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쓰는 사람들(10)] 작은 이별

문학의 향기

[글 쓰는 사람들(10)] 작은 이별

일요시사 0 1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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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김인식                                                                                                                
 

일요일 아침 10시 반. 보통 이때면 나는 교회에 있다. 손님이 와서 같이 여행을 해야 하는 경우가 아니면 예배를 빠지는 일은 드물다. 아마 일 년에 한두 손가락 안에 꼽힐 것이다.

나는 지금 벨몬트(Belmont)에 위치한 카페에 앉아있다. 어느 지역에 누가 살라고 특별히 정하진 않았지만 익숙한 사람끼리 모여 사는 것이 편한가 보다. 가만히 보면 뉴질랜드에서도 같은 피부색을 가진 사람들끼리 모여 산다.

내가 사는 지역에는 한국 사람이 많다. 한때는 우리 집 근처에 슬리퍼를 끌고 콩나물을 사러 갈 수 있는 한국 슈퍼가 세 개나 되었다.

이 카페는 분위기가 좀 다르다. 카페에 들어서는데 젊은 아빠가 한 손으로 아이를 옆구리에 끼고 다른 손으로 테이크어웨이 상자를 들고 나간다. 인형같이 예쁜 아이의 입술주위로 우유 거품 자국이 선명하다. 일요일 아침, 잠자는 부인 옆에서 깨어 노는 아이를 데리고 나왔을 것이다. 본인도 플랫 화이트 (Flat White) 커피 한 잔을 마시고 아이에게도 플러피(Fluppy)를 시켜 준다. 우유를 거품을 내서 작은 커피잔에 담아주는 것을 플러피라고 부른다. 꼬마 아가씨는 플러피를 마시면서 아빠와 멋진 데이트를 했다. 테이크어웨이 상자에는 바로 먹어 치우기에는 아까운 예쁜 케이크 한 조각이 들어 있다.

앞자리에는 금발아주머니가 핸드폰을 계속 만지작거리고 있다. 식어가는 커피에는 별로 관심이 없다. 가끔 고개를 들어 주위를 살피는 모양새가 누구를 기다리나 보다. 또래의 아주머니 세 명이 몸에 딱 붙는 운동복 차림으로 들어선다. 환한 웃음으로 서로를 안아준다.

우리 집에서 차로 20분 정도 걸리는 이 카페는 꽤 알려져 있다. 큰 길가에서 한참 들어가는 주택가 한가운데 있는 있는데도 늘 손님으로 붐빈다. 대부분 백인이다.

내 등 뒤에는 중국 중년 부부가 대학생 또래의 딸과 함께 테이블을 하나 차지하고 있다. 딸아이가 주말에 부모님을 모시고 나온 것 같다. 어떻게 아느냐고? 우리 집이 그렇기 때문이다. 암만해도 나보다 정보가 많은 딸아이는 예쁜 카페나 음식점을 갔다 오면 이야기를 해준다. 가끔 같이 가기도 한다.

이제 카페 이야기는 그만하고 내가 여기서 누구를 기다리고 있는지를 설명해야겠다. 나는 아니타를 기다리고 있다.

몇 년 전, 아이들에게 손이 덜 가기 시작하면서 하고 싶었던 공부를 시작했다. 공부도 힘들었지만 새로운 사람들과 어울리는 것이 더 어려웠다. 내가 있지 않아야 할 자리에 있는 것 같았다. 학기 중에 갑자기 한국 갈 일이 생겼다. 누구에게 알리고 할 경황이 없었다. 오클랜드 공항에서 비행기를 기다리고 있는데 “Where are you?” 아니타가 보내온 문자였다. 내 부재를 누가 알고 있다는 것이 고마웠다. 그렇게 우리는 가까워졌다. 그녀는 20대를 영국에서 보내다 뉴질랜드 남자를 만나 사랑에 빠져 뉴질랜드로 왔다.

“너나 나나 악센트 때문에 수업시간에 고생이 많아.

“이민자로의 삶이 안 쉬워. 뉴질랜드 문화에 적응이 안 돼.

그녀가 이런 이야기를 할 때마다 나는 ‘귀신 씨나락 까먹는 소리 하고 있네. 영어를 모국어로 쓰는 네가 그 정도이니 나는 어떻겠니’라고 속으로 말하면서도 총체적 난관인 내 영어를 악센트 문제로 넘어가 주는 것이 눈물 나게 고마웠다. 그놈의 악센트 때문에 전화보다 문자로 이야기하는 것이 편하다. 한참 서로를 알아 갈 때는 밤늦게까지 문자를 하면서 별별 이야기를 다 했다. 알면 알수록 닮은 점이 많았다. 잘 통했다. 특히 아픈 경험은 더 잘 통했다.

그녀는 최근에 남편과 이혼하고 딸아이 하나를 데리고 산다. 오클랜드 집값이 많이 올랐다. 집을 가진 사람은 복권에 당첨된 것처럼 좋아하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에게는 오클랜드 살이가 더 버거워졌다. 혼자 수입으로는 오클랜드에서 집세를 내고 아이를 키우기가 쉽지 않다며 지방 도시로 가고 싶다는 말을 종종 했다. 나는 한국에 가고 싶다고 내가 입버릇처럼 이야기하듯이 하는 희망 사항이려니 했다. 역시 젊어서 그런지 행동이 빠르다.

일주일 전에 넬슨(Nelson)으로 이사하기로 했다고 연락이 왔다. 같이 공부하던 사람들끼리 모여 식사를 하자고 한다. 벌써 직장도 구하고 그림 같은 집도 얻었다. 자기가 영국에 있을 때처럼 아이가 농장에서 자랄 수 있게 되었다고 기뻐한다. 목소리에서 행복이 묻어났다. 그때는 도저히 시간을 낼 수가 없었고 결국 오늘에서야 내가 교회를 빠지고 그녀를 만난다.

아침에 집을 나서기 전에 예쁜 봉투에 오십 달러를 넣었다. 넬슨에 가서 힘들 때 커피랑 달콤한 케이크 한 조각을 사 먹으라고 말하면서 슬쩍 건넬 생각이다. 전형적인 한국 정서다. 그런데 한국 정서면 어떻고 키위 정서면 어쩌랴. 내 마음이다.

아니타가 환하게 웃으며 카페 문을 들어선다. 소매 없는 꽃무늬 원피스를 입고 빨간 샌들을 신었다. 씩씩한 팔자걸음은 그녀의 전매특허이다. 내가 그녀의 커피값을 내고 싶어 벌떡 일어난다. 번번이 눈요기만 하고 선뜻 사 먹지 못했던 그녀가 좋아하는 케이크도 주문한다.

넬슨은 뉴질랜드 남섬의 북쪽 가장자리에 있다. 일 년 내내 날씨가 온화하다. 해안 절경이 아름다운 아벨 태즈먼 국립공원(Abel Tasman National Park)이 있는 도시이다.

트레킹을 좋아하는 나에게 너 이제 무료 숙박시설 생겼어. 자주 놀러 와.”라고 그녀는 말하지만, 앞으로 내가 몇 번이나 그녀를 볼 수 있을까?

함께 보낸 시간이 그리 길지 않지만 떠나 보내는 마음이 제법 얼얼하다. 앞날에 대해 꿈으로 부풀어 있는 그녀에게 나의 이런 마음을 들키고 싶지 않다.  

나는 이민자다. 커다란 이별을 경험했다. 그렇다고 작은 이별이 쉬워지지는 않는다. 때로는 작은 이별이 큰 이별의 상처까지 휘저어 놓는다. 아니타가 넬슨에서 행복하기를 바란다.

필명: 아보카도 나무

 

글 쓰는 사람들은 오클랜드를 중심으로 한 글쓰기를 좋아하는 사람들의 모임입니다. 한 달에 두 번 모여 좋은 글을 나누며 글쓰기도 하고 있습니다. 네 명이 번갈아 가며 연재합니다.


 

[이 게시물은 일요시사님에 의해 2018-07-17 20:23:23 교민뉴스에서 복사 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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