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원상서원문 [一圓相誓願文]이란?
개요
1938년(원기23) 11월경에 소태산대종사가 직접 지은 경문으로, 《정전》 교의편 제1장 ‘일원상’ 제4절에 있는 글. 소태산이 깨달은 일원상의 진리를 모든 사람이 함께 깨치고 일상생활에 활용하여 마침내 일원상의 진리와 합일되도록 간절히 서원을 올린다는 내용. 306자의 짧은 내용이지만, 일원상의 진리ㆍ사은ㆍ삼학ㆍ인과의 이치 등 원불교의 기본교리가 집약되어 있으며 원불교의 진리관ㆍ신앙관ㆍ수행관ㆍ우주관 등이 담겨 있다.
형성과정
일원상서원문은 소태산의 일원상 사상 또는 일원상이라는 표현에서 비롯된다. 소태산은 대각을 이루고 “만유가 한 체성이며 만법이 한 근원이로다. 이 가운데 생멸 없는 도와 인과보응 되는 이치가 서로 바탕 하여 한 두렷한 기틀을 지었도다”라고 대각의 심경을 표현했다. 여기서 ‘한(一) 두렷한(圓) 기틀(相)’을 일원상의 표현이라 할 수 있다. 이어 경축가에서 “일원대원 될 것이니 경축가나 불러보세”라 하여 일원이란 표현을 직접적으로 했다.
1918년(원기3) 10월에 방언공사 중 구간도실 상량문에 “사원기일월 직춘추법려 송수만목여춘립 계합천봉세우명(梭圓機日月 織春秋法呂 松樹萬木餘春立 溪合千峰細雨鳴)”(《원불교교사》 제2편 제4장)이라 했는데, 이 글귀 가운데 ‘사원기일월’에서 일원상의 의미가 드러나 있다. 1919년(원기4) 방언공사를 마친 후 소태산은 정산종사에게 ‘일원’을 운으로 시를 짓게 했다. 이에 정산은 ‘만유화위일 천지시대원(萬有和爲一 天地是大圓)’이라 했다(《정산종사법어》 기연편2). 그러다가 1919년(원기4) 8월 소태산은 금산사에 잠시 머무는 동안 별채 문미에 그림으로써 일원상을 표현했다(《원불교교사》 제2편 제5장).
1935년(원기20)에 《조선불교혁신론》에서 ‘등상불 신앙을 불성 일원상으로’, ‘불성일원상조성법’ 등이 나타나 있는 것으로 보아 과거불교에 대한 새 불법의 상징으로 일원상을 구상했음을 알 수 있다(《원불교교고총간》 제4권). 1935년(원기20) 8월에 인쇄된 《예전》에서 상장 시에 복표에 흑색 일원상을 그려서 왼쪽 가슴에 부착하도록 하는 조항을 둘 정도로 일원상의 표현이 일반화되어 갔다.
1937년(원기22) 4월에 발표한 송도성의 ‘신앙과 수양’이라는 글 속에서 심불일원상과 일원이라는 표현을 했다. 1937년(원기22) 9월, 하선 해제식에서 소태산은 ‘일원상을 모본하라’는 제목으로 일원상에 관련한 법어를 대중에게 처음 전했고, 동년 동월 정산은 〈일원상에 대하여〉라는 논문에서 일원상의 진리, 일원상 신앙하는 법, 일원상 숭배하는 법, 일원상 체받는 법, 일원상 이용하는 법 등을 밝힘으로써 일원상 사상에 대한 이론적 체계를 제시했다.
1938년(원기23) 소태산은 《회보》에 ‘일원상과 인간과의 관계’라는 법설과 ‘심불일원상봉안법’이라는 규정을 발표했다. 동년 11월 동선에서 ‘심불일원상내역급서원문’을 발표했고, 1939년(원기24) 《불법연구회근행법》에 ‘심불일원상서원문’(《원불교교고총간》 제4권)으로 발표되었다. 1940년(원기25) 《불법연구회근행법》의 ‘심불일원상서원문’이란 제목을 ‘일원상서원문’으로 고치며 일부 자구를 수정하게 되었고, 그 내용이 1943(원기28) 3월에 편수된 《불교정전》에 삽입되어 지금에 이르고 있다.
구조와 내용
일원상서원문의 구조는 크게 본체론(본원론), 현상론(차별론), 수행론(도덕론), 성인론(서원론)의 4단계로 그 구조를 분석할 수 있다. 4단계의 구조는 ‘일원은 언어도단의 입정처이요~성품으로까지’가 본체론이고, ‘능이성유상~무량세계를 전개했나니’까지가 현상론이며, ‘우리 어리석은 중생은~지성으로 하여’까지가 수행론이며, ‘진급이 되고~합하도록까지 서원함’까지가 성인론에 해당된다.
① 본체론: ‘일원은 언어도단의 입정처이요, 유무초월의 생사문인 바, 천지ㆍ부모ㆍ동포ㆍ법률의 본원이요, 제불ㆍ조사ㆍ범부ㆍ중생의 성품으로’까지이다. 이 본체론은 진리의 양면성을 들어 일원의 진리 실상 내지는 모습을 나타내고 있다. 그 진리를 다시 사은과 관련시켜서 일원이 천지ㆍ부모ㆍ동포ㆍ법률의 본원임을 설명했고, 더 나아가 인간의 심성에 관련지어 일원의 실상을 가르쳐 주고 있다. ‘일원은 언어도단의 입정처’는 우주만유를 주재하는 궁극적 진리인 일원의 자리는 말과 글의 길이 끊어져 말로 이르지 못하고, 생각으로 헤아리지 못하며, 형상으로 그리지 못하고, 동작으로 나투지 못할 진리의 지극한 자리 곧 ‘일념미생전ㆍ천지미분전’의 한 생각 거둔 자리를 말한다.
그래서 그 자리는 가르쳐줄 수도 없고, 생각으로 상상할 수도 없고, 개념화할 수 없는 일체 분별이 끊어진 원적무별의 진경 자리를 뜻한다. ‘유무초월의 생사문’은 진리의 작용적인 면을 나타낸 것이다. 일원의 진리는 유라고도 말할 수 없고 무라고도 말할 수 없는 근원적인 묘체로서 인간과 만물의 나고 죽는 이치가 모두 이 진리의 신비로운 작용에서 비롯한다는 것이다.
정산은 유는 무로 무는 유로 순환불궁하기 때문에 유라고도 할 수 없고, 무라고도 할 수 없기에 초월이요(有無兩者 循環不窮 故曰超越), 생과 사가 유와 무에서 나타나니 생사문(生死兩者 現於有無 故曰 生死門)이라 했다. 없다 하자니 생사로써 변화무쌍하니 유도 아니요 무도 아닌 유무초월이라는 것이다. 이를 마음에 비유하면 일체분별이 다 끊어졌으나 또한 일체분별이 그 가운데서 나오는 것과 같은 것이다. 천지ㆍ부모ㆍ동포ㆍ법률의 본원은 일원의 진리가 천지만물의 근본 원리요 사은의 본원이라는 것이다. 곧 만물의 뿌리가 바로 일원상 진리이며, 만물의 궁극적 귀의처가 일원상 진리라는 것이다(장응철, 《마음달 허공에 뜨다》).
그래서 일원은 사은의 모체가 되고, 사은은 일원의 분화신으로서 하나가 곧 전체요 진리가 곧 현실이다. 천지는 곧 일원의 진리요, 그 실재이며, 부모와 동포는 일원의 한 포태 안에서 한 기운을 이어받아 자라난 것이요, 법률은 일원의 진리 즉 하늘의 도를 본받아서 인간이 행해야 할 도리를 밝힌 것이다. 이는 일원의 진리가 없이는 우주만물의 생성 변화 존재가 불가능한 것이기에 우주만유 또는 사은의 본원이 되는 것이며, 관계적인 측면에서 볼 때에는 서로 없어서는 살 수 없는 관계가 있기에 본원이라 한 것이다. 제불ㆍ조사ㆍ범부ㆍ중생의 성품은 일원의 진리를 심성적인 측면에서 본 것이다.
소태산은 마음이 곧 부처라 했고, 정산도 마음이 곧 부처요 성품이 곧 법이라 한 것처럼 마음 밖에 따로 진리의 당체가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일체중생의 성품은 본래 평등한 것이며 그 자체는 고요하고 청정하여 한 티끌이 없는 것으로 모든 부처님이나 조사들이나 범부 중생의 본래 마음이 같아서 누구나 닦으면 부처가 될 수 있는 성질과 요소가 갊아 있음을 말한다. 이처럼 일원의 진리는 모든 생령들의 마음 바탕이고, 그 마음 바탕인 성품자리는 다 같은 것으로서 제불조사나 범부 중생에 차별이 없음을 밝힘과 동시에 누구나 수행을 잘하여 그 자리를 회복하면 부처가 될 수 있다는 대희망을 제시해 준 것이다.
② 현상론: ‘능이성유상하고 능이성무상하여 유상으로 보면 상주불멸로 여여 자연하여 무량세계를 전개했고, 무상으로 보면 우주의 성ㆍ주ㆍ괴ㆍ공과 만물의 생ㆍ로ㆍ병ㆍ사와 사생의 심신작용을 따라 육도로 변화를 시켜 혹은 진급으로 혹은 강급으로 혹은 은생어해로 혹은 해생어은으로 이와 같이 무량세계를 전개했나니’까지이다. 이 현상론은 진리의 양면성 곧 불변의 측면인 유상의 내용과 변화의 측면인 무상의 내용을 들어 일원의 진리를 이해하도록 하고 있다.
그러나 이 유상과 무상이라는 개념은 진리를 인식하기 위해 사용된 개념일 뿐이지 진리가 원래 두 면으로 나뉘어진 것이 아니다. ‘능이성유상하고 능이성무상하여’는 진리의 양면성을 나타내고 있는 것이다. 일원의 진리 그 자체는 유상도 없고 무상도 없는 것이나 한 기운이 정하면 능히 유상을 이루고, 한 기운이 동하면 능히 무상을 이루는 것이다. 일찍이 소태산은 “만유가 한 체성이며 만법이 한 근원이로다. 이 가운데 생멸 없는 도(道)와 인과보응되는 이치가 서로 바탕 하여 한 두렷한 기틀을 지었도다”(《대종경》 서품1)라고 한 것처럼 일원의 진리는 한 두렷한 기틀이나 그 속성을 보면 생멸 없는 도와 인과보응 되는 이치가 서로 바탕 하여 작용하는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볼 때 유상과 무상은 진리를 설명하는 하나의 방식으로 유상은 불변하는 자리로서 불생불멸을 나타내고 있고, 무상은 변하는 자리로서 인과보응을 나타내고 있는 것이다. ‘유상으로 보면 상주불멸로 여여자연하여 무량세계를 전개했고’는 변하지 않는 진리의 안목으로 보면 천만 가지로 변화하는 가운데 과거 무시이래로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조금도 변화와 증감이 없이 여여자연하여 무량세계가 전개되어 왔고, 앞으로도 영원무궁토록 변함없이 전개되어 간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진리는 원래 원만구족하게 다 갖추어 있어서 모자라고 남는 것이 없어서 채우고 버릴 것이 없으며, 천만 가지로 변화하면서 항상 그대로 있어 생멸거래가 없이 영원히 존재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는 일원상의 진리가 시간적으로나 공간적으로 고금을 통하여 여여불변의 조화를 나타내는 것임을 의미한다. ‘무상으로 보면 우주의 성ㆍ주ㆍ괴ㆍ공과 만물의 생ㆍ로ㆍ병ㆍ사와 사생의 심신작용을 따라 육도로 변화를 시켜 혹은 진급으로 혹은 강급으로 혹은 은생어해로 혹은 해생어은으로 이와 같이 무량세계를 전개했나니’는 우주를 무상 곧 변하는 진리로 보면 그대로 머물러 있는 것이 하나도 없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 변해지는 것이 아무 원칙이 없이 변해지는 것이 아니라 진리의 순환하는 원칙이 있어 음양상승의 도를 따라 상생ㆍ상극의 과보로, 인과보응의 이치에 따라 변화되어 간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사생의 심신작용을 따라 선악 간 각자의 지은대로 받아 육도로 변화하여 진급 또는 강급하게 되고 그러는 가운데 또는 은혜가 해에서 나오기도 하고, 해가 은혜에서 나오기도 하여 이와 같이 무량세계가 전개됨을 밝힌 것이다.
③ 수행론: ‘우리 어리석은 중생은 이 법신불 일원상을 체받아서 심신을 원만하게 수호하는 공부를 하며, 또는 사리를 원만하게 아는 공부를 하며, 또는 심신을 원만하게 사용하는 공부를 지성으로 하여’까지이다. 수행론은 앞서 밝힌 진리의 실상적인 면과 작용적인 면을 근본해서 그 진리에 합일해 가는 방법을 제시한 내용이다. 우리 어리석은 중생은 이 법신불 일원상을 체받아서는 일원의 진리를 깨치지 못한 사람들은 근원 진리인 일원상의 진리를 확고히 믿음과 동시에 수행의 표준을 삼아 그대로 닮아가는 공부를 한다는 뜻이다. 곧 법신불전에 이 일원상의 진리를 믿고 체받아 수행하여 이 진리를 깨달아서 견성ㆍ성불ㆍ제중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기까지 끊임없이 수행 적공할 것을 서약하는 것을 의미한다.
‘심신을 원만하게 수호하는 공부를 하며, 또는 사리를 원만하게 아는 공부를 하며, 또는 심신을 원만하게 사용하는 공부를 지성으로 하여’는 일원의 진리에 합일하기 위한 구체적인 세 가지 수행 방법이요, 중생이 부처되는 가장 원만한 길인 것이다. 심신을 원만하게 수호하는 공부를 한다는 것은 각자의 마음과 몸을 잘 지키는 공부다. 마치 원만구족하고 지공무사한 진리처럼 내 몸과 마음을 잘 지키고 잘 수호함을 말한다. 곧 정신수양이라는 수양공부를 통해 각자의 자성자리를 잘 지키고 함양하여 동정간에 자성을 여의지 않게 하는 것을 말한다.
이 공부 방법으로는 염불과 좌선 과목이 있다. 사리를 원만하게 아는 공부를 한다는 것은 걸림 없이 아는 공부를 하는 것이다. 일원의 진리가 공적영지의 광명을 따라 소소영령하게 밝은 것처럼 우리 중생도 일의 대소유무와 시비이해의 이치를 걸림 없이 아는 지혜를 닦아가는 것을 말한다. 즉 천조의 대소유무와 인간의 시비이해를 깊이 연마하고 궁구하여 천만사리에 걸리고 막힘이 없는 각자의 원만한 지혜의 힘을 기르는 공부를 말하는 것이다. 이 사리연구 과목으로는 경전ㆍ강연ㆍ회화ㆍ의두ㆍ성리ㆍ정기일기 등이 있다.
심신을 원만하게 사용하는 공부는 동정간에 심신을 적재적소에 잘 쓰는 공부다. 안ㆍ이ㆍ비ㆍ설ㆍ신ㆍ의 육근을 작용할 때에 정의는 죽기로써 행하고, 불의는 죽기로써 버리는 공부길이다. 마치 일원의 진리가 진공묘유의 조화를 드러내듯이 우리도 동정간에 심신작용을 원만구족하고 지공무사하게 할 수 있는 힘을 기르자는 것이다. 이 공부는 일원의 진리를 체받아서 육근을 작용할 때에 불편불의하고 과불급이 없는 원만행을 하자는 것이다. 이 작업취사의 공부에는 상시일기ㆍ주의ㆍ조행 등의 과목이 있다.
이와 같이 법신불 일원상을 체받아서 삼학공부를 오래오래 계속하면 삼대력을 얻어 결국 성불에 이르게 될 것이며, 더 나아가 삼계의 대도사가 되어 시방삼세가 다 나의 소유가 되고, 시방세계가 다 나의 집이 되며, 일체중생이 다 나의 권속이 되어 국한을 벗어나 천지의 주인이 되어 큰살림을 맡게 된다.
④ 성인론: ‘진급이 되고 은혜는 입을지언정, 강급이 되고 해독은 입지 아니하기로써 일원의 위력을 얻도록까지 서원하고 일원의 체성에 합하도록까지 서원함’까지이다. 이 성인론은 일원상의 진리를 신앙의 대상과 수행의 표본으로 삼고 성인 또는 부처가 될 때까지 간절히 서원한다는 내용이다. ‘진급이 되고 은혜는 입을지언정, 강급이 되고 해독은 입지 아니하기로써’는 우리가 육근을 작용할 때에 진리와 자성 그리고 법을 여의지 않는 정의행을 하라는 것이다. 그래야 늘 진급이 되고 법신불 사은으로부터 끊임없는 은혜(복락)를 받게 되는 이치가 있기 때문이다.
그 반대로 육근을 잘못 사용하게 되면 자신이 강급이 되고 사은으로부터 은혜가 아닌 해독(죄고)을 받게 됨을 가르쳐준 것이다. 일원의 위력을 얻도록까지 서원하고 일원의 체성에 합하도록까지 서원한다는 것은 진리를 여의지 아니함으로써 늘 진급이 되고 사은으로부터 은혜를 입고, ‘천지미분전ㆍ일념미생전’의 본래 마음 내지는 성품에 합일하기를 간절히 서원한다는 것이다. 이처럼 일원의 위력을 얻고 일원의 체성에 합한다는 것은 곧 일원의 진리와 내가 하나가 된 삶을 살아간다는 것이다.
일원의 위력을 얻는다는 것은 곧 진리를 내 마음대로 부려 쓴다는 것이요, 일원의 체성에 합한다는 것은 내가 곧 진리가 되고, 진리가 곧 내가 된다는 것이다. 대산종사는 “마음에 사사가 끊어지면 일원의 위력을 얻고, 마음에 망념이 쉬면 체성에 합하게 된다”(《정전대의》)고 했다.
결국 일원상서원문은 진리를 깨우쳐주기 위해 진리의 덩치를 말하여 주고 다시 그 진리를 우주만유와 관련 시켜서 설명했고, 이를 다시 인간의 심성에 연결시켜 드러내 준 글이다. 더 나아가 진리의 불변의 이치와 변화의 이치를 들어 그 양면의 내역을 소상히 밝혀 진리의 모습을 드러내고, 수행론에서는 깨치지 못한 자들로 하여금 앞서 밝힌 그 진리를 표준잡고 끊임없이 수행 정진해 감으로써 진리의 위력을 얻고 그 진리에 합일하도록 한 소태산의 법문이다.
일원상서원문의 의의
일원상서원문은 심불(心佛) 전에 불과(佛果)를 얻으려는 간절하고도 지극한 원(願)으로서 법계에 서약을 올리는 글이다. 이 서원은 자신과 법신불간에 불과를 서약한 것이니 그 지극한 원력이 시방에 충만하면 대불과를 얻게 되어 결국 천지 같은 무궁한 도덕을 갊아서 한량없는 광명과 수명과 덕행을 갖추게 된다. 그러므로 삼세제불이 다 최초 서원 일념으로 부처를 이룰 것이며, 이 서약문이 바로 불조가 되려는 서약서인 것이다.
이 서원문은 소태산의 즉흥적인 감상에서 나와진 것이 아니요 구원겁래에 큰 서원을 세우고 깨달은 진리와 밟아 온 경륜을 통해 밝혀 준 경문으로 후래 대중이 이 길을 밟아 다 같이 견성성불하여 불보살이 되도록 대자비를 베풀어 준 부촉의 경문이며, 소태산의 서원이요 삼세제불과 일체 수행인의 서원이기도 하다. 〈白光文〉