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원불교

대소유무 [大小有無]란?

일요시사 0 159

개요

우주의 본체와 현상과 변화를 설명하는 말. 대(大)란 우주만유의 근본적인 본체를 말하고, 소(小)란 천차만별ㆍ형형색색으로 나타나 있는 현상의 차별세계를 말한다. 따라서 대(大)라는 것은 우주의 진리ㆍ본체ㆍ실체를 말하는 것이고, 소(小)라는 것은 우주의 삼라만상을 말하는 것이다. 유무(有無)란 우주의 조화ㆍ변화를 말한다. 그러므로 육도사생ㆍ남녀노소ㆍ빈부귀천ㆍ동물식물 등은 우주의 소에 해당하고, 밤낮의 변화, 인간과 만물의 생로병사, 춘하추동의 변화, 풍운우로상설의 변화, 역사의 흥망성쇠 등은 유무에 해당한다.

 

내용

대소유무를 사람의 마음에 비유해 보면, 대란 진리와 합일한 인간의 본래마음, 소란 경계 따라 일어나는 분별심, 유무란 시시각각 일어났다 없어졌다 하는 마음의 변화를 말한다. 대소유무의 이치를 깨쳐 마음대로 활용하는 사람이 곧 부처이다. 대소유무는 소태산대종사가 우주의 진리를 설명하는 특유의 범주이다. 소태산은 삼학 중 사리연구의 연구대상을 사와 이로 구분하고 있는데 사를 시비이해, 이를 대소유무로 범주화하고 있다. 

 

《정전》과 《대종경》에서는 대소유무로써 진리에 접근하는 구도를 여러 곳에서 찾아볼 수 있다. 우선 《정전》 ‘일원상의 진리’에서는 “일원은 우주만유의 본원이며, 제불제성의 심인이며, 일체중생의 본성이며, 대소유무에 분별이 없는 자리며, 생멸거래에 변함이 없는 자리며, 선악업보가 끊어진 자리며, 언어명상이 돈공한 자리”라 하여 대소유무를 분별의 틀로써 사용하고 있으며, 이로부터 대소유무에 분별이 나타나서 시방세계가 드러나는 것으로 말하고 있다. 일원상의 신앙에서는 이러한 대소유무의 분별 없음과 분별 있음을 믿는 것이 일원상 신앙이라 말한다. 

 

사리연구 조항에서는 ‘이 세상은 대소유무의 이치로서 건설되고 시비이해의 일로써 운전해 가나니’라 하여 사리연구의 대상이 됨을 말한다. 이 이치를 모르면 우연히 돌아오는 고락의 원인을 모를 것이며, 생각이 단촉하고 마음이 편협하여 생로병사와 인과보응의 이치를 모를 것이며, 사실과 허위를 분간하지 못하여 항상 허망하고 요행한 데 떨어져, 결국은 패가망신의 지경에 이르게 될 것이라 경고한다. 그렇다면 대소유무의 이치는 천조의 난측한 이치와 동일한 것으로써 고락의 원인, 생로병사와 인과보응의 이치, 사실과 허위를 분간하는 기준 따위를 망라하고 있는 개념임을 알게 된다. 

 

그래서 팔조 가운데 우(愚)에 대한 설명을 하면서 “우라 함은 대소유무와 시비이해를 전연 알지 못하고 자행자지함을 이름이니라”고 말한다. 어리석음은 대소유무와 시비이해에 대한 어리석음이라는 것이다. 어리석음을 벗어나서 지혜를 밝히는 사리연구 공부가운데 정기훈련 11과목의 하나인 ‘의두’ 또한 “대소유무의 이치와 시비이해의 일이며 과거 불조의 화두 중에서 의심나는 제목을 연구하여 감정을 얻게 하는 것이니, 이는 연구의 깊은 경지를 밟는 공부인에게 사리 간 명확한 분석을 얻도록 함이요”라 말하여 의두의 대상이 대소유무의 이치임을 알게 한다. 

 

또한 사리연구의 정기훈련 11과목 중 다른 하나인 ‘감각감상’도 ‘대소유무의 이치가 밝아지는 정도를 대조하게 함’이라 하고 있다. 대소유무는 사리연구의 대상이므로 법위등급에서도 대소유무는 법위를 가늠하는 잣대가 된다. 법강항마위 조항을 보면 ‘대소유무의 이치에 걸림이 없으며’라는 내용이 있으며, 출가위 조항에는 ‘대소유무의 이치를 따라 인간의 시비이해를 건설하며’라는 조항을 두고 있다. 뿐만 아니라 소태산은 일상생활 가운데 경전을 발견하라는 법문 또한 대소유무와 시비이해의 구도로 전개하고 있다. 

 

“그대들 가운데 누가 능히 끊임없이 읽을 수 있는 경전을 발견했는가. 세상 사람들은 사서삼경(四書三經)이나 팔만장경이나 기타 교회의 서적들만이 경전인 줄로 알고 현실로 나타나 있는 큰 경전은 알지 못하나니 어찌 답답한 일이 아니리요. 사람이 만일 참된 정신을 가지고 본다면 이 세상 모든 것이 하나도 경전 아님이 없나니, 눈을 뜨면 곧 경전을 볼 것이요, 귀를 기울이면 곧 경전을 들을 것이요, 말을 하면 곧 경전을 읽을 것이요, 동하면 곧 경전을 활용하여 언제 어디서나 조금도 끊임없이 경전이 전개되나니라. 

 

무릇, 경전이라 하는 것은 일과 이치의 두 가지를 밝혀 놓은 것이니, 일에는 시비이해를 분석하고 이치에는 대소유무를 밝히어, 우리 인생으로 하여금 방향을 정하고 인도를 밟도록 인도하는 것이라, 유교 불교의 모든 경전과 다른 교회의 모든 글들을 통하여 본다 하여도 다 여기에 벗어남이 없으리라. 그러나 일과 이치가 글에 있는 것이 아니라 세상 전체가 곧 일과 이치 그것이니 우리 인생은 일과 이치 가운데에 나서 일과 이치 가운데에 살다가 일과 이치 가운데에 죽고 다시 일과 이치 가운데에 나는 것이므로 일과 이치는 인생이 여의지 못할 깊은 관계가 있는 것이며 세상은 일과 이치를 그대로 펴 놓은 경전이라, 우리는 이 경전 가운데 시비선악의 많은 일들을 잘 보아서 옳고 이로운 일을 취하여 행하고 그르고 해될 일은 놓으며, 또는 대소유무의 모든 이치를 잘 보아서 그 근본에 깨침이 있어야 할 것이니, 그런다면 이것이 산 경전이 아니고 무엇이리요. 그러므로 나는 그대들에게 많고 번거한 모든 경전을 읽기 전에 먼저 이 현실로 나타나 있는 큰 경전을 잘 읽도록 부탁하노라”(《대종경》 수행품23)라고 했다. 〈鄭玄仁〉

 

출처 : 원불교 대사전 <http://www2.won.or.kr/servlet/wontis.com.root.OpenChannelServlet?tc=wontis.dic.command.RtrvDicRmrkCmd&search_cls=&search_string=&dic_no=08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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