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질랜드 광림교회 주일설교 (60) 자리(position)

기독교


 

뉴질랜드 광림교회 주일설교 (60) 자리(position) <마태복음 11:28~30>

일요시사 0 1200

우리가 이 땅의 삶을 살아갈 때에 누구나 차지하고 있는 자리가 있습니다. 내게 주어진 자리가 있습니다. 가정에서는 가정에서의 내 자리가 있고, 직장에서는 직장에서의 내 자리가 있습니다. 또 교회에서는 교회에서 주어진 내 자리가 있습니다. 오늘 말씀도 자리에 대한 말씀인데, 이 시간 제목으로 삼은 자리는 이런 보여지는 자리가 아닙니다. “Position” 포지션은 내가 서 있는 장소적인 자리보다는 나의 위치, 직임, 상황, 이런 것들을 일컫는 말입니다. 우리가 지금 사순절을 지내고 있는데, 예수님의 십자가 죽으심이라는 사건이 왜 일어났습니까? 예수님께서도 예수님께 주어진 그 자리를 감당하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 죽임 당하시는 그 자리가 자신에게 주어진 자리였습니다. 그렇다면 오늘 나에게 주어진 자리는 어디인가? 하나님께서 나에게 원하시는 자리는 어디인가? 오늘 말씀을 통해서 내게 주어진 자리가 어디인지 한 번 생각해 보는 시간이 되시기 바랍니다. 특별히 하나님께서 정말 나에게 원하시는 영적인 자리, 긍정의 자리, 믿음의 자리, 그 자리가 어디인지를 알아야 합니다. 그리하여 내가 정말 하나님 기뻐하시는 그 자리에 있다면 계속 열심을 다해 충성하고, 혹 내가 감당해야 할 자리를 잃어버린 채 살아왔다면, 주님 기뻐하시는 그 자리로 나아가는 결단이 있어지기를 바랍니다. 이를 위해 우리에게 필요한 몇 가지 단계가 있습니다. 함께 말씀을 통해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첫 번째로, “내게로 오라.” 

부르심의 단계입니다. 

 

본문 마태복음 11장 28절입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예수님의 부르심의 음성입니다. 여러분! 세상에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지지 않은 자들이 어디 있습니까? 세상 누구라도 아무런 짐을지지 않고, 편안하게 사는 사람은 없습니다. 여기 계신 우리 모든 성도님들도 아마 나름대로 벗어던지고 싶지만, 그럴 수 없는 수많은 짐들이 있을 것입니다. 그래서 누구라도 그런 생각을 한 번쯤은 해보셨을 것입니다. “이제 가족이고, 일이고, 뭐고 다 버리고 도망가고 싶다.” 그럼에도 어쩔 수 없이 계속 수많은 짐을 끌어안고 살아가죠. 이런 우리들을 향해서 오늘 본문에 예수님께서 은혜의 메시지를 선포하십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비슷한 말씀이 구약 시대 이사야 선지자를 통해서도 선포됩니다. 이사야 55장 1절입니다. “오호라 너희 목마른 자들아 물로 나아오라 돈 없는 자도 오라 너희는 와서 사 먹되 돈 없이, 값없이 포도주와 젖을 사라.” 하나님의 부르심의 음성입니다. 이 부르심은 세상의 부름과는 차원이 다릅니다. 세상의 메시지는 있는 사람에게 오라는 것이고, 하나님의 부르심은 없는 자도 오라는 것입니다. 시대는 바뀌고 환경은 달라졌어도, 목마름의 문제는 다를지라도, 짊어지고 있는 짐은 다 다를지라도 삶의 현실은 언제나 똑같습니다. “결핍과 지치고 피곤함”, 그 속에서 평안의 상실. 이때에 예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이리로 오라.” “수많은 삶의 짐을 짊어지고 지쳐있는 자, 끊임없이 채워도 채워도 채워지지 않는 결핍의 문제로 안타까워하는 자여, 다 이리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오늘도 우리 주님께서 우리를 말씀의 자리로 부르셨습니다. 예배의 자리로 부르셨습니다. 은혜의 자리로 부르셨습니다. 그곳이 예배당이든, 가정이든, 사업장이든, 부르심에 응답함으로 주님 앞에 서는 것이 귀한 것입니다. 언제나 주의 부르심 따라 살아가는 우리 모든 성도님들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두 번째로,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안식의 단계입니다.

 

예수님은 부르심에 응답하여 주님 앞에 나아가는 자에게 안식을 약속하십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부르심의 단계를 지나면 쉼의 자리에 서게 됩니다. 반면에 세상은 어떻습니까? 어떻게 해서든 일을 더 많이 하게 만듭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이 세상이 얼마나 힘든 삶의 연속입니까? 유치원 다니는 아이들도 “힘들어서 죽겠다.”고 합니다.

  

여러분! 하나님께서 세상 만물을 창조하시는데, 마지막 날 무엇을 만드셨습니까? 우리 인간을 만드셨습니다. 세상 모든 만물을 말씀으로 창조하시고, 마지막 날에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서 우리 인간을 직접 손으로 빚어 만드셨습니다. 이어서 지음 받은 인간이 제일 먼저 한 게 뭔지 아십니까? 쉼이었습니다. “쉼” 하나님께서 6일 동안 세상을 창조하시고, 모든 일을 마치신 후에 “안식하셨다.”고 창세기 2장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인간은 창조되지마자 일부터 시작한게 아니라, 쉬는 것부터 시작했다는 거예요. 그래서 이러한 창조 질서에 순응하기 위해서 하나님께서는 십계명에도 말씀하시죠. “제 4계명, 안식일을 기념하여 거룩하게 지키라.” 지금도 이스라엘에서 안식일을 아주 엄격하게 지킵니다. 그런데 우리는 뭐가 그렇게 바쁜지 늘 일이 끊이지 않습니다.

  

예수님은 이러한 우리들에게 쉼을 약속하십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이 말씀만 들어도 평안하지 않습니까? 예수님 안에서 쉼을 누릴 수 있기를 바랍니다. 삶의 바쁜 여정 속에서 육체적으로 피곤한 우리들, 집에 누워서도 세상의 짐으로 인해 힘겨워 잠 못드는 우리들, 이 시간 예배하고 있는 중에도 수많은 걱정과 염려 가운데 영적인 쉼을 잃어버린 우리들, 우리를 향해 예수님 말씀하십니다.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말씀에 의지하여 예수님 주시는 참된 평안과 안식을 누리는 우리 모든 성도님들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끝으로, “나의 멍에를 메라.” 

사명 감당의 단계입니다. 

 

본문 11장 29절과 30절에 이렇게 말씀합니다.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리하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이는 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벼움이라 하시니라.” 오늘 본문의 결론과도 같은 말씀입니다. 그런데 한편 참으로 이해 안 되는 말씀이기도 합니다. 앞서 나눈 말씀대로 예수님께서 우리를 부르셨습니다. 부르심에 응답하여 나오는 자에게 쉼을 주시겠다고, 안식을 주시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왜 갑자기 결론의 말씀에는 “내 멍에를 메라.” 이렇게 말씀하시는가?

  

멍에가 뭔가요? 소가 쟁기로 밭을 갈 때 메는 겁니다. 일할 때 메는 겁니다. 나한테 오면 다 쉬게 해주겠다고 말씀하신 예수님께서 “너 잘 왔다. 이제 멍에 메고 일해라.” “예수님! 이거 아니잖아요.” 이 안에 담긴 의미가 있습니다. 지금은 경운기, 트랙터 같은 농기계를 사용해 농사를 짓습니다. 하지만 예전에는 다 소가 멍에를 메고 밭을 갈았습니다. 그런데 소가 멍에를 메지 못하면 어떻게 합니까? 그동안 수고했으니 편안히 쉬게 해줍니까? 절대 아니죠. 소는 멍에를 메고, 밭을 가는 자리에 있어야 가치가 있는 것입니다. 

  

오늘 예수님께서 우리를 부르신 후에, 멍에를 메라고 말씀하신 것은 부르신 자들을 더욱 가치 있게 만들기 위함입니다. 그냥 쉬고만 있다고 해서 마음이 편안한 것은 아닙니다. 내가 어떤 일을 해야 하는데, 누워서 쉬기만 하면 오히려 마음이 불편합니다. 일하는 자리에 있어야 몸은 피곤해도 마음이 편합니다. 오늘 예수님께서 모든 사람들을 초청하시고, 멍에를 메라는 것이 바로 이런 의미입니다. 우리에게 무거운 짐을 지게 하심이 아니라, 우리를 좀 더 가치 있게 하시고자 함입니다. 내게 주어진 사명을 감당함을 통해 참 평안을 얻으라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 29절 후반부에 말씀하죠.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리하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몸이 쉬는 것보다 마음이 쉼을 얻어야 합니다. 또한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멍에는 어려운 것도 아닙니다. 감당할만한 것입니다. 그렇기에 오늘 말씀 30절에도 보면 “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벼움이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메어야 할 멍에는 무엇입니까? 한 마디로 사명이죠. 하나님께서는 누구에게나 사명을 주셨습니다. 목회자로 주의 일을 하는 것만이 사명이 아니라, 평신도로서 주의 몸 된 제단을 위해, 하나님 나라를 위해, 내게 맡겨진 영혼들을 위해 헌신하는 것이 바로 사명입니다. 

  

그게 여러분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주신 멍에입니다. 그리고 그 멍에를 메고 주를 위해 충성할 때 참 평안을 얻게 되고, 축복의 길이 열려지는 것입니다. 오늘도 내게 주신 멍에를 메고 주님 나라를 위해 값있게 쓰임 받는 우리 모든 성도님들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이 게시물은 일요시사님에 의해 2020-03-30 09:22:43 교민뉴스에서 이동 됨]
0 Comments
제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