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빌라의 성녀 테레사

천주교


 

아빌라의 성녀 테레사

아빌라 0 2318
47세에 수도원 개혁이라는 대장정을 시작한 테레사는 이후 67세까지 살면서 20여년 동안 17개의 남녀수도원을 창설한다. 그리고 이 시기에 테레사의 저술 작업도 본격적으로 이뤄지게 된다.

첫 발걸음은 소박했다. 지도 신부님은 고결한 영혼을 지닌 테레사에게 책 집필을 요청했고, 테레사는 이에 순명하는 마음으로 자신의 체험을 담담히 기록해 나갔다. 그렇게 나온 것이 불후의 명저인 ‘완덕의 길’과 ‘영혼의 성’ 등이다.

이 과정에서도 테레사는 끊임없이 자신의 병과 싸워야 했다. 병은 평생 동안 그녀를 따라다니며 괴롭혔다. 하지만 그녀는 자신의 고통을 은총으로 받아들였다. 테레사는 그렇게 병의 고통을 자신을 이해할 수 있는, 인간을 이해할 수 있는 가장 큰 은총으로 받아들이고 승화시켰다.

일반적으로 우리는 자신의 몸에 대해 불평한다. 나약함과 못남에 대해 불평한다. 나는 왜 키가 작을까. 나는 왜 코가 낮을까. 나는 왜 머리가 나쁠까….

자신의 약점이 사실은 장점으로 주어진 은총이라는 것을 깨닫지 못하면 나의 존재 의미에 대해 깨닫지 못하게 된다.

하느님께서는 절대로 실수를 하시는 분이 아니다. 나를 지금 있는 모습으로 창조해주신 이유와 목적이 분명히 있다. 이 깊은 섭리의 신비를 나 자신이 깨닫지 못하고 있을 뿐이다. 테레사는 육체적인 나약함과 이로 인한 질병의 고통을 하느님과의 깊은 합치를 이루는데 좋은 도구로써 사용했다. 이러한 조건들은 나 자신을 완성시키는데 있어서 장애물이 아니다. 그것을 받아들이는 사람에 따라서 오히려 도움이 될 수 있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진정한 내면 형성의 길이다.

이제 테레사의 이러한 내면형성은 상호형성으로 이어진다. 내면이 형성되면 이 형성의 신비는 곧 이웃으로 확장되고 파급된다. 테레사는 환자를 돌보는 행위 자체도 사회적 차원에서 하느님과 합치를 이루는데 도구로써 활용했다. 테레사는 자신의 나약함과 약점을 장점으로 승화시키는 초자연적 생활을 한 것이다. 더 나아가 테레사는 자신에게 주어진 수도원이라는 상황을 잘 적응해 나가며, 상황 형성을 했고, 이 상황 형성을 바탕으로 무한히 세계적인 차원으로 이해를 넓힘으로써 세계 형성에 큰 기여를 할 수 있었다. 이러한 세계 형성이 바로 오늘날 모든 이들을 영성적 삶으로 이끌어 주는 저술로 나타나게 된 것이다. 테레사는 이렇게 보석같은 삶을 살아감으로써 형성하는 신적신비의 뜻을 온전히 실현시킨 분이다.

하느님은 이처럼 육체적으로 나약한 한 인간을 세계를 변화시키는 큰 그릇으로 만들어 주실 수 있는 분이다. 문제는 그 하느님의 의지와 섭리에 우리가 얼마나 호응하느냐에 있다. 호응한다면 합치의 신비를 깨달을 수 있지만,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무의미하고 불만족하며 건조하고 불행한 삶을 살아가게 된다.

교회와 사회가 하느님 뜻을 깨닫지 못하고 혼란한 삶을 거듭하던 종교 분열 시기에 태어난 테레사는 탁한 구름과 공해를 깨끗이 벗기고 인간이 누구인지, 세상이 무엇인지, 하느님 당신께서는 어떤 분이신지를 종합적으로 깨닫고 공명적인 신앙의 삶을 살았다. 이런 분을 보내주신 하느님께 감사드려야 한다. 따르고 배울 삶의 모델을 가질 수 있게 해 주셨기 때문이다.

테레사 이후 교회의 모습, 사회의 모습이 많이 달라졌다. 하지만 그만큼 우리가 해야할 몫도 크다. 우리는 테레사 성녀를 본받아 하느님 안에 합치하고 그 합치의 힘으로 교회와 사회를 더욱더 초월적으로 변형시켜 나갈 수 있어야 한다. 또 그러한 힘을 가질 수 있도록 하느님께 겸손하게 청해야 한다. 우리가 당신의 모상으로서 닮은꼴의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늘 지혜와 용기를 허락해 달라고 기도해야 한다.

아빌라의 성녀 테레사는 진정으로 신비신학의 절정에 이르셨던 분이다. 테레사는 그 체험한 것을 과학적으로, 우리가 이해할 수 있도록 저술로 남겼다. 만약 테레사 성녀가 신비 체험을 설명하는 저술을 남기지 않았다면 우리는 영원히 그 신비의 언저리 조차 맛보지 못했을 것이다.

이제 가장 중요한 것이 남았다. 과연 테레사는 무엇을 보았고, 무엇을 체험했느냐 하는 문제다. 테레사 성녀의 영혼의 성은 과연 어떤 모습일까. 그리고 성녀가 말한 기도의 단계는 과연 무엇일까. 그 신비의 세계로 들어가 본다.


정영식 신부(수원 영통성령본당 주임)
최인자 (엘리사벳·선교사)
0 Comments
제목
광고 Space available
Facebook Twitter GooglePlus KakaoStory KakaoTalk NaverBan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