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쓰는 사람들(6)] 준규 형이 왔어요

문학의 향기


 

[글쓰는 사람들(6)] 준규 형이 왔어요

일요시사 0 14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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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김인식 

 

 한국에서 대학 동창 부부가 아이들을 데리고 뉴질랜드에 놀러 왔다. 같은 대학, 같은 과, 같은 동아리 출신이다. 두 커플이 있었는데 한 커플이 우리 부부고 다른 한 커플이 이 친구네다. 준규 형과 성희다. 내 나이가 오십이 넘었어도 아직도 준규 형이라는 호칭이 스스럼없이 나온다. 그때는 여자 후배가 남자 선배를 ‘형’이라고 했다. 유행처럼 모두 그렇게 불렀다.

 한국에서도 숨차게 사느라고 학교 졸업 후 서로 연락도 못 하고 지냈다. 그 치열함의 정점에서 우리는 이민을 왔고 친구네는 한국에서 살고 있다. 뉴질랜드의 삶도 한국 못지않은 긴장감을 요구했다. 뒤돌아보고 누구에게 연락하고 할 여유가 없었다. 지난해 부모님을 뵈러 한국에 가는 길에 연락을 했다. 고급 한정식집에서 저녁 한 끼를 잘 얻어먹었다.

 “뉴질랜드 놀러 와. 내가 잘해줄게.”

 “그래, 우리 결혼 25주년으로 한번 갈까 하는데.”

 그러더니 정말 왔다. 들뜬 마음으로 저녁 식사 준비를 한다. 한국에서 부러워하는 청정 쇠고기를 부위별로 샀다. 갈빗살, 등심, 안심, 채끝살, 안창살. 평소보다 종류별로 많은 고기를 사는 내게 단골 정육점 사장님은 “손님 오셔요?”라고 묻는다. 나는 “한국에서 동창이 와요”라고 환하게 웃으며 대답했다. 그러면서 벌집 삼겹살도 한 팩 집어 들었다.

 나는 수원에서 서울에 있는 대학을 갔다. 서울에 사는 친구가 장조림을 도시락 반찬으로 싸 오는 것을 보고 기가 죽었던 기억이 생생하다. 공부보다 술 마시는 것에 더 정성을 쏟았던 대학 시절이었다. 밥이나 술을 먹고도 돈을 내본 기억이 별로 없다. 단지 일 년 일찍 학교를 들어왔다는 이유로 선배라고 불리던 형들이 그 모든 것을 다 감당했다. 그 선배 중 한 명이 준규 형이다. 한번 원수(?)를 제대로 갚고 싶었다. 내 마음 깊은 곳에는 ‘나는 뉴질랜드에서 이렇게 좋은 쇠고기를 먹는다’고 슬쩍 자랑하고 싶은 마음도 있었다.

 파켄 세이브에 가서 싱싱한 푸른 홍합을 샀다. 비싸야 1킬로에 4달러 정도 하는 것이지만 한국 사람들이 얼마나 좋아하는지 수년간의 한국손님 대접을 통해 잘 알고 있다. 요새 한국에서 잘 쓰는 표현인 가성비(價性比), 가격 대비 성능이 훌륭한 음식이다.

 수염을 뜯어내고 잘 씻어서 물을 조금 붓고 찜통에 찐다. 홍합이 입을 쫙 벌리고 노르스름한 속살을 자랑한다. 커다란 접시에 모양새 좋게 내놓으면 첫 번째 환성을 들을 수 있다. 두 번째는 속살을 빼서 초고추장에 찍어 먹을 때 나온다. “정말 맛있네.” 그러나 가장 강렬한 감탄사는 홍합 국물을 마실 때 들을 수 있다. 홍합을 찌며 나온 국물에 마늘을 넣고 끓여 내놓으면 보통 사람들은 다 넘어간다. 

 “크으윽.”

 대학생 때 술집 아주머니의 눈치를 보며 달라고 하던 홍합 국물을 이제 나는 무한 리필해 줄 수 있다. 이만하면 성공한 인생 아닌가?

 홍합을 튼실한 놈으로 골라서 시장바구니에 넣고 몇 걸음 걸으니 와인 코너가 눈에 들어온다. 그냥 넘어갈 수 없다. 알량한 와인 실력을 발휘한다. 얼핏 보니 한국에서도 와인을 좀 안다고 하면 잘 나가는 것으로 보이던데. 친구와의 경쟁심리가 나를 조금씩 자극한다. 해산물에 잘 어울리는 백포도주, ‘피노 그리’(Pinot Gris). 소주 맛하고 제일 비슷해서 내가 좋아하는 와인이다. 고기와 잘 어울리는 적포도주 ‘피나 노아’(Pinot Noir). 브랜드는 내가 아는 오직 한가지, ‘빌라 마리아’(Villa Maria). 마침 할인 행사 중이다. 이렇게 고마울 수가. 호기롭게 두 병씩 집어 들었다.

 친구네는 오클랜드를 거쳐 바로 퀸스타운으로 내려갔다. 아이들을 데리고 루트번 도보여행을 거뜬히 해냈다. 그 후 크라이스트처치와 넬슨을 여행하고 오늘 오클랜드 공항에 도착했다.

 공항에서 집으로 픽업을 오는 중간에 몇 군데를 구경시키고 드디어 우리 집으로 왔다. 한쪽에서는 쇠고기를 굽고 한쪽에서는 홍합을 안주 삼아 포도주를 마시며 말 보따리를 푼다. 이야기를 들어보니 숙소는 한국에서 ‘에어비앤비(Airbnb)’로 예약을 했다고 한다. 구글 지도를 켜고 렌터카로 운전을 해서 다닌 것이다. 친구 부부는 벌써 약간 뒷전으로 물러났고 20대 초반인 아이들이 코스를 정해 다녔다고 한다. ‘와, 한국 사람이 많이 세계화되었구나’하는 생각이 들었다.

 성희는 네 덕분에 ‘루트번 트랙’이라는 곳도 알게 되었고 아이들과 같이 도보여행을 할 수 있어서 좋았다고 하면서 고마워한다. 늘 겸손하고 사소한 것에도 고마워하는 친구다. 학교에 다닐 때도 언니처럼 믿고 의지했다.

 준규 형은 직장에서 2주를 빼 나오는 게 얼마나 힘든지 거듭 설명한다. 한번 말을 시작하면 좀처럼 쉽게 끝나지 않는다. 여전하네.

 친구의 사는 이야기를 들으면서 마음 한편에는 ‘내가 한국에 살면 저렇겠구나’ 하는 상상을 해본다. 이민에 대해 크게 후회는 안 해도 가지 않은 길에 대한 미련이 늘 마음 언저리를 떠돈다. 나도 잘 살고 있다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한다. 그런데 자꾸 내가 준규 형이 아니라 준규 형 아들을 보고 이야기한다.

 준규 형 아들 23살. 준규 형, 성희, 남편과 내가 한창 함께 어울리던 나이다. 머리숱도 적어지고 적당한 살집이 생긴 준규 형. 장발 스타일에 눈빛이 초롱초롱한 준규 형 아들. 내 기억 속의 준규 형은 준규 형 아들의 지금 모습이다. 네 명이 지독히도 같이 어울려 다녔다. 준규 형 아들이 주위 눈치를 슬쩍 보더니 혼자 와인을 따라 마신다.

 “저것까지 닮았네.”

 나는 혼자 웃음 짓는다. 

 

필명: 아보카도 나무


‘글쓰는 사람들’은 오클랜드를 중심으로 한 글쓰기를 좋아하는 사람들의 모임입니다. 한 달에 두 번 모여 좋은 글을 나누며 글쓰기도 하고 있습니다. 네 명이 번갈아 가며 연재합니다.


[이 게시물은 일요SISA님에 의해 2018-07-02 20:55:22 교민뉴스에서 복사 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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