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률칼럼; 권태욱 변호사 >; 어떤 대만 노인의 담대한 도전 3
그렇게 대만으로 돌아간 이 노인(그 당시에는 장년)은 물론 영주권을 포기했다.
주신청자의 영주권이 소멸되어도 동반 가족의 영주권은 소멸되지 않는다. 다만 영구영주권 취득이 되지 않을 뿐이다. 영주권자가 외국으로 출국하지 않는 한 영구영주권이 있느냐 없느냐는 아무 상관이 없다. 그 차이는 그 영주권자가 외국에 나갈 때만 드러난다. 영구영주권이 있는 사람은 출국해서 몇 십 년 동안 외국에서 살다가 돌아와도 뉴질랜드에서 영주권자의 혜택을 누릴 수 있다. 영구영주권이 없는 사람이 출국하려면 단기 영주권비자를 준다. 비자 기간 안에 재입국하면 뉴질랜드에서 영주권자로 살 수 있고, 그 기간이 지난 다음에 재입국하면 방문객으로 지내다가 비자 기간이 지나면 외국으로 출국해야 한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영구영주권이 없으면 이 나라에서 계속 살 수 없는 것으로 알고 있다. 사실은 영주권을 받은 사람은 영구영주권을 받지 않더라도 이 나라에 머무는 동안에는 계속 영주권자의 모든 혜택을 누리면서 살 수 있다. 주신청자의 영주권이 취소되어도 상관없다. 그 사실을 아주 잘 알았던 이 대만 중년 남자는 가족들을 남겨놓고 대만으로 돌아가서 자기가 일하던 분야에서 계속 일하면서 높은 소득을 올렸다. 그러면서 가끔 뉴질랜드에 와서 가족들과 함께 지냈다. 판결문에 의하면 1998년부터 2019년 사이 21년 동안 뉴질랜드를 서른 번 방문했고, 한 번 방문에 머문 기간은 1주일에서 1개월 사이였다. 기러기 아빠가 아니라 독수리 아빠였다.
그 사이에 뉴질랜드에 체류하고 있던 가족들은 모두 뉴질랜드 시민권을 취득했다. 뉴질랜드에서 영주권자로 5년 이상 살고 있었고, 특별한 범죄사실이 없었으므로 그들이 시민권을 취득하는 데는 아무런 장애가 없었다. 영주권 신청 당시의 주 신청자가 영주권을 상실했다는 사실은 그 가족이 시민권을 취득하는 데 아무 상관이 없는 사실이었다.
그렇게 시민권을 취득하고 난 뒤, 세 딸들이 장성해서 엄마의 돌봄이 별로 크게 필요가 없어진 2010년 경부터는 부인이 대만에 가서 남편과 지내다가 오기도 했다. 부부는 대만에도 집을 갖고 있었다.
그렇게 뉴질랜드 영주권 제도의 맹점을 이용해서 두 나라가 주는 잇점을 모두 누리면서 생활하고 자녀를 양육했던 이 대만 남자의 욕심은 거기서 그치지 않았다. 나이가 들어서 직장에서 은퇴를 한 그 남자는 뉴질랜드에 와서 가족과 함께 살기로 했다. 그냥 방문객으로 와서 지내는 것이 아니라 뉴질랜드에서 주는 모든 복지 혜택을 누릴 수 있는 영주권자로.
그래서 뉴질랜드 시민권자인 자기 아내의 파트너로 영주권을 신청했고, 첫번 째 글에서 알려드렸듯이 뉴질랜드 이민성은 “당연히” 그 신청을 기각했다.
그런데 그 대만 남자는 거기서 포기하지 않고, 이민 및 보호 심판소 Immigration and Protection Tribunal에 이민성의 판정을 번복시켜 달라고 신청을 한 것이었다. ‘안되면 되게 하는’ 정신으로 한번 ‘해보기는 하는’, 기업가 정신이 투철한 사람이 틀림없다. 그가 신청을 할 수 있었던 법률적 근거는 이민법 제187조. 이민법은 고무줄 법이다. 이민성에서 심사에 적용하는 규칙은 매우 까다롭고 인색하다. 그런데 그렇게 법률과 규정을 까다롭게 적용한 이민성의 결정은 ‘장관의 재량권’으로 또는 이민 및 보호 심판소의 판정으로 단번에 뒤집어질 수 있다. 이민성의 판정을 뒤집기 원하는 신청자가 비빌 언덕은 이민법 제187조다. (불법체류자가 이용할 수 있는 조항은 제61조가 또 있다.) 이민법 제187(4)조가 제공하는 판정 기준은 두 가지다. 하나는, 이민성의 심사가 지침에 따라 적절하게 제대로 진행되지 않았는가, 둘째는, 신청자에게는 이민성 지침의 예외를 적용하도록 권고하는 게 마땅할 사정이 있는가.
이 법을 기준으로 이민 및 보호 심판소는 이 대만 남자의 영주권 신청에 대한 이민성의 기각 결정을 들여다 보았다.
그리고, 첫 번 째 기준에는 해당되지 않는다, 즉 이민성이 비자심사 지침서에 따라 바르게 판단하고 결정을 내렸다고 결정했다.
그 다음에는 이 대만 남자에게 이민성 지침의 예외를 적용하도록 권고하는 게 마땅할 사정이 있는가에 대해서 검토했다.
신청인의 재심 청구 취지는 이 조항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
신청인은 대리인을 통해서 예외가 적용되어야 하는 이유를 여러가지 들었는데, 그중 핵심적인 내용만 소개하면 아래와 같다.
1. 신청인이 뉴질랜드에서 취업해서는 가족을 부양할 수 없었고, 대만에는 장인이 아파서 앓고 있는데 처가 식구들 중에는 장인을 돌봐 줄 사람이 없었다. 그러므로 신청인이 대만으로 돌아간 것은 가족을 부양하고, 장인을 간호하기 위한 불가피한 선택이었다.
2. 20여년 가까이 가족과 떨어져 있는 것은 고통스러운 일이었지만, 자녀들의 교육을 위해서 그 고통을 참아내는 희생을 치뤘다.
3. 이제 장인은 돌아가시고, 직장에서 은퇴했으니 신청인이 대만에 더 머무르지 않아도 된다. 이제부터는 뉴질랜드에서 가족과 함께 여생을 보내고 싶다.
위와 같은 사실이, 신청인에게 뉴질랜드 이민법 규정에 예외를 적용해서 영주권을 허용하는 것이 인도적으로 타당한 사유가 된다고 그 신청인과 그 대리인은 생각을 했을까? 아니면 ‘아님 말고’ 식으로 그냥 한번 찔러 본 것일까?
필자가 보기에는 자세한 검토도 필요 없는 아전인수 격의 이유였다.
결론은 물론 기각이었다. 그런데 심판부는 나처럼 ‘아전인수’ 한 마디로 자른 것이 아니라, 기각 사유를 설명하기 위해서 무려 열 다섯 페이지에 걸치는 장문의 판결문을 작성했다.
(다음 호에 계속)
권태욱 변호사 taekwonlawyer@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