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원병의 아가서 묵상 >포도원을 허는 작은 여우 (2장 15절)
“우리를 위하여 여우, 곧 포도원을 허는 작은 여우를 잡으라. 우리의 포도원에 꽃이 피었음이라”
술람미 여인은 우리를 위하여 포도원을 허는 작은 여우를 잡으라고 말한다. 우리는 누구인가? 왕과 술람미 여인이다. 주님과 성도다.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우리 가운데 세우신 포도원을 허는 여우를 잡으라는 말이다. 원어에는 여우가 복수명사다. 작은 여우들이 포도원을 마구 헤집고 다니면서, 가지를 부러뜨리고, 뿌리를 파고, 꽃을 떨어뜨리고, 열매를 따 먹으며 포도원을 허무는 것처럼, 하나님의 포도원, 하나님의 나라를 파괴시키는 것들이 작은 여우들이다. 그렇다면, 우리 가운데 세우신 주의 나라를 허무는 작은 여우들은 무엇일까?
하나님의 나라란 하나님께서 주권적으로 다스리시는 나라다. 그러므로 하나님 나라의 백성이 된다는 말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주권 아래에서 사는 사람이 되는 것이다. 결코 ‘나’라는 사람이 주인이 될 수 없는 나라다. 뒤집어서 말하면, 하나님의 백성에게는 주인이신 하나님께 순종할 의무가 주어지는 것이다.
롬 1:5-6절
모든 이방인 중에서 믿어 순종하게 하나니, 너희도 그들 중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것으로 부르심을 받은 자니라
우리가 하나님과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것으로 부르심을 받은 자가 되는 것이다. 믿어 순종하게 한다고 하였다. 즉, 주님의 것으로 부르심을 받는다는 말은 믿어 순종하는 자가 되는 것이다. 여기서 믿어 순종하게 한다는 말의 헬라어를 직역하면은 믿음의 순종에 이르게 한다는 뜻이다. 믿음과 순종은 별개의 것이 아니라는 뜻이다.
롬 6:16
너희 자신을 종으로 내주어 누구에게 순종하든지 그 순종함을 받는 자의 종이 되는 줄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혹은 죄의 종으로 사망에 이르고 혹은 순종의 종으로 의에 이르느니라
죄의 종으로 사망에 이르고, 순종의 종으로 의에 이르느니라,,, 믿음으로 의에 이른다고 하지 않고, 순종의 종으로 의에 이른다고 하였다. 우리가 하나님의 뜻을 다 헤아리고, 하나님의 뜻에 전적으로 순종해야 의에 이른다, 즉 구원을 받을 수 있다는 뜻이 아니다. 롬 1:16에서는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된다고 하였다. 우리가 믿어 구원을 받는 것은 전적으로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이다.
그렇다면 순종의 종으로 의에 이른다는 말씀은 무슨 뜻인가? 구원을 받는 믿음, 즉 참 믿음에는 반드시 순종이 따른다는 뜻이다.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 하나님의 것과 예수 그리스도의 것으로 부르심을 받은 성도들은 순종의 삶이 뒤따른다는 말씀인 것이다. 그러니까, 순종은 구원의 조건이 아니라, 구원의 결과다.
구원의 은혜를 아는 자, 십자가의 은혜를 아는 성도는 그 은혜에 대한 반응이 있게 된다. 예를 들어서 ‘간 경변’에 걸려서 죽게 되었는데, 누군가가 자신의 간의 반을 떼어주어서 그 간을 이식 받아 살아났다고 가정해보자. 그 사람은 자기를 위해 자신의 간을 떼어준 사람의 은혜에 감사해 하며 살게 될 것이다. 그리고 그 사람을 위해서는 어떤 일도 마다하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 성도들의 실제 삶에 있어서 주님께서는 자기에게 간을 떼어준 사람보다도 대접을 받지 못하는 것 같다. 주님께서는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서 십자가에서 모든 것을 내어주셨다. 성도란 그 은혜로 죄와 최후의 대 심판에서 구원을 받은 것이며, 하나님의 백성과 자녀가 되는 영광을 입은 사람들이다. 이를 믿는 성도라면, 마땅히 그 은혜를 아는 자들이며, 그 은혜에 반응하는 삶을 살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 삶이 바로 하나님께 순종하는 삶이다. 그래서 믿음과 순종은 동전의 양면처럼 서로 뗄래야 뗄 수 없는 관계인 것이다.
요 3:36 아들을 믿는 자에게는 영생이 있고 아들에게 순종하지 아니하는 자는 영생을 보지 못하고 도리어 하나님의 진노가 그 위에 머물러 있느니라
주님께서는 아들을 믿는 자에게는 영생이 있고, 순종하지 않는 자는 영생을 보지 못하고 하나님의 진노, 즉 심판을 받는다고 말씀하셨다. ‘믿지 않는 자’라고 하지 않으시고, ‘순종하지 않는 자’라고 하셨다. 믿음과 순종이 같은 의미라는 사실을 강조하신 것이다. 순종이 없는 믿음은 거짓 믿음이다. 그래서 약 2:26은 말하기를, “영혼 없는 몸이 죽은 것 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이니라” 순종이 없는 믿음이란 영혼이 없는 몸과 같이 죽은 믿음인 것이다.
그러고 보면, 우리의 믿음은 얼마나 살아있는 믿음일까? 얼마나 순종하는 삶을 살고 있을까? 어쩌면 많은 기독교인들은 거의 죽어있는 상태, 믿기는 확실히 믿는데 거의 죽어있는 믿음인지도 모른다. 하나님을 믿지만, 하나님의 뜻에 대한 순종이 없이 대부분의 삶을 자기 뜻대로 살고 있는지도 모른다. 하나님의 은혜를 안다고 하지만, 사실은 하나님의 은혜를 제대로 바르게 알지 못하는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반응이 삶 가운데 나타나지 않는 것이다.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를 아는 만큼의 믿음이 있는 것이고, 각자의 믿음만큼 순종하게 된다. 이렇게 생각해보면, 우리의 믿음이 얼마나 보잘것없는 믿음인지 자신의 믿음 없음을 탄식하게 될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 속으로 깊이 들어가야 한다. 날마다 십자가의 은혜 속으로 깊이 들어가 자신을 돌아보고, 하나님 아버지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야 한다. 그래야 그나마 조금이라도 믿음이 자라나갈 수 있고, 우리의 삶 가운데 하나님께 대한 순종의 모습이 나타날 수 있다.
주님께서 가르쳐주신 기도도 처음에 하나님의 이름과 나라와 뜻을 구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아버지의 이름이 거룩하게 되고, 아버지의 나라가 임하고, 아버지의 뜻이 우리 가운데 이루어지는 나라가 바로 하나님의 나라다. 이러한 하나님의 나라는 하나님의 은혜를 만나는 십자가의 자리에서 시작이 된다.
우리의 포도원에는 꽃이 피었다.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세우신 하나님의 나라에 꽃이 만발하였다. 하나님 나라의 풍성한 은혜가 우리 가운데 이미 임하여 있는 것이다. 그런데, 그 포도원을 허무는 작은 여우들이 있다. 그것은 바로 하나님의 뜻에 불순종하고, 내 뜻대로 살고자 하는 마음이다. 하나님의 나라보다 나를 더 중요하게 여기는 마음이다. 이러한 불순종의 마음이 우리 가운데 하나님의 나라가 풍성하게 임하는 것을 방해하는 여우들이다.
우리가 붙들어야 할 믿음은 모든 것의 주인이 되시는 하나님이시며, 우리를 위하여 십자가에서 모든 것을 내어주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문제는 하나님과 주님을 붙잡는 것이 아니라, 자신과 세상의 욕심을 붙잡는다는 데 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자신의 이기적인 욕심을 구하며, 주의 피로 세우신 포도원을 허물고 있는 것이다.
채원병 목사<오클랜드정원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