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클랜드 명소를 찾아 2-월리스 미술관(Wallace Arts Centre)

여행

오클랜드 명소를 찾아 2-월리스 미술관(Wallace Arts Centre)

일요시사 0 1666

 

멋진 작품은 삶의 치료제, 새 힘 얻어 또 세상으로

카페에서 차 한잔 하며 독서도공원의 이국적인 나무도 즐거움 더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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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리스 미술관’, 150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고풍스러운 건물이다.

 

사는 게 조금은 언짢을 때가 있다. 내 뜻대로 일이 풀리지 않아서 그렇다. 그럴 때마다 훌쩍 어딘가로 나선다. 반나절 정도 시간을 보내고 오면 다시 살 맛이 생긴다. 나름대로 치유가 되었다는 뜻이다.

집에서 차로 5분 거리에 미술관이 있다. 지인으로부터 소개받은 곳이다. 그림 감상을 핑계로 어설픈 데이트를 했다. 고풍스러운 건물이 작품의 빛을 더한다. 모름지기 사람이라면, 문화적 사람이라면 한 달에 한 번은 이런 고상한 문화생활은 해야 한다는 마음을 다잡게 해 주었다.

 

월리스 미술관-TSB Wallace Arts Cent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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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언 매클라우드의 그림을 관람하고 있는 한 관람객. 


TSB 은행이 후원하고 오클랜드시가 관리하는 미술관이다. 2010년에 문을 연 이 미술관은 19세기 말(1877~1879)에 지어진 건물을 조금 고쳐 활용하고 있다. 한때 오클랜드에서 가장 비싸고 멋진 대저택(mansion)이라는 평을 들었다. 지금도 그 기운을 이어 그림 같은위용을 자랑한다.

먼저 미술관 건물을 간략하게 소개하는 게 앞서 그 건물에 산 사람들에 대한 예의일 것 같다.

와이탕이 조약(The Treaty of Waitangi)이 체결된 지 7년이 지난 1847년 윌리엄 하트가 104헥타르에 이르는 넓은 땅을 샀다. 그는 언덕 위에다 집을 짓고 곳곳에 이국풍이 느껴지는 나무를 심었다. 남양삼나무(Hoop pine)와 큰잎고무나무(Moreton Bay fig)는 뉴질랜드에서 가장 나이가 많고(170세 정도) 키가 큰(27m, 30m) 걸로 알려져 있다.

그 뒤 이 건물은 한 차례 허물어지고 또 수차례 개보수를 하면서 다양한 용도로 활용되어 왔다. 학교, 수녀 양성원, 보육원, 비상 공동 주택으로 역사를 이었다. 그사이 넓던 땅은 오늘의 규모(15헥타르)로 확 줄어들기는 했지만, 미술관에 전시된 걸작으로 옛 영화를 유지하고 있다.

 

유언 매클라우드, 화가-Euan Macleod, Paint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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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언 매클라우드-화가.’

며칠 전 미술관을 찾았다. 사는 게 다시 언짢아진 날이었다. 날씨마저 끄물끄물했다. 금방이라도 비가 쏟아질 기세였다. 그날 저녁 오클랜드에 태풍이 몰아쳤다. 뉴질랜드에 사반세기 가깝게 살면서 가장 센 바람을 맞았다.

유언 매클라우드는 뉴질랜드가 자랑하는 화가 중 한 명이다. 1956년 크라이스트처치에서 태어난 그는 캔터베리대학교에서 순수 예술(Fine Arts)을 공부한 뒤 호주로 건너가 활동했다. 화가 소개에 따르면 그는 모국인 뉴질랜드와 삶의 터전인 호주를 오가며 왕성하게 창작을 펼쳐 나가고 있다.

미술관에 전시된 작품은 모두 39. 대부분의 그림이 우울해 보였다. 색깔도, 화풍도 칙칙하게 느껴졌다. 그림을 유심히 살펴봤다. 모든 그림에 남자 사람이 숨어있었다. 그들은 공통으로 무언가를 지고 있었다. ‘인생의 짐같은 거 말이다. 거친 바다에서도, 황량한 산에서도, 평범한 일터에서도 유·무형의 형체를 지닌 그 무엇을 숙명적으로 안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산다는 건 저마다 적당한 무게의 짐을 머리에 이고 개울을 건너는 것과 같다. 짐이 없으면 편할 것 같지만, 그 짐 덕분에 물살을 헤치고 다음 목적지로 갈 수 있다. 어쩌면 그게 시시포스가 평생 밀어 올려야 했던 바위 덩어리일지도 모른다. 남자 사람의 운명 같은.

예술은, 그림은 종종 삶의 치료제가 된다. 답할 수 없는 질문에 그럴듯한, 조금은 삶을 북돋아 주는 답을 해준다. 그걸 믿고 다음 개울을 만나기까지 살아내는 것이다.

미술관은 2층으로 되어 있다. 1층이 주 전시관으로 쓰이고, 2층은 다른 작가의 작품이 걸려 있다. 보통 두세 달을 돌아가며 뉴질랜드의 내로라하는 작가의 작품을 선보인다. 순수 미술부터 설치 미술까지 다양하게 펼쳐진다. 그림 삼매경에 빠져 오전 혹은 오후 한나절을 보내는 일도 삶의 쏠쏠한 재미다.

월리스 미술관은 건물 자체만으로도 예술로 느껴진다. 150년에 가까운 역사를 내세우는 건물은 이탈리아풍으로 지어졌다. 벽돌도 현장에서 직접 구운 거로 사용했으며, 그 당시 만든 손잡이와 창틀도 원형 그대로 관람객을 맞고 있다. 2층에 올라가면 저 멀리 콘월 파크(Cornwall Park) 탑이 보이고, 바로 앞에는 수만 평의 몬테 세실리아 공원이 자연미를 뽐낸다.

 

더 파 홈스테드 카페-The Pah Homestead Caf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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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관과 바로 붙어 있는 카페다. Pah는 마오리 말 Pa(‘마을’, ‘요새라는 뜻)를 이 땅의 최초 구매자 윌리엄 하트가 빅토리아 스펠링으로 만든 단어다. 엡솜(Epsom)까지 이어져 있는 도로 Pah Road도 여기에서 따왔다. 그 당시 땅이 얼마만큼 넓었는지를 잘 알 수 있다.

두 달 전 어느 날, 날씨가 아주 화창한 날이었다. 미술관을 찾았다. 마음도, 날씨도 언짢지는 않았다. 그냥, 가고 싶었다.

미술관에 전시된 그림은 추상화 비슷한, 아니 내가 딱 집어 뭐라고 말할 수 없는 작품뿐이었다. 그림 감상에 어떤 표현도 덧붙이기 힘들었다. 내 한계였다. 자연스럽게 카페로 발걸음을 옮겼다. 빈티지 가방 안에는 소설책 한 권이 들어 있었다.

내가 좋아하는 모카치노 한 잔을 시켰다. 눈은 책을 읽고 있는데, 마음은 딴 곳으로 가 있었다. 지난해 돌아가신 어머니가 사무치게 보고 싶었다. 때마침 내 어머니 나이 또래의 키위 할머니들의 소곤거림이 들려 왔다. 그래서 그랬을 거다.

 커피 한 잔을 더 시켰다. 어머니가 평소 좋아하던 카~~~. 가슴 아프게도 내 어머니는 안 계시고 김만 모락모락 하늘로 올라간다.

 어머니, 천국으로 커피 한 잔 배달합니다. 맛있게 드세요.”

 이 카페를 제대로 즐기려면 실내보다는 바깥으로 나가야 한다. 날씨가 좋은 날이면 금상첨화. 정원에 전시된 여러 조각품도 감상할 수 있고, 공원에서 뿜어져 나오는 진귀한 나무의 냄새도 만끽할 수 있다. 평일(-)에는 아침 10~오후 3, 주말(-)에는 아침 8~오후 5시가 영업시간이다. 커피 외에도 근사한 점심을 먹을 수 있다.

 

몬테 세실리아 공원-Monte Cecilia Par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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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관 앞을 병풍처럼 두르고 있는 공원이다. 뉴질랜드 초창기에 선교 활동을 한 메리 세실리아 마허(Mary Cecilia Maher) 수녀를 기리기 위해 조성했다.

미술관에 갈 때마다 빠지지 않고 들러 쉬고 가곤 한다. 때로는 30, 또 때로는 2시간 정도. 책을 읽거나 낮잠을 잔다. 아니면 고민을 내려놓거나.

이 공원은 오클랜드의 대표 공원이라고 할 수 있는 콘월 파크보다 50년 앞서 꾸며졌다. 비록 개인에 딸린 공원이라 대중적인 인기를 얻지는 못했지만 20세기 내내 오클랜드 공원 역사에 남을 정도로 널리 사랑받았다. 2004년 오클랜드시가 단장을 해 멋진 공원으로 재탄생했다.

공원의 특징은 이국풍의 나무가 많다는 점이다. 수십 미터 하늘로 치솟은 나무를 만날 수 있는데, 그것들의 대부분이 이국적’(exotic)인 풍경을 만들어 준다.

립 밴 윙클’(Rip Van Wincle)이라는 사람을 만나 본 적이 있는가. 미국 작가 워싱턴 어빙의 소설 제목이기도 한 이 분은 한국식으로 말하면 신선 할아버지라고 생각하면 된다. 숲에서 한숨 자고 났더니 세월이 백 년이나 흘러 잔소리 많던 아내도 죽고 새 세상이 됐다는 소설 속의 주인공. 참고로 립 밴 윙클은 시대에 뒤떨어진 사람’, ‘잠만 자는 사람이라는 뜻으로도 사용된다.

혹시나 숲속 벤치에서 얼굴에 책을 덮고 낮잠을 즐기는 사람을 본다면 부디 애써 깨우지 말기를 부탁드린다.

 

미술관 옆 동물원, 혹은 동물원 옆 미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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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관 옆 동물원>은 오래전에 본 영화의 제목이다. 청순의 대명사, 심은하와 갓 은막에 데뷔한 이성재가 주인공으로 나온 작품이다. 영화는 미술을 사랑하는 여자와 동물을 좋아하는 남자의 풋풋한 로맨스를 담았다. 솔직히 말해 내용은 거의 기억이 없다. 다만 미술관을 즐겨 찾는 심은하가 너무 고상해 보였다는 것뿐.

남자 사람, 여자 사람이라면 적어도 한 달에 한 번은 문화생활을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게 늘 텔레비전이나 유튜브여서는 곤란하지 않을까. 나는 그렇게 믿는다.

글과 사진_프리랜서 박성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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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람 시간과 주소 

▣ 화-: 오전 10~오후 3

▣ 토-: 오전 8~오후 5

▣ 무료 입장(월요일에는 쉼)

▣ 주소: 72 Hillsborough Road, Hillsborough

▣ 전화: 09) 639 2010

▣ 웹사이트: https://tsbbankwallaceartscentre.org.nz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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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게시물은 일요시사님에 의해 2018-07-11 20:31:58 교민뉴스에서 복사 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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