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쓰는 사람들(27) 울보 언니

문학의 향기

글쓰는 사람들(27) 울보 언니

일요시사 0 3150

 “어떤 놈이야? 울 언니 때린 놈이?”

 툭하면 맞고 들어오는 언니를 대신해 씩씩거리며 대문을 나선다. 나보다 두 살 많은 언니는 훌쩍거리며 나를 따라 나온다. 동네 어귀에서는 내 또래 아이들이 삼삼오오 짝을 지어 놀고 있다. 그 뒤로 저 멀리 민수가 보인다. 나를 보고 무서워 도망가고 있다.

 “야! 민수. 너 다음에 내 눈에 보이면 내 손에 죽을 줄 알아!”하며 으름장을 놓는다.

 나는 고무줄놀이나 딱지치기, 구슬치기 등 못하는 게 없었다. 오후가 되면 아이들은 딱지와 구슬을 사기 위해 나를 찾는다. 동네 구멍가게보다 훨씬 많은 양을 얻어 주기 때문이다. 산도 잘 타서 뒷산을 오를 때면 동네 아이들은 늘 저만치 나를 따라 올라온다. 위아래 3살까진 다 내가 접수(?)했다.

 싸움도 잘했다. 계집아이였지만 또래의 사내애들보다 체격이 큰 편이었고 힘도 셌다. 나이가 많은 남자아이래도 내게 시비를 걸지 못했다. 초등학교 5학년 때, 중학교 2학년 동네 오빠와 몸싸움이 있었는데 그만 내 주먹에 그 오빠는 코피가 나고 말았다. 몇 시간 뒤 그 오빠의 엄마가 집 밖에서 화난 소리로 나를 찾았다. ‘어떻게 해야 하나’ 쩔쩔매는 사이, 엄마가 문 앞에 서 계셨다. 다짜고짜 그 아이 엄마는 화가 난 목소리로 엄마에게 따져 묻는다.

 “딸 여식을 어찌 키웠길래 내 귀한 아들의 코에 피를 내게 만들어요?”

 그 기세에 질 우리 엄마가 아니다.

 “얼마나 남자아이를 못나게 키웠으면 3살이나 어린 여자아이에게 맞고 다녀요?”

 사과를 들으려고 온 그 오빠의 엄마는 우리 엄마의 기에 눌려 본전도 못 찾고 돌아갔다. 엄마가 나를 걱정했던 건 선머슴아, 남자아이 같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또래 아이보다 키도 작고 연약했던 언니는 달랐다. 나와 함께 놀 때는 감히 언니에게 함부로 대하지 못하지만, 언니 혼자 동네 아이들과 놀 때는 맞고 들어온 적이 종종 있었다.

 언니는 나와 함께 목욕탕이나 구멍가게에 가는 걸 싫어했다. 나는 언니보다 키도 크고 덩치도 있어서 거스름돈을 으레 나에게 주기 때문이다. 밖에만 나가면 자연스레 언니는 동생 취급을 받았다. 몸이 약했던 언니는 늘 엄마의 걱정과 보살핌 속에 있었다.

 달걀이 귀하던 시절, 언니와 나는 동네 아이들과 놀고 있었다. 점심때가 되자 엄마가 오라고 손짓한다. 나더러는 좀 더 놀라고 하고는 언니만 오란다. 어느 날 궁금해서 집으로 따라 들어가 봤다. 아니 부엌에서 언니에게 그 귀한 달걀 프라이를 먹이고 있는 게 아닌가. 한 달에 한두 번 구경할 수 있는 달걀을 언니는 일주일에 몇 번을 먹고 있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인삼을 달여 진액은 언니를 주고 나는 인삼 뿌리만 먹었던 기억이 생생하다. 어린 마음에 섭섭했지만 나야 뭐든 잘 먹는 건강한 아이였으니 엄마로서는 허약한 언니를 챙기는 건 당연했으리라. 엄마는 편식하는 언니가 언제나 걱정이 되었던 것이다.

 

 여행사 사장님에게 급하게 전화를 건다. 다급한 목소리로 가장 빠르게 한국에 도착할 수 있는 비행기표를 알아봐 달라며 애원했다. 공항에라도 가 있어야 마음이 놓일 것 같다. 슈퍼에서 장을 보다 엄마의 부고를 받았다. 정신 나간 사람처럼 집으로 돌아와 옷가지 몇 개만 가방에 쑤셔 넣고는 집을 나선다. 뉴질랜드의 반대편인 한국은 겨울이라 패딩과 털모자를 손에 들고 공항으로 향했다. 여행사 사장님의 도움으로 3시간 뒤 일본을 거치는 한국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한 달 전 엄마와 헤어질 때의 모습이 다시 떠오르며 눈물이 볼을 타고 흘러내린다.

 “어서 빨리 가라. 아이들이 기다리고 있지 않니. 어서!” 하시며 떨어지지 않는 내 발길을 재촉하셨던 엄마의 모습이 눈에 선하다. 자식으로서 임종을 지키지 못한 죄스러움으로 목이 멘다. 비행기 안에서 소리 내 울지도 못하고 주체할 수 없는 눈물을 가방 속 선글라스를 꺼내 감춰본다. 그러다 언니 얼굴이 떠오른다. 형부도 멀리 가 있는데 언니 혼자 어떡하고 있을지 걱정이 된다.

 택시에서 내려 장례식장으로 발걸음을 재촉했다. 입구에 엄마 이름과 상주란에 언니 이름이 있다. 자라면서 남자 형제가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 적이 한 번도 없었지만 오늘만큼은 아쉬운 생각이 든다.

 사람들 사이로 검은 상복을 입은 언니가 손님을 맞는 모습이 보인다. 조그만 체구가 오늘따라 더 작게 보인다. 피어오르는 향 뒤로 엄마가 웃으며 나를 반긴다. 참았던 눈물이 다시 붓물 터지듯 흘러내린다. 엄마를 크게 불러본다. 아무 말 없이 한참을 지켜보던 언니가 상복을 내밀며 옆방에서 갈아입고 오라고 말한다.

 순간 언니의 얼굴을 살핀다. 눈이 마주친 언니는 ‘괜찮아’라고 말하는 것 같다. 엄마를 떠나보내고 한국에서 지낸 일주일 내내 난 울보였다. 엄마의 옷가지를 정리하면서, 눈바람이 휘날리는 장지에서 또는 엄마 방에 들어설 때마다 어디선가 엄마가 나를 부르는 것만 같다. 그러고 보니 한 번도 언니가 눈물을 흘리는 모습을 본 적이 없다. 하지만 나는 안다. 나보다 더 많이 울고 있다는 것을.

 한국을 떠나 오던 날 언니와 난 공항에서 한참을 부둥켜안고 울었다. 이제 세상에 언니와 나, 단둘뿐이라는 생각에서였을까. 잘 버티며 견뎌내자며 언니가 날 다독인다. 어릴 적 동네 아이에게 맞고 들어와 훌쩍거리던 언니의 모습은 이제 없다. 자그마한 품은 한 없이 크게만 느껴진다.

    <글과 그림_메이>

 

'글 쓰는 사람들’은 오클랜드를 중심으로 한 글쓰기를 좋아하는 사람들의 모임입니다. 

한 달에 두 번 모여 좋은 글을 나누며 글쓰기도 하고 있습니다. 네 명이 번갈아 가며 연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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