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원스님-소은이의 소원

불교/원불교


 

성원스님-소은이의 소원

일요시사 0 1643
은 사람들이 세상을 전쟁터로 비유하곤 한다. 전쟁이라는 살벌한 표현을 빌리지 않는다 하더라도 정말 세상은 멈출 수 없는 무수한 경쟁 속에서 모든 일들이 진행된다. 봄이 온다고 많은 사람들이 상춘객이 되어 길을 나선다. 하지만 자세히 살펴보면 봄도 무수한 경쟁의 산물이다. 새순이 돋아나는 모습을 자세히 살펴본 적이 있는가? 가히 전쟁이라고 아니 할 수 없을 정도다. 그러니 많은 시인문객들이 ‘꽃이 앞 다투어 핀다’고 하지 않았던가!

자신의 마음 속 소원까지도 
다툼 벌이는 어른들과 달리
적별보궁 앞에 선 리틀붓다
망설임 없이 타인 위해 기도

올해도 어김없이 치열한 전쟁을 치르고 봄꽃들이 솟아 오르고 있다. 우리들은 달팽이 뿔 위의 일같이 세세한 것까지는 알 것 없고 그냥 즐기기만 하면 된다. 우리와 직접적이지 않은 일들은 그냥 두더라도 우리 곁의 투쟁에 가까운 경쟁들은 관찰하지 않을 수 없다.

많은 사람들이 기도한다고 하지만 사실 전쟁에 가깝다. 스님들끼리 모여 이야기하다보면 실감난다. 신도들의 기도동참을 받아 축원하다보면 기도도 만만찮은 경쟁의 구도라는 것을 금방 알 수 있다.

심지어는 스님의 축원 순서까지 일일이 헤아렸다가 자신의 축원을 먼저 해 주지 않는다고 따지기 일쑤다. 정말 원만히 주지를 산다는 게 그리 호락호락하지만은 않은 일이다.

어른들은 자신들의 소원들마저 자신의 마음속에서 다투듯 경쟁한다는 것을 모르고 있는 걸까? 대부분의 경우 자녀의 입시가 가장 큰 소원인건 틀림이 없다. 별로 신심이 없이 가끔씩 절에 나타나던 보살 한 분이 입시기도를 시작하면서 100일 동안 하루도 빠지지 않고 새벽기도에 동참하는 것을 보고 놀란 적이 있다. 이러니 입시부정을 저질러 놓고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던 사람들이 결국 거의 모든 자신의 권리를 나라로부터 제한 받게 된 것은 피할 수 없는 결과라 할 것이다. 

기도의 성취가 주는 결과물은 어쩌면 부산물일지도 모른다. 기도하는 그 엄청나게 힘겨운 과정에서 이루어지는 성숙함이 더 아름답기 때문이다. 

지난해 전국불교합창제를 마치고 상원사를 참배했다. 자상한 주지 스님으로부터 상원사 문수동자 이야기를 듣는 리틀 붓다의 눈빛은 아스라한 오대산의 별빛보다 더 빛났다. 이야기를 마칠쯤 문수전 앞 탑둘레에 소원지를 달고 있는데 “누구 한사람 소원이 있으면 달아 주겠다”며 손을 들어보라고 했다. 평소 별로 두각을 나타내지 않던 소은이가 거침없이 손을 번쩍 들었다. 소원지를 주면서 물었다.

“우리 소은이는 무슨 소원을 쓸 거야?” 우문에 명답이라 했던가? 너무나도 당당하게 “우리 성원 스님 건강하시라고 쓸꺼예요!”

누군들 소원이 없을까. 힘겹게 올라선 적멸보궁 앞에서는 없던 소원도 생겨나 올리고 싶은 심정이 일어난다. 하지만 우리 리틀 붓다는 그 모든 소원 다 접어두고 거침없이 이리 말하고 소원을 적으니 참으로 황망하기까지 했다.

가끔 누군가가 “정말 스님 좋아해요”라고 하면 나는 말하곤 했다. “아무리 그렇게 말해도 세상 사람들은 내가 상대를 사랑하는 크기의 그림자만큼만 나를 사랑한다”고 말이다. 하지만 특별히 아무것도 해주지 못한 우리 소은이의 거침없는 사랑 앞에 자신이 너무나 부끄러워지는 걸 봤다.

부처가 되겠다는 원을 잠시 내려놓고 중생구제의 서원으로 우리 앞에 나투신 지장대성존처럼 나도 언젠가 나의 모든 소원 다 내려놓고 누군가를 위해 아낌없는 기도를 해 드리고 싶다.

주지 않는 사랑이 돌아오는 일이 어디 있으랴. 이제 소은이와 어린 부처님들께 부족하기만 했던 나 자신의 사랑을 이 봄에는 조금이나마 갚을 수 있었으면 좋겠다. 넘치게 사랑하자! 넘치게 사랑받고 싶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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