이 있습니다. 바라기는 앞으로 더 이상 위기의 상황을 만나지 않기를 원하지만, 그건 그리 쉽지 않을 것입니다. 개인적인 삶의 위기와 어려움, 사회적인, 신앙적인, 수많은 위기 상황이 앞으로도 계속 우리 앞에, 자녀들의 앞길에 있어질 터인데, 그럴 때에 어떻게 해야 하나요? 오늘 제자들과 같이 예수님을 찾는 우리 모든 성도님들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오늘도 우리 성도님들은 이 시간에 예수님을 찾아 오셨습니다. 앞으로도 계속 예수님을 찾아오시기 바랍니다. 원망이든, 불평이든, 낙심의 마음이든 주님 앞에 내어놓을 때에, 싸매시고, 고치시고, 회복시키시고, 잔잔하게, 고요하게 하시는 그 은혜를 누리시는 우리 모든 성도님들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끝으로, 하나님은 합력하여 선을 이루십니다. 

 

오늘 항해의 목적이 무엇입니까? 본문 35절입니다. “그 날 저물 때에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우리가 저 편으로 건너가자 하시니.” 해가 질녘이 되었는데, 예수님은 이제 그만 쉬자고 하지 않으시고, 배를 타고 바다 저 건너편으로 가자고 말씀하십니다. 사실 해가 질녘에 바다를 건너는 것은 그리 좋은 판단이 되지 않습니다. 풍랑의 위험이 높고, 실제로 풍랑을 만날 때 대처하기도 어렵기 때문입니다. 그럼 도대체 왜 예수님은 굳이 그 밤에 저 편으로 건너가길 원하셨는가? 만약에 풍랑을 만나지 않고 바다를 잘 건너갔으면 어땠을까요? 본문 41절입니다. “그들이 심히 두려워하여 서로 말하되 그가 누구이기에 바람과 바다도 순종하는가 하였더라.” 이러한 제자들의 고백은 없었을 것입니다. 

  

복음을 전하러 가는 길에 어려움을 당해서 낙심할 수도 있었지만, 하나님은 오히려 그 위기의 상황을 더 큰 믿음의 확신을 갖는 기회로 바꾸십니다. “너희에게 어찌 믿음이 없느냐?” 제자들의 영적 상태를 예수님을 향한 확고한 믿음의 고백을 갖는 기회로 바꾸어 주십니다. 이후 5장 과 6장의 말씀을 보면 제자들은 이천 마리나 되는 돼지 떼가 몰살당할 정도로 크고 강력한 귀신의 세력 앞에서도 주눅 들지 않았고, 제자들이 직접 세상에 나아가 천국의 복음을 전하고, 병든 자를 고치고, 귀신을 내어 쫓는 사명을 감당케 됩니다. 결국 풍랑이라는 위기의 순간까지도 하나님은 자신의 크신 뜻을 이루는 하나의 도구로 사용하신 것입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의 선하신 역사를 위해서 복음을 전하다가 어려움을 겪을 때도 있습니다. 그럼에도 그 위기 속에서도 하나님을 향한 믿음을 세워간다면, 내가 가지고 있는 그 믿음을 잃지 않는다면, 그 위기가 더 큰 영적 성장의 기회가 될 수 있습니다. 오늘 제자들은 풍랑으로 인한 위기에 빠졌지만, 오히려 예수님을 향한 확고한 믿음을 세우는 기회가 된 것처럼, 이 모든 위기가 한국교회와 우리 모든 그리스도인들에게 더 큰 영적 성장의 기회가 될 줄 믿습니다. 이를 위해 함께 기도하는 우리 모든 성도님들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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