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 용 주 변호사의 “너는 뒤로 빠져 있어라”

법률/이민


 

장 용 주 변호사의 “너는 뒤로 빠져 있어라”

일요시사 0 1957

1991년 따스한 봄날 햇살에 눈이 부시던 어느 날, 필자는 대학교정에서 민주화를 외치며 건물 옥상에서 5층 아래로 화염에 휩싸인 몸을던지던 동료 학생의 모습을 목격하게 되었다. 그 학생은 구급차에 실려 병원으로 이송되었으나 결국 목숨을 구할 수 는 없었다. 말 그대로 내 눈이 의심되는 충격적인 상황이 눈앞에서 벌어졌다.

불의에 눈감고 비겁하게 살아가도록 강요 받던 시대의 아픔을 아직도 기억하는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그 시절 TV만큼 강력한 세뇌 수단은 없다. 특히 지금처럼 인터넷이나 다른 형태의 소통 방식이 없는 시대에서 TV의 위력은 가히 상상을 초월했다. 결국 어떻게 TV에 그려지느냐가 우리의 사고를 좌우했다. 따라서 민주화를 요구하거나 정부를 규탄하면 사회혼란의 주범이고 그러므로 이들은 마땅히 응징되어야 한다는 식의 논리가 이 시대를 살던 부모들의 머리속에 박힐 수 밖에 없었다.
결국 언제 부터인가 ‘너는 뒤로 빠져 있어라’, ‘가만히 있으면 중간이라도 간다’라는 체념식의 사회적인 강요를 우리는 너무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게 되었다. 이러한 왜곡된 사고는 다시 세대에서 세대로 전달되었고 심지어 미래를 짊어질 학생을 가르치는 학교에서 조차 불의에 대한 가장 적절한 대응으로 여겨질 수 밖에 없었다.
가령 선생님의 처신이나 행동에 대해 불만을 가지거나 이의를 제기하는 것 자체가 있을 수 없는 것일 뿐 아니라 그 자체가 권위에 대한 도전이라고 자연스럽게 받아 들여졌다. 굳이 거슬러 올라가자면 조선을 건국하면서 사회질서 유지를 위해 이용한 군사부일체 (君師父一體)라는 표현이 우리내 정서의 원류라고 보아야 할지도 모르겠다. 아무튼 현실적으로 졸업장을 받을 수 있느냐 없느냐의 결정권이 선생님과 학교에 전적으로 있었으므로 결국 “뒤로 빠지는 것” 만이 유일한 선택일 수 밖에 없었다. 따라서 학생들의 인권이 철저히 외면되어 왔다.
뉴질랜드는 이러한 학생 인권에 대해 학교 규정을 통한 제도적 장치를 마련해 놓고 있다. 이번 호에서는 뉴질랜드 대학들이 기본적으로 마련하고 있는 학생인권 보장에 대해 알아보고자 한다.

뉴질랜드는 한국과 달리 전체 인구도 적고 그 만큼 전문대를 포함한 대학교의 숫자가 적은 편이다. 영어권 국가 중 원화 대비 환율이 좋고 안전하다는 이미지를 통해 그 동안 한국을 포함한 다양한 아시아 국가권의 학생들이 뉴질랜드로의 유학을 선호했었다. 그러나 아무래도 낯선 환경와 언어적인 문제 때문에 스스로의 권리를 행사할 수 있는 것인지, 불이익을 당하는 경우 적절한 조치 방법은 어떤 것이 있는지 모르는 경우가 많았다.
대학입학허가와 등록금 납부와 동시에 해당 학교의 학생으로써 권리와 의무가 발생하게 된다. 특히 중요한 점은 대학내 교수를 포함한 교직원들로 부터 부당한 대우를 받았다면 제도적 장치를 이용하여 권리를 찾아야 한다. 부당한 대우라함은 형사처벌 대상이 될 만한 행위들을 가리킨다는 것은 두말 할 나위 없고, 정당한 학생 권리 요구를 거절한 경우, 불합리한 성적 처리 및 성적 처리 지연등등 학생 스스로 부당하다고 판단되는 사안들에 대해 이의를 제기 할 수 있다.
대학별로 약간의 절차적 차이만 있을 뿐 기본적으로 학생 인권 보호에 대한 취지는 동일하다. 이러한 학생 권리 문제는 학교 규정의 보호 뿐 아니라 법적으로 보호되는 내용들이 대부분이다. 가령 정보제공법 (The Official Information Act), 사생활 보호법 (The Privacy Act), 인권법 (The Human Rights Act), 고용법 (The Employment Relations Act) 심지어 소비자 보호법 (The Consumer Guarantees Act) 등 의외로 이와 관련된 법들은 다앙하다.

간단하게 학생 권리가 침해되는 상황을 예를 들어 그 접근 단계를 설명해 보도록 하겠다. 가령 교수로 부터 부당한 처우 (성적 처리를 포함)를 받았다고 판단되며 우선적으로 해당 교수에게 문제 제기를 하는 것이 1차적 단계이다. 만일 만족스러운 해결책이 모색되지 않는다면 제 2단계로 학과장 (Director), 그 다음으로는 학장 (Head of Department), 대학 총장 (Chancellor) 순서로 위로 올라가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그러나 이러한 구조는 오히려 학생들로 하여금 부당한 처우에 대한 이의 제기를 어렵게 하고 있다. 교수와 학생이라는, 또는 교수와 총장이라는 수직적 관계에는 보이지 않는 힘의 불균형이 분명히 존재하고 있다. 한마디로 괜히 문제를 일으켰다가 나중에 더 큰 손해로 이어질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이 생길 수 밖에 없다. 어찌 보면 이러한 힘의 불균형 속에 이러한 이의 제기 절차가 공존한다는 것은 현실성을 놓고 보았을 때 학생들로 하여금 문제 제기를 어렵게 만든다는 생각이 든다. 지루한 싸움이 되다보면 나중에 가서는 차라리 시작하느니만 못했다는 생각이 들 수 있는 절차이다.
따라서 학생으로써 당연히 누려야 할 권리가 침해 되었거나 부당한 대우를 받았다면 우선 주변 사람들과 상의를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특히 각 대학별 학생회 (Student Union)나 교내에 마련되어 있는 도움 센터 (Student Advocacy)를 통해 어떻게 문제에 접근하는 것이 좋은지 조언을 구하고 도움을 요청하는 것이 좋다. 각종 사례별로 많은 경험이 축적되어 있는 도움센터야 말로 우선적으로 찾아가 보아야 할 곳이다. 유학생의 경우라면 유학생 담당 교직원과 상의 하는 것도 좋겠다. 이처럼 다양한 경로를 통해 스스로의 권리를 주장하고 현실적인 해결책을 알아 보는 것이 가장 현명한 방법이 될 것이다.

우리가 다음 세대에 넘겨 주어야 할 것들은 아주 많다.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는 어떠한 형태로든 서로가 서로에게 연결될 수 밖에 없고 직접적이든 간접적이든 간에 서로에게 영향을 미치고 있다. 지금 우리가 “뒤로 빠지는 것”이 어찌 보면 결국 먼 훗날 우리 사회 전체의 손해로 이어지게 될 것이라 믿는다. 언제 어디서는 스스로의 권리가 침해되었다고 생각되면 한발 앞으로 나서서 바로 잡을 수 있는 그런 사람 사는 세상을 함께 만들어가야 하지 않을까 한다. 특히 소수 아시아계 이민자 또는 유학생으로 살아간다는 것이 녹록치 않다는 것을 우리는 이미 많이들 경험했다. 따라서 부당한 경험들을 혼자 고민하지 말고 주위 사람들의 도움을 받아 함께 해결해 보는 것 또한 우리 모두를 위한 소중한 자산이 되리라 믿는다.


(정기적으로 뉴질랜드 법률 내용에 대한 개인 구독을 원하시는 분들이나 궁금하신 점이 있으신 분들은 sjlawyers.jang@gmail.com으로 연락 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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