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질랜드 광림교회 주일설교 (110) 예수님 걸어가신 길

기독교


 

뉴질랜드 광림교회 주일설교 (110) 예수님 걸어가신 길 <마가복음 11:1~10>

할렐루야! 오늘은 종려주일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의 죽으심을 위해 예루살렘에 입성하시는 날, 수많은 무리들이 예수님 곁에 모여서 종려나무 가지를 흔들며 환영합니다. “호산나 호산나!” 이를 기념하여 종려주일이라고 부르고, 오늘부터 고난주간이 시작됩니다. 예수님의 예루살렘 입성을 바라보며, 오늘 함께 나눌 말씀의 제목은 “예수님 걸어가신 길”입니다.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예수님께서는 죄로 인해 단절된 길, 막혀진 길, 하나님 아버지께로 향하는 길을 열어주셨습니다. 

  

수많은 사람들의 조롱과 멸시가 있었음에도 묵묵히 그 길을 걸어가셨고, 그 길의 첫걸음이 오늘 예루살렘 입성에서 시작됩니다. 이 시간에 예수님 걸어가신 그 길을 마음에 새기는 시간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또한 예수님 걸어가신 그 길 따라 나도 걷고자 결단하는 시간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 함께 말씀을 통해 은혜를 나눌 때에, 예수님 걸어가신 십자가의 길을 내 안에, 내 삶에 새겨가는 시간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첫 번째로, 예수님 걸어가신 길은 새로운 살 길입니다. 


예수님께서 걸어가신 길이 위대한 것은 그 누구도 걸어본 길이 없는 새로운 길이라는 것입니다. 히브리서 10장 20절에 이렇게 말씀합니다. “그 길은 우리를 위하여 휘장 가운데로 열어 놓으신 새로운 살 길이요 휘장은 곧 그의 육체니라.” 이전까지는 대제사장이 하나님과 인간 사이를 이어주는 가교 역할을 합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친히 대제사장이 되시고, 친히 자신의 몸을 대속의 제물로 드려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 막혀진 담을 열어주셨습니다. 에베소서 2장 14절에 말씀합니다. “그는 우리의 화평이신지라 둘로 하나를 만드사 원수 된 것 곧 중간에 막힌 담을 자기 육체로 허시고.” 높은 담이 쌓여 있었습니다. 그 담은 죄입니다. 율법입니다. 관습입니다. 혈통입니다. 하지만 예수님의 십자가는 그 모든 막힌 담을 여시고, 새로운 살 길을 열어주셨습니다. 그 누구도 그전까지 행하신 적이 없었던 일입니다. 아무도 걸어가지 못했던 길입니다. 그 길이 예루살렘으로 향하는 길이요, 그 길이 골고다 언덕의 길이요, 그 길이 조롱과 멸시와 수치의 길이요, 그 길이 죽음의 길이었습니다. 하지만 그 길은 다시금 영광의 길이 되었고, 그 길은 죄 사함의 길이 되었고, 그 길은 부활의 길이 되었습니다. 

  

오늘 본문을 보면, 예루살렘으로 향하는 여정의 출발입니다. 그 출발선에서 예루살렘 입성을 앞두고, 예수님께서는 두 명의 제자들을 보내시면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2절입니다. “이르시되 너희는 맞은편 마을로 가라 그리로 들어가면 곧 아직 아무도 타보지 않은 나귀 새끼가 매여 있는 것을 보리니 풀어 끌고 오라.” 예수님께서는 스가랴 9장 9절에 예언된 말씀대로, 나귀 새끼를 타십니다. 예수님께서 멋진 말을 타지 않으시고, 나귀 새끼를 타신 것은 겸손의 왕으로 오셨음을 상징합니다. 또한 성경에 이르신 예언의 말씀을 성취하시기 위함입니다. 그런데 방금 읽어드린 본문에 보면 나귀 새끼 중에서도 어떤 나귀 새끼인가요? 아직 아무도 타보지 않은 나귀 새끼입니다. 처음입니다. 그 누구도 타 본 적이 없는 나귀 새끼입니다. 누구에게도 길들여지지 않은 나귀 새끼입니다. 계속 말씀드린대로, 예수님께서 가신 그 길이 누구도 걸어보지 않은 길이기에, 예수님께서는 누구도 타 본 적이 없는 나귀 새끼를 타시고, 예루살렘성을 향하시는 것입니다. “새로운 살 길을 여시기 위해서.” 

 

우리도 사실 지금 처음 걷는 길을 걷고 있습니다. 앞으로 우리가 걷는 신앙의 길, 삶의 길, 이미 걸어보신 길을 걷는 분들 계신가요? 어제까지의 길은 우리가 다 걸어온 길이지만, 오늘 이 시간 이후에 걷는 모든 길은 다 새로운 길입니다. 그 길이 어떤 길이 되길 원하십니까? 사람들은 행복한 길이 되길 원하죠. 모두다 형통의 길이 되길 원하죠. 신앙인들도 늘 “시온의 대로가 열려지게 하옵소서.” 기도하죠. 하지만 이 모든 것을 넘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그 길이 생명을 살리는 길이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열어주신 새로운 살 길, 생명의 길, 그 길 따라 걷는 우리 모든 성도님들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두 번째로, 예수님 걸어가신 길은 헌신의 길입니다. 


헌신이 뭔가요? 헌신은 내 것을 내어놓는 것입니다. 내 물질을 내어놓는 것, 내 시간을 내어놓는 것, 내 재능을 내어놓는 것, 내 능력을 내어놓는 것이 헌신입니다. 이 모든 것 중에서도 가장 큰 헌신은 내 생명까지도 내어놓는 것이라 할 수 있겠죠.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 입성하시는 이유가 곧 생명을 바치는 헌신이었습니다. 예수님은 모르고 그 길을 걸으신 것이 아닙니다. 어쩌다가 사람들에게 붙잡혀 십자가형을 당한 것이 아닙니다. 예루살렘에 들어가면 잡혀서 죽임 당하게 될 것을 이미 알고 계셨습니다. 그럼에도 그 길을 걸으십니다. 자신의 생명을 바쳐 우리를 구원해 주시기 위해서입니다. 오늘 본문에는 또 다른 헌신의 모습들도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나귀 새끼를 풀어오라고 명하시면서, 3절에 이렇게 당부하십니다. “만일 누가 너희에게 왜 이렇게 하느냐 묻거든, 왜 나귀새끼를 풀어가느냐 묻거든, 주가 쓰시겠다 하라.” 

  

예수님은 자신의 목숨을 내어놓는 헌신의 길을 걸으십니다. 그런데 그 헌신의 길에, 자기 나귀 새끼를 내어 놓는 나귀 새끼 주인의 헌신이 있었습니다. 이 뿐인가요? 한번도 사람을 태워본 적이 없는 나귀 새끼도 자신의 몸을 내어 맡기는 헌신을 하고 있습니다. 또한 예수님을 둘러싼 무리들은 자신의 목소리로 예수님을 찬양하는 헌신을 드렸습니다. 자신의 옷가지를 나귀 새끼에게 짓밟히게 만드는 헌신이 있었습니다. 예수님의 헌신의 길을 완성시킨 수많은 사람들의 헌신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헌신이 무엇입니까? 묻는 질문에 누군가 이렇게 대답을 합니다. “헌신은 말씀에 순종하는 것이다.” 예수님께서 겟세마네에서 기도하시죠. “아버지여! 할 만하시거든 이 잔을 내게서 옮기시옵소서.” 이러한 처절한 기도를 올려드린 후에, 다시 한 번 기도합니다. “내 뜻대로 마시고 아버지의 뜻대로 하옵소서.”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헌신을 이루십니다.  오늘 두 제자를 보십시오. 묻지를 않습니다. 그대로 순종합니다. 나귀 새끼의 주인도 보십시오. “주가 쓰시겠다.” 따지지를 않습니다. 그대로 말씀에 순종합니다. 또한 나귀 새끼조차도 등에 사람을 한 번도 태워보지 않았는데, 날뛰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등을 예수님께 내어드립니다. 헌신.

  

하나님께서는 순종이 제사보다 더 낫다고 말씀합니다. 왜요? 순종이 헌신이기 때문입니다. 완전한 순종, 100프로 순종, 다시 말해 내 모든 것을 그대로 맡겨드릴 수 있는 순종의 마음이 필요합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나님 아버지 앞에 완전한 헌신의 길을 걸으셨습니다. 그 길에 나귀 새끼를 풀어오는 제자들의 헌신이 있었고, 나귀 새끼 주인의 헌신이 더해졌고, 나귀 새끼의 헌신이 있었습니다. 함께 소리쳐 주님을 찬양하는 이들, 자기 겉옷을 깔아놓는 수많은 사람들의 헌신이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도 헌신의 길을 걷기를 원하십니다. 내 마음을 드리는 헌신, 내 시간을 드리는 헌신, 내 재능과 물질과 정성을 드리는 헌신, 이를 통해 하나님께서 영광을 받으십니다. “내 뜻대로 마시고, 아버지의 뜻대로 하옵소서.” 전적인 순종의 길을 걸으셨던 예수님처럼, 말씀에 순종함으로 헌신된 삶을 사시는 우리 모든 성도님들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끝으로, 예수님 걸어가신 길은 구원의 길입니다. 

 

 본문 9절과 10절에 말씀합니다. “앞에서 가고 뒤에서 따르는 자들이 소리 지르되 호산나 찬송하리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여, 찬송하리로다 오는 우리 조상 다윗의 나라여 가장 높은 곳에서 호산나 하더라.” 오늘 백성들이 예수님을 환영하면서 외친 말 “호산나”가 아람어인데, 뜻은 “여호와여 구원하소서!”입니다. 그런데 이 호산나라는 말을 히브리어로 하면 “호쉬아-나”에서 온 말입니다. “호쉬아나”를 직역하면 “지금 구원하소서.”라는 뜻입니다.  원래 이 말은 시편 118편 25절의 말씀을 인용한 짧은 기도문입니다. “여호와여 구하옵나니 이제 구원하소서 여호와여 우리가 구하옵나니 이제 형통하게 하소서.” 시편 118편은 다윗이 무수한 고난과 역경을 견뎌내고 왕위에 오른 뒤에 하나님의 구원, 도우심의 은혜에 감사하며 지은 찬양시입니다. 이러한 찬양의 시편이 짧은 기도문이 되어서 이어집니다. 로마의 압제 속에 있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구원의 날을 소망하면서, 다윗의 나라를 기대하면서, 회복의 그날을 사모하면서, “호쉬아나” “여호와여 구하옵나니 지금 구원하소서.” 아주 일상적으로 이 기도문을 되풀이합니다. 또한 “호쉬아나”의 원의미가 담긴 시편 118편은 하나님의 구원하심, 메시야의 오심을 통한 회복의 역사를 소망하는 시편이기도 합니다. 

  

다윗은 수많은 어려움을 이겨내고, 왕위에 올라 하나님의 구원의 역사를 찬양합니다. 그렇기에 예수님 당시의 모든 이스라엘 백성들은 “다윗의 나라”를 갈망합니다. 그래서 오늘 백성들도 예루살렘에 입성하는 예수님을 향해 “호산나 찬송하리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여!” 여기서 그치지 않고, 이어서 “찬송하리로다 우리 조상 다윗의 나라여!”라고 외치면서 예수님을 맞이합니다. 예수님께서 지금 예루살렘에 입성하셔서, 그간 행했던 기적의 역사들로 저들을 구원하시기를 원한 것입니다. “호쉬아나” “지금 구원하소서!” “지금 당장 로마의 압제를 넘어뜨리고, 지금 우리 이스라엘 나라를 다윗의 나라처럼 회복시켜 주옵소서.” 이런 소망을 담아 “호산나”를 외칩니다. 

  

하지만 저들의 기대는, 빌라도 앞에서, 대제사장 앞에서, 십자가 앞에서 여지 없이 무너져버렸습니다. 그렇기에 빌라도가 예수님과 바라바 둘 중에 누구를 놓아줄까를 말할 때에, “호산나” 찬송하던 백성들이 “바라바를 놓아주고,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으소서.” 외치는 무리가 되어버립니다. 지금 당장 이 땅에서, 지금 당장 자신들의 눈앞에서 이루어지는 혁명을 기대했는데, 그 기대가 이루어지지 않자, 오히려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으소서.” 외치는 겁니다. 물론 예수님께서 저들의 기대와 같이 하실 수도 있으셨습니다. 지금 당장 이스라엘을 해방시키시고, 다윗의 나라보다 더 강대한 나라를 만드실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하면 하나님의 구원의 역사는 실현되지 않습니다. 지금 당장 이스라엘은 구원하겠지만, 인류 구원의 역사는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그렇기에 예수님께서는 묵묵히 십자가를 지십니다.

  

예수님 걸어가신 길은 구원의 길입니다. 하나님의 선택받은 백성이라는 이스라엘만을 위한, 믿음을 가진 나만을 위한 구원의 길도 아닙니다. 예수님의 구원의 길은 모든 인류를 향해 열려진 길입니다. 나와 내 사랑하는 가족과 형제 자매, 또한 내 친구, 내 이웃, 우리 대한민국과 뉴질랜드와 세계 모든 민족과 인종을 향해 열려있는 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땅의 모든 이들이 다함께 구원의 길을 걷기를 원하십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의 삶에는 수많은 길이 있습니다. 종교와 신앙이라는 이름 아래에도 무수히 많은 길이 있습니다. 어느 길이 좋은 길인가요? 예수님 걸어가신 길입니다. 

  

예수님 걸어가신 새로운 살 길, 예수님 걸어가신 헌신의 길, 예수님 걸어가신 구원의 길, 그 길을 따라가야 천국문에 이르게 됩니다. 가장 좋은 길, 아름다운 길, 생명을 살리기 위해 걸어가신 예수님의 십자가의 길, 그 길 따라 걷는 저와 여러분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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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게시물은 일요시사님에 의해 2021-04-03 22:14:26 교민뉴스에서 복사 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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