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주교

부활의 노래

일요시사 0 595
난생 처음, 크루즈 여행을 다녀왔어. 웬 일로 크루즈씩이나 갔다 왔대? 친구가 호기심을 갖고 물었다. 답하기 뭐한데, 굳이 말하자면 자신을 위한 작은 선물. 세상에 태어나서 60갑자를 맞은 회갑 기념에 어디 좀 다녀오고 싶어서.  뭐 장기간 해외유람을 한 것도 아니야. 맞보기로 뉴질랜드 주변 섬 돌며, 3박 4일을 다녀온 거야. 크루즈선은 망망대해에 홀로 뜬 보물섬이더구먼. 심심할 겨를 없이 파도처럼 흘러 가데.  나도 한 번 가봐야겠네. 적극 강추지. 친구 부부가 꽤 공감을 보였다. 화답으로 크루즈 이야기를 고운 물감 풀어 내듯 그려 보여줬다.

눈으로만 봐왔던 크루즈 선이었다.  6만 3천 톤급. 승선 최대 인원 1,850명. 길이는 3백미터 쯤, 폭은 40미터쯤 되나? 높이는 14층. 엘리베이터가 셋. 레스토랑, 수영장,영화관, 헬스클럽, 술집 바, 카지노 오락관, 쇼핑 점, 사교클럽, 각종 이벤트, 코믹 쇼,가라오케 공연, 탁구시합, 개츠비 축제… . 우리 부부 숙소는 창가가 아닌 가운데 위치한 10층 캐빈. 금요일 오후에 오클랜드를 출발해서 월요일 오전에 돌아왔다. 남이 차려준 아홉 끼 식사를 배 안에서 즐겼다. 해가 바다위로 떠오르면서부터 달이 기우는 밤 늦게까지 다양한 일정에 맞춰 적극적으로 움직였다. 자정 무렵 단잠에 떨어졌다. 침실은 호텔보다 아늑했다. 아무리 파도가 거세도 별 영향을 못 받았다. 세상 걱정이 없어서였을까?

장면 1. 눈길을 멈추게 한 그림 같은 장면에 마음마저 흐뭇해졌다. 휠 체어를 탄 지체 부자유스러운 중년의 아들을 데리고 온 노 부부가 눈에 밟혔다. 데크 난간 손잡이를 붙들고 아들이 환호를 질렀다. 처음 맛보는 경험에 그처럼 즐거웠던 모양이다. 부모의 얼굴도 환해졌다. 파도를 가로지르며 품어내는 하얀 물줄기에서 생생한 미네랄 기운이 차 올랐다. 자연이 주는 천연 비타민을 흠뻑 취하는 광경이었다. 덩달아 마음에 신선한 에너지가 물씬 적셔졌다. 함께하는 순간, 기쁨에 몰입하는 가족 얼굴이 크루즈 선위를 맴도는 갈매기처럼 평화스러웠다. 크루즈 여행의 한 단면이었다.

장면 2. 갯츠비 축제날 밤이었다. 폭발직전의 흥겨운 음악에 수많은 참가자들이 저마다의 특색 있는 분장을 하고 춤을 췄다. 머리에 다채로운 깃을 꽂고서 아라비안 나이트를 즐겼다. 오픈된 가운데 홀 안에는 분장을 한 참가자들이 붐비고, 이를 구경하는 이들은 홀을 둘러싼 이층과 계단에 빼곡하게 서서 함께 신나게 몸을 흔들었다. 요란한 태엽 시계가 풀어지듯 자동으로 움직였다. 광란하는 몰입 절정에 이를 즈음, 모든 이의 가슴이 질퍽하게 흥건해졌다. 얼굴도 모르는 이들이 즐거운 무도회에 초대되어 흥을 불사르는 축제의 밤. 못 추는 춤이지만 따라 움직이다 보니 얼굴과 등이 땀으로 젖었다. 언제 이런 시간을 가져봤던가? 크루즈 여행의 백미였다.

장면 3. 할아버지 할머니를 중심으로 두 테이블에 둘러앉아 점심을 즐기는 가족이 평화롭게 보였다. 멀리 떨어져 사는 아들 딸 가족과 함께한 노 부부는 리타이어먼트 빌리지에 사는 분이었다. 호주 멜번에 사는 아들 가족과 크라이이스트에 있는 딸 가족이 휴가를 내서 부모님을 모신 것이 이번 크루즈 여행이란다. 어린 손자 손녀들간에도 즐거운 만남이 되어 화기애애한 장면이었다. 음식이야 얼마나 풍성하고 먹음직스러운가? 놀이시설도 좋고 야외 수영장도 있어 어린아이들은 천국이었다. 어른 들은 전망 좋은 데크에 앉아 와인 잔을 부딪치며 담소를 나눴다.

장면 4. 아내와 둘이 탁구를 쳤다. 확 트인 바다를 바라보며 참으로 오랜만에 쳐보는 탁구. 처음 두 세트 몸푸는 동안은 떨어진 탁구공 집으러 다니느라 정신이 없었다.

다음 두 세트는 아내가 이겼다. 마지막 다섯 번째 세트에선 대등대등 주고 받다가 비겼다. 아내 얼굴에 땀이 송골송골 맺혔다. 주고 받는 것도 연습이 필요했다. 상대가 받기 좋게 떨어뜨려줘야 그치지 않고 신나게 칠 수 있었다. 치기 좋은 공을 세게 후려치는 맛도 좋았지만, 치기 좋게 공을 줘서 강하게 날아오는 것을 받아 치는 맛은 더 짜릿했다. 처음 공격 일변도로 치다 나중 수비 중심으로 전환하니 탁구의 묘미가 더했다. 우리 인생사도 모두 주고받고 즐기며 사는 게임이라는 사실을 느꼈다.

장면 5. 저녁 만찬 장 자리가 우아해 보였다.  정장을 한 날이었다. 그날의 요리, 이탤리언 음식을 주문했다. 한 테이블에 둘러앉은 동료 커플들이 달리 보였다. 함께 한 부부 모습이 선남 선녀 같았다. 다들 처음 경험이라고 했다. 평소 맡은 바 일터에서 열심히 일하다 모처럼 갖는 휴식시간. 자신에 대한 Self-Gifting 이라고. 음미하며 와인 잔을 부딪쳤다. 음식이 입안에서 슬슬 녹았다. 주고 받는 담소 속에 파도로 요동치는 배의 울렁임은 색다르게 아늑함을 더해 주었다. 덤이었다.

장면 6. 아픈 할머니와 오신 할아버지를 만났다. 할머니 얼굴은 핼쓱하고 초췌했다. 건강이 소중한 자산임을 누가 모르랴. 살다 보면 이유도 모른 채 맞는 병마인 걸. 더 아프면 못 올 여행을 이렇게 라도 함께 왔다는 사실에 감사해하는 할아버지를 마음에 담았다. 할아버지 말씀을 몇 마디 들었다. 연금을 두 개 타고 계신다고. 하나는 65세 넘어서 국가에서 주는 노후 연금이고, 다른 하나는 하늘에서 주는 영적 연금이라고 하셨다. 영적 연금이 뭔데요? 마음에 평화. 나이 들면서 끊이지 않고 받는 연금이 마음에 평화라고 하신다. 성서 구절을 떠오르게 한다. ‘항상 기뻐하고 쉬지 말고 기도하고 범사에 감사하라, 이것이 하느님의 뜻이다.’ 평화의 원천이다.

 바다 위를 속도 내어 유유히 움직이는 거대한 섬. 크루즈 선 꼭대기층 데크에서 온 사방 바다를 바라다 본다. 바다 한 가운데서 아늑하게 들어오는 수평선이 약간은 둥그스럼하다. 지구는 둥글다. 그 위에 사는 세상사도 둥글다. 세상 일에 빠져 살던 내 모습에 퍽 모났던 부분이 떠오른다. 살다가 한번씩 가끔 다녀올 만한 여행. 크루즈 추억이 값지고 고맙다. 아무리 힘들고 고달파도 잊지 말아야 할 선물을 놓치면 안될 것 같다. 영적 연금이다. 하늘이 주는 선물! 나이 들어 얼굴에 평화가 내려앉으면 영적 연금 수혜자다. 물적 재산과 노후 연금이 있어도 영적 연금을 못 받는다면 인생을 다시 되돌아 봐야 할 일이다. 사순의 고통 침묵 뒤에 부활의 은총이 퍼지는 시간이다. 알렐루야!

백동흠: 수필가. <에세이문학> 등단

<한국수필>. <에세이포레>수필 상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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