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질랜드 이민 열전(4-4) 남국정사 주지 동진 스님

불교/원불교


 

뉴질랜드 이민 열전(4-4) 남국정사 주지 동진 스님

일요시사 0 2931

대웅전 건립 중창불사에 힘을 모아 주세요


나누는 삶사는 한인 사회 됐으면불자와 교민들에게 고마움 전해

 

올해 제 나이가 예순입니다. 등산으로 치면 정상에 올랐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럼 이제는 내려가야 합니다. 정상에 계속 있을 수는 없습니다. 하산하다가 땀을 흘리며 올라가는 사람을 만나면 정상이 멀지 않았으니 힘을 내 걸으라고 해야 합니다. 등산보다 하산이 더 중요합니다. 저의 뉴질랜드 불사도 그렇습니다. 뒷세대를 위해 내려놓아야 합니다. 그래서 남국정사를 떠나는 것입니다.”



내 뒷모습은 어떨까?”

 가끔 이런 생각을 해 본다.

 “내 뒷모습은 어떨까?”

 고개를 돌려 볼 수도 없고, 뒷걸음질을 쳐도 잡을 수 없는 내 뒷모습. 어쩌면 숱한 후회로 점철된 내 삶이 부끄러워 돌아보고 싶지 않은지도 모른다. 그래서 오늘도 뚜벅뚜벅 앞을 향해 걷는다. 지나간 것을 잊기 위해 애써 그런다.

 동진 스님의 뒷모습을 유심히 지켜본 적이 있다. 어쩌면 훔쳐봤다고 하는 게 솔직한 표현일 것이다. 깊은 산사(山寺)에서나 만날 수 있는 고승을 기대해서 그랬다고 본다. 성직자라면 뒷모습도 성()스러워야 한다고 내심 생각했다.  

 

우리 스님은 프리미엄급 고승

 “우리 스님은 프리미엄급(최고급) 고승입니다. 문화, 예술, 종교, 사회 등 모든 분야에서 뛰어나십니다. 지나친 아부일지는 모르겠지만 뉴질랜드에 계시기에는 조금 아까운 스님이십니다.”

 10년 넘게 스님과 교류를 맺어 온 한 불자의 얘기다. 그의 스님 자랑은 끝이 없었다. 작별의 아쉬움이 크게 느껴졌다. 한 사람의 인덕은 그 사람이 떠날 때 알 수 있다.

 옆에서 조용히 차를 마시던 스님이 입을 열었다.

 “올해 제 나이가 예순입니다. 등산으로 치면 정상에 올랐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럼 이제는 내려가야 합니다. 정상에 계속 있을 수는 없습니다. 하산하다가 땀을 흘리며 올라가는 사람을 만나면 정상이 멀지 않았으니 힘을 내 걸으라고 해야 합니다. 등산보다 하산이 더 중요합니다. 저의 뉴질랜드 불사도 그렇습니다. 뒷세대를 위해 내려놓아야 합니다. 그래서 남국정사를 떠나는 것입니다.”

 스님의 이어지는 얘기.

 인생은 고독한 존재다. 평생 수행을 해야 하는 스님은 더 그렇다. 혼자 오래 있다 보면 실존의 의미를 실감할 수 있다. 진리를 찾는 수행자는 고독 속에 있어야 한다. 그 가치를 모르면 혼란이 온다.

 그러면서 스님은 대하소설 토지를 쓴 박경리 선생 얘기를 꺼냈다.

 “어느 날 한 기자가 박경리 선생을 찾아가 이렇게 물었다고 합니다. ‘선생님, 외롭지 않으십니까?’라고요. 잘 알다시피 박경리 선생은 신혼 초 남편을 잃고 강원도 원주에서 홀로 살아오신 분입니다. 그분은 그곳에서 텃밭을 일구며 한국 문학에 길이 빛날 토지를 완성했습니다. 느닷없는 기자의 질문에 박경리 선생은 이렇게 되물었답니다. ‘작가가 외롭지 않으면 어떻게 작품을 쓸 수 있겠냐고요. 수행자도 마찬가지입니다. 고독해야 진리에 이를 수 있습니다.”

 

10년 가깝게 <풍경 소리> 칼럼 연재

 동진 스님이 교민 사회에 친근하게 느껴지는 이유 중 하나는 그의 연재 칼럼 <풍경 소리>에 있다. 2주마다 발행되는 교민 잡지 <코리아 포스트>10년 가깝게 실린 이 칼럼은 스님이 남국정사에 부임한 두 해(2007년 초) 뒤 첫 연재를 시작, 며칠 전 나온 215회로 끝을 냈다. 마지막으로 쓴 칼럼의 제목은 <섭섭하게, 그러나 아주 이별이지는 않게>였다.

 “처음에는 이렇게까지 오래 쓸 줄은 몰랐습니다. 제가 승려이기는 하지만 될 수 있으면 불교 색채가 들어가지 않은 글을 쓰려고 노력했습니다. 문화를 중심으로 한 글을 통해 따듯한 마음을 전하고 싶었습니다. 다행히 많은 독자가 제 글을 사랑해주셔서 힘을 얻었습니다. 제게는 뉴질랜드에서 더할 나위 없는 소중한 공간이기도 했습니다. 이 자리를 빌려 독자 여러분께 고마움을 전합니다.”

 

교민들 서로 나누고 살았으면바래

정든 남국정사를 떠나는 스님의 감회는 어떨까?

 “저는 늘 나눔을 염두에 두고 살아왔습니다. 불교 용어로는 보시라고 하지요. 나눔이 없는 신앙은 헛신앙이라고 생각합니다. 그것은 불교든 기독교든 동일하게 주장하는 것입니다. 부디 바라기는 교민들이 서로 나누며 살았으면 좋겠습니다. 나만, 우리 가족만을 생각하는 차원을 넘어서서 교민 사회 전체 공동체를 살펴보는 성숙한 사회가 되었으면 하는 마음입니다.”

 남국정사는 그런 점에서 어느 단체보다 먼저 본을 보였다. 오클랜드 한인회관 건립 기금을 모금할 때 어려운 재정 형편에도 1만 달러를 보시했다. 코리안가든에도 석등을 기증하기로 했다. 그 기운을 이어 다른 종교가 힘을 보탰다. 동진 스님이 남국정사 주지로 있는 동안, 그의 보시 활동은 끝이 없었다. 꼭 돈으로만 한 것이 아니었다. 교민 사회의 정신적 보시가 필요할 때 빠지지 않았다.

 “뒤돌아보면 제가 여러 단체에 발을 들여놓았습니다. 한민족학교와 한인회, 민주평통뉴질랜드협의회 일을 좀 보았습니다. 대단한 일을 한 것은 아니지만 종교의 사회적 책임이라는 큰 틀 안에서 활동했다고 자부합니다. 남국정사가 앞으로도 새 주지 스님을 중심으로 교민 사회에 애정을 가지고 정신적 보시를 해주면 좋겠습니다.”

 

대웅전 건립에 많은 불자 도움 부탁

 동진 스님은 마음이 분주하다. 떠날 날이 며칠 안 남았기 때문이다. 새 주지 스님에게 업무를 인계해 주어야 하고, 신도들의 슬픈 마음을 다독여 주어야 한다. 낡은 집을 고쳐 어린이 법당으로 만드는 공사에도 마지막 관심을 두고 있다. 나아가 남국정사의 큰 불사인 대웅전 건립과 승방, 문화원 등 세 동의 중창불사가 잘 진행되도록 뒷받침을 해주려고 한다. 중창불사는 올해 말 또는 내년 초부터 본격적인 공사에 들어가, 뉴질랜드에서 한국 불교를 대표하는 사찰로 자리매김할 구상을 하고 있다.

 “오래전부터 남국정사에 터를 마련해 놓고도 사찰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대웅전 건립을 하지 못해 마음 한구석이 불편했습니다. 이제 대웅전 등 사찰에 꼭 있어야 할 건축물들을 차근차근 건축할 계획입니다. 물론 후임 주지 스님이 일을 맡아 하겠지만 저 역시 힘이 닿는 한 애쓰려고 합니다. 많은 불자의 도움을 부탁합니다.”

 

칠곡 망월사에서 불제자 길 이어가

 동진 스님은 426일 한국으로 돌아간다. 스님은 경북 칠곡에 있는 망월사(望月寺)와 몇 군데의 사찰에서 다시 불제자의 길을 이어갈 계획이다. 스님이 뉴질랜드에 오기 전, 오랫동안 불사를 해온 절이다.

 “오고 가는 소식이 모두 좋은 것만 있었으면 합니다. 10여 년을 한결같이 부처님 사랑으로 돌봐준 남국정사 신도들과 모든 교민께 감사 인사를 드립니다. 그동안 정말로 고마웠습니다. 모두 행복하시기를 빕니다.”<>

_프리랜서 박성기

 


[이 게시물은 일요시…님에 의해 2016-04-27 16:09:29 뉴질랜드 Story에서 복사 됨] [이 게시물은 일요시…님에 의해 2016-05-05 15:53:42 청소년상담에서 복사 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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