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쓰는 사람들(1) 와이카레모아나 호수와 달

문학의 향기

글쓰는 사람들(1) 와이카레모아나 호수와 달

일요시사 0 17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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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트레스를 받아서일까. 요 며칠 사이 혼자 중얼거리는 횟수가 늘었다. 남들이 옆에 있을 때는 민망해서 웃는다. 들어보면 별것도 아니다. 아직 답을 안 하는 거를 보면 걱정할 단계는 아닌가 보다. 그래도 부쩍 늘어난 혼자 얘기하는 행동의 원인이 궁금해진다.

 지금 자주 되뇌는 단어는 눈이다. 하나만 있으면 어떨까. 왜 사람은 눈을 두 개나 가지고 있지. 하나의 이미지만 뇌에서 분석하면 혼란이 없을 거 같은데 말이다. 이유가 뭘까. 두 개의 눈에서 들어오는 정보를 분석하려면 뇌가 바쁠 텐데. 쉴 새 없이 들어오는 정보를 처리하려고 전두엽이 발달했나. 이런 식으로 쓸데없이 생각의 꼬리를 물고 늘어진다.

 얼마 전 와이카레모아나 호수를 다녀왔다. 호수를 배경으로 한 ‘Hunt for the Wilderpeople’이란 뉴질랜드 영화가 있다. 한국에서는 ‘내 인생 특별한 숲속 여행’으로 소개되었다. 영화를 보면서 ‘꼭 가 봐야지’라고 했던 곳이다. 곰곰이 따져보면 눈에 대한 집착은 와이카레모아나 호수 야영장을 다녀온 다음부터 시작되었지 싶다.

 오클랜드에서 일곱 시간 걸렸다. 로토루아를 거쳐 비포장도로로 들어섰을 때 자꾸 미끄러지는 차 바퀴 때문에 빨리 달리지 못했다. 천천히 움직이는 양 떼에 갇혀 안절부절못했던 모습을 뒤로하고 야영장에 도착했다. 사방을 돌아보는 순간 피곤이 물러나면서 가슴이 벅차올랐다. 아름다우면서도 포근했다.

이 지역은 와이탕이 조약 때 서명을 거부한 투호이 부족의 영토였다. 정부는 강제로 뺏은 땅을 최근에 돌려주었다. 사과의 말도 덧붙였다. 일본에 주권을 빼앗긴 선조들의 고통 때문이었을까. 투호이 부족의 아픔이 가슴으로 전해진다. 

 다음날 한 시간짜리 산행을 했다. 영화에서 봤던 대로 돌과 나뭇가지에 붙어있는 이끼들이 신비롭다. 리무(Rimu), 라타(Rata), 너도밤나무 사이에서 숲속의 요정들이 금방 튀어나올 것 같다. 마오리 사람들은 숲속에서 어떤 신을 만났을까.

 와이카레이티(Waikareiti) 호수로 가는 도보여행 코스를 두시간 만에 완주했다. 걷기가 힘들어 나무에 기대 몇 번이나 쉬었다. 지나가는 등산객들이 내게 후회하지 않을 거라 했다. 그들의 말처럼 호수는 너무나 아름다웠다. 하늘과 물이 같은 색인 호수에 뛰어들었다. 호숫물을 마시고 싶다는 충동이 일었다. 조그만 바위섬에 앉아 몸을 말렸다. 인어 왕자가 되었다. 배불뚝이 인어 왕자 모습에 웃는다. 천국이 이럴까. 상상의 날개를 펼친다.

 상상의 끝에는 늘 남과 더불어 살고 싶은 욕구가 있다. 아름다운 자연을 누군가와 같이 봤으면 얼마나 좋을까. 한국에 사는 형과 누나가 떠 오른다. 함께 있었으면 좋을 텐데. 여유가 없는 그들을 향한 미안함과 정신적으로 풍족해지는 내 삶에 감사하는 마음이 교차한다.

 야영장 공동 부엌에서 참치 파스타를 만들었다. 적포도주 두 잔을 곁들여 파스타를 맛있게 먹었다. 살짝 취기가 돈다. 마오리들이 케레루라 부르는 나무 비둘기의 움직이는 소리가 난다. 어디 있을까. 케레루를 찾아 나무들을 눈으로 뒤지다 하늘을 본다. 맑고 푸르다. 오늘 밤에는 별똥별이나 볼까.

 밤늦은 시간, 사방이 캄캄하다. 내가 묵고 있는 캐빈에서 나왔다. 사람들은 안 보인다. 개구리와 이름 모를 벌레들의 소리만 들린다. 오 십여 년 전에는 개구리와 맹꽁이의 소리를 밤마다 들었는데.

 논과 밭이 가득했던 인천의 변두리에 살았던 시절이 생각난다. 그때는 하늘에 별도 많았다. 힘들었던 생활 때문이었는지 눈물이 괸다. 청승맞다고 생각하며 고개를 든다. 수많은 별과 둥그런 달이 보인다.

 달을 보는 순간 깜짝 놀라 눈을 크게 떴다. 달이 세 개로 보였다. 달의 위와 밑에 삼 분의 일씩 더 붙어 있었다. 최근에 맞춘 다초점 렌즈 안경이 안 맞나 싶어 안경테를 조금 움직였다. 눈을 깜박이다 비비기도 했다. 아무리 해도 변하지 않으니 걱정이 스멀스멀 밀려오기 시작했다.

 지난해 남대문시장에서 안경을 맞췄다. 싼 게 비지떡이었나. 안경 도수가 너무 높아 눈이 종종 아팠다. 돈이 아까웠지만, 스트레스를 덜 받고 싶어 올해 초 거금 850달러를 투자해 새 안경을 받았다. 그런 상태에서 또 눈 검사를 받을 생각을 하니 화가 난다. 팔이 안으로 굽어서일까. 남대문시장의 안경 도매상 직원보다 스펙세이버의 중국인 검안사가 밉다.

 눈은 세상을 관조하는 데 중요하다. 두 개의 눈을 통해 세상을 보면 뇌는 제 삼의 이미지를 만들어 낸다. 이런 능력 때문에 사람이 다른 동물과 다르다. 그런데 눈에 문제가 있으면 어떻게 되지. 뇌에 제대로 된 정보를 줄 수 있을까. 잘못된 정보로 인해 만드는 결정은 소통하는 데 도움이 안 될 거야. 여러 의문 속에서도 조금씩 걱정이 파고든다. 눈에 문제가 생겼나. 어떻게 해야 하지.

 두려움 속에서도 호기심이 떠나지 않는다. 계속해서 질문을 던진다. 똑같은 사물을 두 개의 눈으로 보면서 왜 다르게 해석할까. 사물을 볼 때 내 눈을 가리는 게 뭐지. 인식과 경험의 부족, 아니면 치유되지 않은 상처 때문일까. 정확하게 답을 끄집어내지는 못하고 헤맨다. 뇌 신경학자가 아니라고 자위하며 뇌에 쌓아 놓은 과거의 상처가 현실을 보지 못하게 할 수도 있겠거니 하며 결론을 내린다.

 달을 제외한 다른 사물은 겹치지 않고 잘 보였다. 조금은 안도가 되었지만, 궁금증은 사라지지 않았다. 오클랜드에 올라가면 꼭 가정의를 찾아 상담하리라 마음을 먹었다.  

 와이카레모아나 호수를 뒤로하고 동해안의 바닷가를 따라 오클랜드로 올라왔다. 여러 색깔을 띤 바다의 아름다움에 탄성을 질렀다. 두 눈으로 볼 수 있다는 사실에 가슴이 벅차오른다. 살아있음에 감사한다. 운전하면서 파란 하늘만큼 푸른 바다를 옆 눈으로 자꾸 훔쳐본다.

 달은 이제 하나로 보인다. 시력과 안경 검사를 다시 해야겠다는 다짐은 바쁘다는 핑계로 뒤로 미루었다. 며칠이나 지났지만, 와이카레모아나 호수는 아직도 눈에서 아른거린다. 그 아름다운 경관을 생각할 때마다 가슴이 뭉클해진다.

 두 눈을 통해 들어오는 아름다움으로 뇌가 꽉 차면 어떻게 될까. 과거에 쌓였던 아픈 기억들을 꽉 보듬겠지. 그러면 어떠한 상황에서도 과거의 눈으로 현재를 보진 않을 거야. 세상을 있는 그대로 보면서 새로운 세계를 꿈꿀 수 있는 그런 날을 그려본다.

 아름다운 경관을 즐기기 위해 눈을 보호하자는 내면의 소리도 들린다. 다음에는 꼭 안과 전문의를 소개해 달라고 가정의한테 말해야겠다. 그러면서도 마음의 상처도 치유하고 싶은 욕구에 생각이 많아진다. 다음 휴가에는 어디를 가지. 아픔을 씻어줄 아름다운 장소가 어디 있을까. 인터넷에서 뉴질랜드의 명소를 뒤적인다.

 와이카레모아나 호수를 뒤로하고 동해안의 바닷가를 따라 오클랜드로 올라왔다. 여러 색깔을 띤 바다의 아름다움에 탄성을 질렀다. 두 눈으로 볼 수 있다는 사실에 가슴이 벅차오른다. 살아있음에 감사한다. 운전하면서 파란 하늘만큼 푸른 바다를 옆 눈으로 자꾸 훔쳐본다.

 달은 이제 하나로 보인다. 시력과 안경 검사를 다시 해야겠다는 다짐은 바쁘다는 핑계로 뒤로 미루었다. 며칠이나 지났지만, 와이카레모아나 호수는 아직도 눈에서 아른거린다. 그 아름다운 경관을 생각할 때마다 가슴이 뭉클해진다.

 두 눈을 통해 들어오는 아름다움으로 뇌가 꽉 차면 어떻게 될까. 과거에 쌓였던 아픈 기억들을 꽉 보듬겠지. 그러면 어떠한 상황에서도 과거의 눈으로 현재를 보진 않을 거야. 세상을 있는 그대로 보면서 새로운 세계를 꿈꿀 수 있는 그런 날을 그려본다.

 아름다운 경관을 즐기기 위해 눈을 보호하자는 내면의 소리도 들린다. 다음에는 꼭 안과 전문의를 소개해 달라고 가정의한테 말해야겠다. 그러면서도 마음의 상처도 치유하고 싶은 욕구에 생각이 많아진다. 다음 휴가에는 어디를 가지. 아픔을 씻어줄 아름다운 장소가 어디 있을까. 인터넷에서 뉴질랜드의 명소를 뒤적인다.                                                                                                                                정인화

 

‘글쓰는 사람들’은 오클랜드를 중심으로 한 글쓰기를 좋아하는 사람들의 모임입니다. 

한 달에 두 번 모여 좋은 글을 나누며 글쓰기도 하고 있습니다. 네 명이 번갈아 가며 연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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