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고 쇼가 추억되다 - 무지개 시니어 중창단 멜버른 여행기

여행


 

망고 쇼가 추억되다 - 무지개 시니어 중창단 멜버른 여행기

일요시사 0 1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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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째 날 멜버른의 아침은 의외로 쾌적했다. 공항에 발을 딛는 순간부터 ‘이제부터 찜질방으로 들어가는 거다’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시내로 향하는 버스 안에서 거짓말에 속은 것 같은 의아함을 이구동성으로 한마디씩 던졌다.
  “이게 어쩐 일이래.”     
 “우리는 행운의 여인들이야.”
어제까지만 해도 40도의 폭염이였다니데. 정말로 큰 복을 받은 할머니들이다. 사실 여행의 설렘에 앞서 불안으로 잠을 못 이루었다. 40도를 웃돈다는 멜버른 날씨를 견뎌낼 수 있을지 지레 겁을 먹었다..
멜버른을 ‘호주 속의 유럽’이라고 하던가. 아침 요기를 하러 찾아간 카페 거리에서 금방 느꼈다. 관광객으로 바글거리는 좁은 카페 거리에는 카페가 다닥다닥 붙어 있다. 볕가리개로 골목을 덮은 간이 탁자가 더 인기가 있었다. 다행히 맨 끝자리가 하나 남아 있었다. 거기에 둘러앉았다.
낯선 이방인들과 함께한다는 생소함 때문일까? 분위기에 휩쓸려 커피 맛이 유난히 좋았다. 시 중심가를 달리는 트램을 탔다. 잠시 눈을 감으니 마포ㅡ서대문 구간을 다니는 전차 안에 얌전히 앉아있는 단발머리 소녀. 버스가 생기기 전에 대중교통 수단이던 전차를 많이도 탔었다. 겨우 세 정거장의 맛보기. 마포 종점도 아닌데 서둘러 내리면서 내 꿈도 거기서 끝이 났다. 시내 중심부의 기차역은 어찌 서울역을 그리도 빼닮았는지. 신기하기만 했다.
재래시장 빅토리아 마켓을 구경했다. 시장은 언제 어디나 활기가 넘쳐난다. 질펀한 서민들의 삶이 짙게 묻어난다. 특별한 게 없기도 하지만 물건에 탐을 낼 만한 젊음도 없는 사람들이다. 과일장을 찾는다. 산처럼 쌓아놓고 파는 여러 과일. 망고와 체리가 눈길을 사로잡는다.
 “맹고~맹고~~”
검은 피부의 남자가 큰소리로 호객을 한다. 맛나게 익은 향기가 코끝을 자극해 먼저 발길을 잡는다. 탐스럽고 노릇한 데다 때깔도 고운 망고. 오클랜드보다 절반 정도로 값이 싸고 어느 걸 집어도 손색이 없어 사람 숫자대로 주워 담았다.
 계산을 하며 장난삼아 덤을 하나 달랬더니 고개를 젓는다. 코리안 할머니들의 애교에 넘어갔을까? 복숭아 대여섯 개를 집어주었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그게 바로 시장 인심이었다. 오가는 인정 속에 웃음꽃이 피어난다.
오늘 밤은 열대 과일, 말랑하고 맛있는 망고 파티로 멋진 시간을 가져야지. 생각만 해도 입안에 침이 고인다.
정말 별것 아닌 시중의 작은 골목이었다. 길 양쪽 벽면이 그림으로 가득 차 있다. 우리가 이해할 수 없는 난해한 그림들이 엉켜 그려져 있었다. 석 달마다 작가가 바뀐다니 그림 또한 늘 같은 게 아닐 것이다. 기다리는 작가가 많은 것은 그만큼 인기가 있다는 말이다.
예술가들의 활동 무대도 되고 관광객을 부를 수도 있어 그 아이디어가 돋보인다고 생각했다. 우리나라 드라마 ‘미안하다 사랑한다’의 촬영지였다니 우리 한국인들은 색다른 관심으로 명소의 구실을 톡톡히 하게 했다.
저녁 식사는 이탈리안 식당에서 스파게티로 했다. 분위기에 맞게 따로 포도주를 한 병 주문하려고 했더니 자기가 돈을 내겠다고 선뜻 나서는 멋쟁이가 있었다.
 “내일은 내가 낼게.”
나이는 먹었어도 멋을 알고 낭만을 아는 우리 단원들. 우리는 어딜 가나 기분 좋은 한 가족이다. 즐겁게 브라보를 외치며 와인 잔을 추켜들었다.
 “건강을 위하여.”
 “행복한 여행을 위하여.”
훗훗해 오는 멋진 분위기에 취해 호텔로 돌아왔다. 짐을 풀고 샤워를 한 뒤 다시 한 방에 모여 망고잔치를 했다. 보드랍게 손바닥으로 굴려 전체가 말랑해지면 꼭지를 따고 구멍을 내서 쪽쪽 빨아먹는다고 현지 안내인한테 배웠다.
모두가 하나씩 들고 앉아 열심히 비비고 굴리는 모습이 참 볼만했다. 급해서 너무 세게 문지른 사람은 여린 데가 먼저 터져 감당하지 못하게 줄줄이 흘러내렸다. 그걸 주체 못해서 들고 먹는 모습들이 너무 웃겼다. 얼굴 가득 과육을 묻히고 서로가 웃어 죽는다고 깔깔거린다. 한쪽에선 카펫에 떨군 국물을 닦느라 이 사람 저 사람을 따라다니고. 어떤 기쁨조가 이토록 우리를 웃길 수 있을까? 정말 오랫만에 맘껏 웃어본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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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째 날 이동 거리가 긴 여정이었다. ‘그레이트 오션 로드’(Great Ocean Road)로 달린다.  갈 길이 먼데 벌써 아이스크림이 먹고 싶다고 누군가 보챘다. 아우들의 재롱으로 알고 무시한 채 차에 올랐다. 그리스 사람들의 정착지라고 하는 ‘아폴로 베이’에서 점심을 먹었다. 해안가가 아름다운데 반갑잖은 작은 파리 떼들의 극성스러운 습격을 받는다. 그냥 그런 곳이라니 그러려니 할 수밖에.
그레이트 오션 로드는 정말로 길었다. 해안가를 따라 300km를 끊임없이 달렸다. 변화무쌍한 바위들. 자연이 만들어낸 조각품들을 여한없이 감상했다.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해안길’이라는 말이 사실이었다.
우리는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차 속 공연이었다. 누군가 선창을 하면 모두 목청껏 따라 불렀다. 마치 신선이 된듯한 기분이랄까? 높다란 벼랑길에서 파란 물이 출렁거리는 바다를 내려다보며 달리는 묘한 스릴감. 신선한 충격이었다.
 아마도 멜버른 여행의 백미는 이곳일 것이다. ‘죽기 전에 꼭 봐야 할 100곳’ 중 하나로 선정된 곳이다. 그레이트 오션 로드의 절정인 12사도 바위.
긴 세월 바람에 의해 자연으로 만들어진  진귀한 형상의 바위들과 그 주변의 장관들을 하늘에서 내려다본다고 했다.
호주 돈 $145가 조금 비싼 듯 느껴졌지만 갈등 끝에 타보려고 했다. 마음을 정하니 호기심이 두 배로 바빴다. 그러나 그 꿈은 물거품이 되고 말았다. 안타깝게도 안개가 자욱이 덮여 있었다. 헬기가 뜰 수 없는 상황이었다. 길게 뻗은 전망대까지 걸어갔지만 해무가 걷힐 기세는 보이지 않았다. 오늘 관광객들 속에 죄 많은 사람이 있었던가. 뿌연 장막 속에 숨은 12사도는 얼굴을 내밀지 않았다. 이번 여행 중에 가장 실망스러웠던 일이었다.
그 아쉬움을 달래기 위해서였을까? 한국을 잘 안다는 어느 인도 여인이 우리를 알아보고 이웃보다 더 반겼다. 이 사람, 저 사람 안고 반기는 바람에 그만 아리랑 춤바람이 시작됐다. 춤을 추고 노래를 부르고 있는 대로 흥을 돋워 저절로 거리공연이 되었다. 사람이 살지 않는 해안 절벽 위 관광지에서 있을 수 없는 일이 벌어졌다. 새로운 신화를 만들어놓고 온 셈이다. 가이드님들에게 이야깃거리 하나 보태주고 온 것이다.
돌아오는 길은 다른 길이었지만 멀었다. 해가 기울고 저무는 저녁, 한적한 마을에서 저녁을 먹었다. 손님이 한 명도 없는 중국식당이었다. 큰 밥통에 넉넉하게 담아내온 밥과 차례로 나온 다섯 가지 요리가 그럴듯해서 맛있게 먹었다.
넓은 원탁에 둘러앉아 하하호호 수다판이 열리고 웃음꽃이 만발한다. 그 옛날 시집올 때 얘기로 한바탕 까르르… 이동거리는 길었지만 힘들어하는 사람은 누구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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셋째 마지막 날 밖에서 보면 세 개의 첨탑이 멋진 대성당이었다. 첫날 들어가려다가 문을 안 열어 못 들어갔었다. 차분한 마음으로 안에 들어갔다. 웅장하고 아름다웠다. 로마 대성전보다 규모는 작았지만 그 고풍스러움과 무게 있는 조화에 신음 같은 감탄이 절로 나왔다. 무릎을 꿇고 조용히 기도했다.
 “하느님 감사합니다. 제게 건강을 주시고 이렇게 좋은 여행을 허락하시어 진심으로 감사를 드립니다. 집에 돌아가는 순간까지 우리를 지켜주소서.”
단데농국립공원에서 야생의 새들에게 먹이주기 체험을 잠깐 하고 퍼핑빌리 증기기관차를 타러 갔다.
칙칙폭폭. 석탄을 때서 증기로 가는 기차, 100년 전통의 명물이었다. 예전에 수원에서 인천을 다니던 수인선 협궤열차와 같은 작은 규모였다.
관광 열차답게 창틀에 올라앉아 밖으로 발을 내놓고 타는 게 재밌다. 애들이 좋아하기에 딱 알맞지만 우리라고 못 할 게 
뭐 있나. 발을 내놓고 창틀에 빽빽이 앉았다. 따가운 햇볕이 조금 귀찮긴 했지만 달갑게 참는다. 길게 구부러져 도는 앞에서는 누군가가 손을 흔들어 준다. 가까이 있는 언덕바지의 나풀거리는 풀이 내 발끝에 채인다. 아이처럼 지나가는 행인들한테 손도 흔들어준다. 그들도 흔쾌히 답을 보낸다.
언덕바지 높은 곳을 올라보니 세상이 저만치 발아래에 있다. 석탄 냄새가 날라와도 낯설지가 않다. 어렸을 때 시골 친척 집에 갈 때 그런 기차를 탔다. 정거장에 설 때마다 역부가 흔드는 빨강 깃발, 파랑 깃발이 늘 궁금했었다. 노란 금테 모자를 쓰고 검은 정장이 참 멋있다고 생각했었다. 하얀 연기인지 증기인지 바람 따라 멀리멀리 잘도 날아간다. 
너무 즐거워서 그런가. 생소한 태국 점심도 꿀맛이었다. 여행은 낯선 음식을 먹어보는 것도 뜻이 있는 게 아닌가.
필립 아일랜드로 이동을 했다. 펭귄의 섬으로 가는 것이다. 시퍼런 바닷물 가운데 마른풀만 무성한 벌판. 거긴 뱀도 있고 밤엔 여우도 나온다고 했다.
둔덕에 굴을 파서 집 삼아 사는 펭귄의 생태를 처음 알았다. 
낮에 모두 바다에 나갔다가 밤에 자려고 집을 찾는 모양이었다. 까만 밤에 무리를 지어 육지로 올라와 각자 제집을 찾아드는 모습은 정말 볼거리다.
시간이 부족해 유레카 시티 야경을 취소하고 호텔로 돌아왔다. 귀가 잘 안 들려 눈으로 보기만 했으니 반쪽 여행을 한 셈이다. 다리가 아파 따라 다니느라 많이 힘든 분도 있었을 것이다. 아무도 내색하지 않으니 고마울 따름이다.
우리는 무지개 시니어 중창단. 모든 단원이 함께하지 못해 아쉬웠지만 단합을 위한 또 하나의 행사였다. 서로 더 가까이 알고 이해하며 내일의 비전을 밝게 다졌다. 허심탄회하게 진실을 털어놓고 웃고 떠들었던 시간이 헛되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노심초사로 함께하신 단장님과 무사히 다녀올 수 있도록 응원해주신 함께 못한 분들께도 감사를 드린다.
글과 사진_수필가 오소영



[이 게시물은 일요시사님에 의해 2018-07-11 20:28:48 교민뉴스에서 복사 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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