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쓰는 사람들(14)] 남편에게 설거지를 하게 하려면

문학의 향기

[글쓰는 사람들(14)] 남편에게 설거지를 하게 하려면

일요시사 0 2377

 

카톡으로 받은 사진 속의 장소가 이상하다.

“어디?”

“쉬내퍼록.(Schnapper Rock)”

“공동묘지? 거기서 뭐 해?”

“책 읽어. 이것저것 긁적거리기도 하고.”

 

참 고운 언니다. 팔다리가 가늘고 이야기도 조곤조곤하게 한다. 천생 여자다. 육십이 다 된 나이에 남편과 갈라섰다. 뉴질랜드 법대로 재산을 반으로 나눴다. 언니의 남편은 직장 수입이 있어 절반의 돈으로 보증금을 내고 융자를 얻어 집을 샀다. 바로 새로운 삶을 시작했다.

 

평생 남편 뒷모습만 바라보던 언니의 사정은 다르다. 일 구하기가 어려웠다. 목돈이 부스러지는 게 무서워 플랫팅(Flatting)부터 했다. 궁궐 같은 집을 나와서 플랫팅을 하는 언니는 나를 한 번도 집으로 부르지 않았다.

 

이민까지 와서 반평생 넘게 함께 산 사람과 헤어지기가 쉽지 않았으리라. 나도 언니의 이혼에 한 몫 거들었다. 언니의 전화 속 목소리에서 묻어나는 외로움에 죄책감이 든다. 현명한 사람이니 본인이 어련히 잘 알아서 결정했을 거라고 나 자신을 위로한다. 그래도 최근에 만났을 때 환해진 표정으로 “날아갈 것 같아. 결혼은 실패했어도 이혼은 성공했어”라고 말하는 걸 보고 마음을 놓았다.

 

쉬내퍼록은 공동묘지가 있는 곳이다. 주위에 한국 사람들도 적잖이 살고 있다. 언니는 공동묘지에 와서 한숨을 돌리는 중이다. 여럿이 사는 플랫팅이 쉽지 않았나 보다.

 

뉴질랜드는 어디를 찍어도 풍경 사진이 된다. 공동묘지도 예외는 아니다. 마치 공원 같다. 넓은 잔디밭에 나무도 많고, 여기저기 쉴 곳도 눈에 띈다. 비석 앞에는 예쁜 꽃들이 놓여 있고, 나뭇가지 사이로 새소리도 들려온다.

 

나도 가끔 그곳에 간다. 비석에 쓰여 있는 이름과 생몰일을 보면서 여러 상상을 한다. 비석을 읽는 것이 도서관에서 책 표지를 보는 것과 같다. 죽은 사람들이 각자 자기의 이야기를 가지고 누워 있다. 이곳에서 언니는 책도 읽고 글도 쓴다. 처음에 언니가 글을 쓴다고 했을 때 나는 고개를 갸우뚱했다. 그렇게 글쓰기는 나에게 다가왔다.

 

쟈크 샤보는 “작가는 사물과 언어, 현실과 상상, 이승과 저승이 양자 사이의 경계에 천막을 치는 유랑민으로 남아 있는 자’라고 이야기한다. 이민자만큼 ‘경계에 있는 유랑민’이라는 말을 순간순간 온몸으로 느끼는 사람도 없을 거다.

 

뉴질랜드의 한여름 12월 어느 날. 잔디를 깎으러 온 초로의 한국 아저씨는 눈이 아프게 쏟아지는 햇빛 아래서 “눈이 오네요”라고 인사해 나를 당황하게 했다. 한국에 첫눈이 왔다는 이야기였다. 몸만 뉴질랜드에 있지 마음은 한국에 있다.

 

나도 비슷하다. 날마다 한국 뉴스를 인터넷으로 보느라 뉴질랜드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는 잘 모른다. 이곳 소식은 저녁 식사 시간에 아이들이 툭툭 던지는 이야기를 귀동냥해서 들을 뿐이다.

 

강산이 변한다는 시간을 살아내도 한여름의 크리스마스는 여전히 낯설다. 해 질 녘이면 문득 집에 가고 싶은 생각도 든다. 내 집이 여기인데 어디를 가고 싶은 건지. 나는 이곳에서 떠도는 자이다. 그러고 보면 이민자인 내가 글을 쓰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이민을 결정할 때는 나라를 옮기는 게 그렇게 큰일이라는 걸 몰랐던 것 같다. 이민을 나무 옮겨심기에 비유하곤 한다. 옮겨진 나무가 몸살을 하는 것을 보았다. 잎새도 다 떨구어 내고 마른 가지 몇 개로 살아남으려고 버틴다. 사실 이민 초기에야 ‘적응’하느라고 정신이 없었다. 어느 정도 숨을 돌리고 나니 마음이 휑하다. 모국어로 한 글자, 한 글자 꾹꾹 눌러 쓰면서 그 구멍을 메워 가는 중이다.

 

이민 올 때는 언어 걱정을 별로 안 했다. 영어를 쓰는 나라에서 살다 보면 나도 ‘자연히’ 영어를 모국어처럼 구사할 수 있을 거로 생각했다. 그런 깜찍한 발상은 대체 어디서 나온 건지 코웃음만 나온다.

 

모국어가 아닌 영어를 사용하는 일이 늘어나면서 마음속에 이야기가 쌓인다. 오십 대 여자들의 대화는 한국 사람이나 키위나 비슷하다. 대화의 주제가 어디로 튈지 모른다. 나는 종종 언어의 미로 안에서 길 잃은 아이가 된다.

 

때로는 언어의 문제가 아니라 문화의 차이라고 나를 위로하기도 한다. 이유가 언어건 문화이건 간에 그사이에 끼지 못하니 외롭다. 오가는 대화 속 이야기가 잘 이해가 안 되면 남들이 웃을 때 같이 어설프게 웃고 넘어간다. 못다 한 많은 이야기가 마음에 갇혀있다. 그 말을 이렇게 글로 풀어내면 가뿐해져 내일 다시 일하러 갈 힘이 생긴다.

 

글쓰기는 내게 여러모로 위안이 된다. 글과 노는 재미도 점점 알아가는 중이다. 좋은 선생님과 글동무를 꾸준히 글을 쓴다. 격려 차원에서 선생님이 내 글을 교민신문에 대문짝만하게 내주셨다. 집안 식구들의 반응이 재미있다. 딸아이들은 “와! 엄마 쿨!”하면서 엄지손가락을 척 올린다. 그동안 영어 때문에 기죽고 살았던 내 어깨가 쫘악 펴진다.

 

남편은 갑자기 설거지며 집 안 청소 등 집안일을 열심히 한다.

 

“웬일이야?”

귀밑머리가 허연 남편은 수줍게 웃는다.

“당신, 글에 내 이야기 쓸 거잖아.”

 

아마 당분간은 글을 쓰러 쉬내퍼록까지 갈 필요는 없을 것 같다.

필명:아보카도 나무 

 

‘글쓰는 사람들’은 오클랜드를 중심으로 한 글쓰기를 좋아하는 사람들의 모임입니다. 한 달에 두 번 모여 좋은 글을 나누며 글쓰기도 하고 있습니다. 네 명이 번갈아 가며 연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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