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주교

삶의 지도 찾기 이지현 수녀

일요시사 0 459
“수녀님 여전히 바쁘세요?” 라고 시작되는 문자를 받을 때마다 가슴이 철렁합니다. 

무릇 수도자라면 마음의 여유, 시간의 여유를 가져야 한다는 저의 이상과는 달리 ‘얼마나 “바쁘다!”를 외치고 다녔으면 저런 인사가.’라는 생각에 부끄럽기만 합니다. 

학교에서 일하는 덕에 방학이라는 선물을 받아 조금 여유를 찾은 틈을 타 민망한 문자에 열심히 답을 해 봅니다. 

알게 된 지 2년이 넘었는데도 저와 단둘이 이야기를 나눠 본 적이 처음이라며 신나게 이야기하는 고등학생을 보고 있으려니 민망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언젠가 “수녀님 옆방 비었다. 원하는 사람은 언제든 오시오!”라며 장난치던 이야기에 “정말요?”라며 눈을 반짝이던 모습이 생각나 수녀원에 관심이 있는지 넌지시 물어 보았습니다. “수녀님이 되려면 얼마나 걸려요? 수녀님께서는 왜 수녀가 되셨어요?” 계속되는 질문에 시간이 훌쩍 지나갔습니다.

얼마 전 초등학교 5학년 조카에게 불멸의 질문을 던졌다가 아이의 대답에 하고 싶은 잔소리들을 꾹 참느라 어색한 침묵의 시간을 가졌습니다. 

요즘 청소년들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진로, 진학입니다. 학생들을 만나 늘 묻는 영원불멸의 질문은 “커서 뭐가 되고 싶어?”입니다. 그러나 요즘 세상에 이 질문은 더 깊고 넓은 의미와 무거운 무게를 가진 듯합니다. 꼬마 때부터 한 가지를 정하고 그것을 위해 모든 성을 쌓아 갑니다. 방과 후 수업과 취미를 위한 동아리까지 자신의 미래와 관련된 것만을 선택하고 체계적 계획을 세워 성을 쌓습니다. 다른 것은 생각해 볼 겨를도 필요도 없습니다. 

이렇게 키워진 아이들이 성인이 되어서 듣는 이야기는 “요즘 사람들 사회에 주변에 관심이 없다, 요즘 사람들 생각이 없다, 요즘 사람들 나약하다.”입니다. 저희 수도자들 또한 “요즘 사람들 수도생활에 관심 없다, 성소의 위기가 찾아왔다.”를 되뇌며 “요즘 사람들”과의 간극을 아프게 느끼고 있습니다. 

우리가 무엇을 놓친 것일까요? 예전 같은 낭만에, 예전 같은 순수함에, 예전 같은 많은 성소자에 미련의 끈을 놓지 못하고 있는 걸까요? 변한 세상이라고 단정 짓고 받아들이면 되는 건가요?

“커서 어떤 사람이 되고 싶어?” 

 “유치원 선생님이요.”

 “그거 말고, 어떤 사람....”

한 시간 정도 이야기 나누다 던진 질문에 아이는 “어떤 사람이 되고 싶다.”는 생각은 한 번도 해 보지 않았다며 “어떤 사람”의 개념이 어렵다고 말했습니다.

요즘처럼 직장을 구하기 어려운 세상, 구한다 하더라도 한 직장에 오래 있기 힘든 세상에서 한 가지 길만을 보게 하는 것은 무한 경쟁의 자리로 아이들을 몰아가는 꼴은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언제든 변할 수 있고 미지의 길 위에서 자신의 길을 소신껏 건강하게 선택할 수 있도록 돕기 위해선 “정확한 지도”가 필요합니다. 부모의 뜻, 교사의 의견이 아니라 본인의 가치관에 따라 삶을 선택하고 살아갈 수 있도록 하는 것입니다. 어른들의 역할은 그들의 가치관 확립을 위해 질문을 던지고 여러 가지를 제시하며 그저 옆에서 함께 버텨 주는 것입니다.

“어떻게 살고 싶다.”라는 자신만의 지도가 생긴다면, 자신의 가치관이 명확해진다면 직업이 어느 것이든 상관없는 삶이 될 겁니다. 그것은 어른이나 청소년이나 아마 마찬가지 아닐까요?

올해 저는 이렇게 살고 싶습니다. 

나의 욕심과 시간을 내려놓고 마음과 시간의 여유를 확보하여 더 많은 젊은이들과 수다도 떨고 장난도 치려고 합니다. 그리고 그들이 자신의 가치관을 찾아 나서는 여행에 동행하고 격려하려고 합니다. 저의 동행이 많은 분들이 우려하는 성소의 위기를 해소하지 못하더라도, 청소년과 청년들이 건강하고 아름다운 사회 구성원으로 각자의 자리에 설 수 있다면 그것이 바로 하느님의 나라가 아닐까요?

주변의 청소년과 청년들에게 질문을 던져 주세요. 
“넌 커서 어떤 사람이 되고 싶니? 어떤 직업으로 돈을 많이 벌고 이런 것이 아니라, 어떻게 사는 사람.” 

그리고 나 자신에게도 한 번씩 질문을 던져 보세요. 
“난 이 세상을 어떻게 살고 싶은가.”

그동안 경제성장에 눈이 멀어, 무한 경쟁에 귀가 닫혀 놓치고 살았던 “내 삶의 지도 찾기”가 이제라도 시작되길 바라 봅니다.

P.S: B야! “어떤 사람이 될지 잘 생각해 볼게요.”라고 보낸 문자 잘 간직하고 있겠어요. 다음번에 만나면 이 부분에 대해 좀 더 깊이 대화해 봅시다. 이제 고3이니 공부하느라 정신이 없겠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자신의 지도를 찾는 것이라는 사실 잊지 마시고요! 

출처: 이지현 수녀(로사) :성심여고 재직중.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http://www.catholic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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