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남, 떠남

천주교


 

만남, 떠남 <성가정성당>

일요시사 0 5680
예수는 예루살렘으로 가고 있다. 목적지는 분명하되, 그 가는 길의 모호성은 뚜렷하다. 사마리아와 갈릴래아 사이, 어떤 마을....특정지울 수 없는 공간의 모호성은 예수를 통해서만 제 가치를 발휘한다. 예수를 향하여 나병환자들이 찾아 들고, 예수로부터 나병환자들은 떠나간다. 이를테면 예수는 길잡이다. 아니 예수는 목적지이거나 출발지다. 하여 예수는 처음이고 마지막이며, 동시에 과정이다.

▲ 그가 어디로 갈지는 모르지만 그의 목적지가 예수였던 것처럼, 그의 출발지 또한 예수다. (이미지 출처 = pexel.com)

나병환자들은 서 있다. 제자리에 서 있다. 그것도 예수와 멀찍이 떨어진 곳에 서 있다. 예수는 마을로 들어가고 있었으나 나환자들은 서 있다. 움직임이 없다. 그들의 움직임을 굳이 캐묻자면 예수와 멀어져 사제들에게 향할 때 정도다. 나병환자들과 예수 사이에 유일한 연결고리는 "예수님, 스승님!"이라는, 멀찍이 떨어진 곳에서 울린 큰 소리뿐이다. 나병환자들은 예수에게 출발했으나 도착하지 않았고, 예수의 자리는 나병환자들과 겹치지 않았다. 예수는 움직이고 있었으나, 나병환자들은 서 있었다. 그들에게 예수는 목적지였으나 아직 다다르지 못한 목적지였고, 출발지였으나 아직 떠나지 못한 출발지다.

열의 숫자에서 하나가 빠져나온다. 그 하나는 하느님과 예수를 하나로 본다. 하느님을 찬양하며 돌아오는 하나는 예수를 목적지로 하여 자신의 움직임을 시작했고 마쳤다. 사마리아인이였다. 유대 사회로부터 이방인 취급받았고, 유대 사회와 하나되지 못한 사마리아인은 예수의 발 앞에서 예수와 하나된다. 예수는 이 하나됨을 믿음이라 했고, 구원이라 했다.
"일어나 가거라." 예수는 사마리아인에게 새로운, 그러나 모호한 미지의 공간으로 떠나가게 한다. 그가 어디로 갈지, 우린 알 수 없다. 다만 그의 목적지가 예수였던 것처럼, 그의 출발지 또한 예수다. 예수로부터 떠나간 길은 구원받은 길이고, 구원은 대개 루카 복음에서 용서로(루카 5,20), 하느님나라로(18,24-25), 그리고 영원한 생명에로(18,18-30) 수렴된다.

예수는 예루살렘으로 가고 있다. 그 길의 끝은 예수와 하느님의 하나됨, 승천이다.(24,50-53) 루카 복음에서 예수의 한 생은 하느님 현존의 자리인 예루살렘 성전에서 시작하여 예루살렘에서 마친다. 이를테면 예수의 출발지는 하느님이었고, 목적지 또한 하느님이었다. 사마리아인 역시 예수를 통해, 예수로부터 하느님을 출발지이자 목적지로 만났다.

신앙하면서 예수를 부르고, 부르고, 또 부른다. 소리만 무성하고 커져 나갈 뿐, 제 자리를 떠나지도 못한 채 제 삶의 주변만 서성거리다 삶이 끝나지 않기를, 그리하여 믿음도, 구원도 모른 채 예수를 만났다 착각하지 않기를… . 바라고, 바라고, 또 바랄 뿐이다. 


출처 정리 : 박병규 신부(요한 보스코). 
대구가톨릭대학교 인성교육원 소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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