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클랜드 명소를 찾아 1-랑기토토 섬(Rangitoto Island)

여행


 

오클랜드 명소를 찾아 1-랑기토토 섬(Rangitoto Island)

일요시사 0 1195

최고의 여행은 실종”…그래도 돌아와야만 했다 

19세기 말 하루 여행지로 오클랜드 주민들에게 많은 사랑 받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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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 사이에 섬이 있다 / 그 섬에 가고 싶다데본포트에서 본 랑기토토 섬.


시집 한 권을 배낭 안에 집어넣었다. 제목은 .’(열림원 펴냄) 부제로 시인의 그림이 있는 정현종 시선집이라고 쓰여 있다. 1천 권만 찍은 특별판이다. 내 소장본은 436번째. 정현종은 나는 별아저씨’, ‘사랑할 시간이 많지 않다’, ‘방문객등의 시로 널리 알려진 시인이다.

시선집에 나오는 첫 시의 제목은 이다. 이 시는 딱 두 줄로 되어 있다.

 

사람들 사이에 섬이 있다

그 섬에 가고 싶다

전문

 

토요일 아침, 간단하게 배낭을 꾸렸다. 말린 과일(복숭아)과 육포 한 봉지(100 gram), 물과 자외선 차단제 그리고 시집 한 권. 오클랜드 부두(Queens Wharf. 페리 빌딩)에서 배를 탔다. 반 시간도 안 돼 나는 무인도에 떨어졌다.

멀리서 보고만 있어도 마음이 편해지는 섬, 랑기토토. 그곳에 가고 싶다는 생각을 하며 살았다. 벌써 네 번째. 새해 초만 되면 나도 모르게 발길이 옮겨진다. 산신령의 기()를 받고 싶어 그랬는지도 모른다. 

 

6천 년 전에 생겨최고 높이는 260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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랑기토토 정상에서 본 오클랜드 시내. 하늘 위 구름이 풍요롭다.

 

랑기토토는 화산섬이다. 지질학자는 약 6천 년 전에 섬이 생겼다고 말한다. 500~600년 전 마지막 화산 활동이 있었을 거로 추정한다. 폭은 5.5km, 최고 높이는 260m. 면적은 2,311헥타르( 700만 평). ‘성탄절 꽃나무라고 불리는 포후투카와(pohutukawa)를 가장 많이 볼 수 있는 지역이기도 하다.

마오리 말인 랑기토토’(rangitoto)피로 물든 하늘’(Bloody Sky)이라는 뜻이다. 마오리 추장이 랑기토토에서 적과 싸우다가 상처를 입어 피에 물든 채 죽었다는 전설이 전해져 온다. 그 슬픈 역사를 안은 랑기토토는 1854년 영국 왕실에 15파운드에 팔렸다. 아오테아로아(Aotearoa, 하얗고 긴 구름의 나라)를 영국에 넘긴다는 조약(The Treaty of Waitangi, 1840년 체결)을 맺은 지 10여 년이 지난 뒤였다.

19세기 말, 랑기토토는 오클랜드 주민들에게 하루 여행지로 사랑받았다. 아침 일찍 배를 타고 와서 바닷가에서 수영을 즐기다가 오후 늦게 돌아가는 코스였다. 1920년대~1930년대 180채의 배치 하우스(Bach House, 조그마한 휴가용 집)가 지어졌다. 지금은 30여 채만 남아 있고, 사람이 실제로 사는 집은 한 채도 없다.

1925~1936년 죄수들이 도로를 닦고 정상까지 올라가는 길을 만들었다. 2차 세계대전 말에는 미군의 지뢰 매장 시설로 사용하기도 했다. 정상에 서 있는 창고와 관측소가 그 흔적 가운데 하나다.

 

정상까지 한 시간 걸려어린이 교육장도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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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은 쉼.’ 정상을 15분 정도 눈앞에 두고 있는 쉼터.


정상까지 올라가는 데는 한 시간 정도 걸린다. 초보 등산객도 쉽게 정복할 수 있다. 산행 중간중간 크고 작은 검은 돌이 보인다. 현무암, 구멍이 숭숭 뚫린 검은 돌이다. 용암이 빠르게 굳어 만들어진 것이다.

10여 분을 걸었을까. 랑기토토의 형성 과정을 보여주는 교육장이 나타났다. 유독 큰 돌이 많이 보이는 곳이었다. 한 엄마가 어린 아들에게 섬의 역사를 설명해 주고 있었다. 아들이 눈여겨 주위를 관찰했다. 어린아이들을 둔 부모라면 꼭 거쳐 가야 할 곳처럼 보였다.

보통 체력을 지닌 남녀라면 한 번도 쉬지 않고 정상까지 오를 수 있다. 모바일 폰에 탑재된 만보기 앱(App)이 걸음 수 8천 가까이를 가리킨다. 저 멀리 꼭대기가 보인다. 정상에 서는 순간, 360도 파노라마 전망이 눈에 들어왔다. 어쩌면 오클랜드를 가장 멋있게 볼 수 있는 곳이 아닐까, 생각된다.

홀로 하는 산행. 다른 등산객에게 인증사진을 부탁했다. 미국 시카고에서 온 여자였다. 오클랜드에 사는 친구 집에 놀러 왔다가 마음이 울적해 혼자 올라왔다고 한다. 영화 인생은 아름다워’(Life is beautiful)의 여주인공 니콜레타 브라시를 닮았다.

등산객들 틈 사이에 끼여 휴식을 취했다. 말린 과일과 육포가 소박한 내 점심. 배만 채우기가 아쉬워 시집을 꺼냈다.

 

그래 살아봐야지

너도 나도 공이 되어

떨어져도 튀는 공이 되어

 

살아봐야지

쓰러지는 법이 없는 둥근

공처럼, 탄력의 나라의

왕자처럼

떨어져도 튀는 공처럼’ 1연과 2

 

애초 정상에 오르려고 한 게 아니었다. 그냥 그 섬에 갔다 오고 싶었. 랑기토토에서 그 무엇을 얻었다면 만족이다. 그때가 새해 초면 더 좋을 뿐. 다시 한 시간, 내 발은 따끈따끈한 바닷물과 함께 있었다.

 

박물관, 초기 정착민 살림 도구 그대로 전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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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창기 사람들이 살던 집, 방에는 자그마한 침대와 서랍장이 전부다.


랑기토토를 산행하는 방법은 여러 가지다. 정상까지 올라가는 길도 세 가지다. 내가 고른 길은 가장 많은 사람이 따라 하는 코스다. 동굴이 나오는 길도 있고, 옛날 채석장의 흔적을 볼 수 있는 길도 있다. 편도로 한 시간에서 세 시간짜리다. 그 어떤 쪽을 고르든 랑기토토의 기운을 받을 수 있다.

색다른 방법은 화산 탐험(Volcanic Explorer) 기차(?)를 타고 정상까지 오르는 것이다. 내가 한 번도 해 본 적이 없기에 딱히 뭐라고 덧붙일 말이 없다. 느낌상 나이 든 사람이나 장애인 혹은 어린아이에게 맞을 듯싶다.

오클랜드로 돌아가는 배를 기다리다 시간이 좀 남아 안내소라고 할 수 있는 배치 하우스(Museum Bach)를 둘러 보았다. 1927년에 지어진, 아주 소박한 집이다. 그 당시 사용했음 직한 살림 도구들이 그대로 전시되어 있었다. 유독 눈에 띈 것은 두 평도 안 되어 보이는 방이었다. 침대 하나, 서랍장 하나, 그리고 추억의 먼지들.

박물관은 토요일에만 운영된다고 한다. 자원봉사자가 나서 번갈아 가며 지키고 있다. 전시실 한쪽에 방명록이 보였다. 나는 내 이름 석 자를 썼다. 그 옆에는 해피 뉴 이어’(Happy New Year!).

멀리서 경적이 울렸다. 배가 곧 떠난다는 뜻이었다. 나는 시간 여행을 끝마치지도 못한 채 걸음을 옮겼다. 귀향 배를 타려는 데 오래전 책에서 읽은 멋진 말이 갑자기 떠올랐다.

최고의 여행은 실종이다.”

 랑기토토는 무인도다. 한 가족(마오리)이 살고 있다고 하지만 무인도로 여겨지는 섬이다. 배를 놓치면 돌아갈 방법이 없다. 하룻밤 별님이나 달님을 벗 삼아 새거나, 큰돈($200~$300)을 내고 배를 빌려 가는 수 밖에 없다. 아니면 그걸 핑계 삼아 자발적 실종을 자행하거나.

 “뿌웅~뿌웅!’

다시 경적. 나는 배에 올랐다. 마치 뒤를 돌아보면 소금 기둥이 될 것 같은 마음이었다. ‘어떡하든 올 한해, 잘 버텨 내야지.’ 랑기토토는 점점 멀어지고, 오클랜드는 점점 가까워졌다. 그렇게 나는 한 해 첫 과제를 치렀다.

글과 사진_프리랜서 박성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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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게시물은 일요시사님에 의해 2018-07-11 20:28:48 교민뉴스에서 복사 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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