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잔틴 건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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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잔틴 건축

비잔틴 제국 0 4980

비잔틴 건축은 말 그대로 비잔틴 제국의 건축이다. 비잔틴 제국은 멸망한 시기는 1453년으로 명확하지만 건립 시기는 명확하지 않다. 비잔틴이라는 명칭은 콘스탄티노플의 원래 이름인 비잔티움에서 온 것이기 때문에 이것만을 기준으로 하면 이미 동로마 제국부터 비잔틴 제국이 된다. 실제 당시 사람들은 자신들의 나라를 비잔틴이라 부르지 않았고 신로마나 동로마 제국이라 불렀다. 이런 배경 아래 비잔틴 제국의 대체적 정의는 476년에 서로마가 멸망한 뒤 동로마가 남아서 이어진 것으로 볼 수 있다.


비잔틴 제국의 기초를 닦은 것은 유스티니아누스(재위 527~565)였다. 비잔틴 건축 역시 이때 완성되면서 가장 융성했다. 대부분의 건축양식이 초기 때 기초가 잡히고 성기 때 전성기에 도달하는 데 반해 비잔틴 건축은 초창기 유스티니아누스 때가 전성기였다. 그는 기독교권 전체에서 콘스탄티누스와 함께 가장 많은 교회를 지은 황제이며 동방정교 내에서 보면 단연 1등이다. 220여년 앞선 콘스탄티누스와 개인적으로 심한 라이벌 의식을 느끼며 그를 능가하기 위해 교회건축을 크게 일으켰다. 이를 합해서 유스티니아누스 교회라 부른다.

 

 

그릭 크로스와 펜던티브 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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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내용은 그릭 크로스의 평면구성과 펜던티브 돔의 구조기술로 요약할 수 있으며, 아울러 이 두 가지를 실제 건물에 혼합, 응용해서 이전에 서방의 초기기독교 건축에서는 보지 못했던 다양하고 새로운 교회 공간과 구조공법을 창출해냈다. 그릭 크로스는 네 팔의 길이가 같은 정사각형 윤곽의 십자가 형태를 의미한다. 초기 기독교 건축의 바실리카 교회에서 파생한 아래쪽 팔이 긴 라틴 크로스와 교회건축의 짝을 이루는 구성이다. 공간의 느낌과 종류에서 라틴 크로스가 행렬 등 제식에 맞는 선형 공간인 반면 그릭 크로스는 중앙의 크로싱이 초점 역할을 하는 중앙 집중 형 공간이다. 상징성 측면에서도 라틴 크로스가 서방 가톨릭을 대표하는 반면 그릭 크로스는 동방정교를 대표하며 르네상스와 종교개혁 이후에는 신교를 대표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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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스미예의 티카에움(Tychaeum at Mismiyeh). 시리아(Syria). 정사각형을 9등분한 그릭 크로스의 표준형 평면이다.

정사각형 평면 위에 펜던티브를 이용해서 원형 돔 천장을 올리는 원리를 다이어그램으로 보여준다.

 

 

펜던티브 돔은 그릭 크로스의 정사각형 크로싱 위에 원형 천장인 돔을 얹는 기술이다. 로마를 비롯한 서양 건축에는 없던 비잔틴 건축만의 첨단 발명품인데 관건은 정사각형 위에 원형 천장을 얹는다는 사실이다. 판테온에서 완전한 반구를 만드는 돔의 기술이 완성되었다고는 하나 평면은 원형이었다. 이것을 정사각형 평면 위에 얹는 것은 차원을 달리하는 새로운 기술을 요구했다. 평면과 지붕의 형태가 다를 경우 기술의 난이도는 급격히 높아지는데 이 조건을 만족시킨 것이 펜던티브 돔이었다.


펜던티브 돔은 다음의 순서로 지어진다. 첫째, 정사각형 평면을 에워싸는 큰 외접원을 그리고 이것을 평면으로 삼아 큰 반구 천장을 세운다. 둘째, 정사각형 평면의 네 변에서 수직으로 네 장의 벽을 세워 큰 반구 천장을 잘라낸다. 셋째, 네 장의 수직 벽은 단면이 아치형이 되는데 각 아치의 꼭대기 네 곳을 이으면 수직 벽 위에 작은 원형 평면이 만들어진다. 이 평면은 다름 아니라 정사각형 평면의 내접원이다. 넷째, 이 작은 원형 평면 위에 돔 천장을 얹는다. 원형 평면 위에 돔 천장을 얹는 것은 쉽기 때문이다.

 

 

성 소피아 성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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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스티니아누스 교회 가운데 대표작은 단연 성 소피아 성당이다. 주변에 여러 보조시설들이 더해서 복잡해 보이지만 핵심 공간은 내접형 그릭 크로스였으며 여기에 여러 가지 추가 처리를 가했다. 동서 방향으로 공간 켜를 확장해서 선형공간 구성을 더했다. 내 팔 가운데 남쪽과 북쪽의 것은 원형 상태로 둔 채 크로싱과의 경계부에 열주 스크린만 세웠으며 그 위로 큰 아치 윤곽의 수직 벽이 올라갔다. 동쪽과 서쪽의 것은 양 귀퉁이에 반원형 앱스 공간을 추가로 더했다. 앱스를 이루는 외벽에는 열주 스크린을 세워 모퉁이 공간과 소통이 일어나도록 했다. 크로싱에는 표준형 펜던티브 돔으로 완전한 반구 천장을 만들어 덮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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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소피아. 콘스탄티노플(Constantinople), 터키. 532-537년 - 유스티니아누스의 야망을 잘 보여주는 비잔틴 건축의 대표작이다.

 

 

제일 관건은 크기였다. 유스티니아누스의 야심에 맞게 가능한 한 크게 만들고 싶어 했는데 전체 윤곽은 69미터 x 75미터였고 정사각형 크로싱은 지름이 32.6미터였다. 돔 천장의 높이는 지면에서 54.8미터였다. 이 크기는 쉽지 않은 것이어서 지붕의 무게를 감당해내는 일이 공사의 최우선이 되었다. 돔 자체를 경량화하기 위해 펜던티브와 만나는 밑동 내벽에 40개의 높은 아치형 창을 뚫었다. 하중은 여러 갈래로 분산시켜 내려가게 했다. 제일 중요한 경로는 펜던티브를 타고 내려가는 것으로 이것을 받치기 위해 크로싱의 네 귀퉁이에  두께 7.6미터, 폭 18.3미터인 두꺼운 벽체를 세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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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소피아 성당의 내부 <출처 : NGD>

성 소피아 성당의 외부 <출처 : Garth T at de.wikipedia>

 

 

부유하는 공간은 더 두드러진 특징이었다. 둥근 천장 자체가 ‘크로싱 위의 돔-동서 쪽 팔의 대형 앱스-그 아래쪽의 작은 앱스’로 삼원화되면서 단일 원 윤곽이 여럿으로 나누어진 모습으로 나타났다. 이런 여러 원들 사이를 벽으로 구획하지 않고 흐르는 공간으로 처리했다. 경량화를 위해 구조적으로 무리가 없는 부분에는 가능한 한 많은 창을 뚫다 보니 천장들이 공중에 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이탈리아 라벤나의 산 비탈레 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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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 비탈레는 이탈리아 라벤나에 지어진 비잔틴 교회이다. 비잔틴 제국은 초반기 힘이 융성할 때 동로마의 후신 자격으로 서방에 대해서 압력과 침략을 자주 감행했다. 라벤나는 이것의 전진기지였다. 그러나 정치적, 경제적, 군사적 압박에 비해 서방 지역에는 비잔틴 건축물이 많이 지어지지 않았는데 산 비탈레는 베네치아의 산 마르코와 함께 서방에 지어진 비잔틴 건축을 대표한다. 공간은 비잔틴 건축의 전형적 특징인 부유하는 공간을 대표한다. 규모가 작기 때문에 성 소피아보다 이런 특징을 더 집약적으로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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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비탈레(San Vitale). 라벤나(Ravenna), 이탈리아. 526-540년. 부유공간이라는 비잔틴 건축의 공간특징을 대표하는 건물이다.

 

 

평면부터 팔각형 겹 공간으로 이루어지면서 처음부터 수평 확산의 가능성을 봉쇄하고 중앙 집중성을 강화했다. 제식을 위한 선형성의 보강도 별도로 하지 않았으며 다만 성소 밖으로 팔각형 한 변 폭의 앱스 하나를 돌출시킨 것이 전부이다. 진입부에 전실을 뒀지만 선형성의 강조로 나타나지 않는 대신 중심 공간과 22.5도 기울어져서 동선에 꺾임이 일어나게 했다. 이는 선형성을 최대한 억제해서 중앙 집중성을 높임과 동시에 동선과 시선에 극적인 변화와 역동성을 주기 위한 목적으로 보인다.

 

중심 초점을 향해서 가능한 한 동선과 시선을 모두 모은 다음 수직 방향으로 폭발하듯 확산이 일어나게 했다. 중심 팔각형은 16.6미터 지름에 높이가 29.5미터이기 때문에 절대 크기는 성 소피아보다 많이 작지만 공간의 비례 느낌은 우물 속에 들어온 것 같은 곧추선 느낌이다. 하늘을 향해 곧게 뻗는 수직 기운이 무척 강한데 양옆으로 뻗어나가는 구멍을 최대한으로 뚫어서 이 기운을 확산시켰다. 원형 지붕을 받는 원통형 몸체를 2층으로 한 뒤 각 층을 열주 스크린으로 처리해서 바깥쪽 복도공간과 관통이 최대한으로 일어나게 했다. 고형적 물체로 쌓은 경계부가 마치 투명한 막을 겹쳐 놓은 것처럼 나타났다.

 

 

코라 교회와 도상 상징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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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징주의는 비잔틴 예술의 또 다른 대표적 장르인 모자이크 성화, 즉 도상 혹은 성상을 통해 보다 직접적으로 표현되었다. 도상 상징주의라 부를 수 있는데, 상대적으로 직접적 표현력이 더 강한 도상을 이용해서 하느님의 존재를 드러내고 성서의 내용을 전달하려는 시도이다. 성상숭배금지(726~843)는 이것을 금지한 시기였는데 이는 신의 모습을 인간의 매체로 직접 그리는 것을 금지했던 이슬람이 이를 빌미로 비잔틴을 공격하는 것을 피하기 위해서였다. 성상숭배금지가 풀리면서 중기 비잔틴 르네상스(867~1204)가 시작된다. 도상 상징주의의 도래였다. 교회도 여기에 맞춰 큰 변화를 겪게 된다. 기독교 제식을 담아내고 하느님의 존재를 증명하던 독립적 건축양식에서 벗어나 성화가 그려지는 바탕 면을 제공하는 거대한 캔버스로 기본 개념이 바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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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라 교회(Chora Church=Kariye Camii). 콘스탄티노플(Constantinople), 터키. 11-12세기 - 성상숭배금지가 풀리고 모자이크 성화의 전성기가 도래하면서 건물은 규모가 작아지는 대신 성화를 그리는 캔버스로 바뀌게 된다. <출처 : wikipedia>

 

 

코라 교회는 이를 대표하는 건물이다. 교회 실내에 도상을 그리는 데에도 장소에 따라서 법칙이 있었다. 공간적 위계에 따른 상징성이 기준이었다. 교회 실내를 3등분하여 각 부분의 상정성에 맞는 도상을 대응시켰다. 돔은 하늘을 상징하기 때문에 하늘나라의 일을 그렸다. 보통 예수와 천사가 주인공이었다. 예수는 하늘에서 지상을 굽어보는 심판자로 그려졌고 그 주위를 천사들이 호위했다. 펜던티브와 천측창에는 예수의 생애와 수난을 그렸다. 돔 아래의 볼트와 벽체는 하늘나라 밑에 있는 땅을 상징했으며 땅의 일을 그렸다. 예수를 비롯해서 사도, 예언자, 순교자, 성인 등이 행했던 기독교의 역사가 주요 내용으로 예수가 보여준 기적과 성서의 증명, 성인들의 전도와 순교 등이 대표적 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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