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오클랜드 명소를 찾아 5-휘태커 음악 박물관(Whittaker’s Music Museum)

일요시사 0 382

천상의 소리, 100년을 훌쩍 넘어 울리다 

NZ에서 가장 오래된 피아노(Steinway Table Piano) 등 진귀한 악기 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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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리가 살아 있는 휘태커 음악 박물관.’ 보기만 해도 옛 소리가 전해져 올 것만 같다.


2003 1월로 기억한다. 한국에 잠깐 머물렀을 때 강릉 여행을 한 적이 있다. 참소리축음기박물관을 방문했는데 나는 벌린 입을 다물지 못했다. 한 수집가의 집념이 이룬 빛나는 월계관을 직접 보았기 때문이었다.

지금은 전망이 뛰어난 경포 도립공원 호수 옆으로 옮긴 박물관(전에는 송정동에 있었음)에는 에디슨의 발명품 1/3을 포함해 소리(sound)와 연관된 물품이 5천여 점이나 전시되어 있다. 해마다 한국은 물론 전 세계에서 50만 명이 넘게 찾아온다. 

박물관을 세운 이는 손성목 씨다. 손 관장의 축음기 사랑에 관한 기사를 읽은 적이 있다. 그는 사업이 부도가 날 지경에도 진귀한 음악 장비를 모으는 데 돈을 아끼지 않았다. 빚쟁이들을 피해 커튼 뒤에서 외국 중개업자와 가격을 흥정하기도 했다. 그 결과, 대한민국은 세계에서 가장 훌륭한 음악 박물관을 갖게 됐다. www.edison.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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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이드와 조안 휘태커 부부. 20185월 현재 65년을 함께 살고 있다.

 

토요일마다 오후 1 30분에 작은 연주회 열어


지난 토요일 와이헤케 섬(Waiheke Island)을 다녀왔다. 뱃길로 30, 오클랜드 인근에서 최고의 섬으로 꼽히는 와이헤케를 찾은 목적은 소리 박물관을 가기 위해서였다.

부두에서 내려 버스를 타고 첫 번째 정거장에 내렸다. 걸어서는 15분 거리다. 바로 앞에 투박하게 생긴 건물이 보였다. 휘태커 음악 박물관(Whittaker’s Music Museum).

굳이 토요일 오후를 고른 이유가 있었다. 1 30분에 열리는 악기 설명과 간이 연주를 듣고 싶었다. 80개 자리 중 1/4만 찼다. 거의 다 삶의 완성도가 느껴지는 할아버지와 할머니들이다. 100년이 넘은 악기들과 조화를 이루려는 듯 숨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단상에는 허리가 꼬부라진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계셨다. 한눈에 봐도 음악 박물관의 주인들이었다. 할아버지 이름은 로이드 휘태커(Lloyd Whittaker), 할머니 이름은 조안 휘태커(Joan Whittaker). 할아버지, 할머니라는 호칭을 쓰는 이유는 관장이나 대표라는 뻑뻑한 호칭보다 훨씬 낫다고 생각해서다. 그들의 음악 사랑 한평생을 읽고 나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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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질랜드에서 가장 오래된 피아노.(1894)


희귀 피아노 등 100대가 넘는 악기 전시


조안은 악기에 관해 설명했고, 로이드는 악기를 직접 연주했다. 더러는 둘이 합주를 하기도 했다. 조안은 89(1929년생), 로이드는 86(1932년생). 그 연세에도 열정이 뜨거워 날마다 관람객을 맞고 있다는 사실에 놀랐다.

박물관에는 100대가 넘는 진귀한 악기들이 전시되어 있다. 피아노, 아코디언, 하프시코드(Harpsichord, 피아노의 전신으로 현을 뜯어서 소리를 내는 악기), 콘서티나(Concertina, 아코디언의 일종으로 그보다 앞서 나옴) .

뚜껑을 닫으면 책상이 되는 피아노도 있고, 건반이 알아서 움직이는 자동 피아노도 있다. 하나하나가 다 골동품이자 보물이다. 특색은 살아 역사하는 악기들이라는 점. 100년이 훌쩍 지났는데도 전문가 연주가 가능할 정도로 잘 보존되어 왔다.

그중 박물관을 대표할 만한 진귀한 악기 두 점을 소개한다.

먼저, 베히스타인 그랜드 피아노(Bechstein Grand Piano). 1897년에 만들어진 이 피아노는 피아노의 왕이라는 폴란드의 피아니스트 파데레프스키(Paderewski 1860~1941)가 호주와 뉴질랜드 연주 여행을 왔다가 팔고 간 것이다. 파데레프스키는 1904년과 1931년 두 차례에 걸쳐 방문했다. 당시에는 악기를 직접 배에 싣고 오는 게 유행이었다고 한다. 한 세기가 흘렀지만 세월이 무색하리만큼 원음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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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안 휘태커가 악기에 대해 설명을 하고 있다. 

 

스테인웨이 테이블 피아노 NZ에서 가장 오래돼


또 하나는 스테인웨이 테이블 피아노(Steinway Table Piano). 색은 바랬지만 휘태커 부부의 꼼꼼한 보살핌(tuning, 조율) 덕에 지금도 충분히 훌륭한 악기로 사용하고 있다. 뉴질랜드 피아노 가운데 가장 나이가 많다. 1894년생이다.

그 밖에도 겉치장이 화려한 아코디언도 여러 대 눈에 뜨인다. 전문 음악인이 아니면 모를 콘서티나라는 악기도 몇 대나 된다. 가히 뉴질랜드 최고의 음악 박물관의 위용을 보여 준다.

음악 박물관이 어떻게 와이헤케 섬에 세워지게 됐을까?

그 이유를 알려면 휘태커 부부의 지난 삶을 조금은 이해해야 한다. 미리 밝히지만 나는 그들의 짧은 전기를 읽으면서 가슴이 울컥했다. 그들의 음악 사랑, 사람 사랑을 진하게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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넬슨에서 온 한 관람객이 옛 추억을 떠올리며 아코디언을 연주하고 있다.

 

로이드, 세 살 위인 조안 첫 만남에 반해


로이드와 조안의 고향은 뉴플리머스(New Plymouth). 로이드가 열여섯 살 때 조안을 처음 만났다. 동네 사진관이었다. 조안이 접수원으로 일하고 있었는데 로이드가 직원으로 들어간 것이다. 로이드는 조안을 보고 첫눈에 반했다. 세 살 연상은 아무 문제가 되지 않았다.

다섯 살에 하모니카를 손에 쥔 로이드는 그 뒤 악기를 열심히 배웠다. 피아노와 아코디언 같은 여러 악기를 독학으로 습득했다. 1947년 열다섯 살 때 보이 스카우트 단원으로 프랑스에서 열린 잼버리 대회에 참석했다. 오가는 뱃길에서 실력을 맘껏 뽐냈다. 훗날 결혼식 연주나 특별 연주회 개최로 번 돈이 적지 않았다. 런던에 있는 트리니티 칼리지(음악대학)에서 음악 교사 자격증까지 받았다. 아마추어로 음악을 즐기면서도 프로 실력을 갖춘 능력자였다.

조안은 아버지가 일찍 죽는 바람에 힘든 어린 시절을 보냈다. 하지만 생활력이 센 어머니 덕분에 또래에 견줘 일찍 피아노를 집에 들여놓을 수 있었다. 한 살 터울의 여동생과 함께 피아노 개인 교습을 받았다. 나중에는 로이드의 도움을 얻어 피아노 공부를 제대로 했다.

1953 10월 음악을 그 누구보다 사랑하던 그들은 화촉을 올렸다. 평범한 직장 생활을 해나갔다. 그러면서도 로이드는 동네 결혼식의 피아노 연주를 도맡아 했다. 로이드가 소화할 수 있는 곡은 400곡이나 됐다. 옆에서는 사랑스러운 조안이 늘 그 연주를 지켜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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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착장에서 걸어서 15분, 차로 5분 거리에 있다. 

 

젊은 과부로부터 이집트산 피아노 사들여


1980년대 로이드는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좀 색다른 직업에 뛰어들었다. 소독제 같은 생활용품을 파는 일이었다. 이미 아내 조안이 그 일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큰 어려움이 없었다. 보따리 행상 같은 거였다. 하지만 뉴질랜드라 그랬는지, 행상치고는 조금 격이 높았다. 장거리 여행에 주로 쓰이는 캠퍼밴에 팔 물건을 가득 싣고 이 도시 저 도시를 다녔다.

어느 날 뜻하지 않은 득템(‘물건을 얻는다라는 뜻)을 하게 됐다. 해밀턴에서 남쪽으로 30분 정도 거리에 있는 테 아와무투(Te Awamutu)라는 작은 도시에서 한 젊은 과부로부터 이집트산 피아노를 샀다. 양옆에는 스핑크스가 새겨진 골동품이었다.

이 일을 계기로 휘태커 부부는 진귀한 악기를 사 모으는데 진력을 쏟았다. 처음에는 친구들과 동네 사람들에게 보여주었다. 부부가 직접 연주까지 했으니 그 즐거움은 두말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1989년 휘태커 부부는 조안의 환갑을 기념해 영국 여행을 떠났다. 그들은 음악애호가답게 음악 박물관을 찾았다. 거기서 그들은 중요한 사실을 깨달았다. 유명한 박물관에는 죽은 악기만 미라처럼 남아 있을 뿐 살아 있는 소리(sound)가 없다는 점을 말이다.

휘태커 부부는 살아 있는 소리 박물관을 만들고 싶었다. 뉴질랜드 전국 곳곳을 돌며 사거나 기증받은 귀한 악기들이 하나둘 쌓였다. 지인들이 더 많은 사람에게 사랑을 받기 위해서는 오클랜드 같은 큰 도시로 진출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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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도 한 주에 한 번씩 악기 조율해


1994년부터 장소 물색에 들어갔다. 하지만 박물관으로 쓸만한 건물값이 너무 비쌌다. 막 포기하려던 차에 우연히 텔레비전을 보았다. 와이헤케 섬이 관광지로 부상하고 있다는 내용이었다. 와이헤케 아트워크 트러스트(Waiheke Artwork Trust)가 관심을 보였다. 자동차 페리 회사가 무료로 짐을 옮겨 주겠다고 했다. 악기를 포장하는 데만 9시간이 걸렸다. 두 달 뒤인 1996 6월 오네로아(Oneroa)에 휘태커 음악 박물관이 세워졌다.

휘태커 부부의 음악 사랑과 사람 사랑이 돋보이는 이유는 이렇다.

그들은 지금도 한 주에 한 번씩 악기 조율(튜닝)을 한다. 시간 날 때마다 망가진 악기를 돌본다. 평일 하루 세 시간씩 박물관을 지키고, 토요일에는 직접 연주와 친절한 설명회 자리도 마련한다. 또한 초중등학생이나 대학생을 대상으로 특강도 하고, 각종 연주회도 알선한다. 와이헤케 섬이 문화와 예술의 마을로 부러움을 받는 것도 이들 부부의 흐뭇한 헌신 덕이다. 휘태커 부부의 나이가 80대 중후반이라는 점을 고려한다면 따로 부연 설명하지 않아도 되리라 생각한다.

사람 사랑은 두 아이(한 명은 아시아계, 또 한 명은 마오리계)의 입양과 30년에 가까운 주일학교 봉사로 말할 수 있다. 특히 어린 아이들의 박물관 방문을 좋아하는 그들은 자기네들이 죽더라도’(kick the bucket) 음악은 계속 이어져야 한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 후손들이 져야 할 거룩한 짐이다.

박물관을 나서기 전 휘태커 부부와 함께 기념사진을 찍었다. 와이헤케 역사의 한 쪽을 장식한 그들의 흔적을 내 기억 속에 오랫동안 남겨두고 싶었다. 그러면서, 이런 얘기를 드렸다. “앞으로 한국 사람들도 찾아올지 몰라요. 제가 이 박물관을 널리 알리고 싶어서 먼저 온 거거든요. 잘 좀 설명해 주세요.”

올해로 결혼 생활 65년째인 휘태커 부부는 말도 어눌하고 행동도 느리다. 하지만 그 어떤 사명감으로 꽉 차 있음을 쉽게 알아차릴 수 있다. 한 세기에 가깝게 한 목표를 가지고 인생을 살아온 그들에게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무한 존경심을 보낸다.

참고로 박물관에 가면 세 가지 살 것이 있다. 작은 팸플릿(일종의 짧은 자서전 ‘A Life in Music’, $5)과 음악 CD($20), 연주 실황 DVD($30). 휘태커 부부의 음악 사랑 한평생을 조금이라도 느껴볼 수 있는 또 하나의 악기(樂器)라고 믿는다. 부디 셋 가운데 하나는 사 드리는 예()를 보여 주길 바란다.

글과 사진_프리랜서 박성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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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hittaker’s Music Museu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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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개관 시간: 매일 오후 1~4

▣ 주소: 2 Korora Road, Oneroa, Waiheke Island

▣ 전화: 09) 372 5573

www.musicalmuseum.org

[이 게시물은 일요시사님에 의해 2018-07-11 20:33:54 교민뉴스에서 복사 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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